녹색 빛 오로라가 파도처럼 하늘을 덮으며, 로제타의 검이 잭의 움직임을 봉쇄하듯 붉은빛의 흔적을 강제로 밀어냈다.
끝이야. 잭!
서리의 군주인 내가 질 것 같으냐?
소피아는 이미 사라졌다. 네가 서리의 군주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럼, 너희가 재건하려는 건 뭐냐?!
잭은 얼음이 맺힌 장창을 갑자기 가로로 휘둘러 로제타를 한 걸음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강력한 밈은 계속 전달되어 각 개인의 의지에 영향을 미친다. 로제타, 지금의 전장을 봐라. 이처럼 강력한 밈들 때문에 너희가 이렇게까지 싸우게 된 것이다.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이 세계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잭이 다시 창을 들고 로제타에게 돌진했다. 독사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창끝이 빛의 검을 스치며 로제타의 가슴을 노렸다. 그러자 로제타도 순간적으로 빛의 검을 회전시켜 잭의 긴 창을 쳐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초월적인 대통합 따위는 필요 없어. 모두가 인간을 위해 싸운다는 하나의 신념만으로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어!
너의 통합도 순진하기는 마찬가지구나. 그건 죽을 때가 되어서야 터져 나온 양심일 뿐이다. 인성은 가장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규칙과 각종 사회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인성을 구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다른 사람을 속박하기 위한 게 아니야. 너희 같은 사람들은 왜 모든 걸 틀 안에 가두려고만 하는 거지!
이건 선조들이 희생으로 얻어낸 경험이다. "통합"이야말로 이 세계의 답이다!
무슨 답이고, 무슨 경험이야. 너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났는지 알아?
로제타는 치마 갑옷을, 잭은 등 뒤의 날개를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둘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의 오로라도 반응하듯 서로의 영역을 압박했다.
그중 일부 경험이 욕망의 집합체였음을 인정하지. 하지만 그 안에는 이 대의를 위해 진심으로 열정과 생명을 바친 인물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과 강성을 갈망하는 민중들을 위해 했던 모든 일이 허무로 돌아가지 않도록, 난 반드시 북극 항로 연합을 가장 강력한 밈으로 만들 것이다!
네가 말하는 그런 것들은 이미 과거의 일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와 소피아는 아직 여기 있다!
말쿠트여, 와라!
잭의 불안정한 동작을 눈치챈 지휘관이 즉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로제타는 공중에서 바로 켄타우로스로 변신했고, 그녀의 포탑이 빛나는 날개로 변해 잭을 지상으로 날려버렸다. 잭의 가면이 "까닥" 소리와 함께 깨지면서 파편으로 흩어졌다.
쿨럭...
가면이 완전히 깨졌고, 잭은 창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이런 상태로 로제타와 정면으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가면이 가리지 않은 잭의 눈 밑에는 피로와 광기가 역력했다.
그리고 동시에, 로제타 기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거의 다 소진되었고, 이번의 인간 말 형태 변환은 로제타의 마지막 변신이다.
과거의 영광이든, 네가 받은 부탁이든, 통합 전쟁 뒤의 대의든... 그런 건 나와 상관없어. 내가 처음부터 신경 쓴 건 북극 항로 연합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로제타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며 무기의 광선을 거두었을 때, 갑자기 멀리서 포성이 잇따라 울렸다. 병사들의 함성이 비명과 뒤섞여 퍼져 나왔고, 고래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비탄에 찬 울음이 되었다.
잭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그의 눈빛에 망설임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러고는 로제타처럼 마지막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만약 네 밈이나 "북극 항로 연합"이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만 안겨준다면,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난 지휘관에게 새로운 소피아시를 보여주고 싶어. 모두가 과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싶어. 그래서 난 너와 같은 일을 하기로 했어.
양측의 에너지 축적이 끝나자, 로제타와 잭의 핵심 부분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내 그들은 다시 무기를 잡고 동시에 몸을 낮춰 돌격 자세를 취했다.
난 여기서 "북극 항로 연합"을 파괴할 거야! 그리고 너희처럼 고통만 가져다주는 밈을 없애버릴 거야!
로제타!
잭!
잭이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고, 로제타의 말발굽에서도 불길이 일었다. 금속이 부딪치는 거대한 소리에 빙판이 거미줄처럼 갈라졌으며, 그 충격으로 주변의 쌓인 눈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멀리 있는 오로라마저 흔들리는 듯했다.
...
모든 힘을 쏟아부은 마지막 일격으로 승부가 갈렸다.
...
...
이런!!!
로제타의 승리였다. 잭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전신의 전투 갑주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계 관절은 과부하로 "찌지직"하는 전류 소리를 냈고, 곳곳이 파손된 흔적으로 가득했다.
너희가 날 거부한다면 세계는 여전히 사분오열될 것이다. 불협화음을 내는 밈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고, 인간은 또다시 악에 패배할 것이다.
잭은 힘없이 손을 내렸고, 허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오늘처럼... 그 밈들을 억제할 수 있을까?
쳇...
굳이 말하자면, 전부 너 때문이야. [player name].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하.
잭은 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이내 눈썹을 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제타, 부탁이 하나 있다.
말해, 듣고 있어.
애국자로서 부탁하지. 로제타, 이 하얀 대지를 우주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지구에서 가장 밝은 곳으로 만들어줘.
눈보라가 전장을 휩쓸었다. 로제타의 말발굽이 몇 걸음 움직이자, 얼음 부스러기가 발굽 끝에 묻었다.
거절할게.
너무 좋은 곳으로 만들면... 나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여길 노릴지도 모르잖아.
잭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더니, 결국 입꼬리만 살짝 당기고는 궁전 쪽으로 걸어갔다. 오로라 아래에서 그의 뒷모습은 더욱 외로워 보였다.
이 전쟁을 멈추려고, 너희들은... 승리를 선언하도록 해.
지휘관, 우리도 어서 가자.
"서리의 군주"라고 자칭했으니... 적어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거야.
초록빛 오로라가 빙야를 덮었고, 눈보라의 얼음 부스러기가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잭이 말한 대로 모두에게 승리를 알려야 할 때였다.
잭이 다시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곳에서 침식체의 생산을 중단하고, 자신의 통합을 끝내고 이 전쟁의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잭은 왕좌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난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난적의 온몸에는 희미한 퍼니싱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역시 네가 지배하는 게 더 재밌군.
난적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있었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과거의 난적은 어떤 "세피로트"의 존재를 감지한 뒤, 빙하를 뚫었고, 바로 그때 깨어난 잭을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엔 그를 침식체로 만들어 데려가려 했지만, 잭은 오히려 승격자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잭은 현재의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려 했고, 이를 위해 승격자의 힘과 병력이 필요했다. 그 대가로, 일이 끝난 후 자신을 난적에게 넘기기로 했다.
잭에게 있어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적의 입장에선 굳이 인간의 전쟁을 반대할 필요가 없었고, 이젠 그 전쟁마저도 끝났으니, 난적이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미안하군.
난 퍼니싱에 바칠 수 있는 게 없어.
예상했던 일이야.
난적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갑자기 힘을 모았다. 그러자 주위의 퍼니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모두에게 배신당한 주제에,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지!
승격자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
난적이 움직이려던 순간, 루먄체프가 갑자기 그림자에서 나타나 비늘로 덮인 손으로 난적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자 궁전 내부 사방에서 붉은빛이 서서히 밝아졌다. 그것은 곧 일어날 과부하를 알리는 신호였다.
서리의 군주!
인간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함께 지옥으로 가자, 승격자여.
쾅!
거대한 폭발음이 순식간에 궁전을 삼켰다. 붉은빛과 화염이 지붕을 뚫고 치솟았지만, 이내 눈보라와 오로라가 그것들을 덮어버렸다.
불꽃이 튀는 순간, 잭은 자신이 처음 지구를 봤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완전한 푸른 별 옆, 우주 한가운데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반짝임이 있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내 마침표를 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