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5 파도 저편의 소리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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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1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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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위 좌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비앙카의 귓가에 우아한 여성의 전자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시스템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근 플랫폼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 안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역 안내 방송에서 또렷하고 원활하지만 다소 기이한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밀폐된 실내에 이유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눈앞의 모든 것이 빗속에서 색이 바래갔다.

잿빛 빗물이 비앙카의 몸 위로 흘러내렸고, 희미하고도 따끔한 통증을 남겼다.

...

미안해요. 비앙카.

문득, 쏟아지던 빗줄기가 갈라지며,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나 비앙카 곁에 드리워졌고, 그녀를 위해 우산을 들어 올렸다.

센?

다소 힘겹게 고개를 든 비앙카는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이름을 불렀다.

이게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저의 마지막 선물이에요.

선물...

센의 말에 응답하듯, 둘의 주변에 갑자기 바람이 일었고, 순간 비가 멈췄다.

열차 한 대가 플랫폼에 정차하자, 비앙카는 멍하니 그쪽을 바라봤다.

비앙카

저건... 뭐죠?

비앙카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눈앞의 광경을 분별하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플랫폼의 조명은 어느새 꺼져 있었고, 더 먼 곳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실내의 비바람은 더 심해져, 열차 같은 강철 조형물마저 격하게 떨고 있었다.

만약 당신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마녀가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성녀가 되고 싶은가요?

마녀... 성녀?

혼란스러운 사고가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기에는 아직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비앙카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요, 만약 당신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비앙카, 당신은 존재가 되고 싶나요?

센은 우산 손잡이를 비앙카 손에 쥐여주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센! 어디 가는 거예요?

저요? 전 여기 남을 거예요.

센이 고개를 돌리자, 비앙카는 그제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플랫폼 한가운데 치우치지 않게 서 있고, 많은 빗물이 그녀의 발밑에 모여 눈부신 빨간색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가 제 종착역이에요, 비앙카.

하지만 당신은 떠나야만 해요. 이곳을 떠나요, 어떤 선택을 하든, 마녀든 성녀든 상관없어요.

우!

열차가 때마침 기적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빛이 차체에 넘쳐흐르더니 엔진이 굉음을 냈다.

안 돼요. 잠시만요. 센, 잠깐만요!

비앙카는 깨어난 것 같으면서도 혼돈 속에 여전히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비앙카는 입을 크게 벌리고 발걸음을 옮겨 센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장대비가 내리는 곳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 자리에서 경직되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요, 비앙카.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깜박이자, 비앙카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빗물이 갑자기 역류하며 플랫폼으로 쏟아져 들어와 역을 침수시켰다. 진홍의 결정체가 울부짖으며 장대비 뒤로 사라져 버렸다.

윽...

저...

새 기체... 를...

질문이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강한 빛이 갑자기 꺼지더니 사방이 어둠에 빠졌다.

비앙카는 황무지에 잠겨 있었다.

윽...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 미세한 기포가 고막 밖에서 응고되면서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순환액의 비린내가 주는 압박감과 뒤섞여 감각 시스템을 짓눌렀다.

비앙카가 갑자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기체가 천천히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여기는...

푸른색 물결무늬가 천천히 깜박이면서, 시각 모듈이 닿는 곳은 온통 바닷물과 폐허뿐이었다.

새 기체... 운반 캡슐...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익숙한 목소리가 준 정보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비앙카는 몸에 단단히 묶여있는 밧줄을 따라 옆에 고정된 새 기체의 운반 캡슐을 더듬어 찾았다.

인증...

시스템

홍채 인증이 통과되었습니다. 정화 부대 대장 비앙카, 신원 식별 완료됐습니다.

톱니바퀴가 물속에서 천천히 돌아가더니, 운반 캡슐의 문이 서서히 양쪽으로 벌어지며 열렸다.

이건...

비앙카는 예전에 과학 이사회가 자신을 막 개발하기 시작했을 무렵, 이 기체를 본 적이 있었다.

과학 이사회 멤버들이 그녀와 기체 외형을 주제로 논의했을 때, 비앙카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하얀색으로 향했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마녀가 되고 싶으세요? 아니면 성녀가 되고 싶으세요?

저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다면...
저는...
성녀가 되길 원할까요, 아니면 마녀가 되고 싶은 걸까요?

마녀...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키기 위해 임시로 제작한 코팅은 적조에 부식되어 벗겨졌고, 위장막 아래에 있던 심흔 기체는 적막한 해저를 떠돌고 있었다.

저는... 마땅히 "마녀"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성당이 이런 수녀를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니죠. "마녀"라고 해야겠죠.

"마녀"라고 해야겠죠, 그녀가 토비를 죽였으니까요!

퍼니싱 침식이 의식의 바다에 격렬한 진동을 일으키면서 수많은 목소리가 비앙카의 귓가에서 울렸다.

저는... 마땅히 "마녀"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코팅 조각들이 마치 그녀에게 이 칭호가 '가족 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저는... 마땅히 "성녀"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너도 곧 네가 "정화"했던 그 구조체들처럼 될 거야.

정... 정화 부대다! 저 악귀 같은 것들!

그녀의 두 손은 무고한 자와 죄지은 자의 선혈로 물들어 있다. 이런 손으로 과연 성녀가 될 수 있을까?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누명 때문에 불리게 된 악명, 예전에 저지른 잘못, 정화 부대에서 죽인 배신자와 침식체 그리고 구해낸 인간과 병사들...

저는...

세상에 결코 흑과 백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성녀든 마녀든 모두 "강요된" 호칭일 뿐이었다. 그녀는 한때 부정하는 법을 몰랐고, 부정할 권리조차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어린 양처럼 응시당하고, 깎이고 다듬어졌으며, 갖가지 이질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금...

선택의 권력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어 안전 로프가 됐고, 부드럽게 그녀의 손에 넘겨졌다.

저는 저에게 속하지 않는 죄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과거 제가 저질렀던 "죄악"을 부정하지도 않을 겁니다.

저는 검은색이자, 흰색입니다.

저는 그 누구에게도 정의되지 않습니다.

증오와 감사, 기쁨과 슬픔, 시끄러운 속삭임들이 수막 너머로 차단되었다.

저는 성녀이자, 마녀입니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 동반하며 생겨나듯이, 저는 힘을 다스릴 권능을 가졌으니 마땅히 이 힘을 이용해야겠죠.

그녀가 바닷물 속에서...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