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4 꿈속 시간의 끝으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34-12 전환점

>

베인 수도

우금 호텔

5:50

악보 너비: 2

고풍스러운 장식과 우아한 가구로 꾸며진 객실. 은은한 야간 등이 잠든 이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음...

이리스는 이마를 문지르며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던 그녀는 이불을 끌어안은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젯밤, 그들은 무사히 베인 수도에 도착했다. 지휘관이 여정 내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위장 신분 덕분에 후아는 물론 연합 정부조차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연합 정부는 조나단의 대략적인 입국 시점만 알 뿐, 구체적인 위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침대에 다시 누웠다.

정말 좋네요.

이리스는 자신의 어깨로 손을 뻗어 그 위에 새겨진 무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당신이 곁에 있어서…

완벽한 행동 계획, 앞서 준비된 모든 전술적 세부 사항들, 마치...

예전에 함께하던 시절 같았다.

생각에 잠긴 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후엔...

아름다운 약속이 따라야 할 그 말 뒤에 떠오른 건 차디찬 현실뿐이었다.

이젠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나단이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은 현지 정부와 접촉하게 된다.

그리고 조나단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노이·후아의 복제체들이 따라올 것이다.

복제체들을 모두 처리하고, 후아가 도착하기 전에 지휘관을 떠나보내는 것이 그 둘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둘에게 그 이후는...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리스의 미소는 서서히 사라졌고, 흐릿하던 눈빛도 다시 또렷해졌다.

빠져들지 마. 이리스. 운명이 마지막 온정을 베풀어준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행운이 따른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중얼거리며 단호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곤과 나른함은 어느새 사라졌고, 세수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희미한 새벽빛이 실내를 살짝 비췄다. 창문을 등지고 머리를 묶던 이리스의 눈에, 침대 머리맡에 놓인 편지지가 들어왔다.

이리스의 동작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리고 무심결에 떠오른 생각. 헤어지기 전에, 지휘자님께 편지를 써볼까?

편지 위에 닿은 손끝, 이성과 감성이 조용히 서로를 응시한다.

한 통의 편지... <M>그</M><W>그녀</W>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인가? 아니면, 작별 인사만 할 것인가?

이성이 왼쪽에서 단호하게 경고했다. 이 모든 걸 견뎌온 건 지휘자님의 안녕을 위해서였잖아? 지금 괜한 짓 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어?

감성이 오른쪽에서 이리스에게 속삭였다. 사고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아.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데. 지휘자님 마음속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끝낼 거야?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망설이는 사이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편지를 쓴다면, 그 서명은 "세레나"여야 할까, 아니면 "이리스"여야 할까.

조용한 노크 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죄송해요. 지휘... 죄송해요. 파오스 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이리스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다시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지휘자에게 쓰는 편지지만, 상대방이 볼 수 없게... 단 한 줄만...

그건 이리스의 작은 사심이자, 마지막 바람이었다.

<size=40><i>밤꾀꼬리는 탄식하고, 장미는 타올랐으며, 달빛은 몸을 숨겼다.</i></size>

<size=40><i>비록 여정은 종착지에 다다랐지만...</i></size>

언제나처럼, 이리스는 로열 블루 잉크로 섬세한 필체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완성된 편지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휘관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이리스는 미동도 없이 지휘관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size=40><i>새벽녘이 시간을 붙잡고는</i></size>

<size=40><i>거울 속에서 이별을 속삭인다.</i></size>

이리스는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 대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듣고 있어요. 계속 말씀하세요.

이리스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선에는 점점 진지함이 묻어났고, 상대방을 눈동자 속에 담아두려는 것 같았다.

<size=40><i>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부디 절 용서해 주세요.</i></size>

<size=40><i>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부디 슬퍼하지 말아 주세요.</i></size>

베인 수도

시청

7:30

악보 너비: 2

시청 광장 맞은편에 선 조나단은 밤새 작성한 의향서를 꼭 쥐고 있었다.

<새 지구서>의 서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 부서와 단체가 모여 수십 일에 걸쳐 논의하고, 경우에 따라선 방향을 정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실행까지는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조나단이 들고 있는 이 의향서가 베인이 이 계획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여줄 결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조나단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평소 하던 동작으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귓가에 들려온 단데이라의 목소리에 조나단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리스 님이랑 파오스 님이 다 잘 해결해 주실 거예요. 안심하시고 본인이 할 일만 생각하세요.

고마워요.

조나단은 천천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전화를 꺼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전자음

연합 정부 법률사무국, 베인 대표단 전용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조나단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지휘관은 총집 위에 올려둔 손으로 조용히 안전장치를 풀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겠죠.

이노이·후아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존재예요. 시간의 흐름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무대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지지직——

이리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를 찌르는 익숙한 백색소음이 들리며, 하얀 안개가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단데이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극장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