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4 꿈속 시간의 끝으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34-2 극장 행동

>

예술 협회

공중 정원

9:00

악보 너비: 0

전에 아이라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왔다. 약속 당일, 일전에 상업 거리에서 산 음료를 들고 예술 협회로 향했다.

아이라의 개인 화실이 있는 2층에 도착하자, 복도 입구 벽에 걸린 액자 속 시구가 지휘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로열 블루 잉크로 적힌 시구는 이른 봄의 꽃봉오리처럼 가늘고 섬세한 글씨체로, 차가운 벽 위에 은은하게 피어 있었다.

제가 당신의 발걸음을 사랑하는 건

바람을 맞으며 먼지가 쌓인 길을 지나

물살을 건너

제게 올 때까지의

그 모든 여정 때문입니다.

그 시를 마주한 순간, 지휘관의 발걸음이 멈췄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무심코 액자 가장자리를 쓰다듬자, 손끝에 닿은 건 흐릿해진 명패였다.

"***이 *예술*협회에 증정."

시간의 흔적인지, 아니면 청소 담당자의 실수 때문인지, 명패의 글자들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해져 있었다.

지휘관은 그 어렴풋한 위화감을 애써 외면한 채 아이라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라는 개인 화실 안에서 몇 개의 인물 조각상 앞에 앉아 조용히 몰입한 채 조각상의 이목구비를 쓰다듬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노크에도 반응이 없었다.

한동안 지켜본 지휘관은 그녀의 동공에 초점이 없는 걸 보고, 지금은 멍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윽. [player name]?

언제 왔어?

지휘관의 행동에 놀란 아이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음?

어...? 왔구나. 언제 들어왔어?

아니야. 설령 그랬어도 괜찮아. 여긴 언제든 와도 좋아.

그녀는 무심하게 의자 하나를 끌어와 지휘관에게 건넸다.

그건 이미 했잖아?

살짝 웃으며 고개를 기울인 아이라는 다시 조각상을 쓰다듬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자꾸 영감이 떠올라. 꿈에서도 계속 어떤 모습이 보여.

음... 들판. 맞아. 들판이야. 꿈에서 넓은 들판이 나왔어... 수많은 다양한 꽃들, 그리고 그 꽃들 사이에... 그 사람이… 서 있었어.

때론 서 있었고… 꿈속 하늘은 늘 어두웠어. 그 사람의 동작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등 뒤 실루엣이 자꾸 저 멀리, 노을 속으로 사라질 듯 아득했어.

붙잡고 싶었는데…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네가 아는 사람 같았어… 그 쓸쓸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

그저 꿈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인데, 아이라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눈썹이 찌푸려지고, 말투에는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누굴까… 왜 그런 곳에 있었던 걸까? 모르겠어. 나도 내가 이상해, 이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겠어.

지휘관이 아이라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자, 긴장했던 그녀의 몸이 조금씩 풀렸다.

지휘관이 아이라의 손을 잡아주자, 살짝 긴장하고 있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풀어졌다.

후...

미안. 웃기지? 요즘 자꾸 이런 장면을 꿈에서 보다 보니, 뭔가...

아이라는 설명을 포기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긴 했는데... 그게...

아이라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머리카락에 안료를 묻히고 말았다.

다른 건 괜찮은데, 이목구비가 문제야. 아무리 그려도 꿈에서 봤던 그 느낌이 안 나.

그녀는 조각상의 눈 부분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리며, 흐릿한 기억 속 영감을 붙잡으려 애썼다.

"응"이라고 대답한 아이라는 몸을 돌려 이마를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그래서… 여기서 막혀버렸어.

큰 문제는 아니야. 창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 그림도, 글도... 결국엔 시간을 들여 다듬어야 해.

손끝이 조각상을 떠나며, 아이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 정신을 다잡았다.

맞다, 작품 한번 볼래? 방에 있는데 아직 완성 전이라 조금 부끄럽네.

아이라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술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손길을 따라 지휘관의 시선도 책상으로 향했다. 아무렇게나 놓인 미술 도구들이 책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거의 모든 물건에 예술 협회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쳤다.

지휘관은 품속에서 빈 편지를 꺼냈다. 원래는 예술 협회 회장 앨런에게 출처를 물어보려 했지만, 오늘은 당직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멈칫하던 아이라는 손을 닦은 뒤 투명한 장갑을 끼고, 편지를 받아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편지...? 이게 왜...?

편지지에 협회 도장이 있긴 한데, 우리 쪽에서 보낸 건지 단정하긴 어려워.

우리가 쓰는 편지지는 내부용뿐 아니라, 공중정원 유통망에서도 팔리니…까…

아이라는 편지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아이라는 잠시 더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편지를 지휘관에게 되돌려주었다.

아니야, 그냥 익숙해 보여서. 예술 협회 편지지니까 익숙할 수밖에 없겠지.

미안. 별 도움은 못 됐네. 급한 거면 감정 담당자 소개해 줄까?

아이라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가장 안쪽 벽으로 향했다. 거대한 벽면을 덮고 있는 얇은 천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아이라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대답하더니, 그림 천의 가장자리를 살짝 당겼다.

하얀 천이 흘러내리며, 그 뒤에 감춰져 있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 속에는 청백색 치마를 입은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의 주위엔 아이리스 꽃다발이 에워싸고 있었고, 얼굴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듯 하얗게 비어 있었다.

...

아이라는 고개를 들어 그림 속 여인의 얼굴 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방금 말한 게 바로 여기... 어?

[player name]?

순간, 귓가를 찢을 듯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림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기이한 불협화음이 다시 고막을 강타하면서 아이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지휘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쳤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현실의 시각과 마음속 잔상이 겹쳐지며, 어떤 이름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그 형체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주신 극장

9:00

파스트 도시

악보 너비: 2

이어폰

이리스 님...

이어폰

휴게실에 왔는데 그분이 안 계세요. 시간도 얼마 없는데... 어떡하죠?

침착해요. 자료상으로는 그분, 오늘 공연을 예약했고, 개인 차량도 집에 없어요.

이리스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 끄덕이며 인사했다. 그러면서 이어폰 너머 불안해하는 여성을 진정시키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연 시작까지 아직 20분 남았어요. 이런 행사 관객들은 보통 시간 딱 맞춰 입장하지 않아요.

진정해요. 단데이라, 진정해요.

말하는 동안 한 안내원이 경비원과 함께 이리스를 발견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부터는 단데이라가 맡아줘야겠어요. 전 잠깐 자리를 비울게요.

잘 해낼 수 있어요. 당신을 믿어요.

이어폰을 끈 이리스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군중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러자 안내원과 경비원이 이를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어폰이 꺼진 후, 소음 속에서 침을 삼킨 단데이라는 음악 홀에 줄지어 선 좌석 사이를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목표를 찾았지만…

제가 자리를 착각했나요?

네… 네. 여기 12열 16번, 제 좌석이에요.

혹시 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실 수 있을까요?

이상하네요, 제 자리인 줄 알았는데... 죄송해요. 안내원한테 다시 물어볼게요.

여성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단데이라가 내민 티켓을 훑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데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그녀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를 힐끗 바라보며,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장난으로 오해를 유도하는 건 언어 기술의 일환이라 쳐도… 사기는 별개의 문제죠. 타인을 속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니까요.

네?

<에우리디케>, 주신 극장이 3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고전 오페라죠. 티켓 가격은 3만 블랙카드.

3만에서 10만 블랙카드까지는 형법 제266조 기준으로 '고액'에 해당하죠.

물론, 그건 동양계 조문이긴 하지만요. 요즘 제가 그쪽 법률도 연구하고 있어서요. 파스트 도시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만요.

책을 덮은 옆자리의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단데이라를 쳐다봤다.

방금 그 여성분께 보여준 티켓, 위조된 거죠. 거짓말 수법도 아주 허술하더군요.

그리고 자리에 앉은 뒤로 계속 저를 주시하셨죠. 전 제가 그렇게 매력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업무상 접근이라고 보면 될까요?

음악 표절 사건? 아니면 금융 유산 분쟁? 아, 혹시 화학 오염 사건인가요? 당신은 문고 기업 쪽 로비스트시겠군요?

잠... 잠깐만요.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조나단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급하신 건 알겠는데, 여기까지 쫓아오시다니 선을 넘으셨네요.

법무법인을 통해 공지했을 텐데요? 최근에 연합정부의 일을 맡고 있어서 다른 사건은 맡을 수 없다고.

그러니까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조나단이 쏘아붙이자, 당황한 단데이라는 말이 꼬이며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

말해보시죠. 어떤 말을 지어낼지 궁금하군요.

지어낸다니…

화가 난 단데이라는 손에 든 책자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정말 막무가내 시네요! 왜 이리스 님이 저한테... 맞아요. 당신을 찾으러 왔어요.

역시네요.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전 사건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 무슨 문고... 기업의 로비스트도 아니고요!

당신께 경고하러 왔어요. 저와 당장 이곳을 떠나요. 지금 위험에 처해계시다고요!

위험? 이건 또 무슨 신종 사기 수법인가요?

그가 의심을 드러내려는 순간, 음악 홀이 요동치며 강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단데이라의 이어폰에서 긴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예요, 단데이라. 조나단을 데리고 어서 빠져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