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소속 물류창고
보육 구역
15:30
악보 너비: 0
EMP에 가까운 반격 신호가 아이라의 동작을 일시적으로 방해했다. 곧이어 적의 움직임으로 발생한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신호가 약해지고 있어. 도망가려는 것 같아!
지휘관은 전술 가방에서 추적용 및 로봇 교란용 장비를 꺼내 들고, 안개를 헤치며 기억 속 적의 위치로 돌진했다.
지휘관, 조심…
걱정 섞인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라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어느새 소리마저 사라지고, 귓가엔 적막만이 맴돌았다.
양손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고, 자기방어와 반격 전술도 실행할 수 없었다. 힘을 모았다가 날린 주먹은 마치 솜뭉치를 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지휘관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도구를 회수한 뒤, 총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짙은 안개만이 천천히 흐르고 있을 뿐,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초간 멈춰 서 있던 지휘관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 순간, 안개와 공기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다.
공중 정원 소속 물류창고
보육 구역
15:30
악보 너비: 0
?
?
?
악보 너비: 2
조심스럽게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지지직...
교외 별장
파스트 도시
15:30
악보 너비: 2
파스트 도시 교외 별장 15:30 악보 너비: 2
굉음이 울리며 거인이 쓰러지자, 그 충격에 주변의 나무들까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노이·후아의 선봉대이자, 그녀의 갑주를 1:1로 복제한 워커가 쓰러졌지만, 이리스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보낸 선물은 마음에 들어? 설마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도대체...언제…
뭘?
내가 너희들 역사에 손대는 걸 막으려고, 복제된 시간 구간에 조각을 만들어 우리 둘을 가둔 일?
꽤 훌륭한 발상이었지만, 아주 번거로웠을 거야. 조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이 시간대의 모든 역사가 안정적으로 순환해야 하니까 말이야.
한 번이라도 순환이 깨지면, 조각의 미래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 본래 시간선과 연결되어 버리니까. 안 그래?
발성 장치에서 들려오는 말에 이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도 이제야 문제를 발견한 듯했고, 그게 갑작스러운 공격의 이유였던 것이다. 두 번째 경고 메시지의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size=35><color=#0066CC>다자간 무역협정이 </color><color=#ff4e4eff>정체불명의 습격</color><color=#0066CC>으로 연기됐다. </color><color=#ff4e4eff>전문가들은 현장에 나타난 금속 거인을 비밀 군사 무기로 추정하고 있다.</color></size>
<size=35><color=#0066CC>투카 독립 근위 군의 만타인 해안선 평화 작전이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color><color=#ff4e4eff>정체불명의 인물이 전장에 개입해 상황이 혼란에 빠졌다.</color></size>
<size=35><color=#0066CC>로로와 연합 정부의 공동 방위 조례인 <새 지구서>에 따라, 연합 정부의 709 로봇 여단이 로로 열대 우림에 진입했다.</color></size>
<size=35><color=#ff4e4eff>주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무장단체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보았으나, 아직 책임 성명을 발표한 곳은 없다.</color></size>
다행히 진짜 계획은 아직 들키지...
이리스가 안도하려던 그때, 이노이·후아의 조롱 섞인 말이 들려왔고 그녀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몸이 굳어버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아베스에서 네가 날 이 우리로 끌어들였을 때부터.
시간 절단 기술을 어디서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각 안에서의 갈등이 정상 시간선과 다르지 않듯, 내 결론 역시 변하지 않아.
이쯤에서 그만둬. 더 이상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계속해 봤자 우리 둘 모두에게 시간 낭비일 뿐이야.
공연은 결국 상연되었고,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어.
난 수없이 시도할 수 있지만... 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이 연구소처럼 말이지.
이중합 탑은 결국 이 세계에 강림하게 될 거야.
이중합 탑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당신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예요.
언젠가는 날 막을 수 없는 날이 올 거야. 그건 곧 내가 이 우리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기도 하지.
이노이·후아의 말투가 다시 변했다.
난 널 존중해, 이리스. 우리가 비슷한 경험과 취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야. 그 결정을 내린 너의 각오를 존중하는 거야.
정상적인 시간선에서 벗어나는 건, 곧 세상에서 잊혀진다는 의미니까. 잠시나마 날 이 순환 속에 가두기 위해 그런 대가까지 치르겠다는 거잖아?
…그렇게 먼 미래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단지 당신이 마지막 희망을 파괴하려는 걸 막으려는 것뿐이에요.
하하하하. 그 말을 믿으라고? 이리스... 아니, 세레나. 늘 네 곁에 있던 그 사람이 이렇게 불렀지, 아마?
참 안타까운 일이야. 이름은 과거가 미래에 보내는 축복인데, 네가 소중히 여기던 그 사람은 그 축복마저 잊어버렸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가 너에 대한 모든 걸 전해줄 거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건 지 모르겠네요.
이리스는 전혀 모른다는 듯 대답했지만, 양손은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무기를 꽉 쥐고 있었다.
스스로를 속여봤자 의미 없어. 좀 더 명확히 말해줄게.
넌 이 조각을 본래 시간선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어. 우리를 태운 이 배를 가라앉혀서, 바다 깊은 곳에 영원히 가두려는 계획이겠지.
흔적은 잘 지웠더군, 이리스. 근데 말이지—난 이미 출구를 찾아냈어. 수많은 시간 속에 깊게 잠겨있는 네 그림자 하나, 내가 그걸 붙잡았거든.
이노이·후아의 목소리는 감정을 잃은 기계음처럼 차갑게 바뀌었다.
017호 기체와 연결 재구축 중, 좌표 확인.
위치: 보육 구역-공중 정원 소속 물류창고.
귀를 찢는 듯한 백색 소음이 울린 뒤, 짙은 안개가 퍼지면서 이리스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리스는 이 안개를 잘 알고 있었다. 이노이·후아가 시간에 개입할 때마다 늘 이런 현상이 뒤따랐었다.
이노이·후아를 막아야 한다. 절대로... 그 세계가... 지휘자님을...
이리스가 다시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때, 안개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연결 구축 중... 지... 지지...
매끄럽던 전송음이 갑자기 끊기며, 불협화음이 연출의 흐름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엔 초조함, 혼란, 충격이 얽혀 다시 감정을 드러냈다.
어... 떻... 게? 거기... 누구…있… ?
쟁——————
이노이·후아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백색 소음이 잠잠해지면서 안개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뒤틀린 먼지와 안개 속에서 한 사람의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이리스는 얼어붙었다. 희미한 윤곽뿐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잊고 있던 바다에 갑자기 파문이 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북받쳐 올라왔다.
기계 마찰보다 뜨겁고, 외로운 불면 속 그리움보다도 간절한 이 감정은, 상대가 누군지 깨닫는 순간 이성을 삼켜버렸다.
기체가 먼저 움직이며,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름이 입술 끝에서 터져 나오려던 순간—
지...
이리스에게 되돌아온 건 싸늘한 목소리였다.
짙은 안개가 걷히며 눈앞에 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경계심은 순간 최고점에 다달했다.
형체가 점점 또렷해졌다. 낯선 여성이었고, 외형의 세세한 부분에서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다. 의심할 여지 없이 구조체였다.
지휘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에 든 무기로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그 앞에서 구조체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거둬들였다.
기대했던 모든 게 산산조각 났다. 그 조각들은 고스란히 이리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찔렀다. 실제가 아닌 환상일 뿐인데도, 숨이 막힐 듯 아파왔다.
이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휘관의 총구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경계는 풀지 않은 채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과 기체 안에서 분별하기 힘든 감각이 휘몰아쳤다. 바로 눈앞에 <M>그</M><W>그녀</W>가 있지만, 마치 손이 닿지 않는 하늘 끝에 있는 것 같았다.
손바닥을 세게 움켜쥐자, 통각 신호가 의식의 바다로 전달돼 오래된 상처도 함께 욱신거렸다. 이리스는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안녕...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억지로 지은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지만, 그 속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파도가 숨어 있었다.
제 이름은 이리스입니다.
이리스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정리했다.
이노이·후아는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에 손을 뻗어, 좌표를 남기고 이 세계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우연히 그 과정을 끊게 되었고, 그 탓에 이곳으로 휘말려 든 것이다.
다행히 지휘관의 개입은 예상 범위 안이었다. 이리스에겐 아직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