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8 추론의 한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38-1 해커 투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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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세계에는 단 하나의 영웅주의만이 있다. 그것은 삶의 진실을 직시한 뒤에도,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i>

<i> ——로맹·롤랑</i>

엘리시온. 차갑고 거대한 강철의 밀림, 거의 영원히 밤인 도시.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판 속 가상의 모델은 지치지 않는 미소를 머금고, 복잡하게 붐비는 군중 사이를 하이힐로 가르며 거리를 걸어간다.

수없이 솟아 있는 마천루 외벽에는 또 수없이 많은 광고판이 붙어 있고, 네온 빛은 연기와 증기 사이에서 일그러지고 번져간다.

예정된 듯 밤비가 내린다. 이 도시의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로, 모든 빛 공해를 수채화처럼 번지게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자는 언제나처럼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과거에 읽었던 한 소설 속 "밤의 도시"를 묘사한 문장이 떠올랐다.

"항구의 하늘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TV 스크린처럼 하얀색이었다."

그녀는 멀리 항구를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몇 점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나도 안 비슷하네.

헤드셋 너머로 경찰 채널의 지령 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통제원

사건 번호 2077. 신고에 따르면, 호광대로 442번지 아파트 703호에서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94구역 담당자는 현장으로 이동해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12A94

12A94 확인. 사건 번호 2077 조사하러 이동 중입니다.

통제원

각 담당자들에게 알립니다. 현재 12A94가 사건 번호 2077 조사하러 출발했습니다.

12A94

12A94. 아파트 703호에 도착했습니다. 노크했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12A94

문틈에서 혈흔을 발견했습니다! 임시 진입 허가를 요청합니다.

통제원

확인. 현장 사진과 영상 자료를 업로드 바랍니다.

…………

12A94

여기는 12A94. 임시 진입 허가가 승인되어, 문을 강제 개방하겠습니다.

…………

통제원

12A94, 응답 바랍니다. 사건 번호 2077 현장 상황을 보고 바랍니다.

…………

통제원

12A94, Code1. 응답 바랍니다.

12A94

12A94, Code2-H. 현장에서 일반 거주자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반복합니다. 일반 거주자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여기는 ED03, 코드네임 "날개를 잃은 새", 정보 수신 완료. 지금 현장으로 이동 중이다. 12A94, 현장을 보호하라.

무전 채널이 잠시 조용해졌다.

치안대원 조니는 처마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부 소속의 부유 차량이 호광대로 442번 앞에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고, 검은 우산이 비를 가르듯 펼쳐지며 "날개를 잃은 새"가 차량에서 걸어 나왔다.

조니는 비를 맞으며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치안대원 조니입니다. 12번 순찰 지국 소속…

잔잔한 비와 끊임없이 울려대는 광고음이 목소리를 삼켜, 그의 모습마저 잠시 흐릿하게 만들었다.

크흠… 12A94, 지금 제 파트너가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날개를 잃은 새 요원님…

그냥 모에누라고 불러.

그녀는 치안대원과의 형식적인 인사 따위엔 관심 없었다.

아, 그럼… 모에누 요원님,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이제 그 역시 더 이상 친절을 유지할 의욕이 사라진 듯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췄다. 거주자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의도인지,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멈출 때마다 짧은 만화풍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지금은 그저 우스꽝스럽게 들릴 뿐이었다.

모에누는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와, 복도 끝 방향으로 걸으며 문 번호들을 살폈다.

730, 729...

쯧.

이 아파트는 문 번호가 역순이었다.

모에누는 703호 방향으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파악된 사건 정황을 얘기해 줘.

신고자는 독거 남성, 앨런·블레이크. 42세, 704호 거주자입니다. 신고자 말에 의하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 신고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시각은?

715, 714...

흠…

하, 그럼 신고 시각은?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저녁 8시 12분입니다.

너희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음… 저녁 8시 18분입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조니는 난감한 듯 손을 비볐다.

아시잖습니까… 저희 치안대원들은 이런 형사 수사 쪽은…

대략 오래되진 않았다는 정도만 판단이 가능합니다.

706,705…

피해자 이름은?

조니의 얼굴빛이 더 어두워졌다.

왜?

사망자는… 크리스티나, 구조체입니다.

모에누가 703호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공중에 투사된 노란 경고선 너머의 열린 방문 안쪽에 머물렀다.

붉게 고인 순환액이 분홍빛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었고,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의 소녀가 그곳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말도 안 돼…

밤비가 희뿌옇게 흩날리고, 네온은 안개 속에서 도시 전체를 갉아먹듯 번져갔다.

호광대로 442번지 아파트 703호 안에서, 법의관이 검사를 마쳤다.

현재 시각 밤 9시 03분.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은, 밤 7시 20분에서 7시 50분 사이로 보입니다.

피해자는…

법의관은 고개를 들어 모에누를 쳐다보았다. 수사국내에서도 유명한 이 요원은 팔짱을 낀 채, 가끔씩 단말기의 시간을 확인할 뿐이었다.

방금 한 설명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은 듯 보였다.

하…

법의관은 왜 모에누가 이렇게 초조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법의관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다른 치안대원들도 모두 모에누의 표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다들 모에누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알기에...

복도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어 치안대원이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요원님… 이쪽으로 오시죠.

현장에 있던 모든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다들 모에누의 파트너, 똑같이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그 요원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발소리가 문 앞까지 다가오자, 모에누가 곧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너한테 또 다른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테디베어.

하수구 내부

엘리시온

항구

이곳은 도시 전체의 소화 기관 같은 곳이다. 화려한 불빛도, 유리도 없고, 오직 흐릿한 도시 폐수만이 흐르고 있었다.

녹슨 쇳가루, 썩은 잔해, 정체 모를 온갖 것들이 뒤섞여 마녀의 수프 같은 혼탁한 액체를 만들어내,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콰직—

으… 방금 뭘 밟은 거지…

망했네. 이 상태로 집에 가면, 또 일레인한테 엄청 혼나겠어…

후, 괜찮아. 꽃 한 다발 사서, 맛있는 저녁도 해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임무에 집중하자, 무르.

범죄 수사국 소속 요원 무르는 발밑의 정체 모를 오염물 따위는 잊어버리고, 다시 주변 환경을 살폈다.

진짜 생각도 못 했네. 항구 아래 하수구가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엘리시온 세금은 이런 데 쓰는 건가.

나 같은 프로도 신경 안 쓰면 길 잃기 딱 좋겠는데… 일반 시민들은 오죽하겠어.

잭, 잭… 넌 대체 여길 왜 온 거야.

무르는 현재 추적 중인 실종 사건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얼마 전 그에게 배정된 사건. 잭이라는 남성이 48시간 이상 실종 상태였다. 오랜 시간 진행된 모니터링 조사 끝에, 무르는 잭의 이동 경로를 따라 항구까지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다시 흔적이 끊겼다.

혹시 이 사람을 본 적 있나요? 나이 34세, 키 173, 체중은 70kg 정도고 갈색 머리 남성입니다.

못 봤어요, 못 봤어요.

제 생각엔 분명 바다로 뛰어들었을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멘탈이 약해서 금방 극단적인 생각을 하잖아요.

음… 그 사람 본 것 같기도 한데…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어제 저녁 먹을 때였어요. 멀리서 누가 주변을 찾는 것처럼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거든요. 그다음엔 아마 하수구로 들어간 것 같아요. 저쪽 입구로요.

뒷모습만 봤으니까, 찾으시는 분이 맞는지는 확신 못 합니다.

근데…

또 다른 단서가 있나요?

단서는 아닌데요… 요즘 하수구 쪽에서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있어요.

자세히 얘기해 보세요.

뭐랄까…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주변에서 기계체들이 돌아다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고요. 좀 이상한 형태였고, 빨간빛이 난다고도 했어요.

제 생각엔 어느 회사가 신제품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아요. 아시잖아요, 환경별 반응 실험 같은 거요.

무르는 항구 노동자들의 진술을 정리한 후, 하수구로 내려가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했다.

찾았다.

무르는 몸을 숙여, 오염으로 얼룩진 바닥을 살폈다. 그곳엔 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듬성듬성 이어진 발자국을 따라, 무르는 더 깊은 하수구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카— 카직—

(뭔가 있어.)

무르는 얼른 몸을 낮춰 발소리를 감추고, 모퉁이 너머를 살짝 내다보았다.

그리고 항구 노동자가 말했던 바로 그 "기계체"를 보게 되었다.

그 옆에는 이미 숨이 끊긴 채 쓰러져 있는 잭이 있었다.

다음 순간, 기계체들이 일제히 무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각 센서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빛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꽃피듯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