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는 늘 자신이 불운한 사람이라 여겼다.
숲을 지키는 자가 된 그날부터
북극 항로 연합이 위기에 처한 그날부터
로제타는 운이 결코 스스로 찾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타이밍이 절묘하군. 숲을 지키는 자!
타이밍이라면 너희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이 타이밍에 깨어나서 뭘 하려는 거지?
생체공학 고래 위에서 표도르의 비수가 허공을 가르자, 다이아나의 창끝이 이를 맞받았다. 표도르가 지배하는 고래 무리 위에서는 이런 치열한 교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숲을 지키는 자들은 지형을 이용해 연이어 생체공학 고래 위로 도약했고, 무수한 침식체가 고래의 선실에서 기어 나와 방어진을 형성했다.
한편, 미나는 전장의 혼돈 속에서 드레이크를 지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좋아! 계속 돌격해! 다른 생체공학 고래들은 벽처럼 밀어붙이고!
!!
미나 박사, 연산 자원은 이미 준비됐어.
곧 자리 잡을 테니까, 재촉하지 마!
너희들이 목적을 달성하게 둘 순 없지, 어뢰를 발사한다!
꿈도 꾸지 마!
무장도 아닌 주제에 하필 오늘 자꾸 일대일 대결을 하게 되는군. 이름이나 들어볼까?
지난날의 망령 주제에, 넌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어!
다이아나의 창끝이 다시 표도르를 향해 날아들었고, 표도르는 분노한 얼굴로 또 다른 칼을 꺼내 쌍검으로 창을 쳐냈다.
요즘 것들은 참 버릇이 없어.
!!
알겠습니다! 건물을 폭파해서 새로운 엄폐물을 만들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말겠어!
미나 박사 일행이 목표 지점까지 2km 남았다. [player name], 준비됐나?
언제든 가능해!
전선 안의 모든 이가 아시모프의 말에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붉은 오로라가 주는 화끈거리는 느낌조차 약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합 생물 무리 속에서 갑자기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거대 이합 생물에게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수많은 괴물의 잔해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얼음 바닥에 부서져 흩어졌다.
역시 죽은 척하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어. 잭 외에도 "생명의 나무 세피로트"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 있을 줄이야.
구조체, 이제 너도 내 흥미를 끌었다. 그 힘을 나한테 넘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격자가 화살처럼 날카롭게 돌진해 왔다.
이봐요,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어서 로제타를 보호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 거리만 유지하면 돼!
지금 난적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어.
1km 남았다!
지휘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적의 주먹이 로제타를 향해 날아갔지만, 이번에는 로제타가 날아가지 않았다. 로제타는 치마 갑옷으로 몸을 지탱하고 발을 땅에 고정한 채, 쌍검으로 승격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에 승부는 이미 났을 텐데!
하나가 죽어야 진정한 승부지!
하, 말 잘했어!
800m 남았다.
아시모프의 보고를 들은 로제타는 쌍검을 빙판에 꽂았다. 그리고 난적이 주먹을 휘두르는 틈을 타 난적의 손목을 잡은 뒤 그 힘을 이용해 몸을 돌려 무너진 벽을 향해 세게 내팽개쳤다.
이 녀석!
지휘관, 전력을 다하고 싶어. 의식 연결을 강화해 줘!
로제타가 쌍검을 뽑아 들고 돌진하자, 난적은 돌진해 오는 그녀를 맞받아치며 발톱을 휘둘렀다. 발톱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얼음 조각은 회전하는 칼날이 되어 날아들었다.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내게 돌진해 온 건가? 구조체!
정말로 그 고래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드레이크가 목표 지점 500m 앞에서 이합 생물에게 저지당했어!
뭐라고요?
동시에 충격이 발생했고, 곧이어 난적의 주먹이 날아와 로제타의 복부에 꽂혔다.
표도르의 고래는 막았다고 쳐도, 내 이합 생물은 누가 막을 거지?
난적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주먹을 날렸고, 로제타는 방어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해. 나도 연락이 되지 않고, 위성으로만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작전이 실패한 건가요?
아니. 작전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어. 미나 박사와 드레이크가 아직도 싸우고 있잖아.
싸우긴 개뿔, 조금만 더 있으면 이합 생물이 고래를 뒤덮을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널 제압하기만 하면 그 힘은 내 것이 된다고!
이합 생물이 미나 박사를 이겨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잖아. 승격자!
구조체!
난적이 기계 팔의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올려 로제타를 통째로 덮치려 했지만, 그 순간 로제타가 자세를 잡았다.
미나 박사가 반드시 거기 도착하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믿고 준비를 마치는 거 하나뿐이야!
그렇게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적이 축적한 힘을 폭발시켜 지금까지의 가장 강력한 일격을 준비해 로제타의 머리를 겨냥했다. 만일 공격이 명중하게 된다면, 이 전쟁은 즉시 종료될 것이다.
쿨럭, 쿨럭.
갑자기 통신 채널에 남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배경에서는 생체공학 로봇의 울음소리인지 아니면 바다와 하늘의 소리인지 모를 잡음이 뒤섞여 들렸다.
저희는 숲을 지키는 자와 함께 온 선단입니다. 임시로 급조한 공격선들은 모두 배치를 마쳤으며, 이후 지휘권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에게 이양하겠습니다.
데이터 기기에 순식간에 아군 표시가 밝게 빛났고,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음?
멀리서 진동과 고래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전해졌고, 이내 미나의 희미한 통신이 다시 들렸다.
[player name], 지금 당장 로제타에게 변신 가동 명령을 내려줘!
잠깐, 아직 목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또 문제가 생긴다면...
꽤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지금 난적을 이기려면 더 이상 드레이크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기다릴 수 없었다. 로제타가 말쿠트를 가동하는 동시에 드레이크가 목표 지점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시모프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문제가 생겨서 이전처럼 로제타의 의식이 끊긴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공하게 놔둘 것 같아?
로제타를 막기 위해 순간 동공이 수축한 난적은 악의를 담은 필살의 주먹을 내리꽂았다.
이놈!
로제타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난적의 주먹을 막아냈다. 난적의 공격이 강력했지만, 로제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휘관, 이기고 싶어. 꼭 이기고 싶어!
로제타의 결심은 매우 확고했고, 의식 연결을 통해 전해져 오는 열정은 이제 적절한 때가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과장된 말이었지만, 로제타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결의를 힘주어 외쳤다.
이 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붉은 오로라 아래, 로제타는 새하얀 검광에 휩싸였고, 눈빛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매번 빗나간 불운을 깨부수기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에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마침내, 로제타는 행운을 붙잡았다.
<i><size=45>코드네임 말쿠트, 전 기능 점검 완료, 어레이 개방.</size></i>
<i><size=55>강철의 기병이여, 모든 것을 부숴버려라!</size></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