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전장은 마치 거대한 고기 분쇄기 속으로 던져진 것만 같았다. 폭격 속에서 벽의 잔해가 계속 쏟아져 내렸고, 날리는 얼음 먼지와 화약 연기는 오로라에 물들어 불길한 붉은빛을 띠었다.
이합 생물의 포효, 기계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병사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뒤섞여 강풍에 실려 설원을 울렸다.
도저히 적의 전선을 뚫을 수가 없어요.
지휘관님, 삼공에게 막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이쪽도 겨우 방어만 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지휘관님! 이제 물러나야 해요!
지휘관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다시 한번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다.
!!
지하 공장이 다시 가동되면서 통로에서 기어 나온 침식체와 이합 생물이 새로운 병력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이쪽은...
으윽...
모든 이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높았던 사기마저 전투 속에서 점차 소진되어 갔다.
바로 그때,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한 이 전장에서 은빛 검광이 갑자기 나타나 붉은빛을 가르며 사고를 멈추게 했다.
우리는 아직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 물러난다면... 결국 이 땅은 서리의 군주의 것이 될 거야!
?
게다가 우리 외에도 승리를 위해 수많은 훌륭한 전사들이 이 전투에 참전했어. 여기서 물러나면 그들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 거야!
허세 부려봤자 소용없어요. 우리도 여기에 갇혀버렸잖아요. 드레이크도 그렇고, 당신이 드레이크를 지정된 위치로 보낼 방법이라도 있나요?
기다려봐.
뭐라고요?
로제타가 빛의 검을 들고 다시 이합 생물 무리 속으로 돌진하자, 한 줄기 검광과 함께 여러 이합 생물이 쓰러졌다. 통신기로 들려온 로제타의 목소리에는 수많은 시련을 겪은 뒤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직 상황을 뒤집을 기회가 남아있어. 지휘관. 이 극지에는 승격자조차 피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다이아나는 꼭 돌아오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녀는 절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는 거야.
그때 이합 생물이 가장 앞에 서 있던 로제타를 노렸다. 하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빛의 검의 에너지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검신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기나 해요? 이러다가는 모두...
알아. 지금이라도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철수시켜! 전투 수행이 힘든 병사들도 모두 함께 철수하게 해!
지휘관도... 여기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어. 넌 이 전쟁에서 너무나 중요하니 다른 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지휘관은 한계 거리까지만 물러나서 전투를 지켜봐도 돼. 그 뒤는, 상황 봐가면서 하면 될 거야.
게다가 의식 연결이 끊어져도 이 기체는 당장 멈추지는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로제타의 말은 전세가 기울면 자신을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이는 그녀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지휘관? 하지만...
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어야 할 거예요. 제가 부상자들을 지휘할게요!
이합 생물과 폭격 사이를 가로지르는 로제타의 모습을 보며, 파르마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제 와서 후퇴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항로 연합은 앞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잔혹한 현실이지만, 이것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곰 박사, 드레이크의 모든 엔진을 최대로 가동해!
그렇게 무리하게 가동하면 즉시 파손될 거고, 우린 돌아갈 수도 없어!
지금 당장 망하게 생겼는데, 앞으로의 일은 나중에 말하고! 그냥 터질 때까지 가동해!
통신기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생체공학 고래 무리를 재정비하여 다시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꼬마야. 네 상대는 바로 나, 서리의 삼공 루먄체프다!
5분 안에 해치워주지.
그나저나... 시몬, 이번에는 토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 같은데?
음... 이기고 나서 토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이것이 마지막 승부수였다. 열세에 빠지긴 했지만, 모두가 승리를 향한 결연한 의지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지휘관의 말은 지시가 아닌 희망이었다. 전투를 이어가며 단말기로 간절히 외쳤다. 누군가가 이 전장에 기적을 가져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게 했네.
인내가 마침내 전환점이 되어 주었고
길고 긴 전투 끝에 바라던 "행운"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