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들었어? 전선에서 승리해서 우리 연합군이 신 소피아 시의 성문 일대를 점령했대!
정말?!
극지의 차가운 바람이 무딘 칼날처럼 신 소피아 시 임시 주둔지의 판잣집을 스쳐 지나갔다. 보급품을 막 내린 인원들이 녹슨 기름통 주변에 모여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는, 전선의 소식이 담긴 전보를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우위를 점했다고는 할 수 없어.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운전병이 갑자기 차량의 바람막이 천을 들추고는, 전선의 한기를 몰고 들어왔다.
왜? 혹시 전선에서 뭘 본 거야?
침식체가 너무 많아. 화물을 내리다가 부대원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소피아 시에 침식체의 생산 라인이 숨겨져 있대. 그걸 부수지 않으면 전선이 조만간 침식체한테 휩쓸릴 거라고 했어.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겠지? 나도 예전에 생산 라인을 관리했었는데, 옛 소피아에 그렇게 많은 물자가 있었나?
소피아는 당시 수도였잖아. 그러니 다른 도시보다 비축량이 몇 배는 많을걸.
윗선에서 세계 정복 계획을 확정한 이후로는 비축량이 배로 늘어났겠지.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모두의 시선이 그 남성에게 쏠렸고, 그걸 눈치챈 남성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묻어났다.
오해하지 마! 우리 아버지가 소피아 수송선의 선장이셨는데, 내가 그 배에 몇 번 탔었거든. 그래서 알고 있는 거야.
그 말은... 생산 라인이 폭파되기 전까지는 병력 차이가 계속 벌어진다는 거네. 우리에게 항복이란 선택지는 없는 건가?
잠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모두의 목숨을 지킬 방법이 없나 싶어서 하는 말이야. 전에도 항복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했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전의 항로 연합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 "서리의 군주"가 뭘 하려는지도 알잖아. 그는 세계 정복을 목표로 정한 거라고! 정말로 항복하게 되면 우린 전쟁터로 끌려가게 될 거야!
서리의 군주는 침식체를 통제할 힘이 있잖아. 게다가 퍼니싱이 이상한 걸 수없이 만들어내고 있잖아. 인간들은 단합해서 퍼니싱과 맞서 싸워야 된다고! 지금 뭘 하자는 건데?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야. 누군가가 나서서 모든 사람을 이끌고 단합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우리도 여기서 전전긍긍하지 않았겠지? 전선의 사람들도 목숨을 걸 필요 없잖아!
이봐요! 어르신들!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누군가의 또렷한 목소리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뒤돌아보니 옷자락을 꽉 쥔 이반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추위로 붉게 물들었지만, 기세만큼은 넘쳤다.
우리가 침략자로 변한다면 그전과 다를 바가 없는 거잖아요. 두 번째, 세 번째 엠베리아가 생기는 걸 원하시는 건가요?
이반...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여기서 몰래 이야기하는 걸 계속 듣고 있었어요!
로제타 누나와 일행들이 전선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당신들은 여기서 숨어서 항복 얘기나 하고... 아직도 숲을 지키는 자들을 못 믿으시는 건가요!
믿고 안 믿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꼬마야.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인력과 물자를 소모했는지 알고는 있니?
창고 몇 개 분량의 물자를 보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연합군이 이기기만 하면...
이긴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뿐이잖아!
경비단 소속인 남성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러면서 거친 손바닥이 녹슨 기름통을 세게 내리쳤고, 그 금속 울림이 텅 빈 설원에 퍼졌다.
드디어 소피아 시가 재건되나 했는데,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승격자들이 신무르만스크 항구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잖아! 이쪽으로 수송되어야 했던 물자도 모두 사라졌어!
벌써 잊은 거니? 물자를 모으려고 항구를 돌아다니고, 바다에서 고물이나 건지던 시절을 말이야.
그걸 어떻게 잊어. 거지 취급을 당했는데... 결국 이 눈밭엔 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잖아.
운전병은 이 신소피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바다에서 물자를 건지던 나날들이 떠올랐는지 바다를 응시하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기든 지든, 우리가 애써 모은 물자를 다 써버린다고? 그럼, 그때 가서 이 신 소피아 시는 어떡하라고?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다시 시작한다라... 우린 벌써 몇 번이나 다시 시작했다고. 넌 그것도 모르는 거니?
세계 정복을 위해 엠베리아를 만들었고, 극지를 지키려 퍼니싱과 맞서다 극지가 조각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는데.
겨우 숲을 지키는 자들이 엠베리아를 물리치면서 다들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리의 군주가 돌아왔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때마다 결과는 항상 전보다 더 최악이 됐다고.
경비단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반을 바라보았다.
이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왜 "신 소피아 시"를 건설하러 왔는지 아니?
그건...
이반은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원래대로라면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말하려 하는 순간에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단지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였고, 할 수 있는 일도 벽돌 나르고 벽 쌓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남자는 한참을 침묵하는 이반을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쌓인 눈을 살며시 털어주었다.
수없이 많은 실망을 겪고도 "소피아"가 마음속에 남길 수 있는 "소중하고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라고.
말을 마친 경비단은 신 소피아 성문의 틈새를 통해, 멀리 있는 옛 소피아를 바라보려 했지만, 그곳의 윤곽은 이미 극지의 회색 안개에 의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이반은 그들이 신소피아를 짓기 위해 온 것은 결코 미래에 대한 동경도, 옛 건축 양식에 대한 집착도, 웅장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단지 이렇게 해서라도 옛날의 따스함을 "만질" 수 있고, "예전"을 재건하는 방식으로 잠시나마 과거로 도피할 수 있어서였고, 비극으로 가득한 이 극지에서 마음을 데워줄 수 있는 온기의 잔재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
이반은 입을 열었지만,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극지의 바람이 얼음 알갱이와 함께 휘몰아치며, 포화의 둔탁한 울림을 덮쳤다. 그러자 뼈를 에는 한기가 옷깃을 타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짓밟아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