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뚝...
부식된 벽에서 액체가 응결되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본능에 의지해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이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 적조 속에 숨으려 했다.
뚝... 뚝...
왜 도망치는 거야?
...
이건 반가운 일이잖아?
구조체가 될 수 없는 사람도 이 계획을 통해 재생할 수 있어.
인간에게는 좋은 일 아니야?
종이학이라고 불리는 처형 의자가 보라색 머리의 승격자를 태우고 천천히 이동하자 약한 금속 마찰음이 났다.
뚝... 뚝...
너도 행복하지는 않잖아.
...
신경 쓰는 이들이 모두 네 앞에서 죽어나가고, 홀로 남겨졌을 때, 모두가 널 행운아라고 생각하지만, 너 자신은 알고 있지.
남겨진 사람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걸 말이야.
괴물은 숨을 죽이고 숨어 있으면서 보라색 머리의 승격자의 추격을 피하려 했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적조 속 "힘"을 흡수하자,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이 느리게 의식의 바다에서 스쳐 지나갔다.
유코!!
얼굴이 흐릿한 여성이 넘을 수 없는 적조 건너편에 서서 입술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코!!
센은 여전히 그 여성의 얼굴을 명확히 볼 수 없었지만, 왜인지 그녀가 건너편에서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크게 말해!
적조 건너편의 여성이 총을 들어 올리며 또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유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유코라고 불린 여성이 쓰러졌다.
유코... 동생...
뚝... 뚝...
아... 지금 우는 거야?
뭔가 떠오른 거야?
누군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키리시마 센 언니, 안녕.
이제 한 가족이니까 어색하게 굴지 말고, 그냥 센 언니나, 언니라고 부르면 돼.
센... 언니.
앞으로 잘 부탁해, 유코.
뚝... 뚝...
물방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괴물은 떨면서 자신이 무엇을 겪었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 명확히 의식했다.
우리야말로 같은 부류잖아, 센.
이 끝없는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잖아. 그러니까...
괴물이 떨자, 슬픔이 의식의 바다에서 하늘을 덮을 만한 파도를 일으켰다.
언니, 왜 그래?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이제 어떻게 하지?
센...
곁에서 차가운 촉감이 느껴져서 보니, 누군가 울고 있었다.
"사망 보험금은 너희에게 남길 테니, 너희는... 나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
"공공 숙소 근처에 머물지 말고, 너에게 더 적합한 일을 찾아보렴."
"그럼..."
모든 작별 인사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종소리였다.
너도 그녀들이 보고 싶지?
지금은 네 모든 기억을 읽을 수는 없어. 하지만 그들은 분명 너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을 거야.
무서워하지 마.
뚝... 뚝...
금속 마찰음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강제로 혼란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자, 괴물이 고통스럽게 전율했다.
뚝... 뚝...
아...
뚝... 뚝...
찾았다.
!!!
괴물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자, 이화된 갑옷이 종이학의 공격에 조각조각 부서졌다.
아직 온전한 부화를 이루지 못해서, 지금 도망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어.
날... 죽여줘.
아직 안 돼.
실험은 성공할 거고, 네 생명은 더 높은 형태의 몸에 담기게 될 거야.
분명 더 완벽해질 수 있을 거야.
종이학이 허약한 괴물을 제압했다. 그리고 보라색 머리 승격자와 은밀한 작은 길을 따라 섬에 올라갔다.
바로 여기야.
혹사가 부드러우면서도 인내심 있게 괴물을 섬 중앙의 제단에 안치했다.
서두르지 마. 마지막 단계만 성공하면... 영원히 아프지 않을 테니까.
분명 죽음도 닿지 못하는 행복한 꿈을 가지게 될 거야.
혹사는 "괴물"을 바라보며 자신이 본 센의 기억을 떠올렸다.
너도 그녀가 그립지?
자신의 긴 머리를 말아 올린 혹사는 센의 기억을 통해 또 다른 이를 본 것 같았다.
괜찮아. 곧 끝날 거야.
너는 여기서... 재생하게 될 거야.
적조가 발밑에서 번지자, 괴물의 몸이 조금씩 잠겼다.
꾸르르르르...
쿨럭쿨럭쿨럭!
미리 알았더라면 기체에 프로펠러가 달린 엔진을 하나 더 달았을 텐데.
...
해변으로 기어 올라온 카레니나와 테디베어는 힘겹게 기체 속에 고인 물을 정리했다.
본·네거트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데려가느라 바빠서 여기 둘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물살에 휩쓸려 간 그녀들은 손상된 해양관 외벽을 따라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가 엄청난 힘을 들여서야 겨우 기어 올라올 수 있었다.
해양관에 대행자가 나타나다니... 어서 공중 정원에 보고해야 해.
카레니나는 단말기를 가동하면서 머리카락의 바닷물을 털어냈다.
테디베어, 어서 이전의 주둔지 위치를 추적해서 찾아, 바로 그레이 레이븐을 지원해야 돼.
테디베어?
저기...
붉은색 파도가 멀리서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굴러오고 있었다.
적조?! 어떻게...
본·네거트가 외력으로 해양관을 파괴해서 해양관 속 적조가 유출된 거야.
...
카레니나? 무슨 일...
대행자 본·네거트가 해양관에 나타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납치하고 해양관을 파괴했어.
해양관 속 적조가 유출되어 대량의 이합 생물이 해면에 상륙할 것 같아!
우리가 내려올 때, 가져온 물자로는 부족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지하 1층
폐허 속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지하 1층, 폐허 속.
지하 1층은 정비 부대가 조달한 대형 기계로 이미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을 통해 하늘의 빛이 환히 들어왔다.
소리가 들려! 바로 여기야!
정비 부대 구조체가 대형 기계를 움직여 구조적으로 취약한 곳을 찾아냈다.
안에 있는 대원들은... 즉시 흩어져라!
모두가 흩어졌다는 확인을 받자, 대형 로봇이 굴삭기를 휘둘렀다.
"쾅..."!
부상자부터 떠나세요.
크롬의 지휘하에 적음신계 신도들과 정화 부대의 다친 구초체 대원들이 좁은 통로로 차례로 빠져나왔다.
하늘이시여...
신이시여...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와, 차라리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나 아니었으면, 누가 너희 같은 신도들을 신경 쓰겠어.
루루가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다친 신도를 옮겼다.
공중 정원의 높으신 분들을 인도해 주신 신께도 감사드려야 해요.
신의 인도로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이야말로 신의 사자예요.
그레이스가 말하자, 신도들은 줄줄이 공중 정원 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쳇.
공중 정원 대원들과 많이 접촉하고 싶지 않은 루루는 눈을 한 번 굴리고는 자리를 피했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요?
저희가 가져온 Ω무기는 설치 완료했고, 후속...
어? 저희 대장, 부대장과 함께 계셨던 거 아니십니까?
비앙카의 새 기체를 운반하기로 했으니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루시아, 지휘관님과 함께 있을 겁니다.
나중에 해양관에서 폭발이 일어나 바닷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현재 아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지원은 정비 부대뿐인가요? 집행 부대는 인력을 얼마나 파견했나요?
제가 집행 부대 병사 몇을 데리고...
곳곳이 바닷물과 적조뿐이라, 아래는 이미 들어갈 수 없어.
카레니나와 테디베어가 폐허 외곽에서 돌아왔다.
카레니나? 지휘관님과 루시아는...
물에 휩쓸려 흩어지는 바람에 나와 테디베어는
지하 2층 아래로는 지금 전부 물에 잠겨 있는 상태야. 바닷물이 대량의 적조를 끌어당겨 바다로 역류하고 있고, 승격자가 이전에 해양관에서 기르던 대량의 이합 생물이 해안선을 향해 접근하고 있어.
공중 정원에는 보고했나요?
첫 번째 지원 Ω 무기가 30분 후에 착륙할 예정이야. 그러니 Ω 무기 설치 준비를 해야 해.
저에게 물자를 할당해 주세요. 제가 대원들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레이 레이븐의 루시아와 지휘관님을 찾아볼게요.
알았어. 물자는 뒤쪽에 있으니까 직접 가서 가져가. 그리고...
세리카가 지원 소대들을 계속 보낸다고 하니까, 지상의 인원 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야~ 너무 비참한데.
붉은 머리 구조체가 지면에 서서는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두 집행 소대가 임시로 분업해서 끝내기로 했고, 크롬은 카무이와 카무를 데리고 해양관 내부에서 그레이 레이븐 일행의 흔적을 수색하기로 했다. 베라는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카레니나와 해안선 외곽에 Ω 무기를 배치하기로 했다.
협의가 끝나자, 크롬은 카무이와 카무를 데리고 즉시 출발했다. 카레니나는 베라와 인력 배분을 협의하고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그레이스가 신도들 무리에서 벗어나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너는... 적음신계 소속인가?
카레니나는 임무 브리핑에서 적음신계에 관한 부분을 봤던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네, 죄송합니다. 저희가 많은 문제를 일으킨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요.
구조되고도 신한테 감사하고 있는 너희랑 뭘 좋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 뭐라도 하고 싶으면 바닷가에 가서 기도라도 해. 너희 신이 적조 확산을 막아줄 수 있는지 잘 봐.
기도는... 기댈 곳을 찾는 방식일 뿐이죠. 저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신이든 적조든... 저희의 신앙은 무력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기반해요.
저희가 구조체로 개조될 수 있는 티켓을 얻지 못해서, 그런 괴물들 앞에서 역부족이라 도망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 하지만...
그녀는 목숨을 걸고 저항하려는 인간들과 중상을 입고도 동료를 보호하려는 구조체들을 보았다.
그들은 날카로운 칼이 없으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이빨로 물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 있는 한 한순간도 싸움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다면 왜... 적음신계는 안 될까?
어째서 적음신계는 그들처럼 의지할 수 있는 모든 힘에 의존해, 자신들을 위한 "미래"를 쟁취하지 못하는 걸까?
그레이스가 손바닥에 있는 금속 부적을 움켜쥐자, 홈이 파인 M자 기호가 그녀의 손바닥에 깊이 박혔다.
M... Mannaz... 인간... 당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요. 저희도... 함께 싸우게 해주세요.
음...
현재 배치로 봤을 때, 서쪽 해안에 수송 공백이 생길 거야.
너희가 서쪽으로 가는 물자 수송을 도와줄 수 있겠어? 정비 부대가 Ω 무기를 설치하기 편하게 말이야.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의 눈이 밝아졌다.
잠깐.
네 신도들 말이야. 중간에 물자 들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어?
제가 보장할게요.
그레이스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들에게 신의 시련이라고 말할 거예요.
이 시련만 통과한다면 진정한 신생을 얻을 수 있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