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온
늦은 밤
소리 없이 떠오른 보름달이 밤하늘에 걸려 있고, 테디베어는 옥상에서 멀리 떠 있는 작은 별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테디베어는 돌아보지 않았다.
마실 거 좀 가져왔어.
그녀는 오른손에 든 비닐봉지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 안에는 무알코올 전해질 음료 몇 캔과 캔 홍차가 들어 있었다.
네 건 홍차야. 이 시간에 차를 우릴 조건은 안 되니, 좀 참아.
모에누는 홍차 한 캔을 건네고,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 전해 미스트를 꺼냈다.
그렇게 피우다가 폐 망가져.
모에누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연기를 뿜었다.
망가지면 하나 갈면 되지.
어차피 이런 생체공학 부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
테디베어는 캔 홍차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노르만 쪽은 다 처리했어?
오늘 그 얘기는 안 꺼낼 줄 알았는데.
……
시신은 이미 수사국 안치소로 옮겼고, 법의학팀에서 검증할 거야. 무르는 지금 보고서를 쓰고 있어.
별다른 성과는 없을 것 같아.
시신이 거의 크리스티나 복사본이나 다름없어.
미안.
뭐가?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해서, 그 폭주 기계들을 막지 못했어.
그건 나와 무르도 마찬가지야.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왜 도망쳤고, 왜 폭주 기계가 쫓았던 걸까?
……
이 몇 건의 사건, 미스터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뭔가 더 깊이 숨겨진 정보가 있는데 우리가 아직 접근 못 한 느낌이야.
"자아 실존적 위기증", 폭주 기계를 조종하는 자, 크리스티나와 노르만의 이름과 외형…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테디베어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빈 캔을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그리고 잭.
잭이 왜?
크리스티나나 노르만하고는 달라.
상처도 다르고…
테디베어는 골목에 들어서기 직전에 봤던 그 환영을 떠올렸다.
모에누가 팔에 무인기를 장착한 채, 광날을 "자신"에게 겨누던 장면.
...잭의 상처엔 고온에 탄 흔적이 없었어.
왠지 모르게 입안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테디베어는 캔 홍차를 하나 더 따서 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잭은 엘리시온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한 기록이 있어. 그냥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야.
이번 사건에 휘말린 일반인이라는 얘기야?
어쩌면… 크리스티나와 노르만은 폭주 기계의 조종자가 죽인 게 아닐 수도 있어.
테디베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설을 얘기하고, 모에누를 흘끗 쳐다보았다.
모에누는 전해 미스트를 물고, 약간 초조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더 복잡해진 거잖아.
관련 증거라도 있어?
…없어.
나한테 더 단순한 해석이 있어, 들어봐.
모에누는 턱을 괴고 천천히 설명했다.
잭은 구조체가 아니니까, 굳이 특별한 방법으로 죽일 필요가 없었던 거야.
폭주 기계만으로도 충분했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
모에누가 전해 미스트를 다시 한 모금 피우려던 순간, 테디베어가 그것을 낚아채 갔다.
테디베어는 전해 미스트를 쓰레기봉투에 던지려다 잠시 멈추고,
눈앞에서 자세히 살펴봤다.
이걸 피우면 무슨 느낌이 들어?
모에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한 번 피워보려고?
안 돼~ 너 미성년자잖아.
테디베어는 모에누를 한 번 째려본 후, 전해 미스트를 봉투에 던져 넣었다.
"미성년자"라… 내가 말했잖아, 넌 농담에는 재능이 없다고.
멀리 구름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이곳을 벗어났다.
모에누는 힘이 풀린 눈으로 연기 도넛을 만들어, 바람에 흩어지기를 기다렸다.
모에누… 너는 왜 요원이 됐어?
보랏빛 머리의 여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아마, 유일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여기라서?
큭.
그녀는 스스로 비웃듯 짧게 웃었다.
나는 그저 엘리시온, 이 도시를 지키고 싶은 것뿐이야.
어릴 적 모에누는 그 그림자 같은 존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빠, 이 도시 이름은 왜 엘리시온이야?
그리스 신화엔 엘리시온이라 불리는 낙원이 있단다.
아빠는, 이곳도 사람들을 품어주는 낙원이 됐으면 해.
그때가 되면, 너도 여기서 마음껏 뛰놀며, 해가 뜨고 지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되는 거지.
아쉽게도 날개를 잃은 새가 됐지만.
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옆에 있던 테디베어에게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
사실 난, 줄곧 네가 부러웠어.
스스로 구조체가 되기를 결심하고, 자신의 가문도, 가두고 있던 우리도 떠날 수 있었잖아.
…………
별반 다를 거 없어. 작은 우리에서 조금 더 큰 우리로 옮겨갔을 뿐이야.
이젠 공중 정원이라는 그 "조금 더 큰 우리"도 이미 추락해 버렸지.
의식의 바다에서 다시 한번 찌릿한 통증이 스쳐 갔다.
인류는 침체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황금시대를 맞이했고, 세계 정부가 세워진 지 몇 년도 안 됐을 무렵.
누군가가 전 지구적 핵전쟁을 일으켜, 지상은 엉망이 되었고, 남은 도시들은 전부 폐쇄 정책을 실행했어.
하늘 위에 있던 "에덴II호"는 공중 정원이 됐고, 권력자들은 그 노아의 방주에 타려고 난리였지.
하지만 노아의 방주도 결국 가라앉았어. 웃기지 않아?
테디베어의 얼굴에 웃음기라곤 없었다.
그러니 "우리" 같은 건, 마음껏 비웃어도 돼.
사람은 결국 무엇에게든 묶여 살게 되어 있어.
날고 싶으면 그냥 날아. 넌 참새잖아.
테디베어의 말을 들은 모에누가 밝게 웃었다.
그러네, "테디베어"다운 사고방식이야.
모든 사람이 너처럼 염세적이고 어둡지만은 않거든.
참나, 나도 너처럼 까칠하고 오만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모르지.
모에누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한참 뒤에야 멈췄다.
마치 모든 힘을 다 써버린 듯, 기쁨도 슬픔도 없는 표정이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넌 그때, 혼자서 홀로그램 네트워크 속에 숨어 프로그래밍 공부하던 어린애였었는데.
어른인 척하는 말투 쓰지 마, 짜증 나니까.
모에누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모든 사람이 우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니야.
모에누는 또다시 전해 미스트를 꺼내며 말끝을 흐렸다.
상대방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성큼 걸어서 옥상 난간 끝에 서더니 몸을 돌려 테디베어를 바라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저녁 시간을 전부 업무에 쓰고 싶진 않거든.
모에누는 뒤로 몸을 젖혀 자유롭게 낙하했다. 그녀의 뒷말은 입에서 내뿜은 연기와 함께 테이베어 귀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지던 새는 다시 밤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양팔 옆의 무인기가 모에누를 싣고 멀리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테디베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슬픔이 깃든 눈으로 무인기가 남긴 잔광을 바라보기만 했다.
널 믿어도 되는 걸까... 모에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