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돌아왔어? [제2 제국]을 계획하는 극지인들을 없애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낡은 기둥 사이로 희미한 빛 속에 먼지가 떠다녔다. 갑자기 우렁차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폐허의 적막을 깨뜨렸다.
조롱하는 듯하면서도 재촉하는 목소리였다.
...
잭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내리깐 채 예전 왕좌가 있던 돌무더기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갔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여자의 목소리는 더욱 분노에 차올랐다.
내가 여기 남은 건 너희들의 "통합"에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야.
근데 지금까지 넌 대체 뭘 한 거야?
전쟁을 주도하고 있었어.
그 전쟁이 문제라니까. 통합 능력으로 상대를 전부 통제하면 되잖아. 내 손에서 침식체 통제권을 빼앗을 때처럼 말이야.
그들은 원래 내 신민이었어.
빼앗았다는 말에 잭은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앞에 있는 여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 싸우기라도 하자는 거야?
항로 연합을 존중해 주길 바라. 그리고 내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상대가 통합에 대한 대책을 세운 것 같아.
그러니까 통합이란 게 결국 누구나 막을 수 있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능력이란 거네?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여자의 살기가 더욱 짙어지며,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불완전한 통합은 실제로 이 정도밖에 안 돼. 그래서 내가 특별히 공중 정원에 간 거고.
블랙박스 데이터 같은 걸 가져온 것 같던데...
맞아. 로제타라는 기체에는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데이터가 있어. 아니. 그녀의 기체는 나와 같은 종류의 것이야.
좀 복잡해 보이네. 데이터를 얻었으면 로제타를 없애 버리지 그랬어? 그녀가 너와 같은 힘을 가질 수도 있지 않아?
로제타는 잠재력이 있는 인재라, 앞으로의 통합 전쟁에 큰 쓸모가 있을 거야. 게다가... 그녀는 그 기체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 맘대로 해보시든가. 그래서 다음은 어쩔 건데?
이 전쟁은 삼공에게 맡기고, 난 블랙박스 데이터로 내 기체를 완성할 거야.
데이터 처리가 끝나면, "최종 통합기"가 될 수 있어. 그때가 되면... 상대가 누구든 당해낼 수 없을 거야.
흥, 네가 말하는 순간이 와도 우리의 거래는 잊지 마.
통합 기술이 바로 "생명의 나무 세피로트"를 대표한다고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북극 항로만 연합하게 된다면, 이 소피아시는 다시 부흥할 수 있어. 그럼, 통합 기술은 네게 넘기도록 하지.
승낙을 얻은 여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살기를 거뒀다. 그리고 잭도 눈을 감고 의식과 데이터 사이로 잠겨 들었다.
눈보라에 갈가리 찢긴 설원에서 차가운 바람이 얼음 파편을 휘몰아치며 지나갔고, 사방에는 아득한 백색만이 남았다.
잭은 멀리서 어두운 붉은 핏자국이 묻은 옷을 입은 학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릎까지 쌓인 눈 속에 웅크리고 있었고, 낡은 연구복은 이미 얼음과 눈에 젖어 있었다.
납 회색 구름층이 아주 낮게 깔려 있었고, 학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더는 계속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말들은 결국 광풍 속에 사라졌고, 그들은 이 황량한 곳의 소리 없는 묘비가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잭은 기체의 최종 조정을 완료하지 못했고, "최종 통합"이라는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잭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입니다. 여기 전원을 전부 차단하세요!
알았어!
소화기를 모두 가져왔어!
불길을 향해 분사하세요!
후~ 해결됐다. 다 꺼졌어.
곰 인간의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공중 정원 쪽 일행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과 달리 항로 연합의 구성원들은 로제타를 포함해 모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일은 실수였어. 곰 박사, 실험을 다시 시작하자!
미나 박사, 잠깐만이라도 멈출 순 없어?
그녀가 바로 진짜 미나 박사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다니. 천재 미나 박사는 단 한 명뿐이거든. 참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공중 정원은 어떻게 날 사칭한 녀석을 알아보지 못한 거지? 내가 그렇게 평범해 보이나?
그건 아무도 널 본 적이 없으니까.
쿨럭... 여기 있는 사람이 내 기체, 말쿠트의 개발자야.
개발이 아니라 제작이라고, 진정한 개발자는 네 할아버지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미안.
로제타가 소개하는 중에 미나가 날카롭게 끼어들었고, 둘 사이에 긴장감 있는 설전이 오갔다. 미나의 차가운 표정과 말투에서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뭘 봐. 짜증 나 죽겠는데... 아, 이 표식, 네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구나. 악수는 사양하지. 난 미나라고 해. 로제타... 말쿠트를 구해줘서 고마워.
날카로운 면이 있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여성인 것 같았다.
그래서 방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실험하고 계셨나요?
말쿠트의 시뮬레이션 기동 실험이었어. 쳇, 난 굳이 설명하기 싫으니, 곰 박사한테 좀 부탁할게!
그래, 설명은 나한테 맡겨... 미나 박사는 로제타가 기절한 일에 자책감을 느끼며 줄곧 기동 실패의 원인을 찾아왔어.
미완성 기체였으니까, 미나 박사의 책임이 아니야.
공중 정원도 미완성 기체를 자주 운용하고 있잖아.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고장은 없었다고!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네.
얼른 실험을 계속하자! 전쟁 끝나기 전에 최종 통합기를 완성해야 해!
최종 통합... 말입니까? 혹시 로제타의 기체가 통합기인 건가요?
왜? 공중 정원도 "통합"이란 단어를 싫어하나? 하지만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야. 궁금하면 로제타의 할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봐. 설계도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기술 자체엔 죄가 없어. 죄가 있다고 하면, 기술을 남용하는 사람들 때문이지. 푸브 박사가 통합 관련 기술을 모두 기록해 놓은 덕분에 우리가 반통합 모듈을 연구할 수 있었어.
맞아. 이 모듈 덕분에 나와 내 동포들이 상대에게 통제당하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그렇군요. 조금 전 통합기에 대해 얘기했을 때 극지 기계들이 왜 통제당하지 않았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렇다면 서둘러 말쿠트를 완성해야겠어.
이이제이할 생각인가요?
잘 알고 있네. 현재, 이 기체는 꼼수로 움직이고 있어. 통합 능력이나 설계도에 적힌 힘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데, 말쿠트만 가동할 수 있다면 너희도 한결 편해질 거야.
알았어. 나한테 맡겨.
미나 박사는 우리 중에서 가장 전문적인 학자야. 난 박사를 믿어. 지휘관을 신뢰하듯이 말이야.
보... 보고드립니다! 서리의 군주 측에서 보낸 제빙 기계가 갈라진 얼음층을 다시 메우고 있습니다. 얼음층이 곧 연결될 것 같습니다!
역시 오래 막는 건 무리인가요?
오래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어. 하지만 시간은 적어도 서로 알아갈 만큼은 벌었잖아. 본거지의 다른 이들에게도 즉시 전선으로 집합하라고 전해.
알았어!
잘 모르는 이에게 배후를 맡기고 싶진 않거든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죠? 작전 계획은요?
...
선제공격하려고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