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5 파도 저편의 소리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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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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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하나 있네!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여성 구조체가 빠르게 몸을 숙여 룬 문자가 새겨진 또 하나의 금속 블록을 집어 들었다.

역시 그레이스다워... 바보 같고 순진한 스타일이지.

적조를 신앙하는 것도, 이런 미숙하고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길을 찾는 것도...

하...

지휘관님! 앞쪽에서 전투 소리가 들려요. 비앙카 일행이 분명...

루시아의 희망이 섞인 말투가 갑자기 끊어졌다. 앞쪽 통로에 끈적한 적조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이루며 모여들고 있었다.

또 적조입니다.

적조는 분명 뇌세포로 진화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바로 누군가가 끊임없이 공중 정원 일행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로 행동하시겠습니까?

따로 행동한다면 상대방의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는 있지만, 상대방에게 각개격파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말은 쉽지. 적조 색깔이 이렇게 짙은데... 억지로 건너간다면, 3분의 1도 못 가서 적조 안에 있는 그놈들과 만나게 될 거야.

난 다른 사람들과 한 무리로 섞이고 싶지 않거든...

지휘관은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표시를 떠올렸다. 역시나 크롬이 추측한 대로, 해양 박물관 직원들이 지하 3층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이용한 업무용 통로였다.

어떻게 적조를 우회해서 전진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적조는 어떤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갑자기 파도를 일으키며 뒤틀렸다.

지휘관님! 위쪽에 금속 지지대가 있어요!

천장을 올려다보니, 황금시대 때 돔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금속 지지대가 부식되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등반 로프로 하중을 테스트해 본 후 루시아가 먼저 기어올랐다.

지휘관 일행이 손발을 사용해 금속 지지대를 타고 넘어가자, 교전 소리가 더 뚜렷해졌다.

암호문입니다.

이쪽은 회로가 손상돼서 암호로는 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이합 생물의 비명이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그레이스는 손가락을 떨며 암호를 반복 입력하려 시도했다.

그레이스는 해양관 관제실의 모든 수막과 전자 문 암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관제실에 있을 때 그 복잡한 숫자들을 모두 외웠고,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비장의 카드였다. 하지만...

시스템

(지지직...)

시스템에서 조용한 백색 소음이 들려왔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금속 문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윽...

앞쪽에서는 신음을 내뱉는 실프가 비수를 입에 물고 옷자락을 힘껏 찢어서, 다친 관절 부위에 매듭을 짓고 흘러나오는 순환액을 간신히 멈추게 했다.

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레이스가 경직된 채로 금속 문의 전선을 급하게 뽑아냈다. 그러면서 예전에 루루가 운송 장비를 수리하던 것처럼 서로 다른 색깔의 전선을 이리저리 연결해 보면서 시스템이 작동하기를 바랐다.

시스템

...

전기회로에서 불꽃이 튀자, 백색 소음마저 사라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아니야... 이러면...

그레이스의 정신은 "붕괴"를 건너뛰고 바로 "절망"으로 뛰어들었다.

뒤쪽에는 의식불명인 비앙카와 열리지 않는 문이 있었고, 앞쪽에는 고군분투하는 실프와 셀 수 없는 이합 생물들이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적조가 여전히 위로 번져 올라오면서 실프의 두 발에 닿고 있었다.

그레이스... 님.

거... 거기 누구예요!

그레이스가 몸서리를 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적조를 바라봤다.

마... 마빈?

신계자... 님.

이게... 신생이자, 적조예요.

아... 아니에요. 어떻게 이럴 수...

신계자님... 또 저를 속이셨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어떻게... 그럴...

그레이스가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무력하게 쇠 지렛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지만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적조의 품이 바로 신생입니다.

적조의 품이 바로 신생입니다.

신계자님, 어서 오세요. 저와 함께... 포옹하고... 누려요.

적조의 허상에 나타난 얼굴들은 흐릿하고 흉측했으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왕생의 적조가... 당신을 환영합니다.

거짓의 신이 공허한 합창을 조종하며, 절망한 신도를 지옥으로 가는 길로 유혹했다.

여기는 행복한 세계입니다. 그레이스, 신계자님, 기억나십니까?

당신께서 예전에... 그려왔던 것을...

미래...

그레이스의 동공이 초점을 잃더니, 그녀의 뇌리에 신도들의 메아리와 예전에 그녀가 신도들에게 말했던 신생이 울려 퍼졌다.

물론이죠. 적조 속 "신생"은 아름다워요.

시련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신생의 자격을 얻을 수 있죠. 그리고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생...

정... 정말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적조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레이스는 입술을 바르르 떨었고, 금속 문에 대고 있었던 손가락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적... 적조 속이 정말... 행복한 세계라면...

"신생"의 세계에는 끝없는 방랑도, 침식체와 괴물도 존재하지 않을 거고, 죽음도 없을 거예요.

적조의 신을 믿는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행복한 저편으로 인도해 주실 거예요.

만약...

적조의 허상이 비틀거리며 그레이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침식체도 구조체도 없는 그 세계에서 마빈, 밀러, 늙은 애연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윽!

실프가 비수를 던져 그녀의 종아리까지 기어 올라온 이합 생물을 바닥에 박아버렸다.

!

실프의 고통스러운 신음 때문에 깨어난 그레이스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꽉 움켜쥐며 환영의 부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고, 그러자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손바닥을 찌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건 그레이스의 주머니에 남아있던 마지막 룬 문자였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룬 문자가 그레이스의 피에 젖어, 그 위에 새겨진 M자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M... Mannaz... 인간... 당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머리 위에서 쏟은 것같이 그레이스는 자신이 이렇게 정신을 차린 적이 없다고 느꼈다.

그레이스는 적조를 신앙했고, 적조 속에 왕생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생명을 더 신앙했다.

그녀는 생명이 존재하는 미래를 신앙했다.

신계자... 님, 여기로 오세요.

적조가 바로... 적음신계의 낙원입니다.

저... 저리 가요!

그레이스는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쇠 지렛대를 휘둘러 적조 속 허상들을 쫓아냈다.

거짓의 신은... 적음신계의...

금속 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문을 뜯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그레이스는 간신히 앞쪽 허상을 물리치고 온 힘을 다해 쇠 지렛대를 들어 올려 뒤쪽 문짝을 두드렸다.

적음신계의 미래를 선포할 자격이 없어요!

문이... 열렸다.

어! 어! 어! 야! 그레이스!

그레이스가 힘을 거둘 틈도 없이 쇠 지렛대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맨 앞에 있던 루루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참나...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사전에 대비했으니 망정이지, 이합 생물이 아닌 너한테 맞아 죽을 뻔했네. 그럼 진짜 망신인데.

루루가 과부하로 인해 넘쳐 나온 순환액을 뱉으며 금속 문을 발로 찼다.

황금시대 문은... 왜 이렇게 퀄리티가 좋은 거야? 이렇게 많은 구조체가 함께 나서야 겨우 파괴할 수 있는 정도라니...

루루? 당신도 적조에...

퉤퉤퉤! 그런 재수 없는 말 하지 마! 나야! 나라고!

진짜! 루루 맞다고!

아... 아파, 아프다고, 하지 마, 내 얼굴 꼬집지 마.

그레이스가 손상된 문과 그곳으로 들어온 공중 정원 구조체들 그리고 그 인간 지휘관을 멍하니 바라봤다.

험한 파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레이스는 건조하고 따뜻한 인간 세계로 돌아왔다.

지휘관은 돌진한 순간 두 눈을 꽉 감고 있는 비앙카를 발견했다.

퍼니싱 침식이 너무 심각해서,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어요. 의식의 바다의 편차도 심한 상태입니다.

장비의 조정이 빠르게 끝나자, 더 안전한 곳을 찾을 틈도 없이 즉시 심층 마인드 연결을 개시했다.

마인드 표식이 퍼니싱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의식의 바다를 관통해 지나가자, 기괴하게 뒤엉킨 기억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악몽의 그림자가 인간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게 만들었으며, 열대어마저 과장된 모습으로 기형화되어 비명을 질렀다.

험준한 가시를 피하자,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마녀...

피에 굶주린 마귀...

입으로만 인의 도덕을 외치는...

지... 지휘관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의식의 바다 깊숙한 곳에서 울렸다.

저...

지휘관이 앞으로 나아가 비앙카를 붙잡으려던 순간, 심층 연결이 갑자기 중단됐다.

침식이 너무 심해서 비앙카가 강제로 연결을 끊었어요.

쿨럭...

지휘관님...

승격자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혹사"라는 승격자 외에 다른 이가 또 있는 것 같아요.

관제실을 장악한 그들이 배수 시스템을 이용해 적조를 계속 방출했고, 우리의 앞길을 차단시키고 있었어요.

센은 그들에게 잡혀간 것 같아요...

순환액이 비앙카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그들을 찾아야 돼요.

승격자가 변이시킨 적조는 구조체를 녹일 수 있어요. 융합된 구조체가 많을수록 적조가 잉태하는 "괴물"이 더 강해질까 봐 걱정됩니다.

그리고 적음신계도요... 컥...

비앙카가 힘겹게 입안에 있는 순환액을 뱉어냈다.

적음신계의 신도 대부분을 찾았는데, 실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

의식의 바다 편차가 심해졌어요. 상황이 위험해요.

지원 소대가 비앙카의 새 기체를 가지고 지하로 내려올 거라고 아시모프가 말했었다. 새 기체로 변경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퍼니싱 침식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왔던 길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공중 정원에서 파견한 구조대입니다!

정화 부대 대원C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적조의 충격 속에서 흩어졌던 생존자들이 이쪽의 소동을 듣고 서로 부축하며 지휘관이 있는 곳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최소 십여 명은 돼 보였는데, 그중 움직일 수 있는 건 서너 명밖에 없었다.

바로 가장 빨리 달려온 신도 세 명, 그리고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프였다.

지휘관님, 따로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휘관님과 루시아는 비앙카를 데리고 먼저 이곳을 탈출하고, 저와 적음신계의 구조체는 남아서 장애물을 정리하고 지원을 기다리겠습니다.

크롬은 항상 후방에 서 있었고, "후위 담당"이란 해결책은 항상 그의 "위기 처리 매뉴얼"의 첫 번째 선택인 것 같았다. 그는 위험한 일을 자신에게 맡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제가 있잖아요.

지휘관은 실프의 상처를 보며 잠시 멈칫했다.

단말기에서 갑자기 알림이 울렸다.

야... 야!!

카레니나예요.

왜! 불만 있어? 불만 있어도 나밖에 없거든!

길 막지 말고, 좀 빨리 기어가면 안 돼!

금속 창고에서의 충돌음이 단말기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지금 공중 정원에 있는 게 아니야.

이 통신 채널은 테디베어가 조금 전에 네 단말기를 해킹해서 구축한 단거리 통신 채널인데, 일정 거리 내에서만 통신이 가능해.

고맙다는 말은 사양할게.

네 덕분이지... 카·레·니·나 대장, 다시 한번 말하는데, 갑자기 멈추지 말라고.

네가 지정한 위치잖아! 지금! 방! 향! 을! 틀! 어! 야! 한다고!

하... 시끄러워.

둘의 다툼 소리 외에, 물소리와 금속 충돌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건... 아니지.

지하 1층이 전부 붕괴했어, 기계 고질라 두 마리가 안에서 싸우다가 함께 자폭한 것처럼 말이야, 지금 곳곳에 적조와 철근밖에 없어.

똑똑하네.

지하 1층이 전부 붕괴했어, 기계 고질라 두 마리가 안에서 싸우다가 함께 자폭한 것처럼 말이야, 지금 곳곳에 적조와 철근밖에 없어.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지, 덕분에 지하 1층엔 이합 생물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승격자들이 적조와 혼연일체가 되지 않는 한, 절대 그곳에 남아있을 수 없을 거고.

정비 부대가 가장 가까운 보육 구역의 정비 기계를 동원해서 위치 측정 후 지하 1층 천장을 직접 뚫었어.

지하 2층은 바닷물과 적조로 가득해서 진입하기 어려워.

그래서 우린 지금 통풍관을 이용해 이동 중이야, 비앙카의 새 기체를 가지고 말이야.

지금 너희와 꽤 가까울걸? 그렇지 않았다면, 네 단말기를 해킹해서 이 통신 채널을 구축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건 어려울 거야.

통풍관이 너무 좁아서 나란히 갈 수가 없어. "생존자들"이 모두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럭저럭 가능한 예비 방안이겠지만, 부상자가 있다면...

의회에서 Ω 무기 사용 안건을 통과시켰어. 우린 첫 번째 지원 소대고, 두 번째 지원 소대도 곧 도착할 거야.

야! 갑자기 중력파로 구멍 뚫지 마!

어쨌든 좀 버티고 있어, 그리고 비앙카도 버티게 해.

테디베어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좌표, 그리고 이동 경로를 동기화해줄 거야. 그쪽에서 합류하자.

"공사"에 집중하기 위해, 카레니나가 먼저 통신을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할 좌표 지점이 지휘관의 단말기로 전송되었다.

두 번째 지원 소대가 곧 도착할 예정이니, 생존자들이 지하 3층의 거대한 공간에서 잠깐만 버틸 수 있다면, 반드시 구조될 수 있을 것이었다.

비앙카의 의식 상태로는 장애물 정리가 완료되고 두 번째 지원 소대와 합류하기까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기에, 미리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네. 지휘관님.

조심하십시오.

간단히 작전 정보를 교류한 후, 모두 흩어져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크롬은 제자리에 서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을 배치해 장애물 정리에 나섰다.

이것은 그들이 겪은 첫 번째 험난한 전투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