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
이리스.
세레나와 함께 싸웠던 기억이 눈앞에 생생한 듯 떠오르면서도, 어딘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뒤틀린 시간 속에서 부서진 기억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아시모프 님, 가져왔어요!
집행 부대가 “백색 소음 장치”를 찾았어요!
로사가 밀봉된 상자에 담긴 "백색 소음 장치" 여러 개를 들고 달려왔다.
총... 여섯 개입니다!
충분해.
백색 소음 장치를 받아 든 아시모프는 잠시 멈췄다가 연결선들로 둘러싸인 햄릿 쪽으로 걸어갔다.
금방이면 끝나. "장치가 여러 개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세웠었거든. 연결 인터페이스를 복제하고 출력만 끌어올리면 돼.
너만 결정 내리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해 둘 거야.
귓가의 태양 빛이 밤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늦기 전에 서두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환을… 기억해.
"마지막 순환"은 정확히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것일까?
지휘관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선명한 기억들을 더듬으며 가장 가능성 높은 시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그렇게 되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리스 님이 처음에 저한테...
의향 조약이 정식으로 서명되어야 "끝"난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일주일이나 걸린다면서요.
일주일...
"시간의 우리"에서 벗어난 지휘관과 아시모프의 계산에 따르면, "시간의 우리"의 시간도 이쪽과 동일하게 흘러야 했다.
오늘은... 지휘관이 공중 정원으로 복귀한 지 정확히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시모프는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게 부품들을 하나씩 조립해 햄릿의 연결선 반대쪽 끝에 설치했다.
2호 백색 소음 장치 연결 준비. 첫 번째 테스트 준비. 데이터 기록.
첫 번째 데이터 기록 시작합니다.
인간의 귀로는 감지할 수 없는 백색 소음이 실내에서 진동했다.
따라오기 벅찬가, 이리스?
...
이리스는 극장 계단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머릿속에서 맴도는 익숙한 선율에 이끌려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악보 너비: 4
데이터 기록 완료. 이상 없습니다.
4호 백색 소음 장치 연결 준비. 세 번째 테스트 준비. 데이터 기록.
세 번째 데이터 기록 시작합니다.
늦었어, 이리스. 시간을 두 배로 줘도 모자랄 거야.
네가 심연으로 가라앉기 전에 완전히 박살 내 주지.
...
후아의 거센 압박에 이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호흡은 조금씩 거칠어져 갔고, 온몸엔 부담이 쌓여갔다.
톱니바퀴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균열이 넓어지더니, 순간 표면의 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강한 빛을 내뿜었다.
거의 다 왔어… 이리스… 조금만 더 버텨.
이리스는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 끝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단호해졌다.
악보 너비: 4...
최종 확인.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백색 소음 장치 7개로 세 단계의 소음 위치를 순서대로 찾아낼 거야. 그걸 역산해서, 모체 장치가 있는 좌표를 알아낼 수 있어.
과정 중에 네 마인드 표식이 교란될 수도 있어. 정신을 또렷이 유지한 채, 구조체의 역원 신호를 찾아내야 해.그리고 그게 정말 네가 찾는 신호인지, 확실히 판단해야 하고.
연결에 성공하면 마인드 표식을 통해 교신할 수 있어.
이론상, 세레나의 의식이 아직 활동 중이라면, 네 마인드 표식이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모든 걸 조심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지휘관은 다시 한번 햄릿과 연결했다.
원격 연결 기술을 이용하면 구조체와 공감할 수 있어. 다만 이 정도 거리에서 백색 소음 장치로 연결이 가능할지는 장담 못 해.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다시 눈을 감자, 강렬한 윙윙거림이 귀를 때렸고, 뇌가 미세하게 떨리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수많은 희미한 화면들이 깜빡이다 이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맑은 고래의 울음소리가 의식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펑——
으윽...
강한 충격음과 함께, 이리스는 벽 쪽으로 내던져졌다. 부서진 돌들이 떨어지면서 그녀의 표면에 끔찍한 상처를 남겼고, 팔 관절은 곧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후아는 이리스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단숨에 그녀 앞까지 다가갔다.
이제 퇴장할 시간이야. 배우라면, 아무리 싫어도 막이 내리는 걸 받아들일 줄 알아야지.
헉... 헉...
이리스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흐릿한 눈으로 후아를 지나 그녀 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거짓된 별하늘이 진짜 우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변하고, 시간이 길게 늘어난다.
"가지"는 곧 "줄기"에서 떨어질 예정이었고, 여기... 이 극장은 후아를 가두는 마지막 우리가 될 것이다.
죄송해요… 지휘자님…
흐려진 시야 속, 마음속 그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미안해요, 사랑하는 이여. 부디 절 용서해 주세요.
미안해요, 사랑하는 이여. 부디 슬퍼하지 말아 주세요.
이리스는 중얼거리듯 마지막 말을 내뱉고 눈을 감았다. 축 늘어진 팔이 바닥에 닿으며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면에서 다가오는 칼날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휘자님…
악보 너비: 4...
갑자기 강렬한 고래의 울음소리가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더니, 이리스의 작별 인사를 삼켜버렸다.
익숙한 등대가 혼돈의 의식 속에서 눈 부신 빛을 내뿜었고, 귓가에 메아리가 퍼지자 순간 멍한 느낌이 온몸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