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리 국제공항
파스트 도시
9:30
악보 너비: 2
주차장에 일반 대형차로 위장한 지휘차 안, 지휘관은 사전에 입수한 자료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되짚으며, 세레나와 서로 분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분장하는 공기가 어색해, 불편함을 피하고자 다른 화제를 찾는 중이었다.
이건 제가 아니라 이리스가 구한 차예요.
노트북으로 투자 내역을 확인하던 조나단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공항 네트워크 해킹 장비도 마찬가지고요.
예상 밖의 답에 지휘관은 무의식적으로 이리스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한편, 단데이라는 자신의 그림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화이트보드 위에는 공항 전체 구조도와 함께 여러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몬타리 국제공항은 15년 전에 지어졌고, 그동안 여섯 번의 대규모 증축이 있었어요. 건물 구조는 이미 다들 숙지하셨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공항의 네트워크가 외부망과 내부망으로 나뉘어 있다는 거예요. 바이러스를 퍼뜨려 시설을 마비시키려면, 내부망을 노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에요.
물론, 해킹 장비 하나로 두 시스템을 동시에 마비시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
단데이라, 전에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예전에 몬타리 공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어서요.
끝으로 단데이라는 화이트보드에 예쁜 서명을 추가한 뒤, 조나단을 향해 돌아섰다.
소설가도 평범한 사람이에요.
… 계속 하시죠.
작전은 이리스 님과 파오스 님의 계획에 따라 몇 단계로 나뉘어요.
우선 두 분은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직원 통로를 통해 보안 검색 구역으로 우회 진입하셔야 해요.
여기 보시는 게 공항 대기 구역으로 연결되는 직원 통로예요. 여긴 원래...
이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해킹 장비로 문 잠금장치에 연결했다.
잠금이 풀리고 문이 열리자, 긴 복도에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렸다.
경비원이 없...
...
...
귀가 먹먹할 만큼의 정적이 감돌았지만, 지휘관은 침착하게 미리 준비한 사원증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리스를 가리키며 먼저 말을 건넸다.
...
경비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통로를 비켜주었다.
지휘관은 이리스와 함께 복도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리스가 입을 열었다.
후...
시간이 없어서 사원증을 하나밖에 못 만들었어요. 유니폼은 구역마다 달라서 함부로 위조했다간 바로 들킬 수도 있어서요.
파오스 님 생각을 따라가기 쉽진 않네요. 대담한 구상이긴 한데… 실제로 통할 줄은 몰랐어요.
이리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긴장했던 탓인지 말투가 미묘하게 들떠 있었다.
지휘관은 대답하면서 서류철을 안내판 사이에 끼운 뒤, 간단히 접어 서류 가방처럼 만들었다.
그 뒤 옷을 뒤집자, 정장 스타일의 복장이 드러났다.
잠입 훈련은 있었는데, 방식이 좀 달랐어요.
이리스의 양손을 흘깃 보며 무기를 떠올린 지휘관은 그녀가 농담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50미터쯤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 안내 데스크가 있어요. 공항 네트워크에 접속하려면 거기가 제일 쉬운 곳이에요. 안내 데스크 안쪽 단자에 장비만 연결하면 돼요.
이리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먼저 데스크로 향했다.
잠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네, 잠시만요. 이 여성분의 문의 사항을 먼저 도와드리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연이은 문의 사항에 승무원이 잠시 당황한 틈을 타, 이리스는 해킹 장비를 데스크의 인터페이스 단자에 연결했다.
짧은 2분이 지난 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런데 이쪽 분은…
이리스는 데스크에 있던 Q&A 용지를 흔들어 보이며 능숙하게 장비를 회수했다.
아, 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또 궁금한 거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지휘관은 미소 지으며 인사한 뒤, 이리스와 함께 데스크를 떠났다.
단말기를 꺼내 조작을 시작하자 이리스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결과가 나왔나요?
역시 쉽진 않네요…
물리적으로 네트워크를 분리해 놓았나 보네요. 해킹을 당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물리적으로 분리해 놓았다면, 내부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선 직원 구역에 가서 인터페이스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쪽으로 가는 길이 경비가 심한 건 아니지만,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어요. 제가 예전에 원고를 쓸 때 직접 취재해 봐서 잘 알아요.
그럼, 방금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겠네요. 경비원 한두 명 속여서는 힘들겠어요. 리스크가 너무 커요.
이리스는 담담하게 말하며 기대 어린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파오스 님을 믿으니까요.
파오스 님이라면, 분명 해결책을 생각해 두셨을 거라 믿어요.
이리스의 말뜻을 곱씹을 틈도 없이, 지휘관은 멀리서 다가오는 공항 직원을 보며 이어폰을 톡톡 건드렸다.
잠깐만요. 네. 연결되어 있어요. 혹시...
지휘관은 이어폰 속 단데이라의 말에 답하지 않고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았다.
지휘관은 "서류 가방"에서 약병을 꺼내 상대방에게 보여줬다.
죄송하지만, 방법이 없을까요?
이리스가 때맞춰 간청하듯 말했다.
아... 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이리스는 아픈 척했고, 지휘관은 조바심을 내며 곁을 지켰다. 고급스럽고 단정한 복장 덕에 의심은 피할 수 있었다.
직원의 안내로 여러 경비 구역을 문제없이 지나,
몇 개의 모퉁이를 연이어 돌자,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앞쪽이 위탁 수하물 보관소입니다. 승객분들은 여기까지만 동행이 가능하셔서 티켓을 보여주시면…
제가 대신 찾아드리도록... 으읍...
지휘관이 에테르가 묻은 손수건을 떼자, 이리스가 미리 짠 듯 쓰러지는 직원을 자연스럽게 부축하며 사원증을 찾기 쉽게 도왔다.
지휘관이 사원증 정보를 외우는 동안, 이리스는 안쪽 상황을 간단히 살폈다.
안에는 전부 작업복 입은 직원이나 경비원들이에요. 저까지 들어가긴 어려울 것 같아요.
네... 파오스 님.
사원증에서 시선을 떼자, 이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조심하세요.
실제로 위험한 상황도 아닌데, 이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걱정하는 게 뭔가 이상했다.
공항 직원의 외투를 걸치고, "서류 가방"을 다시 서류철과 안내판으로 복원한 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후 움직임은 매끄러웠다. 자신감 있는 태도와 그럴듯한 복장만으로도 내부망에 연결된 인터페이스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항의 시스템 대부분은 네트워크 연결이 필수였고, 보안 역시 물리적 차단보다는 정보 방화벽에 집중돼 있었다.
해킹 장비가 작동하자 바이러스가 내부망에 침투했고, 단 한 번의 조작만으로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준비가 완료됐다.
정장으로 갈아입은 지휘관은 직원 구역을 빠져나와 일반 승객처럼 로비로 향했다. 그 순간, 방송이 흘러나왔다.
로비에 계신 승객 여러분께 안내해 드립니다. 현재 임시 보안 점검이 진행 중입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제자리에서 다음 안내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로비에 계신 승객 여러분께 안내해 드립니다—
...
지휘관은 곧 특수 주파수가 차단됐다는 걸 깨닫고 이어폰을 빼 쓰레기 수거 카트에 넣었다.
공항의 반응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테디베어 같은 전문 해커가 만든 바이러스가 아니라서 그런듯했다.
경비가 없어야 할 직원 통로에도 경비원이 배치된 걸 보면, 극장 습격 사건 이후 도시 전체의 보안 수준도 높아진 듯 보였다.
더 지체하면 변수가 생길 거라고 판단한 지휘관은 해킹 장비 버튼을 눌렀고, 공항 내 대다수의 장비 작동음이 순간 동시에 멈췄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비행기들과 연결된 탑승구의 외부 조명이 일제히 붉게 변했다.
로비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소란한 소리가 안내 방송과 뒤섞이자,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임무는 완료되었고 이제 남은 건 탈출뿐이었다.
지휘관은 고개를 숙인 채 인파 속에 섞여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여기만 지나가면...
...
고개를 든 지휘관은 멀리에 있던 경비원과 눈이 마주쳤다. 운이 나쁘게도 직원 통로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경비원이었다.
상대방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다보다가, 이내 뭔가를 기억해 낸 듯 무전기로 손을 뻗었다.
정비공에서 정장 차림의 회사원으로 바뀐 데다, 공항 내 혼란까지 겹쳤으니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펑.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려던 그 순간,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옆에 있던 물건을 쓰러뜨리고는 공항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쏠렸다.
그 모습을 본 보안 요원들도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를 쫓아가기 시작했고,
지휘관을 바라보던 경비원도 잠시 당황해하며 무전기에서 손을 뗐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지휘관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변수는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온다. 긴장감으로 몸이 경직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어디 갔었어?
분장을 지우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리스가 어느새 곁에 다가왔다. 손에는 커다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었고, 목소리는 일부러 조금 더 높여 말했다.
공연 곧 시작이란 말이야. 더 지체하다간 늦을걸?
같이 밥 먹고 싶었는데…
...
슬쩍 곁눈질로 확인해 보니, 경비원이 잠시 망설이다 돌아서는 게 보였다.
이리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지휘관과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보안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지휘관과 이리스는 단데이라가 대기 중인 지휘차로 가지 않았다. 그런 차량은 돌발 상황이 생기면 공항 경찰의 의심을 살 가능성이 크기에 이미 현장을 떠났을 것이다.
그 대신 둘은 조나단 사무실 명의로 등록된 다른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운전대를 잡은 지휘관은 조수석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이리스를 바라봤다.
… 임무를 무사히 끝냈으니까요.
조나단 쪽 부하가 구한 행인이에요. 돈을 주고 연기를 부탁했는데, 공항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으니, 변호사가 붙으면 곧 풀려날 거예요.
...
이리스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리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 다른 사람이랑 그런 연기 해본 적 없어요. 파오스 님이 처음이에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이리스의 갑작스러운 대답에 지휘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이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풀어서 끝맺었을 거예요.
근데...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한 사람이 제 눈앞에 나타났었죠.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리스의 눈빛에 아련한 기운이 스쳤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은 분명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상상에 아름다움을 입히기 전에, 현실을 더 많이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지휘관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리스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다시금 떠올렸다. 조금 전 자신의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이리스를 알게 된 후 그녀는 항상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상대방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차 안엔 서서히 침묵이 퍼져나갔다.
혼란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가 교차로를 지나자, 이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왼쪽으로 가세요.
운전대를 돌리며 기억해 둔 노선도와 비교했다.
아직 못 한 일이 있어요.
이리스의 말투는 다시 부드러워져 있었다. 신호 대기 중에 고개를 돌리자, 계속 지휘관을 바라보던 이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공항에서 약속하셨잖아요.
같이 식사하기로.
고개를 돌린 이리스의 목덜미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본인에게만 들릴 정로의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