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호
엘리시온
호광대로 442번지 아파트
그래서, 피해자 이름이 크리스티나야?
맞아.
……
이상하지?
그냥 동명이인일 뿐이야.
그 얘기가 아닌 걸 알잖아.
얼굴이 너랑 너무 닮았어…
…그냥 우연이야.
모에누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보고를 이어가겠습니다.
방금 진행한 1차 검사 결과,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은 밤 7시 30분에서 7시 50분 사이입니다.
피해자에게는 여러 개의 상처가 있고, 그중 일부는 치료 흔적이 있습니다. 수법상 피해자 본인이 응급 처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치명상은 등 뒤에서 가슴까지 관통한 일격입니다. 코어를 꿰뚫었고, 굉장히 정확하게 들어갔습니다.
이 상처는 다른 상처들과 다릅니다. 여기 보시면, 그녀의 생체공학 피부와 내부 기계 부품에 고열로 인한 그을림이 있습니다.
법의관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흉기는 고열이 가해진 검류 무기, 혹은 에너지 블레이드로 추정됩니다.
나머지 상처는 이 기계체가 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의관은 바닥에 놓여 있는 기계체 잔해를 가리켰다.
여기는 기계체가 발사한 탄흔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기계체의 날카로운 부품에 의한 자상입니다.
기계체는 사람을 공격하지 못해. <엘리시온 기계 생산법>에 따라, 인간을 죽일 수 없는 기본 명령이 다 심어져 있어.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테디베어가 앞으로 걸어 나와, 크리스티나의 시신 앞에 쪼그려 앉았다. 법의관의 설명은 점점 멀어져 흐릿한 소음이 되었다.
크리스티나의 무기력한 눈동자가 테디베어를 비추고 있었다. 얼굴이 테디베어와 너무나 흡사했다.
순간, 테디베어는 바닥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몸속을 차갑게 잠식하는 냉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코어, 순환액과 함께 빠져나가는 체열. 시야가 흐려지고, 화면이 겹쳐지다가, 결국 완전히 어둠 속으로 잠식하는 감각.
문을 두드리는 치안대원의 소리, 조사 허가 요청, 문이 강제로 열리는 충격. 주변에 경찰선이 둘러지고, 법의관이 자신의 상처를 검사하며 사진을 찍는 촉감.
“
“
엄청난 부조리 감이 테디베어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찰나의 순간, 그녀는 이 세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뭘 보고 있는 거야… 크리스티나.
테디베어.
응.
내 말은, 피해자가 테디베어를 보고 있다고.
농담 재미없어, 모에누.
모에누가 조용히 테디베어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테디베어는 자신 뒤편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인형 하나를 발견했다.
테디베어는 다가가 그 인형을 집어 들었다.
그냥 평범한 인형이잖아…
테디베어? 참 이상한 ID네.
그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알았어, 알았어, 항복. 나쁘지 않은 이름이네.
왜?
… 아니야.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근처 CCTV는 확인했어? 사망 시각이 얼마 안 됐으니, 범인도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근처 영상에서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대충 빠르게 훑어봤는데, 특별한 건 없었어.
저 기계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육릉각 회사에서 만든 민간용 자동 경비 기계체, "수호자 3형". 보통 대기업에서 대량 구매해서 경비에 쓰는 모델이고, 탑재 무기는 전부 비살상 장비야.
비살상이라…
테디베어는 모에누의 말을 비꼬듯 되풀이했다.
현재로선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하나는 누군가가 이 기계체의 지시를 변경했을 가능성. 이 정도로 수정하려면 상당한 실력이 필요해.
또 하나는, 기계체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스스로 사람을 공격한 경우야.
그럼 나중에 육릉각 회사에 들러봐야겠네.
여기 전투 흔적을 보면, 기계체가 하나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
테디베어는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을 둘러보았다.
응, 최소 두 대 이상이야.
모에누는 대답하면서, 해킹 장치를 크리스티나의 컴퓨터 단말에 연결했다.
피해자 컴퓨터를 좀 볼게.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응, 난 주변 주민들을 탐문하러 가볼게.
똑똑—
테디베어가 704호 문을 두드리자,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남성이 문을 열었다.
요원님…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시온 범죄 수사국의 테디베어 요원, 번호는 ED08입니다.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요.
신고하신 분 맞으시죠?
네.
그때 들으신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당시에 밥을 먹고 있었는데,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영화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 후에 진동까지 느껴지길래, 진짜로 싸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땐 저도 좀 무서워서…
시간대는 기억나세요?
네, 그때 시간 확인을 했거든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밤 7시 28분이었어요.
그 뒤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봤는데…
뭘 보셨나요?
어떤… 괴물 같은 그림자요. 빨간빛이 나면서, 순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착각한 줄 알았죠.
그 이후로는 싸우는 소리도 딱 끊겼고… 그때가 7시 35분쯤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신고하신 시각은 밤 8시 12분입니다. 그 사이에 공백이 꽤 있는데, 왜 그때서야 신고하신 거죠?
…괜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래 신고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괴물…
그 그림자가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생각할수록 불안해서 결국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똑똑—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시온 범죄 수사국의 테디베어 요원, 번호는 ED08입니다. 사건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요.
무슨 일이시죠? 전 계속 자고 있었는데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집주인한테 월세 깎아달라고 해야겠네요!
못 들었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얼른 와서 밥해! 빨리!
안에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이 쓸모없는 인간아!
지친 얼굴의 여자는 눈에 띌 정도로 이마에 핏줄이 섰고, 안에서는 컵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진짜로 가만히 안 둬!
당신은 날 못 이겨!
애당초 너랑 결혼한 게 잘못이었어!
죄송해요,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전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이 인간이랑 싸우고 있었거든요.
아, 그 사람이요?
생활 패턴이 좀 이상했어요.
피해자랑 아는 사이셨나요?
아니요, 잘 모릅니다. 이름도 몰라요.
제 직업 특성상, 생활 패턴이 뒤죽박죽이거든요.
그는 방 안의 방송 장비를 가리켰다.
생방송 하는 거라 어쩔 수 없어요. 저번엔 43시간 연속으로 방송한 적도 있고요.
아, 얘기가 샜네요… 새벽에 뭐 먹으러 나갈 때 복도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가끔은 나가는 길이었고, 가끔은 밖에서 들어오는 길이었어요… 좀 신비로운 느낌이랄까요.
아… 그러고 보니, 아마 부두 쪽에 다녀왔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냄새 때문에요. 제가 냄새에 민감해서 자주 알레르기가 생기는데… 한 번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때 그 사람 몸에서 부두 쪽 특유의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어요.
분명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 거예요!
?
들어보세요, 이 세상은 진짜가 아니에요! 우린 전부 켄타우루스자리의 미고 설인의 포로예요!
그리고 저 게 모양 진균들이 인간으로 위장해서 우리 사이에 섞여 있는 거라고요!
우린 전부 통 속에 담겨 있는 뇌라 이 말입니다!
테디베어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다시 703호로 돌아왔다.
뭐 단서라도 나왔어?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
우린 전부 물통 속에 담긴 뇌고, 미고 설인 놈들이 실험 중이야.
??
그리고 그 설인들은 사실 게처럼 생긴 진균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농담은 여기까지, 피해자는 외출이 잦았고 생활 패턴도 불규칙했어. 외출 장소 중엔 부두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찾았어.
모에누는 손짓으로 테디베어를 컴퓨터 앞으로 불렀다.
이 이메일 좀 봐봐.
창고 이용 기간을 연장했어. 그 창고 주소가 부두 근처야.
함께 쓰는 좋은 창고
도시 항구 근처
엘리시온
3층 높이의 낮은 건물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창고 관리자에게 문의한 결과, AAA 베어, 즉 크리스티나의 창고는 1층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가 맞아.
모에누는 관리자에게서 받은 예비 열쇠를 꽂고, 위로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여긴 도어락도 없네.
그래서 크리스티나가 여길 골랐을지도 몰라. 기록에 안 남으니까.
문이 완전히 열리자, 두 사람 앞에 벽을 등진 긴 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에는 소프트 보드가 걸려 있었고, 거기엔 엘리시온 곳곳의 건물 사진들이 핀으로 꽂혀 있었으며, 빨간색과 노란색 실이 몇몇 지점을 연결하고 있었다.
실이 모이는 중심에는 엘리시온 센터 빌딩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옆엔 메모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책상 위에는 저장 칩 하나가 흩어져 있었다.
그 외에는 접이식 침대, 냉장고 등 생활용품 몇 가지…
그리고 바닥엔 수평계, 경사도 자, 삽, 곡괭이, 망치, 소형 휴대식 드릴 등이 널려 있었다.
테디베어가 저장 칩을 단말기에 꽂자, 단말기 위로 데이터 화면이 투사되었다.
거기엔 엘리시온 각종 통계 자료가 정렬되어 나타났다.
도시 급수 통계… 인구 조사 데이터… 대중교통 운영 비용 데이터…
응?
바닥의 여러 공구를 살펴보던 모에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저장 칩에 들어 있는 정보 말이야.
왜 이런 걸 조사한 거지?
내가 어떻게 알아.
테디베어는 투사된 데이터 화면 너머로, 단서판 중앙의 그 메모를 바라보며, 잠시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린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냉장고 밑에 통로가 있어.
모에누가 냉장고를 옆으로 밀어내고 카펫을 젖히자, 겉면에 경첩이 달린 철제 플랩 도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려가 볼까?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