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와 일레인의 아파트
엘리시온
늦은 밤
따뜻한 노란 조명과 나무 가구가 어우러져, 방 안은 유난히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레인은 마지막 요리를 올려놓고, 차려진 식탁을 한 번 훑어본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곧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할 무렵.
문이 열리고, 무르가 테디베어와 모에누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곳이 나와 일레인이 살고 있는 집이야.
무르는 외투를 벗어 현관 옷걸이에 걸었다.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테디베어는 무르를 흘겨본 뒤, 단정한 태도로 걸어와 일레인에게 악수를 건넸다.
크리스티나·노르만입니다. 테디베어라고 불러주세요.
무르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모에누입니다.
일레인은 약간 긴장한 듯 모에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가 끝나자, 무르가 다가와 일레인을 가볍게 안아줬다.
왜 이렇게 긴장해. 다 아는 사람들이야, 괜찮아.
그 말과 함께 무르가 먼저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다들 착석하고 나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무르는 TV를 켜 뉴스 채널로 돌린 후, 테디베어와 모에누 쪽을 바라봤다.
듣자 하니 너희 둘, 수사국에서 팀으로 편성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며?
듣자 하니?
수사국 안에서 떠도는 소문 말이야.
아마 너희들은 잘 모를 거야. 둘 다 워낙 사람들하고 안 섞이고, 다른 동료들이랑도 깊게 안 지내니까.
아, 저기 으깬 감자 좀 건네줄래?
모에누가 옆에 있던 접시를 무르에게 건넸다.
나랑 테디베어는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됐지.
그때만 해도 우울한 소녀였어.
지금도 뭐…
테디베어가 무르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미안, 미안.
다들 옆집 좋은 오빠 이미지라고 하지 않았나...
요즘은 왜 자꾸 어떤 재수 없는 남자가 떠오르지…
이 기회에 남매 사이 좀 다져보자구~
에이, 여전히 오빠는 안중에도 없구나?
…됐어.
테디베어는 한숨을 쉬며 스테이크를 더 힘껏 잘랐다.
무르는 테이블 아래에서 일레인이 발로 차는 느낌이 들었다.
일레인, 평소에 꽃을 키우나 봐요?
모에누가 방 안의 화분과 꽃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일레인은 마치 수업 중에 딴짓하다가 선생님에게 지목당한 학생처럼 움찔했다.
…?
그냥 평소 취미예요.
좋은 취미네요. 이 도시의 녹지율은 정말 가혹할 정도로 낮잖아요.
그러게. 엘리시온 세금은 다 어디에 쓰는 건지 참.
무르는 거의 반사적으로,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반응처럼 대답을 이어갔다.
이게 바로 세금 연금술이지.
이 둘은 정말 답이 없네.
저, 아직 물을 안 준 꽃이 생각나서…
일레인은 미안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고 해도 되잖아?
일레인은 대답하지 않고, 거실 구석으로 가 꽃들을 들고 베란다로 옮겼다.
테디베어는 거실 창턱에 놓인, 흙에 꽂혀 있는 익숙한 주황색 컵과 그 안에 핀 주황빛 꽃을 발견했다.
……
무르, 그쪽 조사는 어떻게 됐어?
잭? 몇 가지 단서를 찾았어.
이력만 보면 모범 시민이야. 5년 전에 엘리시온으로 와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운영은 전담 직원이 도와줘서 장사가 잘 됐어. 생활도 안정적이었고.
결혼 중개 사이트에 계정도 있었어. 총 세 명의 여성이랑 만났고, 그중 두 명은 식사 한 번으로 끝나고, 나머지 한 명은 두 번 만났지만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어.
오늘 가서 그 사람들과 인터뷰도 해봤는데, 아쉽게도 결정적인 단서는 없었어.
그 여성분들 말로는, "좋은 사람이긴 한데 너무 고지식하고 말이 없고, 정말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상상이 가세요?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터미네이터'라니까요. 미래 로봇이 과거로 와서 미래 지도자의 엄마를 암살하려 한 그 영화요."라고 했어.
아무래도 요즘은 이런 옛날 스타일의 남자가 인기 없나 봐.
……
왜?
그 사람 집에 가봤는데, 방이 정말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었어.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게 딱 보일 정도야. 혼자 사는 남자 기준으로는 아주 건강한 생활 습관이지.
냉장고에는 충분한 음식과 과일도 있었어. 혼자 사는 남자들 중에 과일까지 사는 사람은 거의 못 봤거든. 일부 사람들은 비타민 알약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아침은 집에서, 점심은 자기 레스토랑에서, 저녁은 집에서 챙겨 먹고 있었어.
집에 개인 영화관 장비도 갖춰져 있어서, 식사 끝나면 영화 한 편 보는 게 일상이더라.
옷장에는 똑같은 정장 세 벌이랑, 전용 넥타이걸이도 있었어.
누구나 꿈꿀 만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그 말을 끝으로, 무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유일하게 이상했던 건 그의 일기야. 일기에 이런 게 적혀 있었어.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강 위를 떠다니는 외 나무배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i>“모두 거품이다.”</i>
"너는 잠겨 있는 방 안에서 꿈을 꾸고 있다."
"만약 이 세계가 꿈이라면, 의식은 환각일 뿐이다…"
공통된 연결점.
뭐?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크리스티나와 잭 사건 둘 다 폭주 기계가 등장했어. 그렇다면 피해자 두 사람 사이엔 반드시 어떤 공통된 연결점이 있을 거야.
그 연결점은 당연히 범인의 동기와 연관된 것일 테고.
잭,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이 세계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어.
설마, 세상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들만 골라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있다는 뜻이야?
조금 터무니없는 얘기 같은데.
……
...또 다른 단서도 있어. 은행 거래 내역에서 찾은 건데, 매주 같은 시간에 정기적으로 송금한 기록이 있었고, 받는 곳은 심리 진료실이었어.
거기 의사 이름이… 뭐였더라…
엘리시온 위클리 인터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의 초대 손님은 업계 최고의 심리 전문가, 존 교수님입니다.
맞아, 존이었어.
이번 주제는 최근 도시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한 증상입니다. 이 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세계가 거짓이라고 느낀다는데, 과연 실재하는 병일까요, 아니면 헛소문일까요?
식탁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세 사람 모두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르가 TV 볼륨을 조금 올렸다.
화면 속, 소파에 앉은 남자는 잘 정돈된 회색 싱글 버튼 정장 위에 흰 가운을 걸치고, 홍채 색과 맞춘 듯한 검녹색 줄무늬 넥타이와 손질된 수염과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사람을 안심시키는 기품이 뿜어져 나왔다. 누가 봐도 환자들이 신뢰할 타입이었다.
이 증상은 학술적으로 "자아 실존적 위기증"이라고 부릅니다.
예전에 한 심리학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아주 강한 자기파괴 충동이 숨어 있다고요.
화면 앞에 있는 시청자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귓가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죠.
“뛰어내려.”
손에 칼을 들고 있을 땐, 칼끝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몸에다가 실험해 볼까?"
총을 들고 있을 때도, 문득 총구를 자신에게 겨누고 싶어집니다.
"방아쇠를 당겨."
저기… 교수님?
다시 "자아 실존적 위기증" 이야기로 돌아가죠. 일반적으로 환자들의 직업이나 배경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도, 부두 노동자도 똑같이 세계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심리 의사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얘기하면, 저는 세계가 진짜인지 의심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은…
당황한 진행자는 대화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
우리의 의식은 몸이라는 자동차의 조수석일 뿐입니다. 그럼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것"은 모두 다릅니다. 본능일 수도, 감정일 수도, 습관일 수도 있죠…
조수석에서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면, 당신은 "뛰어내려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잔혹하고, 되풀이되는… 이 얼마나 정묘한 세계인가요.
이런 세계라면 누구라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
남자는 어쩌면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사상과 언행을 차분히 이어갔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 보게 된 건—
크리스티나/ 당신 자신의 얼굴.
팟.
TV가 꺼졌다. 거실에는 일레인이 서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
저 심리 의사… 내일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고, 셋은 각자 복잡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인사한 후 헤어졌다.
떠나기 전, 테디베어는 다시 한번 거실 창턱을 바라보았다. 아까 보았던 그 주황색 컵은 어느새 일레인이 옮겨서 베란다에 놓여 있었다.
그 꽃, 이름이 뭐예요? 아까 베란다에 있던 그 주황빛 꽃이요.
...망우화예요.
예쁘네요.
테디베어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지만, 머리속엔 온통 그 컵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왜 저 컵이 혈청을 담는 용기 같다는 생각이 들지?)
(혈청… 혈청이라니?)
무르는 식탁을 치우고, 일레인은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었다.
내가 할게.
……
일레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에 어딘가 기이한 정적이 깔렸다.
왜 당신은, 굳이 요원 일을 선택했어?
… 난 반드시 진실을 좇을 거야.
그건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잖아.
……
조수석에서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면, 당신은 "뛰어내려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잔혹하고, 되풀이되는… 이 얼마나 정묘한 세계인가요.
이런 세계라면 누구라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
남자는 어쩌면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사상과 언행을 차분히 이어갔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 보게 된 건—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새빨간 액체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일레인.
이 세계는 과연 진짜일까?
쨍그랑—
일레인 손에 있던 접시가 떨어지며 대리석 바닥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일레인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무르를 바라보았다.
무르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아니… 난 단지 잭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