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 수도
우금 호텔
0.875
악보 너비: 2
시곗바늘이 예정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옥상에 있어도 아래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솟아오른 불꽃들이 밤하늘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제 곧...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다.
옆에는 아직 그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리스는 미련이 남은 듯 살짝 고개를 틀어 그 사람이 아직 옆에 있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지휘자님.
이리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부서졌다. 별빛은 더 이상 그녀의 그리움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거예요.
이리스는 찬 바람에 기댄 채 발 아래 거짓되면서도 진실한 수많은 불빛을 바라보았다.
도망치던 후아가 뜻밖에 지휘자를 데려왔고, 그녀는 비열한 도둑처럼 시간 속에서 마지막 온정을 훔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베인이 협정을 체결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정해진 결말로 굴러가고 있었다.
베인 수도
우금 호텔
21:00
악보 너비: 2
베인 수도
우금 호텔
21:00
악보 너비: 3
순환은 완성되었고, 이 "가지"는 곧 "나무줄기"에서 떨어져 진정한 우리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얀 안개가 다시 옥상을 가득 메웠고, 귀를 찢는 백색 소음이 불꽃의 함성을 집어삼켰다.
이리스는 이노이·후아가 내는 다급하고 갈라진 현의 소리를 들었다. 후아는 시간 선 속에 흩어진 모든 힘을 모으며, 마지막 탈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붉은 머리 구조체가 어느새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차가운 칼날이 목덜미에 닿자,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퍼졌다. 이리스는 그녀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리스. 아니, 세레나.
네 공연, 정말 인상 깊었어. 최악의 무대 사고도 능숙하게 처리하더군. 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지우고, 다른 사람까지 보호하느라 남은 힘이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그 사람 때문에… 거의 다 왔는데 말이야.
푸른 현이 별빛을 물들이더니, 후아의 칼끝을 걷어냈다.
지휘자님이 아니었다면, 벌써 파스트 도시를 떠났겠죠.
그런 유치한 도발은 집어치우세요. 오히려 당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에요. 남은 힘이 궁금하다면, 직접 시험해 보시죠?
원하는 대로 해주지.
가는 칼날이 허공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후아의 손에 안착했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리고, 쇳소리 나는 불꽃과 폭죽이 한데 어우러졌다. 후아는 이리스의 얼굴 앞까지 다가와 섬뜩한 눈빛을 던졌다.
난 진심으로 네 친구가 되고 싶었어. 이 모든 일이 없었더라면 말이지.
그건 그냥… 만약일 뿐이죠.
당신에겐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저에겐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요.
이리스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다시 한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 같은 하늘 위에 조용히 박힌 별들, 그리고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 태양.
태양은 더 이상 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후아가 그녀를 뒤쫓아 내려오며, 공중에서 잠깐의 격돌이 벌어졌다. 붉은빛과 푸른빛의 실이 어둠 속에서 얽히고, 반짝이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이리스, 계속 연주해. 승부는... 곧 정해질 테니까.
...
이리스는 가볍게 착지했다. 그녀 앞엔 마지막으로 준비해 둔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태양은 더 이상 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리스는 여전히 태양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리스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공중 정원
21:45
악보 너비: 0
이스마엘이 느긋하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리스는 이노이·후아를 막기 위해 "시간의 우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뒀어.
네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바로 그곳이야.
아, 이름은 그냥 내가 지은 거야.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그 영역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워.
그래. "시간의 우리". 이름은 그냥 내가 지은 거야.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그 영역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워.
쉿…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 둬.
강렬한 어지러움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무언가가 계속해서 질문을 막아서는 느낌이었다.
조급해하지 마. 떠올려야 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기억날 테니까.
이스마엘이 책상 위로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쓴 향이 뒤엉킨 기억의 파편들을 잠시나마 가라앉히며, 혼란에 빠진 정신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곧 <M>그</M><W>그녀</W>는 핵심을 파악했다.
이노이·후아를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면, 이리스가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을 거야.
그 장치... 과학 이사회가 "백색 소음"이라 칭한 그 장치를 통해, 이리스는 자신의 기체 특성을 이용해, 과거 어느 "시점"에서든 "힘"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지.
이리스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해충"을 나무줄기의 "가지"로 유인한 다음...
그 가지를 완전히 잘라내는 수밖에.
그래야 해충이 그 가지를 망쳐도, 줄기에는 영향이 가지 않으니까.
맞아. 이리스도 그 가지와 함께 사라지게 될 거야.
슬퍼하지 마세요. 파오스 님. 이별이야말로 인생의 주선율이니까요.
이리스의 슬픈 시는 그제야 진짜 의미를 드러냈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스스로가 만든 시간의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창조자야. "우리"가 완성되기도 전에 그곳을 떠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해충은 계속 줄기를 갉아 먹게 되겠지.
이리스는 그걸 용납할 수 없을 테고.
분홍 머리의 여성이 연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안 돼. 넌 돌아갈 수 없어.
후아가 쫓아올 수 있었던 건 이리스의 "메아리", 즉 환주라는 기체를 잡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창고에서의 교전으로 환주 기체가 심하게 손상됐고, 관련 정보도 소실됐어. 그래서 지금은 그 기체로 시간 좌표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해.
과학 이사회가 백색 소음 장치의 원리를 밝혀낸다 해도, 그들이 있는 시점을 특정할 방법은 없어.
설령 알아낸다 해도… 네가 거기서 뭘 할 수 있겠어?
이스마엘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빛으로 된 데이터가 교차하며 곧은 나무줄기 형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다시 그 우리로 돌아가서 둘이 연결된다면, 이리스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야.
없어.
이리스가 설정한 사건이 마지막 순환을 완성하는 순간, "가지"는 "줄기"에서 완전히 분리될 거야.
단, 하나의 가능성을 제외하면… 그녀들의 흔적을 찾는 건 절대 불가능해.
이스마엘은 의미심장 표정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방법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리스는 지금 이 세계와 지휘관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런 이리스를, 혼자 둘 순 없었다.
지휘관이 문을 열려던 순간, 이스마엘의 공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지막 순환을… 기억해.
지휘관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감사원을 떠났다.
과학 이사회
팔짱을 낀 채 책상에 앉아 있던 아시모프는 "공간 신호 주파수 기반 특수 반향 신호 위치 추적 원리 연구"를 비롯한 여러 논문을 조용히 검토하고 있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앉아.
어디로 전송되었던 거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던 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역시… 장소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지정할 수 있었군.
아시모프는 단말기에 몇 가지를 빠르게 입력한 뒤 짧은 생각에 잠겼다.
그 장치는 위치 추적기야. 그리고 작동 조건은 충분한 연산 능력과 "소리"야.
아시모프는 단말기를 눌러 오디오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파일이 재생되기 시작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근처에 있던 백색 소음 장치가 희미하게 붉은빛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아도, 하얀 안개도, 상상의 균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 이동"도 없었다.
고장 난 게 아니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맞아.
아시모프는 책상 위의 논문을 넘겨서 "특수 메아리 신호 위치 추적" 부분을 가리켰다.
이 장치의 원형은 이 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 원리를 분석한 끝에 작동 방식도 파악했지.
이론상으론 시간을 "되돌리는"게 가능해. 다만, 뒤로만 갈 수 있고 앞으로는 갈 수 없어.
이 장치는 "메아리 신호"만 추적할 수 있어. "소리"는 한 번 발생하면 그 순간 이미 과거가 되기 때문이야.
소리가 맞지 않아서 작동하지 않은 거야.
지금까지 이 장치가 반응한 건 두 번 있었어. 하나는 네가 사라졌을 때 감시 영상에서 추출한 음성.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베스 연구소의 기록에서 나온 거야.
테디베어가 과거 몇 년 전 아베스 근처의 감시 영상을 분석해서, 첫 번째 음성과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소음"을 포착했지.
만약 그 침입자가 다시 나타난 게 아니라면, 정말로 "과거"에서 무언가가 일어나서, 그로 인해 "현재"의 기록이 지워진 걸지도.
후아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아베스가 사라진 일과 이 장치의 주인 사이엔 분명 연관이 있어.
그들의 "삭제"에도 제한이 있는 것 같아. 직접적으로 생성된 정보만 지울 수 있고, 다른 정보와 얽히게 되면 "결과"는 남게 되는 거지.
아베스 연구 프로젝트의 핵심 "과정" 부분은 초기 아베스 연구소 시절의 자료였어. 암능의 연구 성과는 아직 남아 있고.
이것이 "환주" 기체가 이리스와 함께 사라지지 않은 이유인 것 같았다.
시간은 금기시된 연구 프로젝트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매우 위험해.
이리스?
이리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아시모프는 생각에 잠긴 채 책상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두드렸다.
그러니까, 이리스는 네 말대로 "시간의 우리" 안에서, 미래에서 온 침입자 "후아"와 싸우고 있다는 건가?
이 장치가 없었고, 네 병리학 보고서도 정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난 분명 네가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고 생각했을 거야.
...
아시모프는 앞에 있는 "백색 소음" 장치를 바라보았다.
이 장치를 작동시키려면 특수한 기체와 "소리"가 필요해.
게슈탈트의 연산 능력으로 "기체"는 시뮬레이션할 수 있겠지만, 이리스와 관련된 단서를 찾으려면... 그녀의 "소리"를 찾아야 해.
"환주" 기체는 침입자와의 전투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파괴됐어. 이제...
무슨 방법으로 이리스의 소리를 찾을 생각이지?
혼란스러운 단서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모이더니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칭찬 감사해요. 사실 여유가 있을 땐 진짜 시나리오도 써요.
예전의 저였다면, 이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풀어서 끝맺었을 거예요.
파오스 님.
제 관객이 되어 주시겠어요?
일부 사람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어. 명확하진 않았는데, 샘플 수가 쌓이니까 직관적으로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들을 특징별로 두 그룹으로 나눠봤어.
그중 뚜렷한 특징을 가진 쪽은 예술 협회 소속이야. 대표적으로 앨런과 일부 대원들.
모호한 기시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우편함에서 예술 협회의 정교한 봉랍 도장이 찍힌 봉인된 편지들이 흘러나왔다.
열 번의 밤이 새벽이 되고, 과거는 미래로, 미래는 망각으로 흐른다.
당신은 천 개의 장미정원과 천 번의 반복되는 회랑을 걸었다.
당신이 어디서 노래하든,
누군가는 그 노랫소리를 따라, 당신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