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공중 정원
공중 정원, 회의실
크롬이 송부한 데이터 보고서의 내용은 이상입니다.
화면은 왜곡된 끈적한 붉은 액체 위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외형을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구조체의 것으로 보이는 금속 잔해의 일부를 희미하게 구분할 수 있었고, 기형적으로 변한 살덩어리가 그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었다.
비틀어지며 변화하는 와중에 몇 장의 평온한 얼굴이 액체 웅덩이 표면에서 떠올랐다.
찍... 끼익... 찍...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며, 기이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보고서 마지막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남긴 첨부 메시지가 있는데, 곧 해양관 지하 2층으로 향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하 2층의 퍼니싱 농도가 더 높고, 혹시라도 정해진 시간에 데이터 보고서를 회신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상술 정보를 미리 전송했다고 합니다.
과학 이사회 측의 결론은... 적조가 변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침식체에서 적조로 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조에서 저런... 것들로 말이다.
만약 저런...
세리카는 잠깐 말을 끊고 고민해 봤지만, 저 진흙처럼 끈적이는 살덩어리를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저러한 적조 속의 "이합 생물"들이 승격자가 시뮬레이션한 허상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말했던, '혹사가 적조를 통해 이합 생물의 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라는 것도 기정사실이 되겠지.
투영된 스크린에서 일렬로 펼쳐진 몇 장의 사진이 이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반드시 이 사태를 막아야 해, 그 Ω 무기들...
아니, 아직은 근거가 부족해. 단순한 "예측"으로 달에서 구출해 온 Ω 무기를 사용한다는 건, 의회 측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야.
현재로서 Ω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달 표면 기지이고, 대다수에게 있어 그 무기들은 지구 탈환의 희망과도 같지.
니콜라는 의회 의원들의 반응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Ω 무기 제조에는 영점 에너지가 필요하며, 현재 확보된 구역 중, 달 표면 기지만이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승리를 위해, 장기적인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정화 부대의 대장과 부대장이 해양관에서 연이어 위험에 빠졌다"라는 사실로 의원들의 생각을 바꾸기엔 부족했다. 게다가 "적조가 바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하는 것도 터무니없었다.
만약...
만약 더 큰 위협이 나타나서 지면을, 공중 정원을, 그들의 "이익"을... 위협할 수만 있다면...
세리카, 적조 하구의 범위를 표시하고, 확산 속도에 따라 주위에 영향을 받을 만한 보육 구역을 모두 표시해 줘.
...
의장님, 적조가 확산한 후 주위에 총 13개 보육 구역과 농장 일부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두 화면에 표시했습니다.
하, 역시 네 스타일이군.
그들에게도 분명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달 표면 기지의 실사 진도는 어떻게 되고 있지?
현재 진행도는 약 15.21%됐고, 정비 설비 수송에 시간이 필요해서 적어도 4~5일은 더 있어야 완료될 것 같아.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문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시모프였다.
하산 의장, 니콜라 사령관. 방금 전송해 준 데이터 보고서의 분석 연산 결과가 나왔어.
결론이 뭐지?
승격자가 해양관 하층에서 대량으로 적조를 배양하고 있다는 게 틀림없고, 적조 내부의 퍼니싱이 경미한 변이를 일으켰어.
즉시 개입할 것을 권장해. 만약 적조가 바다로 유입되어서 이합 생물이 대량으로 부화하면, 해변 인근의 모든 지상 거점이 함락될 수 있어.
만약 Ω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우주 무기를 사용해 볼 가능성은 있나?
그럴 수는 없어.
우주 무기는 지상의 적조만 겨냥할 수 있고, 해양관의 적조는 지하 3층에 존재하거든.
지하 적조에 닿기도 전에 우주 무기의 에너지 60%가 소모되어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없어.
이때, 아시모프의 단말기가 갑자기 울렸다.
아시모프는 눈살을 찌푸리며 통신을 끊었다. 하지만 몇 초 후 다시 귀를 찌르는 벨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갈랐다.
니콜라가 받으라고 눈치를 주자, 아시모프는 마지못해 통신을 받았다. 그러자 창백한 여성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심흔 기체는 지금 어디에 있지?
베살리우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와 상관없다고?
아시모프, 그건 쿠로노가 직접 개발한 기체고, 공중 정원의 세계 정부에 잠시 대여해 준 것뿐이야. 그러니 난 비앙카의 행방을 알 권리가 있어.
비앙카는 지금 기밀 임무 수행 중이라 알려줄 수 없어.
니콜라 사령관, 난 당신들과 관료적인 말장난을 할 생각 없어. 쿠로노가 심흔 기체를 군에 무상으로 제공했고, 심흔 기체의 개발사로서 난 비앙카의 행방을 알 권리가 있어.
...
심흔 기체가 마지막으로 전송한 의식의 바다 데이터가 심각한 이상을 보였어. 데이터에 노이즈가 섞여 있는 것이 기체가 이미 퍼니싱에 상당히 침식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비앙카는 원래 1순위 적합자가 아니었던 데다가, 이대로라면 지휘관이 의식의 바다 안정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릴지도 몰라.
...
근원 추적 장치는 어때?
장착된 근원 추적 장치는 비앙카의 의식의 바다에 심각한 편차를 일으켰고, 작동 상태도 이상적이지 않아.
그건 심흔 자체의 문제지, 근원 추적 장치와는 상관없어.
자아와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참 한심하군.
그런 심리 상태로 이 기체를 사용하니, 심각한 의식 편차 증상이 나타난 거라고.
창백한 여성이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됐어, 너희들이 근원 추적 장치 내의 모체 파편을 어떻게 사용하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심흔을 데려올 방법은 마련하는 게 좋을 거야.
심흔 기체의 제작비 청구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너희들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도 그러길 바라지, 심혈을 기울인 연구가 일회용 소모품이 되는 건 원하지 않거든.
차갑게 말을 던진 베살리우스의 모습이 투영에서 사라졌다.
비앙카의 기체는...
상황이 심각하긴 하지, 과학 이사회에서 방금 심흔 기체가 동기화한 의식의 바다 데이터를 받았는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단말기 투영 스크린에 선홍색 데이터가 나타났다.
비앙카에게 심각한 의식 편차 증상이 나타났어. 하지만 그녀들은 오랫동안 임무 보고서를 보내오지 않았어.
행진 방향으로 봤을 때, 지금쯤이면 지하 2층이나 3층에 있을 것 같은데, 그곳의 퍼니싱 농도가 높아서 통신 교란이 생겼을 수도 있어.
...
비앙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과학 이사회에서 비앙카를 위한 새 기체를 병행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긴 하지만 개발 진행도가 아주 느린 편이지.
하산이 질문을 던지자, 아시모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학 이사회는 단순히 Ω 무기만 탑재할 수 있는 기체를 복각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방식으로 이 기체의 능력을 구축하려고 계속 시도했었어.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기체의 핵심 능력이... 정화였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땐... 정화라기보다, 압축에 더 가깝지.
예를 들어, 근원 추적 장치는 퍼니싱의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야. 반면, 이 기체는 퍼니싱 내의 정보를 교란해 퍼니싱 농도를 약화할 수 있어.
작은 시냇물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지.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들을 "정화"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쿠로노에서 가져온 이중합 모체 파편을 활용할 수는 없나?
가능하지.
모체 파편을 확보한 후, 외부 장치를 통해 "근원 추적 장치 역전"과 유사한 효과를 임시로 구현할 수 있어. 그러면 이 기체의 전투 지속 시간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돼.
효과는 최대 5시간까지만 지속 가능하고, 5시간을 초과하면 기체 에너지가 소진되어 자동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가.
일단은 충분하군.
현재 최악의 상황을 계산해 보면, 이 기체를 사전에 가동해야 할 수도 있어.
음. 이 기체를 Ω 무기 수송 담당자들과 함께 착륙시키도록 배치할 테니, 아시모프, 기체 착륙 사전 준비를 해주게.
알았어.
하산과 니콜라는 의회를 설득해 Ω 무기를 사용할 방법을 의논했고, 아시모프는 몸을 돌려 회의실을 떠났다.
비앙카의... 새 기체.
과학 이사회로 돌아간 아시모프는 여러 겹의 암호를 풀고 폐쇄 시험 구역에 들어갔다.
그는 기체 보관고 앞에 서서 한쪽 가상 스크린에 흘러가는 데이터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근원 추적 장치가 퍼니싱 내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건, 쿠로노의 기술보다 그 안의 이중합 모체 파편이 작용한다고 봐야 했다. 마침 니콜라 사령관의 조치로 이 귀한 샘플이 과학 이사회로 넘어오게 됐다.
그것의 작용은 퍼니싱 정보를 "해독"하거나 "점유"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됐다.
아시모프의 눈앞엔 굳게 잠긴 문이 떠올랐고, 지금의 그에게 있어, 필요한 건 열쇠 하나였다.
퍼니싱의 본질을 완전히 "해부"할 수 있는... 열쇠가 필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