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4 꿈속 시간의 끝으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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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0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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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의 백화점

파스트 도시

9:30

악보 너비: 2

백화점 앞 거리, 쇼윈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뉴스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자) 여성 음성

파스트 인터내셔널은 12일 보도에서 파스트 경찰이 전날 몬타리 국제공항을 겨냥한 테러를 저지했다고 전했습니다.

공항 네트워크 시스템에 가해진 첫 공격은 즉시 차단되었으며, 용의자들은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공항은 단 2시간 만에 정상 운영을 회복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의 특별 게스트, 연합 정부 파견관 안도 씨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전자) 남성 음성

이건 명백한 <새 지구서> 반대 세력의 도발입니다. 선을 넘은 행위죠. 예전 주신 극장 사건처럼 말입니다…

상자를 안고 백화점에서 나온 단데이라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홱 돌렸고, 뒤따라오던 조나단과 부딪칠 뻔했다.

조심하세요.

조심해야 할 사람은 조나단 님 아닌가요?

흔들거리는 상자를 일단 안전하게 내려놓은 단데이라는 반복되는 뉴스를 들으며 짜증스럽게 팔짱을 꼈다.

"즉시 저지됐다."라니... 아무런 후속 대응도 없었으면서... 그건 10분 동안 작동하다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바이러스라고 파오스 님이 말해줬어요.

여기 공공장소예요. 목소리 좀 낮춰요.

뉴스에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끝났다."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하는 순간 더 큰 혼란만 생기죠.

주변을 한번 둘러본 조나단은, 다행히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된 거예요. 파오스 님의 계획은 성공했고, 오늘 아침 연합 정부에서 저희 같은 고용 인력의 보안 수요를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명단을 모두 넘겼더니, 경로 변경과 동행 인원에 대해 빠르게 승인을 내주더군요.

하.

그나저나… 공항에서 보안 요원들 주의를 끌어준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급성 정신 발작 진단서를 받았대요. 오히려 공항 측에서 배상금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예요.

그런 결말이라니... 대단하네요.

뒷정리는 그저 절차일 뿐이에요. 진짜 대단한 건... 다른 분들이죠.

조나단의 시선이 길 건너편을 향했다. 파오스와 이리스가 지프차 옆에서 물자를 점검하고 있었다.

파오스 님 말씀하시는 거죠? 정말 대단한 분이시죠. 자극 좀 받으셨나 봐요?

누구나 한 번쯤은 영웅이 되고 싶은 꿈을 꾸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분이 공항에서 보여준 행동,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겠죠?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조나단은 무의식적으로 목덜미의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파오스가 도청기를 꺼내던 장면이 뚜렷이 떠올랐다.

공항 작전 시작 전.

교외

파스트 도시

5:00

악보 너비: 2

파스트 도시 교외 5:00 악보 너비: 2

작전이 임박하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조나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자신이 지금 이 일에 정말 관여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권익을 지켜야 할 것인가? 법률에 따르면... 아니. 그가 곧 직면하게 될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법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새벽의 짧은 휴식조차 누릴 수 없게 된 조나단은, 그냥 몸을 일으켜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섰다.

아침 바람을 맞으며 뒤엉킨 실타래를 정리하던 조나단은, 자신도 모르게 이리스가 설정한 안전 구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극장 습격 때와 똑같은 괴물 무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흠칫 놀란 조나단은 후아가 처음부터 자신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려... 살려주세요!

조나단은 이미 별장에서 너무 멀리 나와 있었고,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괴물들이 점점 다가오고, 조나단의 얼굴에 절망이 서려갔다.

다른 쪽에서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지며 괴물들의 주의를 끌었다.

파... 파오스 님!

이리스가 사용하라고 준 무기는 생각보다 쓸만했다. 치명상까진 아니어도, 괴물들을 제지하는 데는 충분했다.

지휘관이 조나단의 어깨를 움켜잡고 반대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아, 아니… 어떻게 여기에 계신 거예요?

이리스가 준 총으론 상황을 타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휘관은 더 늦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리스가 두 사람이 사라진 걸 눈치채기 전에 말이다.

교외 숲을 지나 둘은 가까스로 괴물의 추격을 떨쳐냈고, 차단 자기장이 깔린 별장의 안전 구역에 도달했다.

조나단은 숨을 헐떡이며 무너질 듯한 몸을 간신히 붙잡았다.

하... 하... 당신... 후...

이 시간에… 후... 왜 거기 계셨던 거예요…?

그는 문득 생각했다. 회의 때 했던 파오스의 장담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혹시 본인도 이번 작전의 위험성을 체감하고 도망치려 했던 건 아닐까?

마음속에서 의심과 혼란이 피어오른 조나단은 자신을 용병이라 칭하는 인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 붙이신 거예요?!

그럴 리가요! 우리 어제 처음 만났잖아요!

… 왜 이런 짓을?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것은 파오스의 필수 과목 중 하나였다.

그, 그럼 왜 다시...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적어도 악의를 가진 존재는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됐어요.

지휘관은 도청기를 손쉽게 두 동강 내어 전술 가방에 넣었다.

...

당신, 용병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왜...

왜 굳이 이 일에 뛰어드신 거죠?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절 구하러 오신 건가요? 아무런 이득도 없을 텐데…

그냥 한 말 아니었어요?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머리 아픈 일에 뛰어드나요.

세... 세계를 구한다고요?

역사의 흐름이 모든 걸 휩쓸고 있었다. 후아를 내버려둔다면, 이번엔 베인이고 다음엔 다른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럼, 언젠간 지휘관 자신도 그 재앙에 놓이게 될 것이다.

...

파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나단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꺼지기 전 마지막 화면은, 조나단과 다른 사람의 대화 기록이었다.

조, 몬타리 공항 사건 들었어요. 그쪽 행동이 점점 통제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군요.

이런 상황에서 임무를 이어가는 건 당신에게 너무 불합리한 것 같네요. 제가 루트를 알아볼 테니, 파스트 도시에 며칠 더 머무세요.

당신을 이 작전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상급자

괜찮습니다. 전 베인으로 가고 싶습니다.

————조나단

베인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요.

네? 뭐라고요?

아니에요. 신호 바뀌었네요. 건너가시죠.

아아아, 짐도 많은데, 밀지 마세요. 가고 있어요!

조나단과 단데이라가 건널목을 지나 지프차에 물건을 싣고 있자, 지휘관과 이리스의 작전에 대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경로로 가면, 파스트에서 베인 국경 도시인 요툰까진 4일, 수도까진 4일 반 정도 걸릴 거예요.

제가 하면 돼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에 이어 "운전 못 하는 줄 알았다."까지 추가된 건가요?

이리스는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둘이 식사한 이후로, 그녀는 이전보다 한결 편하게 대했다.

전 구조체라 며칠이고 계속 운전해도 문제없어요. 중간중간 쉬기도 할 거고요.

그럼 파오스 님은 경계를 맡아주시겠어요?

지휘관은 조수석에 앉아, 마지막으로 도시를 한 번 바라본 뒤 안전벨트를 맸다.

베인으로 향하는 길은 고지대라 초목이 무성했고, 마침 우기라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도중에 지휘관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타이어에 문제가 생긴 여행자를 만나게 됐다.

일행이 도와주자, 그는 고마움의 표시로 앞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도로 표식과 지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고, 각성용 사탕 한 봉지도 선물로 건넸다.

차로 돌아온 지휘관은 뒷좌석에서 잠든 조나단과 단데이라를 잠시 바라본 뒤, 조용히 이리스에게 말했다.

이리스

네.

이리스

네.

이리스

고마워요.

… 근데 핸들에서 손을 뗄 수가 없네요.

이리스

...

이리스는 대답 대신,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핸들을 꼭 쥐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기려는 찰나, 이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리스

사탕... 먹고 싶은데, 지금은 운전 중이라 손을 뗄 수가 없네요.

이리스의 입술 가까이에 사탕을 가져다 댔다.

이리스

고마워요.

입에 사탕을 문 그녀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창밖에 내리는 비처럼 나른하고 달콤했다.

뒷좌석의 단데이라가 작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과 이리스는 동시에 차량 오디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휘관과 이리스의 손끝이 닿았고, 서로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각성용 음악이 꺼지고, 차 안엔 빗소리만이 남았다.

… 네, 방금은 정말 뗄 수 없었어요.

진지한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웃음기가 묻어났다.

안 쉬세요?

그럼, 이야기라도 나눌까요?

예를 들면, 파오스 님의 취미라든가, 좋아하는 음악, 평소에 즐겨 하시는 것들…

혹시 대답하기 어려우신 건가요? 자기 자신을 잘 모르시는 건 아니죠?

좋아요. 저는 다 말씀드릴 수 있어요.

<size=30>몇 번이고요.</size>

아니에요, 사탕이 이에 걸렸어요.

자유롭고 산만한 둘의 대화는 차창 밖 숲을 스치는 빗소리에 섞여 천천히 흘러갔다.

밤이 되자, 일행은 고원 장거리 04번 도로에 위치한 버려진 휴게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곳은 원래 보급 지점에 불과했지만, 고원 도로가 개통되며 휴게소로 확장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휴게소는 작은 마을로 발전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연합 정부의 평화 행동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장거리 도로가 폐허가 되면서, 이 휴게소처럼 연계된 거점들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차는 시야가 탁 트이고 위급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곳에 세웠고, 나머지 세 사람은 함께 텐트를 설치했다.

와… 텐트 치는 데 이렇게 많은 요령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냥 아무 데나 말뚝 박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고 많으셨어요. 저녁은 저랑 조나단 씨가 준비할게요. 모든 걸 두 분에게 부탁드릴 수는 없잖아요.

근데, 이리스 님은 어디 가셨어요?

말투가 좀 이상한데…

조나단 씨! 식사 준비하러 가요!

즉석식품을 두 상자쯤 사 올 걸 그랬네요.

긴박한 상황도 아닌데,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 전환하는 것도 좋잖아요?

...

여행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숨을 내쉰 조나단은 작성하던 서명 의향서를 내려놓고,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불을 피우러 걸어갔다.

진짜 여행이라면, 가이드 겸 통역사에 운전기사 겸 요리사까지 데려왔겠죠.

그럼, 많이 배우셨겠네요?

제 말의 요점은 그게 아닐 텐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뒤로한 채, 지휘관은 캠프 가장자리로 가서 구매해 둔 철제 부품들로 간이 경계 장치를 설치했다.

모든 작업을 마친 뒤, 지도를 꺼낸 지휘관은 주차하면서 이리스에게 알려줬던 곳으로 향했다.

버려진 건물 몇 채와 나란히 선 나무들을 지나자, 시야가 탁 트였다.

녹슨 거대한 플랫폼과 이끼 낀 물건들 틈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피아노 옆에 선 이리스는 건반을 손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무대 뒤쪽 기울어진 철골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한때 무대 배경을 지탱했던 기둥이었을 것이다.

지휘관은 무대 아래에 멈춰 서서 멀리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하신 거군요…

입술을 살짝 깨문 이리스가 천천히 몸을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유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

파오스 님.

이리스가 갑자기 지휘관의 말을 끊었다.

제 관객이 되어 주시겠어요?

지휘관은 주변 버려진 물건들 사이에서 의자 하나를 찾아내 조심스럽게 닦고 바른 자세로 앉았다.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은 빛이었다. 이리스의 뒤편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를 비췄다. 그렇게 밤이, 막 시작될 것만 같았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소리였다. 낡았지만 힘이 있는 건반과 부서진 무대 구석의 울림 속에서, 소리는 조용하지만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진 건, 움직임이었다. 옷자락이 나풀거리며 팔과 다리가 펼쳐지고, 저녁바람에 기대 선 아이리스 꽃처럼, 아름답고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옷자락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부드러움은 이내 마음을 채우고, 희미하게 존재하던 벽을 허물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저 멀리 밀려나면서, 이리스의 움직임은 마치 느린 물결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이건 사명을 띤 여정이 아닌,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모든 아름다움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낭만은 곧 펼쳐질 여백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