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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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0 아침 햇살 속에서...

물자 구조차는 끝없는 황야와 폐허를 사흘 밤낮 달렸다.

이 시간 동안 셋은 계속 침묵을 유지했고, 엔진 소리와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풍경만이 감각 속을 맴돌았다.

흔들리는 좌석에서 이중합 탑 코어를 꺼내 들었다. 손안에서 여전히 움직이는 코어를 보며, 이게 현실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길 바랐다.

몇 번이나 루시아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그때마다 루시아도 지휘관의 손을 쓰다듬어 주며 응답했다.

하지만 온기는 조금씩 사라져가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고, 시간은 석양과 함께 저물어갔다. 곧 긴 밤이 찾아올 것이다.

4시간이요.

엠마는 간단히 대답했다. 이 질문이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곧 도착해요.

조금씩 어둠에 삼켜지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목적지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 점점 팽팽해지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색이 바래진 선물일지, 사형 선고일지 알 수 없었다.

물자 구조차가 좌회전하더니 정화 구역과 비슷한 분위기의 거리로 들어섰다.

황량한 땅과 주위를 배회하는 이합 생물들이 마음속 절망에 녹을 덧칠했다.

그 절망의 정도가 아직 부족했는지, 갑자기 물자 구조차가 떨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꽉 잡으세요. 이합 생물이에요.

엠마는 핸들을 꽉 잡고 이합 생물들이 배회하고 있는 구역을 빨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괴물들은 차량 소리에 이끌려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지휘관님...

지휘관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농도 퍼니싱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이합 생물을 향해 연이어 사격했다.

뒤쪽이요!

곤충 형태의 이합 생물이 하늘에서 급강하하며 자폭 공격을 하려고 했다.

지휘관은 계속 조준하고 발사하며 마음속 분노를 쏟아냈다. 역겨운 벌레의 체액이 어둠에 삼켜진 땅으로 스며들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따라오지 않을 때까지 사격은 이어졌다.

잠깐 들끓었던 소음은 끝없는 황폐함 속으로 묻혀버렸다. 죽은 듯한 고요함이 다시 이 상처투성인 대지를 덮었다.

물자 구조차의 엔진 소리만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분노는 사그라들었지만, 마음속 괴로움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차량의 전조등이 전방을 밝히는 모습은 마치 희미한 횃불을 든 방랑자가 긴 밤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권총을 든 손이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3시간이요. 하지만...

물자 구조차에서 나던 이상한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가 천천히 멈춰 섰다.

엠마는 즉시 차에서 내려 점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엔진이 고장 나 아무런 응급조치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소음마저 사라지자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졌다.

큰일이네요. 오면서 수리도구 하나를 분실했거든요.

밤이라 걸어가기엔 위험하고, 지휘관님 부상도 침식될 가능성이 있어요.

……

말다툼은 순식간에 끝났다. 엠마는 기운이 빠진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휘관님, 저도 함께 갈게요.

…………

…………

네.

루시아는 자신의 무력함에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조금씩 떠오르는 달빛 속에서, 지휘관과 엠마는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탐지기를 들고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수색을 시작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군수 창고부터 지상의 전투 준비실까지,

먼지 쌓인 개인 휴게실과 거점 집회 장소까지 전부 훑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적인 공허뿐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폐허는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뼈를 에는 듯한 냉기가 감돌았다.

주먹을 쥐고 흩어진 돌무더기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지휘관님 쪽은 어떤가요?

따로 물자를 찾으러 갔던 엠마가 어느새 지휘관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빈손이 수색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엠마는 단말기를 보며 잠시 침묵했다.

로사가 새로운 해석도를 보내왔는데, 아직 두 군데가 있긴 해요.

손바닥의 먼지를 털어내고 엠마를 지나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이거라도 드세요.

엠마가 압축 비스킷을 건넸다.

입맛이 없었던 지휘관은 먹는 것조차 고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성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길 강요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으면서 힘들게 음식을 삼킨 지휘관은 엠마가 방금 언급한 이름이 떠올랐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탓에 이 문제를 놓치고 있었다.

로사는...

성함이 "출발"하기 전 몰래 내려왔어요. 그래서 돌아가는 수송기도 타지 못했죠.

들은 바로는...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라고 했어요.

로사의 가족들이 모두 겨울 계획의 희생자가 되었거든요. 겨울 계획을 일으킨 승격자의 단서를 찾고 나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상으로 돌아오려 했어요.

그 승격자를 죽이는 데 성공했어요. 믿기 힘드시죠?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고, 나이도 어렸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 후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오랫동안 우울해 있었어요. 나중에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성격이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처럼 덤벙거리지 않고 조용하고 이성적으로 변했죠. 지상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기체를 만들어서 구조체로 되었어요.

바네사는 농담 삼아 지금의 로사가 아시모프 님의 영적 후계자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지금의 로사야말로 가면을 벗은 진짜 모습 같아요.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소식으로는 중병에 걸리셨다고 들었어요. 그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났죠.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네. 로사는 진정한 천재예요.

북극 항로 연합으로 돌아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로사가 있으면 루시아의 일도...

이 고통스러운 긴 여정이 남긴 상처들 중,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만약이란 없다."였다.

…………

거의 다 왔어요.

실처럼 가는 햇살이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대지를 비추었다.

지휘관 일행은 그 빛줄기 아래서 새로운 목적지에 들어섰다.

여기는 예전에 행사하던 곳이에요. 아이라도 몇 번 왔었죠.

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수색이 덜 이루어져서 이합 생물이 많이 모여 있었거든요.

엠마는 차분한 말투로 거점이 수차례 약탈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은 몸을 돌려 다시 한번 헛된 수색에 뛰어들었다.

탐지기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지휘관은, 낡아빠진 무대를 지나 구석구석 꼼꼼히 뒤졌다.

모임을 가졌던 응접실 문을 열고, 옛날의 따스함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희미한 희망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없다. 이곳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예술 협회의 가장 안쪽 휴게실에 들어서자, 고장 난 수면 캡슐 뒤로 아직 열리지 않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기대와 실망을 품은 채,

상자의 잠금장치를 힘껏 열자, 눈앞에 나타난 건 포장이 잘 되어있는...

실망한 채로 닫으려던 그때, 코팅 부품 상자에 루시아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팅 부품 상자를 집어 들고 미리보기를 실행하자 아이라의 서명이 적힌 그림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라

안녕~

오래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아이라

세리카가 예술 협회에 직접 요청해 줘서, 루시아가 수여식 때 입을 예복을 만들게 됐어.

아이라의 명랑한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 속에서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졌다.

아이라

모두가 너희들이 곧 돌아올 거라 믿고, 최선을 다해 다양한 방안을 만들었어.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정된 게 이거야. 어때? 괜찮지?

아이라의 펜을 돌리는 소리가 함께 녹음되어 있었다.

아이라

공식 행사에 쓰일 거니까, 회장 장식도 미리보기 그림에 같이 넣어뒀어.

루시아가 이 코팅을 입는 날이 정말 기대돼!

미리보기가 상자 속으로 사라지고, 먼지가 쌓인 방에는 쓸쓸한 정적만이 남았다.

지휘관은 코팅 부품 상자를 안은 채, 석양이 물든 대지를 밟았다.

텅 빈 구석까지 모두 뒤지다 보니 가슴 속도 텅 비어버렸다.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대화가 몇 번이나 반복됐는지 모른다.

돌아가시죠.

폐쇄된 방을 나서자 흰 달이 나뭇가지 위에 걸쳐져 있었다.

돌아가려던 찰나, 저 멀리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상처투성이인 형체가 무기에 의지한 채 안간힘을 다해 지휘관을 찾고 있었다.

루시아

지휘관님...

루시아가 폐허 사이를 비틀거리며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아

지휘... 관님.

지휘관은 루시아에게 달려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그녀의 기체를 안았다.

돌아오지 않으셔서…

너무 걱정됐어요.

…………

그들이 들고 있는 물건을 본 루시아는 더 이상 수색 결과를 묻지 않았다.

지휘관님만 괜찮으시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루시아가 끌어안고 있던 팔을 살며시 풀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북극 항로 연합으로 계속 가야 하나? 아니면 이중합 탑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볼까? 지휘관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국 예상대로 허무한 결말과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휘관은 코팅 부품 상자를 루시아의 손에 쥐여줬다.

아이라가 예술 협회와 함께 새로운 코팅 방안을 몇 가지 준비했다고 했어요. 돌아오면 함께 보러 가요.

루시아

…………

그때의 여름처럼요?

루시아

기억나요.

루시아는 모든 감정을 가슴속에 눌러 담으려는 듯 코팅 부품 상자를 꼭 껴안았다.

루시아

네.

지휘관과 루시아는 차량 수리 도구를 찾으러 간 엠마보다 먼저 물자 구조차로 돌아왔다. 이미 새벽 5시가 되어 있었다.

겨울 아침의 해는 늦게 떠올랐고, 쓸쓸하고 차가운 달은 여전히 밤하늘에 머물며 거리 위로 서리를 내리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루시아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1시간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다른 구조 방법을 고민하며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국 모든 노력은 헛되이 끝났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루시아와의 작별 인사를 준비해야 했다.

…………

달빛 아래에서 루시아가 몸을 돌려 지휘관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마지막은... 여기서 해요.

기체의 균열은 코팅으로 모두 가려졌지만, 루시아의 모습은 저녁 바람에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했다.

항상 곁에 있던 그녀,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던 그녀가 이제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출발했던 그날로 돌아간다면,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 당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지휘관과 루시아뿐이었다.

그럼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이중합 탑 안에 설치된 함정과 0호 대행자의 부활로 인한 카오스 오염은 신중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더 일찍 본·네거트와 손잡고 0호 대행자를 제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 같은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저주받은 폐쇄 루프와도 같았다. 과거의 잘못을 바꾸려면 이중합 탑이 필요했고, 이중합 탑을 사용하면 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되풀이되는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지고, 오직 광활한 별하늘만이 남아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있었던 일 기억 나세요?

루시아는 눈앞에 있는 인간을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대에서 깨우고 싶었지만, 머릿속에는 또다시 새로운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이중합 탑 안의 공간은 그렇게 크진 않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래.

각 측에서는 이중합 탑에 존재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했지만, 아무도 이중합 탑에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해야 해.

그 누구도 이중합 탑의 극적인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

출발하기 전, 이중합 탑이... 거대한 큐브처럼 회전하고 조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전... 지휘관님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루시아의 눈물이 기억났다. 처음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인간을 안았을 때 멈추지 않고 흐르던 눈물이 기억났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런 고통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던 걸까?

하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할수록, 그 저주받은 폐쇄 루프에 더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봤을 땐, 거기에는 시체와 피로 만들어진 산이 있었다.

루시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어요. 희생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요.

결말이 정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방법을 시도해 봤어요.

어쨌든, 우리는 기적의 씨앗을 찾아냈잖아요.

이중합 탑의 코어를 이렇게 안전한 형태로 탑 밖으로 가져온 사람은 없었잖아요?

죄송해요. 저는 잠시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을게요.

지휘관님은 앞으로 나아가세요. 더 먼 곳을 향해,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그곳까지…

리브, 리... 저희 동료들은 지구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에요. 더 먼 곳에서 희망을... 지휘관님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그때 가서... 절 잊지 않으셨다면, 부디 찾아와 주세요.

저도 믿어요.

미소 지은 루시아는 점점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휘관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난 어디로 가야 할까?"라고 되물었어요.

중요한 건 "어디로 가야 할까?"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였어요.

저는 루시아지만, 단지 루시아의 복제체일 뿐이었으니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거예요.

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장이지만, 예전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전 루나의 언니지만, 적대적인 입장에 놓인 상황에서 과연 언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기억 속에 남은 공백은 맹목적인 자신감을 준 게 아니라, 떨쳐낼 수 없는 혼란과 이질감만 남겼어요.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지?", "그들은 대체 나를 보면서 누구를 찾고 있는 걸까?"

지휘관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계속 이런 혼란 속에서 살았을 거예요.

"만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서 정말 기뻐요.

지휘관님이 저를 찾아주셨어요. "루시아"의 전투력이 아닌, 지휘관님 앞에 선 저를 바라봐 주셨어요. 제 진심을 기꺼이 받아주셨어요.

그 후 저희는 새로운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만들고, 리브와 리를 만났어요. 저는 돌아갈 곳이 생겼고, 우리에겐 끊임없는 임무와 성과가 생겼죠.

함께 보낸 낮과 밤, 세월과 시간, 상처와 눈물, 사랑과 아쉬움... 이 모든 게 저만의 것이 될 수 있었어요.

유일무이한 "저"로, 제가 인정하는 "저"로 걸어갈 수 있게 됐어요.

지휘관님 덕분에요.

이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지휘관님이 없는 미래는 의미가 없고, 저희가 바라던 평화로운 미래가 아니에요.

부디... 제가 떠난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이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가 아니에요.

네. 저희는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출발하기 전 함께 접었던 네잎클로버 기억나세요?

루시아는 손을 뻗어, 소중히 간직해 온 종이로 접은 네잎클로버를 지휘관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지휘관도 가지고 있던 녹음 펜을 루시아에게 돌려주었다.

지휘관님. 모든 실패에는 의미가 있어요. 우리는 기적의 씨앗을 얻었으니, 반드시 이 세계의... 그리고 우리의 기적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루시아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경례를 올렸다.

지휘관님. 이렇게 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지휘관님을 만난 건 제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지휘관은 종이로 접은 네잎클로버를 루시아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정말 감사해요.

루시아는 기운이 다할 때까지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

네.

루시아의 차가운 손을 잡고, 물자 구조차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아침 해가 지평선을 넘어 황폐한 대지를 서서히 밝혀갔다.

둘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기대어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루시아의 기체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루시아는 곧 새벽빛 속으로 녹아들 것이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으면...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휘관님.

이중합 탑에서의 고난은 모두 끝났어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어요. 늘 건강하고 평안한 나날을 보내시길 바라요.

저 또한... 지휘관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도할게요. 건강 잘 챙기세요.

루시아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듯, 결국 서투른 축복의 말로 작별 인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북극 연합 항로에는 지휘관님과 인연이 있는 동료들이 많이 계세요. 이중합 탑을 벗어난 이상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옆에 없어도, 지휘관님은 분명 잘 해내실 거예요.

…………

전...

지휘관님과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떤 말을 해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루시아는 지휘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키스였지만, 바람처럼 언제든 사라질 것 같았다.

지휘관은 루시아를 꽉 끌어안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입맞춤을 통해서 그녀의 존재를 간절히 갈구했다.

코팅 아래 감춰진 상처에서 순환액 흘러나와 입안에 번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이런 결말밖에 없는 걸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과 머릿속의 찢어질 듯한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끌어안을수록 루시아의 온기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숨이 멎기 직전, 루시아는 입맞춤을 멈추고 마지막 힘을 다해 지휘관을 붙잡았다.

루시아

지휘관님... [player name].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제가 왜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 했는지…

곁에 있는 게 익숙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휘관님은 제게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사랑해요, 지휘관님. 답은 주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이대로 만족할 수 있겠어요. 이런 식의 작별 인사를...

지휘관님을 혼자 두고… 떠나는 저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어요...

루시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전 도저히... 이런 식의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저를 용서할 수 없어요… 이렇게... 지휘관님을 두고 떠나는 저를...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모든 게 가치가 있었다고 되뇌어도... 지휘관님의 슬픈 표정을 마주할 때면, 그 슬픔을 안겨 준 제가 너무나 미워져요.

가슴 깊이 남겨진 후회에 사로잡혀 인간의 어깨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시아

정말...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었어요.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루시아의 기체를 안으며, 출발하기 전에 세웠던 계획들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루시아

네.

루시아

네.

루시아

…………

루시아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루시아는 더 이상 답이 없을 것이다.

어떤 말을 건네도 깊은 정적에 잠긴 거리에는 지휘관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런 날들은 지속될 것이다.

얼마나 더 가야 모든 것을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견뎌야 이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

루시아의 가슴 위 네잎클로버가 겨울바람에 날려버릴 때까지, 지휘관은 답이 없는 그녀를 향해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네잎클로버가 바람에 날아가기 전, 지휘관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붙잡았다.

기체 적응 훈련 중에도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 들러서, 지휘관님이 이야기하신 책들을 한 권씩 찾아봤어요.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볼 때마다 기록해서, 이렇게 소중한 문장들이 가득한 노트가 되었어요…

긴 세월을 견뎌낸 네잎클로버가 지휘관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다. 이것을 접을 때만 해도, 루시아가 네잎클로버 안에 무슨 글을 적어두었는지 알지 못했다.

세월 속에 바래진 글씨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 위에는 <경험의 노래> 서시의 마지막 구절이 적혀 있었다.

더 이상 떠나지 말아라.

왜 너는 떠나려 하는냐?

별빛 하늘과

물의 해안은

새벽이 올 때까지 너의 세계이다.

그렇다. 어둠은 물러갔고, 새벽이 찾아왔다.

네.

몸은 항상 따뜻하게 하시고 규칙적인 휴식을 취하세요. 불안하시면 잠을 잘 못 주무시잖아요. 그럴 땐…

루시아는 의사의 도움을 권하려다가, 현재 상황을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

시간이 일분일초 흘러가는 동안, 둘 사이의 정적은 계속 이어졌다.

모든 감정이 침묵 속에서 사그라지고 나서야, 루시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앞으로 저는... 같이 할 수 없게 됐어요.

지휘관님이…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든… 살아 계시기만 한다면 전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지휘관님. 안녕히 계세요.

대지를 비추는 빛 아래, 루시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네.

몸은 항상 따뜻하게 하시고 규칙적인 휴식을 취하세요. 불안하시면 잠을 잘 못 주무시잖아요. 그럴 땐…

루시아는 의사의 도움을 권하려다가, 현재 상황을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 기대어도 될까요?

허락을 받은 루시아는 살며시 기대서 눈을 감았다.

루시아

죄송해요.

앞으로 저는... 같이 할 수 없게 됐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네요.

지휘관님이…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든… 살아 계시기만 한다면 전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지휘관님. 안녕히 계세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루시아

안녕히...

얼마나 지났을까, 먼지투성이가 된 엠마가 마침내 도구를 들고 차로 돌아왔다.

착각이었을까? 엠마는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천천히 다가가 보니, 지휘관이 루시아를 품에 안은 채 끊어질 듯 말 듯한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다 끝... 하늘 끝...

지붕 아래… 낡고 허름한… 따뜻한 집…

지휘관의 초점을 잃은 두 눈은, 지평선 끝에 머물러 있었다.

씨앗을... 심어...

그리고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만발한... 세 잎 클로버...

새벽이 왔지만, 기적은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