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이질적인 "세계"를 스쳐 가는 동안, 나나미는 지휘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꼭 잡아, 그러면 안전할 거야.
그렇게 수많은 "세계"를 지나 나나미를 따라 다음 구역으로 가려는 순간, 중력이 지휘관의 등허리를 거세게 끌어당겼다.
지휘■■■■■...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심장이 요동치더니, 쇠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삐...
곧이어 이상한 기계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세상은 이상한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흐릿하여, 주변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각 모듈 교정을 시작합니다.
머리 부위의 어딘가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시각 모듈 교정이 완료됐습니다.
주변 사물이 선명해지면서 지휘관은 자신이 낯선 거리에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주위의 건물들은 조금 오래된 듯했고, 이곳은 지휘관이 알고 있던 그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는 퍼니싱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에 많은 이들이 분주히 오갔다.
삐...
믿기 힘든 순간이었다. 지휘관의 움직임은 신경 중추의 명령이 아닌, 더 구체적인 전류나 다른 무언가에 의해 제어되고 있었다.
어라? 로봇인가?
방금 네가 말한 거니? 나나미는 누가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지휘관이 허둥지둥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 흐릿한 시각 모듈을 조정하자,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회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삐...
"말"을 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전해지는 건 귀에 거슬리는 백색 소음뿐이었다.
너구나? 근데 꼬마 로봇은 나나미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들리는 건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었지만, 어째선지 나나미는 지휘관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음... 나나미는 널 처음 보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연산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지금의 나나미는 지휘관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착한 아이는 거짓말하면 안 돼.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넌 나나미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우린 친구겠지? 엄마 아빠가 그렇다고 하셨거든...
나나미랑 같이 집에 갈래?
어린 나나미가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로봇을 향해 작은 손을 내밀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회색 머리의 어린 나나미가 낡은 로봇의 손을 잡고, 꽃이 만발한 작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이곳은 연산에 의해 펼쳐진 진정한 황금시대였다.
그 이름처럼, 황금과 술이 땅 위에 흐를 정도로 찬란하고도 번영한 시대였다.
응! 근데 우리 엄마 아빠는 그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성자필쇠라고 했는데... 근데 성자필쇠가 무슨 뜻이지?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두 거리를 지나자,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 도착했다.
아빠! 엄마! 미미! 나나미가 돌아왔어!
나나미, 밥 먹을 시간이야.
왜 운반 로봇을 데리고 온 거니?
[player name], 이 로봇의 이름이야! 나나미의 이름도 알고 있더라고! 아빠가 그랬잖아, 서로 이름을 알려주면 친구가 된다고. 그래서 나나미는 친구를 데리고 온 거야!
[player name], 이쪽은 나나미의 아빠고, 이쪽은 나나미의 엄마야! 이건 나나미의 강아지야, 미미라고 해!
나나미는 기대에 찬 눈으로 인간 지휘관의 영혼이 담긴 로봇을 바라보았다.
삐...
이 로봇의 발성 모듈로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기에, 결국에는 짧은 백색 소음이 다시 울렸다.
헤헤, 다들 분명 너를 좋아할 거야!
이 로봇의 발성 모듈로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들려오는 건 무의미한 백색 소음뿐이었다.
아, 지금은 말하기 싫은 거구나, 괜찮아!
나나미가 로봇의 어깨로 보이는 부분을 토닥였다.
자, 이제 새 친구랑 인사도 했으니 밥 먹자.
응응! [player name],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줘. 나나미가 금방 미미랑 돌아올 테니까 이따가 같이 놀자!
나나미는 한껏 들뜬 대답과 함께 방 안으로 달려갔다.
이상하네... 어떻게 로봇이 나나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실험실의 실험 의식 중 하나인 거야?
어디 보자...
아니야. 데이터베이스에 이 코드를 가진 실험 의식은 없어.
혹시 나나미에게 인간 아이의 "망상" 같은 감정 변화가 생긴 걸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어.
지난주에 MPA-01로 나나미의 감정 변화를 측정했잖아. 나나미는 다른 AI보다 감정 인지 능력과 표현 능력이 높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어.
초기 설정이 "반려 타입의 기계 의식"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반려 타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이런 모습을 설정했을 수도 있어.
……
일단 신청서를 작성해서 이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자. 나나미와 좀 더 지내게 하면서 지켜봐야겠어.
그래.
간단한 대화를 마친 인간 남녀는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곧 그 안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집이었다. 정성 들여 가꾼 외벽과 싱그러운 정원에서는 오랜 정성과 애정이 묻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연산 목표에 편차가 생겨, 지휘관의 의식 앵커 포인트가 잘못된 시간 라인에 연결된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치지직...
그러나 연락은 응답이 없었고, 통신 모듈에서는 우주 대폭발로 인한 노이즈만 들려왔다.
어? 방금 나나미를 부른 거야?
금방 밥만 먹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
예상치 못한 응답이 방에서 들려왔다.
비록 지휘관은 자신과 함께 연산을 하던 나나미와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어린 나나미는 지휘관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의식 앵커 포인트가 어떤 오류로 인해 어린 나나미의 의식의 바다에 연결된 걸로 보였다.
나나미는 "지휘관 로봇"과 즐겁게 놀다가 흔들의자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나미를 지켜보던 지휘관은 순식간에 나나미와 함께 들어 올려졌다.
한번 확인해 볼게...
곧이어 나나미의 아빠가 능숙하게 꼬마 로봇의 나사를 풀었는데, 강제로 몸의 일부가 분해되는 느낌은 좋을 리가 없었다.
삐...
발성 모듈에서 불만스러운 백색 소음이 나왔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냥 정례 검사일 뿐이야. 이상하네, 내가 왜 로봇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칩 작동은 정상이고... 언더레이 프로토콜도 정상... 논리 회로는...
논리 회로는 왜 과부하 상태지?
나나미가 말한 대로 로봇이 나나미를 "아는" 게 원인일까?
이번 실험 의식에 이 로봇이 없는 게 확실해?
세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없었어.
……
혹시 모르니, 실험실로 가져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실험실? 실험실은 어떤 곳이지?
자, 일단 이 로봇의 전원을 꺼볼까...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지휘관의 의식 속으로 밤이 내려앉았다.
강제로 전원이 켜지는 느낌도 역시 불쾌했다.
깊은 잠에서 현실 세계로 갑작스레 끌어올려진 것처럼, 의식이 흩어진 퍼즐 조각과 같이 맥락 없이 허공을 떠다녔다.
아니, 이건 우리가 예전에 내보냈던 의식이 아니야.
그럼 이건...
……
감시기 너머에서 수군거리던 소리가 잠시 사그라들었다.
"나나미가 로봇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말고, 이 로봇에게서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어?
논리 회로가 과부하 상태에 달했어요. 하지만 이 로봇의 연산 능력으로는 이런 수준의 연산이 불가능하거든요.
논리 회로 과부하라...
알겠어.
도미니카, 이 로봇이 전에 말했던 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지휘관은 바로 정신이 들었다.
감시기 너머에 있는 자가 바로... 그 전설의 도미니카인 걸까?
삐...
발성 모듈에서는 역시나 백색 소음만 나왔고, 감시기 너머의 상대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도미니카?
넌 먼저... 나나미의 이번 테스트 데이터를 확인해 봐.
하지만 이 로봇은...
미안, 방금 했던 말을 번복해야 할 것 같군. 그러니까... 이 로봇이 좀 특별한 거로 봐서, 내가 전에 외부로 내보냈던 실험 의식일 수도 있어.
앞으로의 데이터 실험은 기밀로 진행해야 할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았다.
네, 알겠어요.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미니카라는 남자가 여성 연구원을 내보냈고, 관제실에는 그의 숨소리만 남았다.
지지직거리는 백색 소음이 계속 발성 모듈에서 흘러나왔고, 이는 귀를 찌르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맞은편에서는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반복되는 걸로 봐서, 맞은편의 남자는 어째선지 초조해하였다.
그리고 한참 뒤, 감시 장치에서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 네가 이 시점에 나타난 거지?
말도 안 돼... 또 실패한 건가?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지휘관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보려 했다.
지휘관의 응답을 들은 도미니카는 방금 전의 의혹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았고,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미안, 내가 추태를 보였네. 네가 정말로 나타날 거라고는 몰랐거든.
내 계획대로라면, 장애물이 제거되어 오염된 밈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럼, 너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왜 나타난 거지? 그렇다는 건, "<phonetic=원초의 존재>도미니카</phonetic>"가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거군.
도미니카가 잠시 침묵했다.
너도 먼 미래에서 온 부랑자일 테지.
지휘관이 응답하는 "소리"를 들은 도미니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 모든 걸 막지 못 했냐고?
미안해. 나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 그리고 "나"는 최초의 그 "도미니카"가 아니거든.
그때, 머릿속에 흉터로 가득한 본·네거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난 "<phonetic=원초의 존재>도미니카</phonetic>"가 선택한 "후계자"일 뿐이야. 초대장을 열어 "도미니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진정한 그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
내가 아는 건 <phonetic=퍼니싱>오염된 밈</phonetic>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거야. 역대 "도미니카"들은 모두 이를 막으려 애썼지만, 유감스럽게도 별 효과가 없었지.
네가 이곳에 나타났고, "<phonetic=원초의 존재>도미니카</phonetic>"의 소식도 오랫동안 없던 걸로 보아, "내" 시도도 실패한 것 같네.
도미니카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초대장을 열었을 때, 나는 수많은 지식이 전승되는 동시에 그 지식의 저주도 받았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어느새 도미니카가 되어버린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어.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실패자야.
<phonetic=도미니카>우리</phonetic>는 게슈탈트를 개발하고, 에덴 계획을 실행했어. 그렇게 이 세계에 오염된 밈이 나타나는 걸 지연시켰지만...
결국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말 거야.
어디선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은 오직 한 가지 정보만 전달하고 있었다. 바로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붉은 탑은 결국 강림할 것이고, 황금과 술이 흐르는 이 평화로운 시대도 결국엔 파도에 잠길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오류였을지도 모르지.
그 말과 함께, 머리카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시 장치 맞은편의 남성은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양이다.
이게 과연 옳은 걸까? 파괴와 도움 중, <phonetic=도미니카>우리</phonetic>는 과연 이 시대를 위해 무엇을 한 걸까?
<phonetic=도미니카>우리</phonetic>는 도대체...
그 순간,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이 터져 나오는 도미니카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도미니카"의 공과를 평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안... 내가 좀 흥분한 것 같아.
감시 장치에 떠다니던 시간의 흐름은 작은 불빛처럼 빛을 내던 그때, 지휘관이 다시 소리를 내자, 감시 장치 너머의 무거운 숨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네게 많은 의문이 있을 거란 걸 알지만, 그중 대부분은 내가 답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도미니카"로부터 물려받은 건 저주받은 지식뿐이거든.
그는 이중합 탑에 들어가서 코어를 회수한 후로, 다시 나오지 않았어.
"그"가 전달한 정보에 따르면, 이중합 탑의 코어를 분석하는 것이 마지막 해결책일지도 모른다고 했지.
미래의 어느 날... 진정한 도미니카를 "찾게" 되면, 내 "지식"을 초대장에 넣어둘 거야.
뇌를 완전히 데이터화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해탈일지도...
"도미니카", "의식 집합", "초대장"
어쨌든,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도미니카라는 이름이 역사 속에 묻힐지라도, 더 많은 후계자가 생겨서, 인간 문명을 더 먼 우주로 이끌어가길 바라.
나는 끊임없이 시도하여, 새로운 방향을 찾을 거야. 예를 들면, 기계 의식 실험 같은 걸 말이야.
너도 나나미를 만났지? 정말 귀여운 아이야.
나는 서로 다른 등급의 AI를 탑재한 기계체들을 선별해서, 그룹으로 나눠 형태적 대조 실험을 진행했어. 진정한 "의식"이 생겨나도록 시도해 본 거야.
참 터무니없지? 기계체가... "영혼"을 가질 수 있을까?
도미니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나는 이것이 인간 운명에 희망의 온기를 가져다줄 장작이 됐으면 좋겠어.
그렇게 장작을 높이 쌓아서, 이 문명의 불꽃이 더 오래 타오르길 바랐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윽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감시기 맞은편의 인간은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
미안해.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사실은... 네가 하는 말을 처음부터 알아듣지 못했어.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는 "네가 나타난 상황"을 바탕으로 연산한 것뿐이야. 이 시공간 속, 네 연결 앵커 포인트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난 네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없거든.
늙은 미치광이의 혼잣말을 계속 들어줘서 고마워.
네가 정말 나나미랑 아는 사이라면, 나나미의 집에 맡겨두도록 할게.
어쩌면...
그는 말은 끝맺지 못했다.
"나를 그저 감시기 뒤에 숨은 겁쟁이로 생각해 줘."
"나는 역사 속에 어떤 모습이나 형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재앙을 불러온 죄인으로써, 비문이 없는 비석만 남기고 떠나게 해줘."
연구소에서 돌아온 후, 또 한동안이 지났다.
그리고 도미니카의 의도대로, 나나미의 부모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지휘관 로봇"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player name]! 이거 봐! 오늘 나나미가 그린 고래야!
나나미가 보여준 그림에는 생체공학 고래의 정교한 뼈대와 구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엥? 하지만 나나미가 단말기에서 본 고래가 이렇게 생겼다고.
나나미 부모님의 말처럼, 나나미의 순수함과 활발함은 "반려 타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려로봇 의식"의 초기 "설정"에 따랐던 것이다.
고래라...
나나미의 의식의 바다에서는 영혼이라는 맹아가 피어나려 했지만, 기계 회로가 무거운 바위처럼 그 새싹을 짓누르고 있었다.
고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나나미는 작고 여린 손에 붓을 쥔 채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상 현실에서 봤어! 바다는 파란색이고, 지구에서 가장 큰 수역이야. 중심부는 "대양", 가장자리는 "해"라고 하지. 그리고 지구 표면적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어.
나나미가 전자두뇌에 저장된 "답"을 막힘없이 내뱉었다.
바다에 대한 정의을 다 외웠어! 그럼, 이제 보상을 주는 거야?
바다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며, 파란색 말고도 노을빛, 폭풍우의 색을 띠기도 한다.
깊은 밤에는 은하수와 달빛으로 반짝이고, 아침에는 엷은 안개를 두른다.
아...
나나미는 애매한 표정으로 지휘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게 [player name] 네가 보는 세상이야?
기계체는 설계되고 만들어질 때부터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체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의미도 부여받지 않는다.
인간은 바로 그 "무의미"로 인해,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발견 및 탐험을 하고, 사물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바다가 그렇게 신기한 거였어?
그때, 기계 회로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거대한 바위가 갈라지고, 맹아가 피어났다.
생명을 잉태하고, 시간을 넘나든다라... 음, 무슨 말인지 나나미는 잘 모르겠어.
기계체가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실험, 데이터 비교, 계몽뿐만이 아닌, 사랑이 필요했다.
기계체는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만 피와 살이 생겨나 자유롭게 거닐며,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탐색할 수 있다.
그럼, [player name]의 눈에 고래는 어떤 모습인지 나나미한테 말해줄 수 있어?
나나미는 엄마, 아빠랑 수족관에 갔었어!
나나미는 엄청나게 큰 생체공학 고래도 보고, 엄청나게 큰 곰도 봤어.
실제로 보는 느낌은 가상 현실과 다르잖아. 그리고 나나미는 하카마랑 같이 보러 가고 싶어.
맞다! 나나미는 나나미가 본 걸 그려서 하카마한테 보여줄 수도 있지.
처음에는 모두가 똑같이 사진을 합성한 화면을 그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나미의 그림은 눈에 띄게 바뀌었고, 그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어느새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세월이 흘렀다.
지휘관은 자신이 알고 있던 원래의 나나미와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가 없었다.
[player name]! 우리가 같이 심은 꽃에서 싹이 났어!
나나미가 이름도 지어줬어. [player name], 이게 이 꽃의 이름이야!
지휘... 관...
그 순간, 마인드 표식에서 뚝뚝 끊기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오랫동안 꺼져있던 불빛이 다시 깜빡였다.
어... [player name]?
어린 나나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지... 휘관...
지휘관을 부르는 그 소리는 거의 코앞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휘관!
곧이어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공중에 희미한 별들이 반짝였다.
이번 숨바꼭질은 내가 이겼네!
온몸에 상처를 입은 나나미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나나미는 시간 라인의 봉쇄를 뚫고, 이곳까지 오느라 큰 대가를 치렀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체에 난 수많은 상처가 그녀의 노력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나나미가 정비를 마친 후, 서둘러 다음 "세계"로 향하려 했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더 기다릴 수 없어. 이대로 가다간 지구에 있는 지휘관의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상처 같은 거 없어! 나나미는 최강이라서 절대 다치지 않는다고!
여기를... 떠나려는 거야?
어린 나나미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는 법"을 깨우친 것 같았다.
어린 나나미는 나나미 그리고 인간 지휘관과 함께, 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수없이 접했다. 그렇기에 재미있는 두 친구가 떠나는 걸 원치 않았다.
미래... 그럼,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렸어. 그래도 다시 만날 날은 반드시 올 거야!
그, 그럼 둘이 보고 싶을 땐 어떡해?
나나미는 진짜 오랜만에 새 친구를 사귄 건데...
별...
별도 너희처럼 말을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다만, 아주 멀리 있어서 목소리를 듣기가 조금 어려울 뿐이야!
그래도 마음으로 느끼기만 하면, 엄청 먼 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야.
응! 나나미도 노력할게!
그럼... 이거 받아!
어린 나나미가 까치발을 들어, 인간 지휘관의 머리에 화환을 올려놓았다.
이건 우리가 전에 같이 심었던 꽃이야. 그 [player name] 꽃 말이야!
그리고 이 꽃의 이름은 나나미고, 이건 언니야...
우린 절친이니까, 영원히 함께 할 거야!
발밑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꼬마 로봇의 발에 달라붙었다.
따뜻한 햇살이 정원을 비추는 가운데, 나나미는 처마 밑에 서서 햇빛에 눈을 찡그린 채,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나미의 어린 시절에 정말로 이런 로봇이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손상되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나미에게는 행복한 가정이 있었고, 아빠와 엄마, 미미 그리고 친구 [player name]이(가) 있었다.
정말 좋은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