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폭우 후 맑음
마침내 "서염" 기체의 테스트가 전부 마무리되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시끄러운 군중 속에 서서, 품 안에 있는 "<b><ud><color=#34aff8ff><link=1>도미니카의 초대장</link></color></ud></b>"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초대장은 세르반테스가 가져온 "열쇠"로 이미 활성화된 상태였다. <i><color=#a8a8a8><size=30>(밑줄 친 글자는 터치할 수 있습니다.)</size></color></i>
데이터 스트림에서 본 그날의 "편지"를 다시 떠올렸다.
이 세계는 이젠 "열쇠"를 사용할 조건이 충족됐다.
기억해라. "열쇠"로 "초대장"을 활성화하면, 초대받은 사람을 도미니카로 만들 수 있는 "초대장"의 권한이 사라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활성화된 "초대장"으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가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것으로 반이중합 탑의 코어를 파괴하고 회수할 수도 있다.
명심해라. 탑의 코어를 파괴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건 최후의 수단이다.
편지를 남긴 "도미니카"는 이합 재난 구역이 확장될 것을 이미 예견했던 걸까?
안녕하세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에 깊은 사색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소박한 옷차림으로 장미 한 다발을 안고 있었고, 뒤에는 같은 옷차림을 한 네 명이 서 있었다.
젊은 여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날 루시아가 보육 구역에서 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셋은 아직 퇴원하지 못했어요.
네. 저희를 구해주신 은인을 한 번 더 뵙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장미를 건넸다.
이 꽃 받아주세요.
저는 반이중합 탑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계신 건 알고 있어요. 성공하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서요.
옷자락 끝을 꽉 쥔 그녀는 말을 신중하게 하려고 애썼다.
안 좋은 얘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날 일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아니었다면, 저희는 여기에 없었을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늘 "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아지가 다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영웅이신 여러분들도 건강 조심하세요.
몸조심... 네. 이제는 신경 쓸게 제 몸 하나뿐이네요...
아니요. 어젯밤 샨 아저씨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요.
쓴웃음을 지은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러분과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위험해도 괜찮고 설령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건 영웅들에게 해당하는 거예요. 저희는 "뿌리"가 아니에요. 샨 아저씨 말씀으로는 영웅이야말로 "뿌리"라고 하셨어요.
"줄기"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썩어가는 나무가 되고 싶진 않아요.
우리의 보육 구역은 이미 파괴돼서, 앞으로는 많은 사람과 붐비며 지내야 해요.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겠죠.
네. 우리 모두 그렇게 믿고 있어요. 승리하고 돌아오시길 바랄게요.
지휘관은 눈앞의 소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 뒤 루시아에게로 향했다.
잠시만요. 지휘관님, 루시아. 아직 물자를 다 챙기지 못했어요.
리브는 자신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자 상자를 보며 난감해했다.
음, 휴대용 전술 가방에 뭘 넣을지 고민 중이에요.
기체 수리용 상처 젤을 하나 더 가져갈까요? 아니면 혈청을 두 개 더 가져갈까요? 음... 아니면 비상식량을 한 상자 더 가져갈까요?
지휘관님이 쓰실 수 있는 걸로 가져가시죠.
네. 그럼, 혈청으로 할게요.
반이중합 탑에서 야영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
지휘관님, 준비가 다 됐어요. 가져갈 수 있는 물자가 한정적이라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무리하지 마시고 꼭 빨리 돌아와 주세요.
…………
리는 대답하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멀리 있는 반이중합 탑만 보고 있었다.
저도 걱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레이 레이븐 소대원들이 기체를 변경할 때마다 심각한 재난에 부딪쳤었잖아요.
그 말씀은 복귀한 뒤에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루시아도 꼭 일찍 돌아오세요.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아이라가 예술 협회와 함께 새로운 코팅 방안을 몇 가지 준비했다고 했어요. 돌아오면 함께 보러 가요.
그때 여름처럼요?
네. 그러니 꼭 일찍 돌아오세요.
알겠어요.
루시아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출발하시죠.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장인 루시아가 지휘관님을 지켜드릴 겁니다.
그것 말고는... 걱정한다 해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전 이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요.
부디 일찍 복귀하십시오.
루시아가 내민 손을 맞잡은 지휘관은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반이중합 탑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갔다.
가위처럼 벌어진 왜곡된 균열이 지휘관과 루시아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네. 정화 구역 서쪽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어 대응 인원이 배치된 상태예요.
많진 않지만, 아직은 시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지휘관님. 어서 가시죠.
맨 앞에 선 동료들 대부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있는 이들의 얼굴엔 부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위험하단 걸 알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었다.
지휘관과 루시아는 손을 꼭 잡은 채 어두운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기억에 담긴 모든 정보를 확인한 루시아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이중합 탑에서의 기억만 조금 흐릿한 것 같아요.
그때 지휘관님이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혹은 능력이 제한되었거나, 본·네거트의 습격을 받고 강제로 탑을 벗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활성화된 <b><ud><color=#34aff8ff><link=1>도미니카의 초대장</link></color></ud></b>"이요. 이름이 너무 길어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간 후 지휘관님이 그냥 "열쇠"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셨어요.<i><color=#a8a8a8><size=30>(밑줄 친 글자는 터치할 수 있습니다.)</size></color></i>
반이중합 탑에 들어간 후 저희는 깊숙이 조사를 했어요.
그러다 조금씩 반이중합 탑이 "과거의 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구조체인 제가 침식되었을 때만 "과거의 나"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서염 기체 자체가 퍼니싱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예외였죠.
반이중합 탑 내부 공간은 루나가 말한 것보다 훨씬 넓어서, 미로 같은 도시를 하나씩 탐색하는 것처럼 긴 시간이 필요했다.
탑 안에서 찾은 정보로 지휘관님은 퍼니싱 자체가 4차원성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셨어요. 반이중합 탑의 시간 관측과 개입 능력도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했을 거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걸 이용해 과거를 바꾸려고 했어요. 보육 구역을 일찍 이전하지 못했던 일, 풀리아 삼림 공원의 참사... 그리고 리브의 일 역시 마찬가지고요.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의 구룡 순환 도시 전투도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어요.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죠. 구하려던 이들이 도중에 습격을 당했고, 요청한 구조대도 늘 지체됐어요.
그러다 지휘관님이 갑자기 확신에 찬 모습으로 현재의 반이중합 탑이 정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열쇠"로 과거에 보낸 모든 메시지를 차단하고, 수정했던 일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하셨어요.
결과적으로는 저희 둘 다 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기억들은 마치 꿈처럼 너무 희미해서,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안전을 위해 함께 수정된 거였죠.
…………
네. 제가 반이중합 탑에서 얻은 기억들 중에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전부 실패했거나 지휘관님의 중상과 관련된 것들뿐이었어요.
저희는 조사를 계속 이어갔고, 결국 적조가 반이중합 탑 지면의 균열을 따라 한곳에 모이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그 말에 가장 불안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반이중합 탑 지면에 수많은 잔 균열이 생겼다. 누군가가 적조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뒤 다른 시간대로 옮긴 것 같았다.
이미 늦었어.
기억 속 인형이 꿈에서 이 말을 했었던 것 같다.
…………
74번이요.
루시아는 그 숫자를 힘겹게 내뱉었다. 시간 역행과 죽음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 시간을 소모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참사를 겪었길래 기억 정리조차 버거울 정도로 "부작용"이 쌓였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기억 속, 둘은 정확한 정보를 과거로 전달하기 위해 "열쇠"의 힘에 의지했었다.
탑 안에는 수많은 이합 생물과 이해하기 힘든 환영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본·네거트도 반이중합 탑 안에 있었다.
본·네거트는 줄곧 지휘관과 "카오스"를 하나로 만들려 했고, 이 때문에 여러 번 전투가 발생했었다.
지휘관님.
루시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지휘관을 나지막이 부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적조가 모이는 곳을 찾은 후 그곳에서 본·네거트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그는 적조 집결지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려 했던 것 같았어요.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저희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일단 그곳에서 샘플을 채취하고 조사한 기록을 근원 추적 장치에 저장하는 것이 고작이었죠.
지휘관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과학 이사회에 보고하러 돌아가자고 하셨어요.
그 후에... 그 사고가 일어났다.
네. 정보를 읽어 들일 때 심하게 떨리더니 적조 속으로 떨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주워서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루시아가 활성화된 "열쇠"를 지휘관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적조에서 주워올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루시아는 세르반테스가 작게 개조해 준 "열쇠"를 위장 코팅된 전술 주머니에 넣었다. 그 움직임 때문에 작게 접은 종이가 빼꼼 튀어나왔다.
그건 루시아와 함께 일반 임무로 기체를 테스트하면서 접었던 네잎클로버였다.
네. 저희가 함께 접은 네잎클로버잖아요. 가볍기도 하고 해서 늘 지니고 다녔어요.
루시아는 종이로 접은 네잎클로버와 "열쇠"를 조심스레 넣고, 고개를 들어 거리의 깊은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이후의 일은 기억하시죠?
반이중합 탑 출구에 가까워졌을 때 지휘관님이 갑자기 사라지시더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반이중합 탑에는 본·네거트만 남게 됐죠.
돌아가는 길이 어려운 것 빼고는, 본·네거트와의 마지막 전투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흐릿한 기억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미풍이 스쳐 간 것처럼, 바람과 닿은 느낌만 남아 있을 뿐, 실체가 있는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네. 처음엔 본·네거트가 또 지휘관님을 잡아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가...
지휘관님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어요.
반이중합 탑 안에서의 생사와 시간 자체는 "비정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휘관님이 사라진 건 분명 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본·네거트와 싸우게 됐고, 중간에 콜레도르도 전투에 끼어들었어요. 우리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하면서요.
콜레도르는 계속 반이중합 탑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휘관님을 여러 번 해치기도 했을 거예요. 저희가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결국 저희와 싸운 건 대부분 반이중합 탑의 이합 생물이었고, 가끔 나타난 실체가 있는 인물은 본·네거트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합 생물들이 정말 본·네거트의 명령만 따랐을까요?
콜레도르의 능력은 저희가 이전에 접했거나 추론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저도, 그 대행자도 그녀를 신속하게 제압할 수는 없었죠.
그럴 수도 있어요. 본·네거트는 그 혼전 중에도 콜레도르를 매우 경계했으니까요.
그리고... 근원 추적 장치로 찾아낸 본·네거트의 말 중에 "다른 시대에서 태어난 <b><ud><color=#34aff8ff><link=2>0호 대행자</link></color></ud></b>"라는 말 기억나세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반이중합 탑에서 콜레도르를 본 후로... 혹시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콜레도르를 만났을 때, 그녀는 우리와 본·네거트 곁에 있던 인간형 이합 생물에게 강한 적의를 보였어요.
<b><ud><color=#34aff8ff><link=4>카오스</link></color></ud></b>요? 그 작은 인간형 이합 생물의 이름인가요?
루시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휘관님은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계세요? 왜... 왜 이제서야 말씀하시는 건가요?
"카오스"에 관한 모든 것을 꿈에서 보았다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꿈들 속에서 지휘관 역시 매번 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 또한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반이중합 탑에 들어가기 전부터요?
꿈이라고요? 예전에 말했던 그 이상한 꿈들 말인가요?
본·네거트와 협력하겠다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인가요?
그 일은 기억나지 않으세요?
…………
저와 본·네거트, 콜레도르가 벌인 삼파전은 교착 상태에 빠져 오래 지속됐어요. 콜레도르의 공격에 맞춰 본·네거트를 겨우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그때... 지휘관님이 그 인간형 이합 생물을 데리고 반이중합 탑 계단을 걸어 내려오시더니, 저에게 본·네거트와 협력하라고 하셨어요.
루시아는 한숨을 쉬며 그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네. 저도 그 명령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설명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본·네거트와 협력해서 콜레도르를 죽이라고만 하셨어요.
아마 그사이에 중요한 진실을 발견하셨고, 미처 설명할 겨를이 없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그 인간형 이합 생물의 손을 꼭 잡고 계셨어요. 마치 본·네거트의 계획에 동의하고, 그 아이와 하나가 되는 결말을 받아들이신 것처럼요.
루시아는 걱정스러운 듯 지휘관의 손을 잡아 이합 생물과 접촉했던 부위에 이상이 없는 지 주의 깊게 확인했다.
왜 그러셨던 거예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유독 이 부분의 기억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모든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깊은 절망감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꿈에서 봤던 카오스를 실제로 만났고, 꿈속에만 있을 법한 광경을 현실에서 목격했다면, 아마 이걸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던 걸까?
지휘관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
네?!
루시아와 함께 카오스의 뒤를 쫓아 컨스텔레이션의 거리로 들어섰다.
왜인지 본·네거트의 마지막 말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길고 긴 악연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그 대행자에게 있어서, 이곳이 결전의 장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