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형체 없고 소리 없는 것
>팍!
눈부신 조명들이 켜졌고, 책상 앞에 앉은 인물이 움직이지 않은 채, 묵묵히 질문이 올 때를 기다린다.
도미니카 님, 의식의 바다 기술에 관한 당신의 진술을 시작하세요. 과학 이사회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 공정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의식의 바다는 인간의 가상 뇌 신경 배열 구조를 기초로 하여,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담아내는 부품에 불과합니다.
설명해 주세요, 당신은 이 기술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나요?
인간의 탐욕이 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이 사건에 대한 주요 책임을 인정하시나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신은 세계 정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파오스 학원에 연구소를 설립했더군요.
만약 저의 전력 지원이 없었다면, "세계 정부"라는 조직이 존재했을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인류를 대표하는 세계 정부를 넘어서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경고하고 싶습니다. 계획이 시작될 때, 구조체는 단지 부수적인 결과물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담을 수 있는 응용 기술에 지나지 않았고, 그 재앙 이후의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미니카 님, 진정한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구조체가 인간에게 미친 위협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암흑이 시야를 완전히 집어삼켜서 어떤 변화나 윤곽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의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공간이란 개념조차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깊고 끝없는 허무에 잠겨 있었다.
뚝...
빙산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빛줄기가 세계의 끝에서부터 어둠을 꿰뚫었다.
비단을 가르듯 예리하게 베어낸 틈새로, 잘게 부서진 금빛 파편 같은 광휘가 밤의 상처를 따라 흘러내렸다.
그러자 굳건했던 경계가 조용히 부서지면서, 그 너머의 허무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
기존의 인식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생명체가 발가벗은 채로 꿈틀거리며, 엿보며, 틈새로 세상을 관찰하며 혼돈 속에 떠 있었다.
균열 속에는 보석 같은 희미한 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면서, 눈부신 색채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빛을 바라보며, "입술"이라 부를 수 있는 부위로 무언가를 흉내 내 말하려는 듯 간신히 움직였다.
어...
어... 머...
어머니?
작은 모종삽을 쥔 채 잔디밭에 앉아 있던 어린이가 이상한 기운이라도 느낀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리브야, 그렇게 태양을 똑바로 보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눈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플 거야.
아이의 눈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손길이 먼저 그의 눈을 덮어주었다.
네, 알겠어요. 어머니.
눈 부신 햇살의 자극이 조금 가시자, 어머니의 손길은 아이의 작은 몸부림에 따라 움직이며 살짝 틈을 내주었다.
와...
어린 리브는 새롭게 다가오는 신기한 광경에 흥미를 느끼며,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뒷마당의 풍경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 특별한 시선 덕분에 조금은 달라보였다.
온갖 푸른 식물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덤불은 무성했으며 꽃은 향기로웠다. 칼리오페는 부엌 문가에 서서 그녀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멀찍이서 벨이라는 늙은 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얼마 전 여자아이가 심어둔 금은화를 물어뜯어 한창 씹고 있었다.
벨! 내가 심은 꽃을 먹으면 안 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어린 리브는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 벨에게 달려간 뒤, 녀석의 입에서 가엾은 꽃모종을 구해냈다.
자, 곧 식사 시간이니 너무 오래 놀면 안 된다.
나이 든 여인이 미소 지으며 다가와 어린 리브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인제 그만 돌아가자. 밥 먹을 시간이야.
네. 어머니.
어린 리브는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는 구해낸 꽃모종을 품에 안은 채, 그늘진 곳을 골라 알맞은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서 정성껏 다시 심었다.
꼭 잘 자라야 해.
리브는 진지한 표정으로 꽃 뿌리 주변의 흙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둥...
저택 안에서 종소리가 어렴풋이 울렸다.
아가씨, 아가씨? 식사할 시간입니다.
울창한 덤불 사이로 부엌 쪽에서 칼리오페의 목소리가 흘러왔다.
둥...
무거운 석영 시계추가 녹슨 종을 두드리며 울려 퍼졌다.
식사 시간인가요? 죄송해요, 칼리. 지금 갈게요.
둥...
리브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혼돈의 빛줄기가 푸른 하늘을 꿰뚫으면서,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눈부신 백광에 휩싸였다.
늙은 양의 울음소리가 뚝 끊겼고, 리브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조금 전까지 풀을 뜯던 벨마저 보이지 않았다.
벨, 벨?
둥...
이쪽으로 걸어오던 칼리오페와 그녀 곁의 금은화 모습마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칼리?
리브는 멍하니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
둥...
세계가 먼 지평선부터 차츰 무너져 내리자, 어둠이 굴레를 부수며 발밑까지 빠르게 몰려들었다.
리브...
흑과 백의 경계 위에 서서 부드럽게 리브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은빛 머리칼에서 은은한 빛이 흩뿌리며 날렸다.
어머니? 어머니... 칼리가...
어린 리브는 비틀거리며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지만, 광폭하게 불어나는 그림자가 발목을 붙잡았다.
어머니? 어머니!
둥...
!
리브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으윽...
시각 모듈이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동으로 조정되었다.
그녀는 질주하는 열차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발목을 스치는 것은 옅은 초록색 덩굴풀이었고, 열차 안의 빛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
눈동자에 멍한 빛이 맺힌 리브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참 뒤에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은 눈 부신 햇살과 푸른 정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꿈이었구나.)
리브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안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눈빛은 맑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흐릿해졌다.
열차가 달리면서 다른 차창에도 풍경이 하나둘 비치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정원, 양,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수많은 꿈의 파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금은화, 벨 그리고 얼굴이 흐릿한 긴 머리의 여인. 차창은 꿈을 포획하는 그물처럼 그 파편들을 얽어매고 있었다.
어머니...
리브는 중얼거리며 차창에 손을 얹은 뒤, 천천히 문질렀다. 그게 창밖 풍경을 정말로 만지려는 건지, 무의식적인 몸짓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덜 익은 귤을 삼킨 듯, 은근한 신맛이 의식의 바다의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차창 밖 구름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열차는 꿈결 같은 화려한 구름을 가르며 끝없는 미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녁 무렵의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 기울어지는 석양빛이 창밖에서 들어와 은은한 빛을 드리웠다.
...
리브는 길고 부드러운 꿈에서 깨어나 천천히 눈을 떴다.
언제... 잠들어 버린 거지?
리브는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은 리브가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 청소를 맡은 날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청소를 시작하기도 전에 의자에 기댄 채로 잠들어 버렸다.
그래도... 어린 시절 꿈꾸다니...
리브는 잠들어 있는 동안 본 꿈을 떠올리며 의아해했다.
마지막으로 그때의 기억을 꿈꾼 게 언제였던가?
백야 기체로 교체하고 인간형 생물체와의 전투를 치른 후, 리브는 많은 과거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묘비처럼 계속되는 은통은 특정 시점부터 리브의 기억을 산산이 잘라냈다.
(이제는... 그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아.)
꿈속에서 은빛 머리카락 여인의 모습은 이미 희미해졌다.
다만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함께하던 풀 냄새와 동화책을 읽어주던 부드러운 음성만은 아직 남아 있었다.
리브는 의자에 몸을 기대앉아 의식의 바닷속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었다.
최근 새 기체 적응이 끝나가면서 의식의 바다의 은통도 한결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리브의 새 기체에 대해 말하자면, 과학 이사회에서 보낸 변경 통보가 이미 단말기에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적응 기간이 끝나면...
그때, 휴게실 문이 가볍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지휘관님, 다녀오셨어요!
리브는 들고 있던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급히 지휘관을 맞으러 갔다.
기체 변경 통보 말씀인가요? 그거라면, 이미 받았어요. 과학 이사회에서는 이번 기체의 적응 기간이 약 두 달쯤 걸릴 거라고 했어요.
임무요? 새로운 임무가 내려온 건가요?
잔잔한 대화 소리가 휴게실 거실 안으로 흘러들었다.
석양은 저물고 있었고,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는 손톱만 한 기계 거미 한 마리가 벽 모퉁이를 재빠르게 기어가고 있었다.
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