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4 꿈속 시간의 끝으로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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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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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트 도시

교외 별장

16:00

악보 너비: 2

안개가 걷히자, 인간 지휘관은 바닥에 흩어진 금속 조각 옆에 쪼그려 앉아 여러 번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총을 내렸다.

이해해요. 전장에서 갑작스레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후아, 이노이·후아예요. 방금 그 "갑옷"은 그녀의 복제체고요.

이 장치가… 그녀의 코어예요.

이리스는 부드럽게 설명하며 흩어진 잔해들 속에서 각기둥 모양의 장치를 골라냈다.

지휘관은 손을 뻗어 그 장치를 받아 들었다. 표면의 광택은 바랜 지 오래였고, 겉모습만으론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주변을 살피며 단말기를 꺼내 확인했다. 신호만 없을 뿐, 모든 기능이 정상이었다.

효과는 이미 사라졌어요. 이 장치 하나만으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

당신이 더 이상 원래 있던 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공간을 이동한 게 아니라, 시간을 건너온 거예요.

이리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행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머리 위로 날아갔다.

이 장치는 복제체를 구동하고, 시간을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열쇠예요.

두 개씩 짝을 이루어 좌표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간 통로를 열 수 있어요.

이리스는 설명을 잠시 멈췄다. 상대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려는 듯했다.

네. 복제체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대에 침입해서, 핵심 인물을 제거하거나 중요한 물건을 파괴해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어요.

당신이 있었던 시간대에도... 그녀가 노리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겠죠.

지휘관은 손안의 기묘한 장치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라와 과학이사회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눈앞의 여성이 말한 내용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시간 여행…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세부 사항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정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었다.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구조체가 먼저 선의를 보이는 만큼, 일단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휘관은 오른손의 전술 장갑을 벗어 내밀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정보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있었다.

...

이리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리스가 손을 내밀자, 잠시 주저하던 지휘관은 결국 그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파오스 님.

지휘관은 대화하는 동안 눈앞의 구조체에 대한 정보를 계속 수집하며 분석했다.

그리고 손을 놓으려던 순간, 시선이 이리스의 어깨에 닿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정교한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다시 시선을 마주했을 땐, 이리스는 여전히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 오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지휘관은 급히 손을 뺐다.

…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 전쟁도 이제 거의 끝나가니까요. 전 지금 목표를 지정된 장소로 호위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에요.

예상대로라면 이노이·후아도 마지막 지점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녀만 물리치면 모든 게 끝나요.

그러니 돌아가는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잠시 망설이던 이리스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재빨리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 그녀의 본체를 파괴해서 새로운 장치를 얻게 된다면,

그땐 복제체의 시간 이동 방식을 이용해서 당신을 원래 시간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거예요.

지휘관은 머릿속의 정보들을 빠르게 정리하다가 문득, 아직 눈앞의 "이리스"라고 자칭하는 구조체의 신분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후아의 정보에 밝은 걸 보면, 이리스도 평범한 군인이 아닌 게 분명했다.

...

잠시 말을 멈춘 이리스의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는 공... 다른 시간대의 연합 정부 소속 654번... 코드네임... 이리스예요.

처음엔 머뭇거리던 말투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또렷해졌다. 고민 끝에 일부 정보를 공개해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저희는 이노이·후아의 존재를 먼저 감지했고, 그녀가 역사에 끼치는 왜곡을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싸워오고 있었어요.

솔직히, 조금만 더 빠르게 처리됐더라면... 당신도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의 말투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이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원하신다면 파스트 도시에서 편히 지내시다가... 제가 임무를 마친 뒤 다시 찾아뵐 수도 있어요.

지휘관이 시험 삼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리스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유를 분석할 겨를도 없이 자연스레 말을 바꿨다.

...

다소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던 이리스는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파트너네요, 파오스 님. 잘 부탁드려요.

파스트 도시

교외 별장

18:00

악보 너비: 2

파스트 도시 교외 별장 18:00 악보 너비: 2

손상된 별장의 거실. 지휘관은 단데이라, 조나단과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이리스가 주방에서 소박한 찻주전자와 찻잔 세트를 들고나왔다.

준비된 음식이 많지는 않아요. 일단 차부터 드세요.

단데이라가 황송하다는 듯 받아 들었다.

여기에 이런 것도 있었네요…

후아를 찾느라 바빠서, 미처...

이리스의 시선이 소파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인간 지휘관과 조나단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저보단 더 오래된 사이겠죠. 전 오늘 처음 뵀으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저보단 더 오래된 사이겠죠. 전 오늘 처음 뵀으니까요.

낮은 목소리로 오가던 대화는 이리스가 돌아서자 중단됐다. 차 한 잔이 건네졌다.

뜨거워요, 조심하세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전 습격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의 지원군은 없다고 하셨잖아요.

네... 파오스 님의 등장은 제 계획엔 없던 일이에요.

고개를 돌린 조나단은 옆에 있는 인간 지휘관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발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굳이 관여하지 않으셔도 되는 상황이었잖아요.

조나단은 눈썹을 찌푸리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시는 거죠?

방금 나눈 대화를 통해 조나단의 신분은 명확해졌다. 그는 변호사이며, 곧 베인 도시에서 열리는 <새 지구서> 협약 서명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조나단 자신은 도망치는 쪽을 택했지만, 오히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휘관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후아가 바꾸려는 건 역사고, 역사가 바뀐다면 우리도 살아남다는 보장이 없죠.

...

한참을 침묵하던 조나단은 조용히 찻잔을 들고는 단숨에 비워냈다.

서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한 지금, 더 이상 한가롭게 대화를 이어갈 여유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리스가 주머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나단 님은 일주일 후 베인 수도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어요. 저희는 착륙 이후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지만 고민하면 됐었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요. 제가 받은 경고에 따르면, 이노이·후아가 저희 계획을 눈치챘다고 해요. 조금 전의 습격도 그녀의 소행이었고요.

... 그녀에게 목표로 지목된 이상, 그런 습격은 일상이겠거니 했는데.

그건 과한 걱정이에요. 원래 예상대로라면 베인에 도착할 때까진 안전했을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일주일을 어떻게 버틸지 고민해야겠군요…

이리스와 눈이 마주친 지휘관은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음을 깨달았다. 이리스는 지도를 꺼내 베인 수도와 파스트 도시의 공항들 그리고 비행경로를 그렸다.

공중 루트는 이제 쓸 수 없어요. 이게 우리 계획의 첫 번째 변수예요. 비행기는 움직이는 표적이고, 이노이·후아가 단 한 번의 자살 공격으로 비행기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정을 바꾸면 연합 정부에서 의심하지 않을까요? 조나단 님이 도망치려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그러겠죠. 조금 전 통화가 끝난 시점에서 제 이름은 이미 주요 감시 대상에 올랐을 거예요.

그렇다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도 없고… 후아가 비행기를 터뜨리기만을 기다릴 순 없잖아요.

우선, 조금 전 습격을 이유로 연합 정부에 경호 지원을 요청하세요.

일반 경호원들이 그런 습격에서 절 보호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더 많은 희생자만 생기지 않을까요?

지휘관은 지도에 베인의 국경선을 그리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나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긴 합니다만, 왜 그런 걸…

협상가라면 협약 체결 후 어떤 기업이 호황을 누릴지, 어떤 자산의 가치가 오를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제 자산을 베인 도시의 이해관계와 엮자는 말씀이군요?

정말... 예상 밖의 제안이네요.

이해관계가 생기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조나단이 베인의 <새 지구서> 서명이라는 중대 사건에 승부수를 걸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그 경호 서비스는…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이리스와 지휘관의 시선이 스쳤고, 그녀도 지휘관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만약 공항까지 습격당한다면, 주신 극장과 오늘 별장에서의 사건들을 종합해, 연합 정부는 이 모든 걸 계획된 회색 행동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공항까지 습격을...? 설마, 이노이·후아를 공항으로 유인하시려고요?

단데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리스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무고한 시민들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가장 간단하면서도 통제 가능한 방법을 사용할 거예요.

그러면 연합 정부는 다른 이들을 의심할 거예요. 예전에 조나단 님이 이해하신 것처럼요.

예를 들면, 사실은 제가 연합 정부를 위해 일하면서 <새 지구서>의 법 조항 수정과 보충 작업에 참여했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 특수 조직이 저를 노리고 있었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들 대부분은 평화 행동의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들은 연합 정부에 반감을 품고 <새 지구서> 시행을 막기 위해 오페라 극장 습격을 벌인 거고요.

그때가 되면, 조나단 님께서 연합 정부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이미 금융 투자를 해둔 상황이니, 정부 측에서는 그저 지나치게 불안한 시민의 반응 정도로 여길 거예요.

잠... 잠깐만요. 이해가 좀 안 되는데…

단데이라는 고민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몇 가지 세부 사항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결국 우리가 조나단 님을 직접 호위하는 게 최종 목적이라면... 굳이 경호원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연합 정부는 반드시 부대를 동원해 조나단 님을 "호위"하려 들 거예요.

다시 한번 이리스와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아, 그... 그렇군요. 들어보니 그럴듯하네요.

두 분이 번갈아 설명하시는 게 너무 매끄러워서, 정말 처음 만난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네요.

지휘관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전술 가방에서 동전 모양의 도청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장난스레 조나단의 어깨를 툭 치며, 자연스럽게 그의 옷깃 안쪽에 도청기를 부착했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후, 조나단과 단데이라는 금융 업무를 처리하러 나섰고, 지휘관은 이리스와 함께 장비 준비와 현장 점검을 하기로 했다.

교외 지역에서 도심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지휘관은 이리스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이를 본 지휘관은 눈치껏 열차에서 제공하는 황금시대 신문을 읽으려 펼쳤고, 곧 옆에서 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오스 님, 이번 작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리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했다.

가벼운 대화라고 생각해 주세요. 어떤 의견이든 괜찮아요.

파오스 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빠르게 호흡을 맞춰야 작전 이행도 수월할 테니까요.

공항을 목표로 정한 거 말씀이신가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리스는 눈을 뜨며 가볍게 웃었다. 불쾌해하거나 모욕감을 느낀 것 같지는 않아서 지휘관은 더욱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제 선택이 너무 단순해서 놀라셨군요.

칭찬 감사해요. 사실 여유가 있을 땐 진짜 시나리오도 써요.

예전의 저였다면, 이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풀어서 끝맺었을 거예요.

근데...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한 사람이 제 눈앞에 나타났었죠.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리스의 눈빛에 아련한 기운이 스쳤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은 분명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상상에 아름다움을 입히기 전에, 현실을 더 많이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네. 현실은 보통 이렇게 굽이치지 않죠. 예술은 조금의 윤색이 필요하긴 하지만, 때론 과하게 가공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 기간에...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전에는 종이와 펜에만 머물렀던 세계였는데, 이젠 제게 진정한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수많은 세부 사항을 고려해야 하고, 무수한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죠. 목표에 닿는 길도 복잡할 수도,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더라고요. 충분한 준비만 있다면...

이 모든 걸 깨닫고 나서야 저의 이전 창작물의 부족함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분의 어려움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요.

이리스는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지휘관은 이리스가 보여준 솔직함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전장에 갑자기 나타나 금세 사라질 인연에게 나눌 이야기치고는, 지나치게 깊었다.

네. 제겐 아주… 소중한 분이에요.

네. 제겐 아주… 소중한 분이에요.

이리스의 시선이 왜인지 지휘관에게 잠시 머물다가 재빨리 돌아간 것 같았다.

띵—

열차 도착 알림음이 울리자, 이리스가 먼저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파오스 님은 파스트 도시는 처음이시죠?

그럼, 이번 기회에 이곳 풍경을 제대로 구경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열차에서 내린 이리스가 길 한가운데 서서 뒤를 돌아봤다.

가느다란 실루엣이 도시의 불빛과 그림자 사이로 섞여 들었고, 평화로운 소음이 귀를 간질였다.

자신이 어떤 곳에 발을 들여놓은 건지,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시간도, 공간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주는 신선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이곳은, 과거의 평화가 깃든 공간이자 동시에…

이리스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갈 무대예요.

파트너로서 함께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길 바라요, 파오스 님.

파스트 도시에 오신 걸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