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창가에 앉아 먼 과거의 별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들은 반짝이며 육안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속도로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태고의 항성들은 은하수 속에서 융합하고, 고요함 속에서 폭발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이런 예언과도 같은 광경은 너무나 보기 흔한 것이 돼버렸다.
지구는...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어?
테이블 위에 수많은 별자리가 투사되었고, 그녀는 익숙한 좌표를 눌러 작은 녹색 행성을 화면에 띄웠다.
나나미의 지구 관찰 일기-1
이런 식으로 기록하는 건 엄청 오랜만이네. 옛날 생각이 나는걸.
여기의 시간은 여전히 지루해. 생명은 물론 시간조차 없어. 부화하고 다시 태어나는 수많은 물거품뿐이야.
하지만 그날... 별생각 없이 왜곡된 좌표를 따라가다가 새로 탄생한 "우주"를 발견했어.
그리고 나나미는 그 우주에서 과거의 나나미를 봤지.
선현님?
음...
정말 오랜만에 일기로 무언가를 기록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응!
나나미가 새로 탄생한 작은 우주를 발견했어!
새로 탄생한... 우주라고요?
하얀 머리의 여성이 소녀 앞에 투영된 우주를 바라보았다.
이건... 지구인가요?
맞아, 이건 예전의 지구야.
그녀는 애틋한 눈빛으로 녹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행성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하카마가 나나미의 시선을 따라 그 "지구"를 바라보았다.
웜홀을 점프하는 동안 시공간 좌표가 왜곡됐는데, 그때 나나미가 이 통로를 발견했어.
폐쇄 루프가 시작된 겁니까?
그럴지도 몰라.
그래도 세계라는 건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폐쇄 루프 속에서 나아가는 거잖아?
무수한 성운이 탐지호 주위를 돌며, 시초에서 소멸을 거쳐 끊임없이 순환했다.
……
나나미의 지구 관찰 일기-3
"<phonetic=콜레도르>그녀</phonetic>"가 결국 나타났어.
해저에는 적조가 솟구치고 있어. 지상도 마찬가지야.
머지않아 "<phonetic=콜레도르>그녀</phonetic>"의 중력으로 "세계"와 "세계"가 합쳐지고, 이중합 탑이 강림할...
입술을 질끈 깨문 나나미가 계속해서 기록했다.
"문" 뒤에서는 시간 라인 속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그녀"가 이미 시간의 흐름을 깨뜨렸으니 어쩌면 나나미가...
하카마, 2143번 자료를 4차원 통신으로 보낼 수 있게 캡슐화해 줄 수 있어? 지구로 보내고 싶은 게 있거든.
이 시점에서 인간은 아직 4차원 통신을 수신할 능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러다간 시간 라인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만약 "그들"이 발견하게 된다면...
나나미도 알고 있지.
기회는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법.
시공간 좌표를 열자, 신생 우주를 나타내는 좌표에 작은 편차가 생겼다.
알겠습니다.
자료 캡슐화는 완료되었고, 시공간 좌표도 고정했습니다. 탐지호가 웜홀 점프를 하는 동안 정보가 동시에 전송될 것입니다.
이건 나나미가 모두에게 주는... "미래"라는 선물이야.
그리고 나나미가 이 "폐쇄 루프"를 깨뜨리려는 첫 번째 계기이기도 했다.
……
나나미의 지구 관찰 일기-5
모든 것이 과거처럼 진행되고 있어. 예상대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이게 정말 최선의 결말일까?
뫼비우스의 띠를 달리는 개미처럼, 같은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어.
예전에 "나나미"에게 말했었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아는 상태에서 최선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나나미는 결국 최종적인 결말 혹은 어떤 비극을 피한 것이 아니었어.
나나미는 "나나미"가 다른 선택을 하길 바라는 걸까?
그녀도... 긴 시간이 흐른 뒤에 탐지호에 탑승해서 우주로 향하게 될까?
곧이어 나나미는 펜을 내려놓은 후, 투영된 녹색 행성을 바라보았다.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면, 나나미는 정말로 우주에 홀로 남길 원했던 걸까?
탐지호만 충분히 컸다면, 나나미는 지구의 모든 인간을 태우고 싶을 정도였다.
모든 친구와 함께 거대한 방주를 몰며,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가, 끝없는 우주를 떠다니고 싶었다.
……
나나미의 지구 관찰 일기-6
(난잡한 메모, 시공간 좌표, 줄이 그어진 초상화 그리고 연산의 흔적이 있었다.)
새로운 좌표를 계산해 냈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여기 있는 거 아니까 나와. 도미니카.
그렇게 하면 규칙이 깨질뿐더러, 네 연산 능력도 소모될 거야.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
이 시공간의 시간 라인은 오염된 밈 때문에 완전히 어지러워졌어. "그들"은 이곳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
넌 뭘 원하는 거지? 너에게는 더 이상 <phonetic=우리>■</phonetic>에 대한 비밀이 없잖아.
문 뒤의 관리자로서, 넌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잖아.
이건 폐쇄 루프를 깨뜨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전해줘야 할 것들을 넘겨. 나나미가 [player name]에게 전달해 줄게.
……
그렇게 하면, 넌 사라질 텐데?
그런 건 신경 안 써.
……
이건 초대장이야.
이중합 탑에 있는 도미니카가 이 "초대장"을 만들었고, <phonetic=우리>■</phonetic>는 적합한 자를 "후계자"로 선택할 거야.
후계자가 초대를 받아들이면, 적절한 시기에 의식이 데이터화돼. 그럼, 게슈탈트에 들어가 이 시대의 오염된 밈을 봉쇄할 거야.
하지만 이전 세대의 "도미니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초대장은 미처 보내지지 않은 채, 1호 원자로에 남겨졌어.
이건 <phonetic=우리>■</phonetic>의 마지막 "초대장"이자, 이중합 탑으로 가는 열쇠야.
그럼 이건 나나미가 가져갈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게 그 감정에 대한 최고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 나아갈 길을 비춰주기 위해, 나나미는 이렇게 해야만 했다.
……
나나미의 지구 관찰 일기-7
나비가 폭풍을 일으켰어.
지상의 모든 것이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졌어.
너무 많은 "정보"를 흡수한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이중합 탑을 조종하는 권한의 일부를 장악한 것 같아.
올바른 선택을 한 걸까? 나나미의 행동이 폐쇄 루프를 깨지 못하고, 오히려 시공간을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끈 건 아니겠지?
이중합 탑이 커지고 있어...
선현님.
하얀 머리의 여성이 조용히 소녀의 뒤에 앉았다.
나나미가 잘못한 걸까?
……
"결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가 나타나서, 나나미는 더 이상 그 시공간에 접근할 수 없어.
그들에겐 이미 표식이 새겨졌어...
시공간의 분기로 인해 이중합 탑이 층층이 쌓여갔지만, 변화한 건 "사건"일 뿐 "정보"가 아니었다.
수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나타나 누적됐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층층이 쌓여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을 이뤘다.
너무 많은 "정보"가 심층에 쌓여있어. 이걸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될 거야.
나나미는 웜홀과 균열을 통해 정확히 찾아낸 좌표를 이용하여,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적조는 광기 어린 듯 몸집을 키우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회수하고 있었다.
콜레도르는 이중합 탑으로 들어갔고, 지휘관과 루시아도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그 탑으로 들어갔다.
일어난 모든 일은 폐쇄 루프의 여정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뭔가 다른 것 같았다.
……
머지않아 이 시공간의 "나나미"도 과거의 모든 시간 라인의 나나미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탐지호에 탑승해서 별하늘로 떠나고, 결국엔 거대한 우주 함선이 "문"을 넘어, 모든 폐쇄 루프 속의 "나나미"처럼 "나나미"의 미래로 합류할 것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같은 선택을 했다.
이렇게 해야만, 아주 먼 시간 라인의 인간 문명이 이 대재앙을 천천히 극복해 나갈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그렇게 되면, 나나미라는 소녀는 더 이상 지구의 별하늘을 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곧이어 나나미가 손에 들고 있던 일기장을 살며시 닫고, 옆에 있는 책장에 넣었다.
그 책장에는 비슷한 일기장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