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된 여과탑 코어"로 제작된 신형 여과탑이 공중 정원 산하 보육 구역에 점차 확산했다.
하지만 신형 여과탑으로도 퍼니싱을 "완전히 정화"할 수는 없었다.
여과탑이 퍼니싱을 몰아냈다. 하지만 퍼니싱은 안전 구역 밖에서 천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형 여과탑이 설치되지 않은 곳의 중도 재난 지역들이 서서히 하나로 연결되면서 적조와 더 많은 이합 생물을 부화시키고 있었다.
그것들은 천천히 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중 정원 사람들은 이렇게 부화 중인 재앙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게슈탈트에서 유출된 특정 정보 때문에 권력자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내부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정보에 첨부된 타임스탬프에 있었다.
게슈탈트에는 이 타임스탬프에 해당하는 것이 없어.
조작 콘솔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은 테디베어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옆에 있는 지휘관에게 설명했다. 테디베어의 두 손은 쉼 없이 움직였고, 화면에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데이터와 복잡한 지시 창들이 번갈아 떠올랐다.
공중 정원에서 발생한 이 버그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내일 집행 소대가 가야 할 수도 있어.
그리고 버그가 아니야. 누군가가 그것이 있는 시간 구간을 찾아냈어. 그냥 난 재수 없게도 이 타임스탬프의 초기 좌표를 역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것뿐이야.
유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차단 이후에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추적할 수 없다면, 그 출처는 자명한 거지.
변화하던 스크린이 어느 순간 멈추자, 테디베어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통신 대화창이 나타났고, 그 타임스탬프에는 "황금시대"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건 황금시대에서 온 거야. 도미니카가 쌓아 올린 0과 1의 천연 요새, 게슈탈트 안에 있는 그 해독 불가능한
말하는 동안 테디베어는 깜박이는 통신 알림을 힐끔 보고 비웃듯 웃었다.
이 소식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회가 발칵 뒤집혔어. 의원들이 여론, 지시, 요구, 인정 등으로 바이러스 백신 버전 넘버보다 더 많은 방법으로 내게 그 벽의 구멍을 찾아내라고 다그쳤어.
그다음 자기 기술자들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말이야.
지휘관은 테디베어와 연결되었을 때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게슈탈트 내부에 존재하는 기이한 공간, 하늘과 땅을 이어 붙인 데이터 벽...
절대 못 들어가지. 내가 봤을 땐 불가능해. 하지만 누구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겠지.
어깨를 으쓱한 테디베어의 눈길은 여전히 앞에 있는 단말기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회의록에 장난치는 그 무리는 항상 과거에 대해 어떤 망상이 있어. 그들은 역사서에 "이 결정으로 인류 역사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장을 열었다."라는 빛나는 한 구절을 남기고 싶어...
갑자기 입을 다문 테디베어는 눈썹을 찌푸리며 데이터 스트림의 어느 한 지점을 응시했다.
쉿...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테디베어의 열 손가락이 번개처럼 단말기를 두드렸다.
3, 2, 1...
잡았다. 마지막 좌표.
테디베어는 단말기로 좌표를 빠르게 입력하고 아시모프에게 전송했다. 이후 몸을 돌려 방금 전의 대화를 이어갔다.
좌표, 좌표... 하, 게슈탈트의 연산 능력을 빌려서 역원 장치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처음 게슈탈트에 진입했던 그때를,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역원 장치 업그레이드"보다는 "역원 장치의 원형 구조"와 "황금시대의 재산"이 그들의 눈길을 더 사로잡았겠지.
테디베어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비웃듯 눈을 흘겼다.
저놈들은 게슈탈트나 1호 원자로에서 도미니카에 대한 무언가를 파헤치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의 얄팍한 머리로는 정작 핵심을 알아채지 못할 거야.
게슈탈트잖아. 게슈탈트.
테디베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휘관을 흘깃 보았다.
오류 정보가 찍혀 있는 게슈탈트의 방출 정보... "게슈탈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다.
게슈탈트는 차가운 빛을 은은히 발하며 고요한 공간 속에 침묵한 채 서 있었다.
잠금장치 열리는 소리가 갑자기 이 고요함을 깨트렸다. 그리고 아시모프가 눈 밑이 퀭한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보 역추적은 완료됐나?
당연하죠.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제가 [player name]와(과) 게슈탈트에 잠입했을 때 추적한 데이터 벽 좌표가 모두 방금 보내드린 암호화 파일에 들어있어요.
새롭게 발견한 거라도 있나?
없어요. 데이터 벽도 변함없어요. 여전히 비밀 공간의 핵심부는 차단된 상태고, 일부 취약점만 존재해요.
모든 징후가 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제 결론은 똑같아요. 언더레이 프로토콜을 이용해 그것을 가로채 볼 수는 있지만, 게슈탈트의 데이터베이스가 자체 보호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서 손상될 수도 있어요.
...
게슈탈트 기초 데이터베이스의 코드는 이미 혼란 속에 사라졌고, 어느 정도까지 손상될지 확신할 수 없어요. 그러니...
게슈탈트를 탈취하면, 그들이 원하는 기술을 추출할 확률도 있지만, 게슈탈트 기초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폭파할 확률도 있어요.
그들이 결정을 내렸나요?
테디베어의 표정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게슈탈트가 아직 구체적인 연산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의회 표결을 통해 이 데이터 벽의 개방 여부를 결정하려고 해.
...
얕은꾀만 부리는 바보들이네요.
의회 표결은 몇몇 반대하는 기술자들 때문에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데이터 벽을 여는 것을 지지하는 과학 이사회 학자들은 역원 장치 실험 당시의 안전 조치를 참고해 게슈탈트 내부에 격리 구역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작업을 격리 구역으로 한정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격리 구역을 포기함으로써 게슈탈트의 대부분 모듈을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황금시대의 결실". 이미 역원 장치 구조도 일부를 얻은 상황에서 이런 거대한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니콜라 총사령관님의 제안에 대한 투표율은 하기와 같습니다. 찬성 52.8%, 반대 35.1%, 기권 12.1%입니다.
해당 제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공중 정원의 사람들은 곧 얻게 될 결실에 대해 열광하고 있었다. 의원들은 이 화제가 더 무르익기를 바랐던 것인지, "데이터 벽"을 여는 시기를 2일 후로 결정했다.
연회에 참석할 의향이 없었던 인간 지휘관과 아시모프 그리고 테디베어는 과학 이사회 연구실에 숨어 "도미니카"가 보낸 초대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음... 좋아. 이제 됐어.
렌치로 기묘한 형태의 기계에 남은 나사 두 개를 조인 후, 테디베어는 손을 털며 작업 완료를 알렸다.
앉아서 이거 써봐. 나와 아시모프 님이 "초대장"을 이 "감응 시뮬레이션 장치"에 연결할 거야. 그럼, 넌 "초대장" 안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을 거야.
당연히 할 수 있지.
아시모프는 기계에 연결된 단말기를 점검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초대장"의 언더레이 구조를 분석했어. 테디베어가 Conundrum 데이터 락을 해제한 뒤에 내가 나머지 부분을 해독했지.
코드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배열이 무질서했고 경계 조건 판단도 이상했어. 과학 이사회 내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던 중 유사한 패턴의 코드를 발견했는데...
바로 이 "감응 시뮬레이션 장치"였어.
맞아.
나나미가 만든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코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거였어.
"초대장"의 코드 배열 방식이 "홀로그램 시뮬레이션 장치"와 거의 일치해.
아시모프가 단말기에 표시된 데이터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나나미가 이전에 저장해둔 비밀 코드로 검증해 봤는데, 위험성은 없어. 다만 체험할 내용이 이 기계의 환각 작용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
좋아, 설명은 충분히 들었으니 한번 시도해 보자.
테디베어가 인간을 기계 앞으로 끌고 갔다.
네가 들어가면 내가 상응하는 비밀 코드를 입력할 거야. 아시모프 님께서 기계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즉시 작동을 중단할 거니까 안심해.
당연하지! 왜 그렇게 못 믿는 눈빛이야.
가보자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초대장" 안에 있는 비밀 코드는 일회용이야. 만약 정보를 발견하게 되면 상세히 기록해 둬야 해.
헬멧을 착용하자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아시모프의 말이 묻혀버렸다.
그리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의식이 끝없는 우주 속으로 떠다니는 듯했고, 주변은 심장 박동 소리만이 울릴 정도로 적막했다.
왔군.
기계적인 목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 사방에서 울렸다.
마침내 열쇠를 획득했지만, "탑"은 이미 성장을 멈췄다.
신경 쓰지 마. ■는 은(는) 데이터 공간을 떠도는 유령일 뿐이야. 존재하지 않는 역사의 한 조각이지.
■은(는) "게슈탈트"에 존재하는 도미니카다.
데이터는 서로 통한다. 여기 나타난 건, ■이(가) 이상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넌 열쇠를 얻었지만, "탑"은 성장을 멈췄다.
넌 "시간 여행자"인가? 그래서 이 모든 걸 바꾼 건가?
...
지휘관의 반문에 도미니카는 잠시 진실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선발대"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나?
그 단어가 불꽃놀이처럼 머릿속에서 터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가느다란 빛이 번쩍이더니, 시야 가장자리에 몇 개의 화면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공간에서 미치광이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좋아요. 이러면 당신이 처리할 수 있는 오염자들은 모두 처리된 거예요.
역장 차단막이 있는 방호복은 반납하지 않아도 돼요. 선발대에 오신 걸 환영해요.
지▂▄▁금도 잘 지내시길 바라요. 트▁▂▄▁교수님.
현재의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서, 제 의식 속에 타인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뒤섞여 있어요. 하지만 의식의 데이터화는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0호 대행자의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죠? 저도 그런 권한을 얻으면 어떨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먼저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야만 했어요.
네 증상은... 0호 대행자의 권능이 가져온 영향과 매우 비슷하군.
네 몸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없다면, 넌 카오스와 융합되어 0호 대행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는 뜻이다.
희미한 화면이 점차 사라지고, 여전히 눈앞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나나미가 남긴 초대장이긴 했지만, 정체도 모르는 상대에게 아는 정보를 솔직히 말하는 것은 위험한 것 같았다.
"시간 여행자"가 아닌가?
하지만 개량된 여과탑 코어에는 현재보다 훨씬 발전된 미래의 기술이 적용되어 있어...
데이터 유령이 중얼거렸다.
도미니카라고 해도,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게다가 ■은(는) 도미니카가 1호 원자로에 들어가기 전에 남긴 의식 데이터일 뿐이야.
진짜 도미니카는 아직 "안개 지역"에 있을 거다.
1호 원자로에 있는 건 "마지막 도미니카"일 뿐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많이 복잡해지는데... ■이(가) 지금의 너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는 "초대장"을 통해 이 세계의 "후계자"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도미니카"의 신분을 이어받은 그들은 의식의 바다의 더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고, 퍼니싱을 물리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
그래서 아무도 도미니카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안개 지역은 "이중합 탑" 내부의 한 공간이다.
아주 오래전,
연산에 따르면, 그 좌표가 "이중합 탑"이 강림할 위치였을 것이다.
현재,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은 상태이니 "안개 지역"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슈탈트다.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은 걸 발견한 후, ■와(과) 게슈탈트는 연산을 시작했다. 연산 결과 미래의 누군가가 시간을 되돌려 "이중합 탑"의 성장을 멈추게 한 것 같다.
■은(는) 한때 선발대의 "시간 여행자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단했다.
"도미니카"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리가 초각 기체로 변경할 때 보았던 붉은색의 나선의 탑 그리고 더 이전에 본·네거트가 반복해서 언급했던 "탑"...
이 "탑"들이 모두 이중합 탑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이중합 탑...
뭔가를 꺼리는 것 같았던 상대방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건 차원을 초월한 능력을 갖춘 것 같아서 "열쇠"를 이용해야만 그걸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초대장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그것들의 역할은 이중합 탑의 코어를 파괴하고 회수하는 것이다.
더 상세한 내용은 그
"도미니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공간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아니, 전부는 아니다. 이 정보들은 "덤"이다.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은 걸 알게 된 ■이(가) 이 초대장에 더 많은 데이터를 넣은 것이다.
초대장의 목적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바톤이었다.
더 먼 미래에 그들은 모두 자신의 데이터를 이 초대장에 추가해 미래의 "도미니카"에게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넌 새로운 "도미니카"가 되고 싶은가?
전자 유령은 차분한 말투로 무게감 있는 제안을 건넸다.
새로운 도미니카가 되어 역사적 사명을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휘관의 대답은...
지휘관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신중함과 책임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말하는 것이 모든 게 사실이라 해도, [player name]이라는 인간 지휘관은 그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시대에 도미니카가 필요할까요? 아니요. 저는...
인간 지휘관은 머나먼 과거보다 더 먼 곳에서 온 존재를 마주하며 담담히 말했다.
난관을 돌파하는 핵심은 현재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 그런 선택인 건가?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도미니카는 이해하고 있었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도미니카는 아쉬움이나 기쁨도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알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이 정보는 곧 파괴될 것이다.
이 초대장 속에는 정보 검은 상자가 감춰져 있는데, 오직 너만이 열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신한
공간이 희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
벽 뒤에 봉쇄된 건 황금시대의 그림자뿐만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데이터 벽이 많이 손상되었다. 그래서 봉인된 정보를 자발적으로 풀지 않아도 결국엔 무너지게 될 거다.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라.
데이터 뒤에 숨어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제 떠나라.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았으니, 너희는...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어둠의 세계가 침묵에 잠겼다.
과학 이사회, 봉쇄된 실험실
과학 이사회, 봉쇄된 실험실
"초대장", "이중합 탑", "안개 지역"...
난해한 단어가 아시모프의 단말기에 기록됐다. 그는 각 단어를 선으로 연결하며 그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려 했다.
대충... 알 것 같아.
우선 "이중합 탑은" 재앙을 상징하는 일종의 "징조"인 것 같아. 그리고 그 외형은...
그건 "초기의 그자"라 불리는 그 도미니카의 시대에서 온 걸 거야.
이중합 탑은 차원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이는 곧 이중합 탑을 통해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일 거야.
하지만, 이중합 탑을 제어하려면 "열쇠"가 필요해. 그리고 "열쇠"의 일부는 네가 가진 "초대장"이야. 나머지 부분은 아직 알 수 없어.
네가 "본" 장면들과 "도미니카"의 설명 그리고 더 이전에 본·네거트가 한 말을 종합해 보면...
"탑"에 무슨 짓을 했지?
필멸자의 육신으로 탑에 올랐다고? 그럴 리는 없어.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은 걸 발견한 후, ■와(과) 게슈탈트는 연산을 시작했다. 연산 결과 미래의 누군가가 시간을 되돌려 "이중합 탑"의 성장을 멈추게 한 것 같다.
■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건 차원을 초월한 능력을 갖춘 것 같아서 "열쇠"를 이용해야만 그걸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어두운 방 안에 아시모프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중합 탑"은 원래 어떤 시점에 이 세계에 강림해야 했을 거야.
초각 기체를 변경할 때 갑자기 나타났던 "기시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중합 탑"이 강림해야 했을 시점이 그때였을까?
그때부터 볼 수 있었던 "기시감"이 조금씩 약해지더니, 실제로 일어난 일들과 조금씩 어긋나게 됐다.
나타나지 않은 구형의 숲이나, 뜻밖에 얻게 된 슈트롤의 유서...
어떤 이유로...
아시모프가 단밀기의 빈 파일에 물음표 하나를 찍었다.
어떤 외부의 힘 때문에,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은 거야.
본·네거트는 네가 "미래"에서 뭔가를 했다고 의심했어. 그리고 도미니카도 널 "시간 여행자"라고 착각했고.
네가 정말 미래에서 뭔가를 한 게 아닐까?
복잡한 조작 같은 거 필요 없이, 농도가 조금 높은 퍼니싱 만으로도 온몸이 썩어 죽을 수 있어요.
네가 바꾼 건 "미래"고, "과거"가 아니기 때문일 거야.
시간의 우리에서 세레나를 구하기 전에 그 회의에서 있었던 "전쟁 후유증" 기억나?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마인드 표식의 혼란...
그게 "미래의 너"가 돌아온 시점일지도 몰라.
과학의 영역에서는 모든 터무니없는 가설이 허용되는 법이야.
아시모프는 담담하게 이 대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시간이 알아서 증명해 줄 거야.
아시모프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진 채 목소리만 들렸다.
때가 됐어. "데이터 벽"부터 확인해 보자.
"데이터 벽" 뒤에 정말 황금시대의 유물 외에...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과학이사회
실험장
과학이사회, 실험장
프로토콜 해독 완료했어요.
탈취를 시작해.
단말기에서 투사된 거대한 스크린에 최신 알림이 계속 스크롤 되며, 데이터 벽이 한 겹 한 겹 탈취되어 갔다.
완료됐어요.
테디베어가 마지막 키를 누르는 순간, 게슈탈트 단말기가 몇 번 깜빡이더니 대량의 알 수 없는 자료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잃어버린 과학기술이 물결처럼 단말기 내부 기억체로 흘러 들어왔다.
됐어요!!
잠깐만! 저게 뭐지!?
게슈탈트의
공중 정원의 지면이 게슈탈트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합금 외피 아래에서 붉은색 번개가 무차별적으로 튀어 오르면서, 퍼니싱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퍼니싱이 안쪽으로 수축하더니, 인간의 눈알만 한 칠흑 같은 구형 코어로 농축되면서 이중합되었다.
빛을 잠식하는 흑성과도 같았다.
벌써 이 시점까지 왔네.
어둠 속에 서 있던 여성이 동요가 전해져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인간들이 곧 터질 듯한 위험과 경주를 벌이고 있었다.
"과거"는 바뀌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도" 퍼니싱의 출현은 2160년 12월 20일부터 시작되는군.
이중합 탑은 강림하지 않았고, 승격 네트워크는...
퍼니싱은 지구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지구 문명의 근간인 정보를 노렸다.
그래서 당시 가장 큰 정보 저장 장치이자, 출력 단말기인 게슈탈트에 가장 먼저 침투했다.
퍼니싱이 게슈탈트를 장악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밈 오염 특성을 가진 퍼니싱이 문명과 언어에까지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구 문명의 미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12월 20일 폭발이 일어난 그 순간, 퍼니싱은 인간에게 이 특성을 빼앗겨 그저 "빈껍데기"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퍼니싱이다.
"빈껍데기"가 된 퍼니싱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구조체와 로봇 그리고 인간을 침식시키며 조금씩 지구의 정보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점차 지구 고유의 "특산품"인 승격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루나, 이합 재난 구역을 잃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셀레네"에 맞설 거지?
이스마엘은 "셀레네"에 의해 폭파된 A1 공항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1호 원자로, 도시 깊숙한 곳
1호 원자로, 도시 깊숙한 곳
여기... 인가?
녹색 후드를 쓴 소녀가 도서관 앞에 서 있었고, 연한 색의 꽃들이 소녀 곁을 둘러싸고 있었다.
소녀는 발치에 있는 이합 생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이합 생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소녀는 오랫동안 황폐했던 이 도시에 조용히 들어섰다.
이곳은 문명이 무너진 후의 무덤이었다.
쇠퇴, 흥성 그리고 다시 쇠퇴하는 것이 문명의 이야기야.
밀물과 썰물에는 그에 따르는 흔적이 있어.
부서진 도서관의 문 앞에 멈춰 선 콜레도르는 거대한 초병 로봇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다음은 뭐지? 내 시나리오는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바람이 풀숲을 스치면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렸지만, 아무도 콜레도르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설마, 내 시나리오가 중단된 걸까?
콜레도르는 여기서 이 "대사"를 수없이 연습했지만, 결국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다.
하아...
심심해진 콜레도르는 촬영이 끝난 뒤 지친 배우처럼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럼, 인제 어쩌지?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멀리 떨어진 방 안에서 이스마엘이 지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그래, 너까지.
이스마엘이 "적조"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콜레도르"라는 이름 아래 "0호 대행자"라는 칭호가 지워져 있었다.
이중합 탑이 강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0호 대행자도 적조 속에서 콜레도르의 육체를 차지할 수 없겠지...
그럼, 자유롭게 성장해 봐.
어쩌면... 너도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는 걸지도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