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파도가 적조를 휘감고 몰아치며 밀려왔다. 그러자 비린내 섞인 바람이 해안가 폐허의 벽을 스쳐 지나갔다.
이합 생물의 울부짖음이 바람 소리를 삼켰고, 해안가의 모든 사람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직 상황은 통제할 수 있지만, 인력이 완전히 부족해!
저 난민들과 적음신계 열몇 명을 더해도 겨우 해수면 서쪽 구역의 Ω 무기 운송만 커버할 수 있을 뿐이야. 다른 일을 도울 여력은...
조금 전에 지원하러 온 블랙 램 소대는? 그리고 복귀한 루시아와 착륙 지원하는 그레이 레이븐 외에 두 명 더 있어. 그들을 놀게 두지 마.
블랙 램 소대는 이미 동쪽 구역으로 보냈어. 동쪽 구역 해안선에 갑자기 대량의 이합 생물이 나타나서 순식간에 그쪽 방어선을 무너뜨렸거든.
잠깐, 저쪽...
해변 가장자리에서 연기와 먼지가 휘날리더니 몇 대의 수송차가 굉음을 내며 이 임시 텐트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공중 정원 표식이 없는데... 누구지?!
나다.
수송차에서 익숙한 모습이 뛰어내렸다.
망각자?
사고의 여파가 망각자 오아시스 일부에 영향을 미쳐서 리와 내가 상황을 파악한 후 세리카에게 연락했어.
오아시스에 좀 더 발전된 무기는 없지만 대략 백 명 정도는 지원할 수 있다. 그들을 어디로 보내면 될까?
와타나베가 니콜라가 서명한 연합 전투 통지서를 보여줬다.
Ω 무기를 받아서 60명은 동쪽 구역 지원을, 나머지 40명은 남쪽 구역 해역에 남아 줘.
Ω 무기가 일시적으로 해수면의 이합 생물을 억제할 수 있지만, 수가 너무 많아...
카레니나가 걱정스럽게 외곽을 바라봤다.
해수면을 봐봐! 저건 차징 팔콘과...
무인기를 조종하면서 해수면을 수색하던 테디베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조잡한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작은 배가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작은 배 앞쪽에 선 비앙카의 휘명 기체가 영롱한 백광을 발하자, 닿는 곳마다 바닷물 속 적조가 줄줄이 물러갔다.
지휘관과 비앙카잖아!
지휘관!
쳇, [player name]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사망"했을 거라고 생각됐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비앙카가 다시 나타나자, 주둔지 내에서 작은 환호성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모든 이들이 곧바로 끝이 없을 것 같은 전투에 돌입했다.
함께 모여 현재 상황에 대해 토론한 후 상륙했다.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저희가 해양관 내부로 잠입했지만, 특별한 성과 없이 적조 흔적만 따라가다 다른 배수구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카무가 "지하층 통로" 안내판을 찾았습니다. 실제 통로는 찾지 못했지만, 이 섬이 대략 해양관 근처에 있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배를 만든 후 섬이 있을 수도 있는 방향으로 찾아가다가 때마침 비앙카와 지휘관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어쨌든 다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다음엔...
카레니나의 시선이 사방을 둘러보자 거의 모든 이들이 해수면의 변동을 눈치챘다.
휘명 기체가 퍼니싱을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승리의 저울은 그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 소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장에 강심제를 놓아주었다. 이와 동시에 공중 정원의 더 많은 지원이 사방에서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드디어 반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승격자와 센의 통제를 벗어난 대량의 이합 생물이 갑자기 나타나 본능에 의지한 채 해안선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사나운 기세로 적조를 타고 얕은 물가로 밀려 들어온 이합 생물들은 시야에 들어오는 그 어떤 생명체라도 마구 물어뜯으려 했다.
윽... 젠장...
부상 입은 구조체가 이합 생물 파도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때 찬란한 빛을 띤 장검 한 자루가 이합 생물의 몸을 찔렀다.
물러나세요!
감... 감사합니다.
Ω 무기의 작동이 정점에 달하면서 해수면의 적조가 일시적으로 통제됐다. 이합 생물도 병사들의 소탕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수상해. 이합 생물의 수량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건 수상한데...
센? 정화 부대 부대장 센을 말하는 거야?
센은 해양관에서 실종됐잖아?
센은 승격자와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가 전사했어요.
그런 센을 대행자와 승격자가 실험의 일부로 삼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센이 섬의 제단에서 대량의 적조와 바닷물 속 이합 생물을 흡수한 거예요.
그랬었구나.
해안과 하늘의 경계선에서 새벽의 하얀 빛이 스며 나왔다.
아... 날이 밝았어. 이 전투도 막바지에 접어들겠지.
하지만 전장은 아직 제가 필요해요. 지휘관님.
제 기체는 "역전"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Ω 무기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까지 처리할 수 있어요.
휴면 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게 해주세요.
지휘관님...
비앙카가 몸을 돌려 인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와 함께 폭풍우가 끝나는 이 새벽을 맞이합시다.
과학 이사회
공중 정원
일주일 후
일주일 후, 공중 정원, 과학 이사회.
모두의 협력으로 해안선 근처 이합 생물도 처리 완료됐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적조로 일부 오염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바다가 받을 피해나, 적조가 스스로 "이합 인간형"과 유사한 생물로 진화할 가능성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 알겠어.
마지막 두 획을 대충 그어 넣은 아시모프가 광 스크린 중앙의 "조각"을 바라봤다.
이중합 조각... 확실히 과학 이사회가 지을 법한 이름이네.
과학 이사회에 있지... 한번 보고 싶어?
...
아시모프가 일어서서 지휘관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밀폐된 유리 덮개 속에서 이중합 조각이 기이한 색채를 발하며 깜박이고 있었다.
뒤틀린 불빛이 인간의 의식을 잠식하고, 금색 실이 어디 선가부터 번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심장박동 소리가 지친 듯 가슴속에서 울렸다.
의식이 허무가 흐르는 긴 강으로 끌려가더니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버렸다.
"심흔" 기체로 변경한 비앙카가 들고 있는 랜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지휘관이 예전에 "기시감"에서 반복해서 봤던 화면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비앙카가 해양관에 진입했고, 지휘관과 루시아도 함께 들어갔다. 적음신계의 그레이스를 구출한 후, 비앙카는 모든 사람과 떨어져 있게 되었다.
비앙카는 센과 마주친 이후... 고요한 심해로 추락했다.
혹사는 실종되지 않았고, 비앙카에 맞서 이합 인간형 센에게 더 많은 부화 시간을 벌어주다가 비앙카에게 참수당했다. 그 후에는...
해안선에는 시체와 부상자로 가득했고, 온통 선혈, 순환액이었으며 적조가 바닷물을 빨갛게 물들였다.
"마녀"가 해수면에서 "괴물"을 죽였다.
모든 화면이 예전에 지휘관이 "기시감"을 통해 본 것과 거의 똑같았다.
마치 영화의 "편집본"과도 같았다. 지휘관은 자신이 비앙카와 함께 해양관에 진입한... 다른 한편의 온전한 이야기를 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우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간이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았고, 해저는 어느새 허무에 의해 삼켜졌다.
왔어~!
별의 색채가 칠흑의 공간을 찢었다.
짜잔, 이건 나나미의 메시지야! 그래서 [player name], 그러니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만 볼 수는 거야!
눈꺼풀이 천 근짜리 저울추에 눌린 것처럼 눈앞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보면 안 돼. 그럼, 나나미의 마법이 통하지 않을 거야.
이건 나나미가 지휘관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헤, 아주 작고 작은 속임수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나미가 지휘관을 대신해 대가를 치를 거니까! 그러니 지휘관도 말하면 안 돼.
나나미가 지휘관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선물의 "답"은 지휘관만 아는 비밀 속에 숨어있다는 거야!
헤헷, 지휘관은 분명 궁금한 게 많겠지! 하지만 나나미는 답할 수 없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나나미의 그림자고, 진짜 나나미는 즐겁게 은하수를 헤엄치고 있어!
여기까지야!
안녕! 지휘관!
성단이 갑자기 부서지더니, 수많은 금색 실마리가 지휘관의 몸을 휘감았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지휘관은 식은땀으로 옷깃이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이중합 조각이 아주 이상한 파동을 냈어. 뭘 본 건가?
지휘관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답을 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매우 순수한 저장 장치 같은데, 암호화 방식이 매우 복잡해서 내 현재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
유일하게 해석이 완료된 건 이 부분이야.
"이건 미래라는 선물이야."
"답"은 지휘관만 아는 비밀 속에 숨어 있어!
어두운 자료실, 손으로 쓴 파일 번호, 살짝 통증이 느껴지는 손끝...
지휘관의 머릿속 기억은 여전히 하얀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이 정보만은 대뇌피질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
네가 말하는 건... 암호를 풀 수 있는 번호를 "봤다"라는 거야?
...
아시모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휘관을 검사 의자에 눌러 앉히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검사를 했다.
뇌파 정상, 의식 표식도 문제없고...
대체 무슨 일이야?
아시모프가 드물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의 우리" 후유증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시간의 우리" 때문일까?
차가운 바닷물, 발버둥 치는 비앙카... 그 모든 것이 허구의 서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실제 같았다.
네가 알려준 암호로 시도해 볼게. 혹시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즉시 나한테 와.
인간 지휘관은 의문을 가득 품은 채, 과학 이사회를 나왔다.
딩동...
단말기가 세리카가 보낸 보고서를 받았다. 군부가 이번 해양관 전투의 사상자 데이터를 취합했는데... 사상자 수가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지휘관은 조금 전 "기시감"에서 본 무서운 광경을 떠올렸다. 시체와 부상자가 해안선에 가득했고, 선혈, 순환액 그리고 적조가 바닷물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Ω 무기의 시기적절한 투하와 엘리트 소대의 사전 지원 준비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비앙카와 지휘관님께서 이합 인간형 생물을 섬에서 막아주셔서...
이번 전투의 사상자 수가 예상했던 40~50%보다 훨씬 적어서, 수여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예복을 준비해 주세요~
전투가 마무리된 후, 세리카의 메시지에는 경쾌한 물결표가 달려 있었다.
단말기를 끄자, 습관적으로 뇌가 작동하며 다음 업무의 중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본·네거트의 행적을 찾아 그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저지해야 할까?
"기시감"의 출처를 찾아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내야 할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나열하던 중, 공중 정원의 햇빛이 인간 지휘관 곁으로 쏟아졌다.
인과의 사슬이 이어진 금색 실이 새로운 운명으로 모아져 인간의 발밑에 펼쳐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