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근처의 해면.
흐린 날 지평선에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는 가운데, 배가 먹구름 속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해양관 배수구 찾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뭐라고? 여긴 오랫동안 관리 받지 않은 외딴 곳이거든, 이 구역까지 찾아낸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21호가 냄새를 맡았어, 배수구는 저쪽이야.
...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정보가 정확했어.
야!
시끄러워.
퍼니싱 농도는? 확인했어?
어디 보자... 와, 조금 전에 지나온 해역보다는 훨씬 높은데.
제법이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배에서 내려.
모터보트는 흔들거리며 지휘관이 알려준 해변에 정박했다.
모래언덕을 돌아서니 사람 키보다 높은 배수구에서 소규모의 적조가 넘쳐흐르면서 음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승격자들한테서 품격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네, 그들이 이 모든 걸 부화시킨 걸까?
녹티스는 꿈틀거리던 이합 생물 한 마리를 처리한 뒤, 혐오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것뿐만이 아닐걸...
붉은 머리의 구조체가 몸을 숙여 이합 생물의 사체를 뒤적였다.
단순한 이합 생물이라 하면 부적절한 표현이지, 왜냐하면 이들은 예전에 인간이었으니까.
면전의 살덩어리를 살펴보니, 적조의 침식을 받지 않은 천 조각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어떤 불운의 구조체나 난민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격자... 싫어.
다들 방심하지 마, 이쪽 퍼니싱 농도로 봤을 때, 승격자가 아직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잘 됐네! 마침 몸 좀 풀고 싶었는데!
우선 임무부터 제대로 완수해야 돼. 해상 배수구 근처에 가져온 Ω 무기를 설치하자고.
차징 팔콘 소대의 두 대원도 서둘러야 할 텐데, 어쩌면...
베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공기 속에서 요동치는 퍼니싱을 느꼈다.
우리가 상륙했을 때, 승격자는 이미 우리의 행방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니까.
선생님, 공중 정원에서 파견한 인력이 도착했고, 버려진 실험장을 발견했습니다.
...
감시 화면을 보니, 붉은 머리의 구조체가 도발하듯 소형 감시 장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중 정원 소속인 그들에게 있어, 전자기기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선생님, 저 녀석들을 쫓아낼까요?
센과 이합 인간형의 융합 상태는 어느 정도 됐지?
아직 부화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현재까지의 진행은 순조로웠지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수문을 열고, 버려진 실험장 하층에 축적된 적조를 방출해.
선생님?
혹사가 드물게 의문을 제기했다.
센은 아직 부화를 완료하지 못했고, 그녀는 지금 지하 3층 저수지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적조를 방출하면 실험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수문을 연 후, 넌 센을 데리고 섬의 예비 기지로 이동해서 실험을 계속하도록 해. 그곳에 충분한 소모품을 준비해 뒀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난 남아서 저수지 쪽의 일을 마무리한 뒤, 섬으로 가서 합류하겠다.
알겠습니다.
혹사는 순순히 관제실을 떠났다.
텅 빈 관제실에 선 본·네거트의 눈빛이 어두웠다. 감시 화면을 전환하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루시아 일행이 비앙카의 위치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player name].
본·네거트가 지휘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탑"의 소실이... 당신 때문인 걸까?
보라색 머리의 승격자는 유령처럼 자체로 제작한 무덤터를 배회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좁은 통로들을 지나가자, 기괴한 이합 생물들이 그의 손아래에서 고양이처럼 순종적으로 변했다.
여기야.
혹사가 거대한 적조 저장탱크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음?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네.
저장탱크 외곽의 기괴한 촉수들을 살펴본 혹사가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현재 상태엔 영향을 주지 않을 거 같아.
그럼... 날 따라오도록 해, 괴물 아가씨.
저장탱크 주변의 기기들이 삐삐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혹사와 본·네거트의 계획 안에 있었다.
"종이학"이라 불리는 처형 의자가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더니, 손쉽게 저장탱크에서 기괴한 인간형 생물을 꺼냈다.
...
괜찮아, 곧 끝날 거야.
혹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혼수상태에 빠진 기괴한 인간형 생물을 달래주었다. 종이학은 그 인간형 생물을 들어 올린 채, 천천히 혹사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본·네거트가 아주 오래전부터 퇴로로 이용하기 위해 해저에 통로를 하나 준비해 놓았고, 그 통로를 이용해 근처 섬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는...
...
센이 갑자기 격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센?
혹사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처형 의자가 센의 사지를 단단히 붙잡았고, 금속 부품이 그녀의 살갗 깊숙이 파고들었다.
센...
혹사가 센에게 다가가 문제를 확인하려 했다. 이 구조체의 기억을 이미 잘라냈기에 당연히...
...
기괴한 인간형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센은 몸부림치며 종이학의 속박을 무시한 채, 기이한 자세를 이용해, 큰 덩어리의 살과 피를 잃는 대신, 처형 의자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센, 이리 와, 나와 함께 가야지.
센은 다른 이합 생물들을 조종하듯 센에게 다가가려 했다.
!!!
혹사가 즉시 수많은 적조를 방출해 독가스처럼 자신을 중앙에 놓고 감쌌다. 하지만, 이합 인간형과 융합한 센은 이런 공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센은 몸을 굽혀 보라색 머리 승격자에게 다가가 주저 없이 상대방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
혹사가 처형 의자 안으로 웅크렸다. 처형 의자는 그를 위해 맞춤 제작된 우리처럼 단단히 그를 보호했다.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센은 분명히 "자의식"이 없을 텐데, 왜 이 시점에서 깨어났는지, 왜 탈출과 공격의 욕구를 보이는 것일까?
자신의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센은 공격을 포기하고 몸을 날려 도망쳤다. 그녀의 두 눈은 여전히 공허했고, 이 모든 행동은 "무의식" 상태에서 진행된 것 같았다.
왜 다들 얌전히 협조하지 않는 거야...
죽음을 초월하는 건... 인간이 추구하는 거잖아?
보라색 머리 승격자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종이학이 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센이 떠난 방향으로 쫓아갔다.
해양관 배수구 근처
해양관 배수구 근처
세 번째 미니 감시 장치를 제거한 21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에 귀를 기울였다.
21호?
대장, 저쪽에서 소리가 나.
뒤로 물러서.
셋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5분이 지나자, 가느다란 적조가 거대한 배수구에서 천천히, 끈적하게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
...
하하하하하!! 바보 21호! 설마 "소리가 난다"라는 게 이거였냐?!
아니. 잠깐...
배수구 파이프 내부에서 천둥 같은 메아리가 들렸다.
어서 뒤로 물러나!!!
베라가 21호를 붙잡고 민첩하게 배수구 위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번갯불이 번쩍이는 순간,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적조는 마치 악룡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잠식해 버렸다.
젠장!
우릴 상대하겠다고 이렇게 큰 놈까지 내세울 필요가 있어? 우리는...
녹티스는 넋 나간 듯, 거세게 흘러가는 적조를 바라봤다.
우리가 가져온 한 자릿수 Ω 무기로... 이곳을 정리해야 한다고?
배수구를 봉쇄하는 게 최우선이야. 아무래도 해양관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승격자가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이 거점을 포기할 리는 없어.
녹티스, 넌 후방으로 이동해 배를 가져 와. 그리고 21호, 넌 수문을 찾아봐.
붉은 머리 구조체는 차가운 눈빛으로 발밑의 적조를 내려다봤다. 바로 그때, 단말기에서 지지직거리는 통신 잡음이 들렸다.
내 말이 들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신호가 불안정해서 그런지, 상대편 인간 지휘관의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배수구는 이미 개방됐어, 혹시 너희가 승격자와 정면으로 한번 싸웠던 거야?
긴 말은 필요 없고, 우린 일단 가지고 있는 Ω 무기를 배수구 쪽에 배치할 거야. 수문이 있으면 최대한 수문을 닫도록 해.
다만 지금 상황을 보니, 우리 셋이서 Ω 무기를 안고 바다에 가라앉아도 바다로 분출되는 적조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우리의 현재 위치는 카퍼필드 해양관과 거리가 좀 있거든, 게다가 퍼니싱이 위치 신호를 방해하고 있어서, 그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도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나한테 참 골치 아픈 문제를 떠넘겼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괜찮아, 케르베로스는 이 정도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거든.
적조가 밖으로 방출되고 있어, 승격자가 총공격을 가하거나 도망칠 수도 있어. 너희...
적조가 방출되면서 퍼니싱의 정보 교란으로 통신이 중단되었다.
하...
베라는 점점 짙어지는 위험한 기운을 느꼈지만, 오히려 빙긋 웃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단말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대장, 누군가가 일부러 수문 스위치를 파손시켰어.
그럴 줄 알았어, 일단 녹티스와 합류하자.
이 정도 규모의 Ω 무기로는 배수구를 막을 수 없잖아.
상관없어.
베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바다로 거세게 흘러 들어가는 적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웠다.
우리에겐... 아직 배가 있잖아?
적조가 밖으로 방출되고 있어, 승격자가 총공격을 가하거나 도망칠 수도 있어. 너희...
통신이 갑자기 끊어졌다.
지휘관님, 케르베로스 쪽 상황은 어떤가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어떤 승격자와도 접촉하지 못했잖아요.
거대한 수족관 안에서 생체공학 물고기 몇 마리가 소리 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루루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가이드로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루루의 안내로 공중 정원 일행은 적조가 확산한 지하 2층과 붕괴 지역 대부분을 우회했고, 지하 3층 입구에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앙카와 센은 지하 2층 진입 후, 공중 정원과 연락이 끊어졌다.
알았어.
이렇게 험하고 좁은 지형에선 저격수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은 계속 수색하는 것보다 우선 퇴로를 확보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떠나고 싶은 사람"은 무슨, 그냥 대놓고 내 이름을 말하지 그래?
난 아직 그레이스를 찾지도 못했잖아. 그러니 떠나지 않을 거야, 그녀가 적조에 녹아버렸다고 해도 끌어내서 데려갈 거라고.
...
크롬이 타인의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지휘관과 눈을 마주쳤고, 루루의 존재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신호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