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3 여명 속에서
로제타가 서리의 군주를 무찌르자, 전장에 승전의 방송이 울려 퍼졌고, 그 직후 궁전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그 폭발과 동시에 서리의 군주가 통제하던 군대에 "연결이 끊어진" 것 같은 혼란이 나타났고, 붉은 오로라가 완전히 사라지자 남아있던 삼공 둘과 승격자인 난적도 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장군들이 잇따라 사라지고 군대가 무질서한 혼란에 빠지면서, 전쟁은... 마침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 말로는... 서리의 군주가 그 폭발을 일으켰다던데.
전쟁의 후처리가 한창이던 다음 날, 지휘관은 예정된 외출을 준비하던 중 문밖에 서 있는 로제타를 발견했고, 그녀를 따라 이 설원으로 오게 되었다.
맞아. 잭이 말했던 대로 전쟁을 끝냈지.
죽었어...
로제타는 말을 끝내고 침묵에 잠겼고, 잠시 묵념하는 듯했다. 다시 눈을 들었을 때는 그녀의 눈빛에 담겼던 허망함이 조금 옅어져 있었다.
지휘관, 솔직히 잭이 했던 말 중에... 일리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북극 항로 연합을 밈으로 삼은 건 너무 극단적이었어.
음,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지금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지만, 이 땅이 척박하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감출 수가 없잖아.
잭이 이겨서, 북극 항로 연합이 세계 정복을 시작했다면 이곳에 장기전을 할 수 있는 자원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통합이라는 이름의 힘이 이 극지를 얼마나 멀리 이끌 수 있었을까? 내 답은 아마 비관적이었을 거야.
그래서 난 어떻게든 이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거야. 물론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세계의 지배자가 되겠다면... 반대하지는 않겠어.
날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이네.
하지만... 그래. 다른 이가 한다면 괜찮다고 봐.
잭처럼 강압적인 수단으로 다른 이를 강요하고, 의지를 왜곡하지만 않으면 돼.
이런 생각이 좀 급진적일 수도 있지만, 이게 대다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결국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각자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더 큰 "통합"이란 것은...
잭이 말한 것처럼, 전해 내려오는 밈에 맡겨도 돼. 그 밈이 선의를 품고 있다는 걸 보장할 수만 있다면, 난 문제없다고 봐.
게다가 내게는, 정말로 그런 밈이 있어서 북극 항로 연합까지 포용할 수 있고, 이곳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다면 나쁘지 않아.
사라져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그런 말까지 했으니까...
모두가 이 이름에 너무 오래 얽매여 있었어. 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처마가 무너질 정도로 쌓이면 치워야 하는 법이야.
앞서 길을 개척해준 사람들이 했던 모든 일을 부정하는 건 아니야. 모두가 내게 준 사랑은 의식의 바다에 여전히 남아있어. 하지만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는...
이미 떠난 자들의 바람이 아닌... 지금을 사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거야.
최후의 바람 같은 게 있다면... 난 계속 제대로된 삶을 살며, 언젠가 사랑하는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났을 때, 그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지.
난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로제타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마음속의 매듭이 풀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깜빡할 뻔했네. 지휘관, 실은 오늘 정찰병이 발견한 물건을 보여주고 싶어서 불렀어. 요즘 승격자를 조사하고 있는 거 맞지?
아마도? 우리가 옛 소피아 시에서 기지국 같은 장치들을 몇 개 발견했거든. 새로 설치된 것처럼 보이는데, 예외 없이 모두 퍼니싱 잔류치가 높게 나왔어.
하지만, 이 기지국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차로는 들어갈 수 없고 걸어가기엔 또 너무 느려. 그러니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어때? 지휘관.
불편할까 봐 특별히 안장을 만들어달라고 했어. 그 장인의 말로는 이 안장은 앉기 편해서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라고 했어.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로제타의 진지한 모습을 보니 이번 승마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휘관! 여기 있었던 거야!
다행입니다. 또 지휘관님께서 모르는 이에게 끌려갔는지 걱정했습니다.
맞아. 주둔지에 없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두 분... 왠지 말투가 수상하네요?
수석님... 좀 봐주셨으면 하는 보고서가 있어요.
곰 박사, 리, 노안, 파르마, 그리고 시몬이 모퉁이에서 작은 기차처럼 줄지어 나타나며 말했다. 시몬은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로제타는 갑자기 나타난 일행을 보며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계획이 틀어진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에는 체념한 듯 웃으며 그 익숙한 대사를 읊었다.
참 운도 없네.
그래서 이번 일을 겪고 나서, 게슈탈트가 없는 경우엔, 인간에게 퍼니싱에 맞설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건가? 예를 들면... 말쿠트?
말쿠트는 아직 온전한 상태가 아니지만, 이미 그 힘으로 그럴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증명했지.
우리의 의식의 바다 연구는 아직 피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생명의 나무 계획"을 재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선택이야. 제몽 기체의 실전 성과를 보면 전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증명됐고 말이야.
다시 작동시킬 경우, 자원을 소모하는 건 둘째치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분명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자들이 더 있어.
...
리브가 제몽 기체로 교체한 뒤, 공중 정원이 습격을 당했고, 북극 항로 연합 측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서리의 군주·잭"과 "난적"이라 자칭하는 승격자가 나타났어... 이 모든 건 우연일 리가 없지.
하지만, 이 계획은 이미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었어.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자네도 알다시피, 관련된 연구 자료들은 대부분이 면역 시대에 "그 이유" 때문에 영구적으로 폐기되었지.
하지만 제가 황금시대의 원본 자료를 먼저 제출한다면 어떨까요?
은회색 옷을 입은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금속 견장이 빛에 반사되어 차가운 광택을 내고 있었고, 검은 하이힐로 침착한 걸음걸이를 내디디며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굴에는 옅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네는 분명...
과학 이사회의 안전 총감 네티아입니다.
네티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을 가로챘고, 통신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카헤티 방사능 구역은 인간의 의식의 바다 연구가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딜레 대폭발" 때문에 귀중한 자료들과 함께 치명적인 붉은 안개에 휩싸여 버리게 됐죠.
군부의 최근 관측에 따르면, 승격자 하나가 이 안개 속 도시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산 의장님, 죄송하지만 "생명의 나무 계획"을 노리는 건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습니다.
버려진 연구소의 그림자 속에서 금속 파편들이 먼지 쌓인 바닥에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부러진 실험용 파이프 라인들이 벽 구석에서 얼어붙은 뱀처럼 뒤엉켜 있었다.
이제는 "난적"이라고 불러야 하나, 박사?
너도 "존·도"라는 이름으로 바꿨잖아? 그나저나 네 아지트는 참 찾기 힘들어. 밖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도착했네.
녹슨 철문이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난적의 모습이 문 뒤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몸에는 몇 군데 눈에 띄는 상처가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북극 여행의 성과는 어떤가? 전에 떠날 때 "세피로트"의 냄새를 맡았다고 했었잖아.
내가 잘못 판단했어. 그냥 비슷한 냄새였을 뿐이야. 뭐, 실패는 누구나 하는 거잖아.
여기서 내분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재미없네. 그래서 넌 뭘 하고 있어?
난적은 존·도 앞의 콘솔을 바라보다가 투명한 금빛의 호박석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잠든 소녀가 있었고, 속눈썹에는 서리 같은 흰색이 맺혀 있었다. 몇 가닥의 투명한 뿌리가 그녀의 가슴에서 뻗어 나와 가는 뱀처럼 호박 내벽을 타고 올라가며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 이것도 그 냄새가 나네.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네 몸에 상처도 있으니, 그분한테 먼저 돌아가. 파오스의 근황도 전해주고.
남의 "사냥감"을 빼앗는 건 좀 아니긴 해. 그럼 열심히 해봐. 혹시 여기서 죽게 되면, 내가 와서 네 잔해는 치워줄게.
둘은 원래부터 정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고, 그냥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은 것뿐이었다. 난적은 문도 닫지 않고 깔끔하게 떠나버렸고, 그 덕에 찬 바람이 먼지를 몰고 들어왔다.
존·도는 열린 문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콘솔의 버튼을 몇 번 눌렀다.
그러자, 호박석에서 갑자기 미광이 비치더니, 옅은 금빛을 띤 가지 몇 개가 바닥에서 솟아 나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그러고는 옆의 기계들을 감쌌다.
다음 순간, 호박석 속의 소녀가 속눈썹을 살짝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지금이... 언제지?
직접 나가서 보면 알게 될 거야.
바람이 문밖에서 불어와 바닥의 먼지를 날렸고, 조용히 자라나는 가지들도 흔들었다. 무언가가 그 가지들과 함께 천천히 깨어나고 있는 듯 갑자기 공기 중에 설명할 수 없는 악의가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