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회의실
2개월 전
2개월 전, 공중 정원, 회의실.
니콜라와의 회담을 마친 뒤, 하산은 테디베어의 단말기로 통신을 보냈다.
통신은 바로 연결되지 않았고, 하산은 조용히 기다렸다.
20초 후, 통신이 연결됐다.
하산 의장님, 제 통신 주소는 어떻게 아신 거죠?
예의 바르지도, 그렇다고 무례하지도 않은 말투였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테디베어, 너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길 예정이다.
…………
지휘 센터를 통해 발령하면 안 되는 임무인가요?
지휘 센터에도 동기화된 임무 기록이 남을 거다. 네가 해줘야 하는 건…
…왜 하필 저죠?
집행 부대에도 정예 팀이 많잖아요, 전 그저 정비 부대의 일원일 뿐인데…
너의 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필요해.
통신 너머로 테디베어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제 신형 기체 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순 없나요?
기체는 문제가 되지 않아.
테디베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 기체 교체 비용을 청구해 주세요.
…전에 이미 승인해 주지 않았나?
그 예산으로는, 새 기체 소모량의 50%밖에 안 돼요.
개인 명의로 기체를 업그레이드한 걸로 기억하는데? 직접 설계하고, 부품도 개별 구매하고.
절반을 지원해 준 것도, 규정을 많이 완화해서 진행한 거야.
쳇.
그리고 이것도 묻고 싶었어요. 기체 업그레이드는 제 개인적인 요청인데, 왜 결재를 올렸더니 자금이 신청된 거죠?
뭔가 음모를 꾸미는 냄새가 나는데요.
이번 임무가 끝나면, 기체 교체 비용 전액을 청구해 주지.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당신들의 음모나 계산 같은 거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그저 제가 맡은 임무만 잘 완수하고 싶어요.
그래. 만약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임무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철수해도 좋다.
뭘 조사하고 찾으면 되는 건가요?
하산이 웃었다.
이미 조사 임무인 걸 눈치챘군.
혹시 지상에서 떠도는 한 가지 전설을 들어본 적 있나?
"전자 극락세계"라고 불리는 전설 말이야.
…………?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지만, 지상 어딘가에 "전자 극락세계"라는 곳이 존재한다고 해.
그곳은 현실에 실망한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찾아가기만 하면 가상 네트워크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
만세명이랑 비슷하네요.
십중팔구 와전된 얘기겠죠. 만세명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고요.
그건 모르지…
그래서, 그 전설을 조사하는 게 이번 임무인가요?
그래, 지휘 센터를 통해 공식 배포되는 임무지.
그다음은요? 방금 말씀하신 "제가 해줘야 하는 건" 무엇인가요?
이제부터는 돌이킬 수 없어. 하기로 결정했나?
…아마도 제가 최적임자라서 부르신 거겠죠?
그렇지.
그럼 이번 임무, 제가 할게요.
이번 임무의 목표는, 인공지능이 탑재되지 않은 양자 슈퍼컴퓨터를 가능한 한 찾아내는 거야.
하산의 말이 끝나자 테디베어도 침묵에 잠겼다.
한참 지난 뒤에야 테디베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의회에서 게슈탈트 데이터 벽 해제에 대해 투표했을 때, 의장님은 어느 쪽이셨어요?
하산이 또다시 웃었다. 테디베어의 날 선 말투에도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장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은 테디베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전자 극락세계의 전설이 진짜라면, 그걸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장비가 반드시 있겠죠.
의장님은 인공지능이 없는 양자 슈퍼컴퓨터가 바로 그 장비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 넌 그 양자 슈퍼컴퓨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만 확인하면 돼.
지상
1개월 전
1개월 전, 지상.
테디베어는 단말기를 꺼, 눈앞에 떠 있던 지도 투영을 닫았다.
전에 하산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알아낸 게 없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진 몰라도, 난 확실히 그 퍼즐 조각 중 하나인 거겠지…
그저 장기말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건가…
지난 한 달 동안, 테디베어는 지상에서 전자 극락세계에 관한 정보만 찾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겨우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다.
일레인…
그때 단말기가 울렸다. 발신자를 본 테디베어는 조금 놀랐다.
뭐야,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내가 뒤처리해 줘야 하는 거야?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단말기를 통해 레오나르도에게 전달됐다.
너한테, 난 이제 그 정도 수준으로 타락했나?
레오나르도는 가슴에 손을 얹고, 비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기 그만하고, 본론이나 얘기해.
할아버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
테디베어는 어떤 감정으로 이 소식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박수라도 쳐야 하나?
테디베어는 이 장면을 수없이 상상해 왔다.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예상한 것만큼 기쁘지도 않았다.
그럼… 슬퍼해야 하나?
테디베어는 도저히 그 남자를 위해 슬퍼해 줄 수 없었다. 찰스가 그녀를 "도미니카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무엇보다, 사절 계획을 실행해 직접 자신의 아들, 테디베어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지금의 테디베어는 그저 냉정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진짜 냉정하네.
테디베어는 화면 너머에 있는 레오나르도를 째려보았다.
가문 내 몇몇 사람들은 벌써 장례 준비에 들어갔어.
아마 꽤 성대한 장례식이 될 거야.
아, 그리고… 빅토리아가 요즘 그룹 관리에 꽤 신경 쓰고 있더라. 가끔 할아버지 모습이 좀 비치기도 하고.
넌?
난 한량 귀족 놀이가 딱 좋은데? 돈도 많고, 쓸 데도 많고 얼마나 좋아.
사실, 휴가도 벌써 계획 중이거든.
...빅토리아도 좀 챙겨. 필요하면 도와주고.
진짜 이 오빠를 뭘로 보고.
그런 건 네가 얘기 안 해도 하고 있어.
레오나르도가 부드럽게 웃었다.
둘 다 내 여동생이잖아~
으— 역겨워!
통신을 끊은 테디베어는, 멀리 있는 보육 구역을 바라보며 다시 임무에 집중했다.
보육 구역
지상
지상, 보육 구역.
테디베어는 단서를 따라가다 한 낡은 가게 앞에 도착했다.
가게라고 하기에는, 사실상 문만 열려 있는 작은 창고였다. 창고 입구에는 "수리"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름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녹이 슨 철제 선반에는 오래된 공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낡은 수건을 들어 손의 기름때를 닦으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가게 주인 토니입니다.
뭐 고칠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테디베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레인이라고 알아?
토니의 웃음이 미묘하게 작아졌다.
여긴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다 기억하긴 어렵습니다. 일레인이라는 이름도 흔하고요.
혹시, 어느 조직 소속이신지… 그리고 일레인을 왜 찾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공중 정원 정비 부대 부대장 테디베어야.
그 말을 들은 토니도 조금은 경계를 풀었다.
괜히 돌려서 말할 필요 없어. 네가 그... 응급 구조 햇빛 멤버란 것도 알아.
…………
정식 명칭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전장 외상 응급 구조, 만물에 햇살이 비치는 팀"입니다.
일레인 누나는 여기 없어요. 저희도 지금 일레인 누나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여기 떠나기 전에, 누구랑 접촉했었는지 알아?
토니는 테디베어를 유심히 보더니 뭔가 눈치챈 듯했다.
일레인 누나를 찾으시는 게 아니라, 누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찾으시는 거군요?
맞아.
토니가 낡은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이 얘기는 공중 정원 구조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해요.
전에 이 보육 구역에 주둔하던 구조체는 멘티스 소대였어요.
정말 좋은 분들이었죠. 그중엔 무르라는 구조체도 있었어요.
일레인 누나는 그 무르 씨와 서로 마음이 맞아, 결국 결혼까지 했죠.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이유도 모르게 보육 구역의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적조와 이합 생물들이…
그 재해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무르 씨도 보육 구역을 지키다 전사했고… 늘 누나 뒤를 쫓아다니던 그 아이, 리온도 죽었죠.
그게… 언제쯤 일이야?
토니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일 이후로, 일레인 누나는 많이 우울해했어요.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요.
보육 구역 밖에서 몇몇 사람들을 만나더니… 결국 혼자 여길 떠났어요.
아마 다른 데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겠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토니는 자신도 믿지 않을 말을, 낮은 소리로 읊었다.
그 사람들을 찾고 싶으시면, 동쪽으로 가보세요.
토니의 조언대로, 테디베어는 보육 구역을 떠나 동쪽으로 향했다.
모래와 언덕을 지나, 퍼니싱 농도가 낮은 감염 지대를 통과했다.
한 숲에 들어서자 인간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였다.
흔적을 따라간 끝에, 그녀는 네 명으로 이루어진 이동 상인들을 발견했다. 단말기를 해킹해 그들의 통신을 확인한 결과, 어딘가의 기지로 이동 중이었다.
상인을 사흘 동안 미행한 끝에, 테디베어는 산들로 둘러싸인 한 지역에 도착했다.
여기겠네.
상인의 리더가 단말기로 누군가에게 연락한 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테디베어는 그들이 짐을 내려놓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7분쯤 지났을 때,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들켰어!
테디베어는 들킨 사실을 인지하고 바로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들킨 거지?"라는 의문이 스쳐 갔지만 생각할 틈이 없었다.
테디베어의 단말기에 내장된 프로그램이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역 침입?! 목적은...좌표 송신!
그녀는 도망치는 동시에 상대의 공격 신호를 지워나갔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테디베어는 깨달았다.
수없이 봐왔던 코드, 너무도 익숙한 침입 방식이었다.
입안에 익숙한 이름이 맴돌았지만, 막상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모…
등 뒤로 누군가가 땅에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회를 이런 식으로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뒤돌아보자, 익숙한 연보랏빛 머리칼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에누…
상대방 역시 충격에 휩싸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하필 너야.
무르의 집
엘리시온
엘리시온, 무르의 집.
모에누가 나를 습격했어. 깼을 땐 이미 엘리시온이었어.
테디베어가 설명을 마쳤다.
지난밤 안치소에서 벌어진 전투가 끝나고, 그녀는 이른 아침 이 집 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이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테디베어는 공중 정원에서 임무를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설명했다.
어젯밤, 모에누가 또다시 습격해… 내 기억을 덮었어.
크리스티나랑 노르만이 내 기억 보호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아차린 후, 난 대비책을 깔아놨어.
하지만 지금의 기억도,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라질 거야.
진짜 쉽지 않네, 모에누.
테디베어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내가 다시 짠 프로그램 덕분에, 6~7시간만 지나면 모든 기억이 전부 다시 돌아와.
예전의 기억 보호 프로그램이 이미 센터 건물 최상층까지 조사해 놨어. 거기에 엘리시온의 "코어"가 있어.
그곳이, 외부의 양자 슈퍼컴퓨터와 이 세계가 연결되는 "인터페이스"야.
때가 되면, 난 모에누를 그 꼭대기로 유인해 정면으로 붙을 생각이야.
승부가 나면, 그 인터페이스를 통해 현실로 돌아가는 거지.
무르는 이미 말 그대로 멈춰 있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정보 때문에, 생각 자체가 굳어버린 듯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너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야.
그리고 앞으로는… 날 막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에누가 뭘 하려는 건지 나도 몰라. 동기가 너무 모호해…
테디베어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마치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굳이 날 공격해, 기억을 지우고, 다시 덮어쓸 이유가 없어. 앞뒤가 안 맞아, 너무 과해…
아니면… "공중 정원의 테디베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