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3 밤의 장막 너머의 빛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33-1 세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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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의 한구석, 인간은 영원한 잠에 빠져 있었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어. 아껴 마셔.

너덜너덜해진 망토 아래로 드러난 그의 우람한 체구는 전혀 당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중년 남성이 어깨에 멘 물병을, 옆에서 심하게 기침하는 사람에게 건넸다.

정, 정말 감사합니다!

안색이 창백한 젊은 남성은 물병을 받아 들고는 옆면을 가볍게 두드리며 물이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물 한 모금을 마셨다.

협곡만 지나면...

중년 남성은 말하는 데 힘을 쓰지 않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늘 높이 걸린 오로라는 푸른 불꽃 같았고, 대열 선두에 있던 중년 남성은 다시 켜진 등불을 들어 올렸다.

황량한 설원 위로 초췌한 유랑민들이 S자 형태의 긴 행렬로 바위가 갈라진 협곡을 비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순록은 뾰족한 막대기의 재촉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안장주머니 속에는 건조식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귀한 자와 천한 자, 박식한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유명한 자와 무명인 모두가 나란히 걸었다. 유랑민들은 뿌리를 잃은 자들의 대군을 이루었다.

그들은 포도와 올리브, 무화과를 버렸다. 의미가 없어진 과학의 산물, 제단과 벽난로, 죽은 자들의 무덤까지 모두 버렸다.

이곳은 한때 그들의 땅이자 고향이었지만 지금은 뿌리째 뽑혀버렸다.

그들은 깊은 우주로 향하는 공중 보루로 오르는 것을 거부하고 이곳에 머물기를 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협곡 끝에 비스듬히 무너진 벽은 마치 하늘을 가리키는 조각상 같았다.

다만 이 풍화된 메아리의 벽은 목적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한없이 길게 늘어뜨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우리가 이 평범한 육신에서 벗어날 때...

차가운 바람을 뚫고 들리는 노래와 연주 소리는 살짝 왜곡되면서 꿈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깨어날까? 아니면 영원한 잠자리에 들까? 누가 알 수 있으랴?

조금씩 선명해지는 신기루 같은 노랫소리를 들은 지친 대열은 희망을 얻었다.

유랑민들은 힘겨운 여정의 마지막 구간을 넘어 주둔지로 향했다.

음유시인이 현을 튕기며 잔잔한 서사시를 노래했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 청중들은 그 선율 속에서 옛 기억에 잠겼다.

분홍 머리의 여성이 군중 속에 앉아 조용히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바니가

기쁘게 노래하라.

이 슬픔 속에서도 천국의 미소가 머물던 곳이 있었으니,

우뚝 솟은 산맥과 강물이 힘차게 흐르는 곳.

용맹한 선구자들이 지켜온 성스러운 땅이여,

바니가

그들은 빛 없는 집을 촛불로 밝혔네.

최초의 융합 원자로, 최초의 달 표면 영구 시설,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협약.

티코급 망원경, "새벽-III"형 우주 비행선 그리고 달 표면 기지에서 건조 중인 식민함선.

인간은 꿈에 그리던 우주로 돌아와, 조상들과 같은 태양 아래서 살았다.

태초에 우주에서 온 물체가 용암이 들끓는 모성에 생명을 부여했다.

그리고 황금시대가 찾아오면서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근원적 의문에 대한 답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맞아. 그때가 참 좋았지.

망토를 걸친 남자는 컵에 담긴 뜨거운 국물을 조금씩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흐릿한 눈에 비친 모닥불 불빛은 마치 예전에 번성했던 세상을 비추는 것 같았다.

정말 오래전 일이네요.

젊은 남자는 동의하는 듯했지만, 그의 중얼거림은 잠꼬대에 더 가까웠다.

이미 늙어버린 노인들을 제외하면, 이곳에서 노래 속 풍경을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이 든 여인은 모닥불 옆에 기대어 졸고 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노래하던 사람은 천천히 노래를 멈추고 잠시 침묵했다.

저도 선생님께 배운 가사예요.

언어의 한계는 곧 세상의 경계였다.

영장류는 두 손으로 기적을 만들어냈고, 성대와 고막의 울림으로 전설을 시공간 너머로 전했다.

인간의 노래는 재앙의 장벽을 넘어 세계에 울려 퍼졌다.

이런 삶은 언제쯤 끝날까?

중년 남자는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 끝이 올까요?

젊은 남자는 멍하니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평화로운 날을 모르고 살았다. 적조의 위협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거처를 옮기며 살았다.

그래서 한 곳에서 1년 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었다.

애잔한 노래는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시름을 불러일으켰고, 모닥불 주위에는 고통스러운 한숨과 절망에 잠긴 침묵만이 감돌았다.

...

끊어진 현의 소리가 슬픈 곡조를 멈추게 했다. 노래하던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기억 속에 묻혀있던 희망의 자락을 더듬고 있었다.

사실... 이 노래에는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다른 부분이 있어요.

바니가는 현을 가볍게 누르며 새로운 선율을 천천히 이어갔다.

신념이 횃불처럼 타오르네. 보아라! 선구자들의 발자국이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걸.

녹슨 칼날에 베인 상처가

전선을 이루고, 파괴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리.

노래하는 이의 현을 튕기는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별빛과 백야처럼 밝고 선명해서 누구나 아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분홍 머리의 여성이 후드를 어깨까지 내리고 모닥불 옆에 조용히 앉아, 인간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노랫소리가 잦아들자, 장작 타는 소리가 다시 공기를 채웠다. 뜨거운 국물은 추위를 몰아낼 수 있었지만, 짙은 침묵을 지울 수는 없었다.

새로운 노래 불러주세요.

우리의 지금을 노래해 주세요! 제가 반주해 드릴게요.

젊은 남자는 축축한 가방에서 손수건에 싼 금속 물체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녹아내린 서리도 적시지 못한 그 보물은 겉이 녹슨 하모니카였다.

노래하던 이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죄송해요. 선생님께서 항로 연합의 마지막 전투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는 이 재난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지금, 이 세계를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을 노래할 수가 없어요.

이미 너무도 흔한 일이 되어버려서 아무도 묵념하지 않았다. 젊은 남자는 자신의 요청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괜찮아요.

이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예요.

혹한의 문을 지나온 유랑민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 영원한 설원 위에서 헛된 희망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기루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고, 주위는 고요했다.

묘지기는 모든 책장을 넘겨보았다. 지식과 이성, 욕망과 혼돈, 모든 것이 찍어낸 추도사 속에 멈춰있었다.

그녀는 광활한 들판 끝에서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걸린 고리는 별만큼이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진공 속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었던 비명은 별 조각처럼 반짝이는 전함들의 무덤 속에 묻혔다.

그리고 높은 탑 꼭대기에서 이 문명의 용사들은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시간이라는 냉혹한 장막을 찢어 미래라는 이름의 균열을 만들어냈다.

세월은 친절하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차가운 진리만을 내리꽂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을 했다.

자비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