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4 꿈속 시간의 끝으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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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1 석양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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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찰나가 일상의 반복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평선에 기대어 누웠을 때, 그들의 여정도 조용히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요툰 시

교외 지역

17:30

악보 너비: 2

언덕 위에서 망원경을 높이 든 지휘관은 멀리 있는 베인의 국경 영지를 관찰했다. 그곳은 도시보다는 마을에 가까워 보였다.

하룻밤만이라도 쉬고 가면 안 될까요?

파오스 님은 이노이·후아가 선제공격 할까 봐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요툰 시에서 수도까지는 하루 거리잖아요… 설마 거기서 매복하고 있진 않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노이·후아는 우리가 어느 길로 국경을 넘을지 모르니까, 국경 근처 도시마다 병력을 배치했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정말 제가 우선 타깃 1순위인가 보네요.

어쨌든... 도시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겠어요.

물자 구매가 끝나면 바로 출발하시죠. 야외에서 하룻밤 더 보내게 해서 마음이 안 좋네요.

요툰 시

도시 내 거리

18:45

할당된 물자를 먼저 챙긴 지휘관은 간식 몇 가지를 추가로 고른 뒤, 상점 밖으로 나와 길가에 주차된 지프차로 돌아왔다.

이리스를 부르려고 차창 쪽으로 다가갔다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하려던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노을이 지고,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는 가운데, 운전석에 몸을 기댄 이리스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이리스의 왼손은 다소 경직된 자세로 있었고, 살짝 찌푸린 미간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차창 너머로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가슴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속 숨겨진 불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에 이어 "운전 못 하는 줄 알았다."까지 추가된 건가요?

전 구조체라 며칠이고 계속 운전해도 문제없어요. 중간중간 쉬기도 할 거고요.

그럼 파오스 님은 경계를 맡아주시겠어요?

"나흘 연속 운전해서 힘든 건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리스는 구조체다. 적당한 휴식만 취한다면, 나흘은커녕 40일을 연속으로 운전해도 피곤해하지 않을 존재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는 공... 다른 시간대의 연합 정부 소속 654번... 코드네임... 이리스예요.

저희는 이노이·후아의 존재를 먼저 감지했고, 그녀가 역사에 끼치는 왜곡을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싸워오고 있었어요.

그녀를 이렇게까지 지치게 만든 건, 아마도 지휘관 시야 밖에서 밤낮으로 계속되어 온 수많은 나흘 때문인 것 같았다.

지휘관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물품들을 내려두고, 파스트에서 구입한 휴대전화로 조나단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차창에 손을 얹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열쇠를 꺼냈다.

최대한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푼 지휘관은 이리스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음...

구조체의 경계 시스템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예민했기에, 이리스가 중간에 깨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지쳤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지휘관의 품에 안긴 이리스는 무척 얌전했고 미간의 주름도 많이 풀어진 듯했다.

그녀를 조심히 뒷좌석에 눕힌 뒤, 닫힌 차 문에 등을 기댄 채 저녁노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은 그렇게 무의미한 중얼거림과 탄식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뒤, 조나단과 단데이라가 상점에서 나와 지프차로 다가왔다.

지휘관이 그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둘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발걸음 늦추며 다가왔다. 조나단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펼치며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size=30>부탁하신 귀마개 여기 있어요.</size>

귀마개를 꺼낸 지휘관은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누워 있는 이리스에게 씌워주었다. 조나단과 단데이라도 그 상황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단데이라는 조용히 뒷좌석에 앉고, 조나단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맨 지휘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단데이라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size=30>네.</size>

지휘관은 선바이저와 앞좌석의 쇼핑백 위치를 조정해, 마지막 노을빛이 이리스의 휴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해질녘의 달리는 차 안, 조나단과 단데이라도 잇따라 잠이 들었고, 지휘관이 느낄 수 있는 건 차체의 미세한 떨림뿐이었다.

또 한참을 달려, 입안의 각성용 사탕도 다 녹았다. 다시 꺼내려는 순간, 누군가가 까놓은 사탕 하나를 입가에 내밀었다.

...

이리스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더니, 그녀의 두 팔이 지휘관의 목을 감싸안았다.

절 뒷좌석으로 안아서 옮긴 게 누구죠?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엔 어리둥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몸을 기울여 지휘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고, 눈꺼풀은 반쯤 내려와 있었다.

그랬다면 진작 깼겠죠.

단데이라는 보기보다 움직임이 꽤 크거든요.

이리스는 복수하듯 지휘관의 귓불을 간질이며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그렇게 기댄 채, 그녀는 콧소리 섞인 허밍으로 무언가를 흥얼거렸다.

졸음이 그 멜로디를 타고 올라오자, 본능적으로 하품이 나왔다.

차 세워주세요.

세워주세요. 잠깐 걷고 싶어서 그래요.

이리스는 다시 두 팔 사이로 얼굴을 파묻으며 낮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곧 밤이 되겠네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내리자, 이리스가 기지개를 켰다. 지휘관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윙크했다.

지휘관은 경계 장치를 설치한 뒤, 이리스와 함께 근처 꽃 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이리스

여름의 하늘은 참 느리게 어두워져요. 새벽에 만날 수 없다면, 밤이 오기 전에 만나게 해주세요.

그녀는 아이리스 꽃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향기를 맡았다.

이리스

황혼… 좋아하세요?

이리스

저도요. 황혼은 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요.

저의 많은 영감과... 그리움도 이 시간에서 시작되죠.

이리스는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이리스

가야만 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해진 끝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요.

파오스 님은 확고한 분이시니까, 바깥 풍경에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일이 없으시겠지만…

전… 알고 있어요.

이리스는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이리스

지금 파오스 님이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요.

집이… 그리우세요?

이리스

네… 전 파오스 님을 믿어요.

이리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지휘관과 손가락을 걸었다.

의미를 이해한 지휘관은 그녀와 나란히 잔디밭에 앉아,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져 돌아보니, 이리스가 자신의 몸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리스는 어느새 잠에 들어버렸다.

손을 뻗어 바람에 흩어진 이리스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지휘관의 손끝이 그녀의 옆얼굴을 스치다 멈췄다.

햇빛이 그녀의 뺨을 따라 서서히 사라지는 걸 고스란히 눈에 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