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문명의 불씨였어.
???
황금시대의 영광은 새로운 땅 위에 다시 퍼질 거야.
???
오직 ▆▆▆▆만이 인간을 데리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어.
???
크리스티나, 기억해.
???
오직 ▆▆▆▆...
!
생각하다 보니, 이런 끔찍한 일까지 또 떠올리게 되네.
책상 위 단말기는 끈질기게 알림을 보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단말기 네트워크 간의 전투는 항상 잔잔한 호수 수면 아래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소리 없이 키워드가 포함된 정보를 포착했다. 그리고 반딧불처럼 깜빡이더니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졌다. 데이터 스트림은 방화벽이 다시 한 줄 한 줄 통과하도록 내버려뒀다.
유산... 이런 무의미한 신앙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건가?
뇌가 짚신벌레에 점령당한 녀석들만이 역사 속 천재들에게 기대려고 고집부릴 거야.
익숙한 이름과 사진이 단말기에 투영되었다. 한때 유년기였던 아이는 이제 자립해서 살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 같았다.
빅토리아...
괜찮아. 곧 끝날 거야.
테디베어!
야, 깼으면 자는 척하지 마! 회의해야 한단 말이야!
또 회의야? 이합 재난 구역에 새로운 움직임이라도 발견된 거야?
군에서... 마지막 임무 영상 기록을 회수했어.
이합 재난 구역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어.
쉿... 조용히 해.
뭔가가... 퍼지고 있었다.
붉은 바람과 녹색 비, 보라색 흙 그리고 무거운 머리들을 보았다.
선명하지 않은 인간의 형상이 상처로 가득한 땅에 녹아내려, 끈적거리고 알 수 없는 향을 내뿜었다.
전 인간의 역사를 읽고, 인간의 문명을 이해했어요. 그럼...
엠브리오가 진흙을 밀어내고 새로운 꽃을 피워냈다.
새로운 이야기가 곧 시작될 거예요.
톡...
가늘고 미세한 기포의 터지는 소리가 목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마지막 비명을 억눌렀다.
도망...
무슨 소리지?!
숲속에서 일하고 있던 또 다른 유랑민은 게리의 경고를 듣고 즉시 작업을 멈췄다. 그는 게리가 응시하는 풀숲을 긴장한 채 주시하면서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충혈될 정도로 오랫동안 바라봐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외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휴...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
게리는 자신의 경솔함이 친구의 일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머리를 한 번 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괜찮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저번에 주둔지 뒤에서 나타난 그 괴물도 네가 미리 경고해 줘서 피할 수 있었잖아.
그게 아니었으면, 율시의 운송 장비가 우리에게 있었더라도 도망칠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 너 그거 들었어?
가미라가 게리 쪽으로 다가갔고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그 거주지 있잖아. 숲 뒤편에 자리 잡고 있고, 저번에 우리랑 구역 싸움했다가 진 그 거주지 말이야.
오늘 아침 사람들이 물건을 주우려고 그곳에 갔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가서 확인해 보지 않았대?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어? 요즘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여긴 율시가 말하는 "정화 구역"이 아니잖아.
하지만 우리는 주위를 이미 탐측했잖아.
너 어젯밤에 일찍 자서 못 들었겠지만, 며칠 전 뒤쪽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말해줬는데, 요즘 거기...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대.
"적조"라는 것들이 계속 퍼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몇몇 거주지가 그것 때문에 사라져 버렸어. 곧 우리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몰라.
한숨 쉰 가미라가 잠시 하던 일을 멈췄다.
벌써 12월인데... 우리가 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
게리는 가미라를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몇 번이나 맴돌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미묘하게 변한 것 같았다.
유랑민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숲이 자신만의 "호흡"이 생긴 것 같았다.
게리는 그 미세한 변화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어서 이곳을 떠나라고 경고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가 부모와 헤어져 홀로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부터, 게리에게 돌아갈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게리는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에 홀로 맞서야 했다.
퍼니싱
침식체
적조
오가는 구조체들이 "이합 생물"이라 부르는 기괴한 모습의 괴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지상의 유랑민들은 세상의 틈에서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퍼니싱으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거리낌 없이 활개를 치려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이 말이 그의 목구멍에서 힘겹게 나왔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가미라는 얼굴을 대충 문지른 후, 허허 웃어 보였다.
상황은 조금씩 좋아질 거야. 율시가 "정화 구역"의 위치를 이미 확인했을 거잖아?
나중에 율시가 언급한 "정화 구역"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상황은 더 좋아질 거야!
율시도 "정화 구역"엔 그 빌어먹을 퍼니싱이 존재하지 않고, 괴물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그곳에 도착하면, 직접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돌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어질 거야.
그때가 되면... 헤헤, 우선 너한테 여자 친구부터 찾아줘야겠다. 아이 좋아해?
잘... 모르겠어.
아, 난 아이가 정말 좋더라!
안타깝게도 난 내 아내와 오래전에 이산가족이 됐거든. 그녀를 본 적은 없겠지만, 그녀는 정말 예뻤어.
그녀를 본 순간, 반짝이는 큰 눈에 반해버렸지.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그녀처럼 큰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가미라는 중얼거리며 말을 이어갔고, 게리는 멍해졌다.
게리는 한 번도 그런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 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 안정된 거처가 생길 수도 있으며, 아이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
톡...
풀숲 속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지?
뭐?!
하던 일을 멈춘 그들은 희미한 희망을 품은 채 주위 소리에 귀 기울였다.
흙이 미묘하게 진동하더니, 야수에게 쫓기는 영양 무리처럼, 혼란스러운 발소리가 순식간에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어서 도망쳐!
도... 도망쳐!!
게리의 소리가 풀숲 사이를 빠르게 달리며 도망치던 유랑민들의 목소리와 겹쳤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합 재난 구역의 범위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
마지막... 데이터...
화면이 몇 차례 깜빡이더니 영상이 중단됐다.
이게 이 구조체 소대가 마지막으로 전송한 임무 영상이다.
다시 위치를 추적했을 때, 그 구역은 이미 적조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이 소대의 마지막 임무는 정화 구역 가장자리에서 이합 생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위치는 정화 구역에 매우 가깝다.
이합 재난 구역이 정화 구역의 공간을 압박하고 있어.
우리도 모르는 곳에서...
적조는 더 많은 생명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굶주린 듯 동물, 식물, 인간, 구조체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모였고, 안을 수 있는 모든 생물을 끌어안았다.
세상 전체를 자신들의 악몽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것만 같았다.
진홍색 바람과 초록 이끼 같은 비, 불길한 보라색으로 물든 땅은 숲을 빠져나가지 못한 유랑민들의 비명과 함께 퍼져 나갔다.
적색 액체가 구불구불한 개울처럼, 숲의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넝쿨이 "개울" 뒤로 조용히 뻗어 나가자, 평온했던 숲이 비명으로 가득 찼다가 다시 이질적인 고요함에 빠졌다.
적조다! 가미라 아저씨! 빨리 도망쳐!
게리는 필사적으로 가미라를 끌어당기며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인간의 다리는 거센 적조보다 빠를 수 없었다.
잔인한 학살이나 무심한 장난처럼, 끈적거리는 액체가 웃음소리를 내면서 뒤처진 유랑민들의 발목을 감쌌다.
적조와 함께 나타난 이합 생물은 넘어진 인간을 유심히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고르는 듯했다.
아악!!!
땅에 깊은 손톱자국이 남겨지더니 유랑민 또 한 명이 적조 속으로 사라졌다.
윽…!
땅을 디디고 있는 맨발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조가 게리의 발목을 스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저씨... 어서 가!
게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몇 걸음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가미라를 힘껏 앞으로 밀쳐냈다.
아아아아아!!
뜨거운 눈물이 거친 뺨을 타고 내렸다. 하지만 가미라는 뒤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차가운 액체가 그의 발을 덮쳤다.
윽...
가미라가 절망한 채 쓰러졌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이 적조가 이 땅을 덮어가고 있음을 알렸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오직 쉰 비명과 절망적인 중얼거림뿐이었다.
게리...
질퍽한 적조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기어갔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아...
가미라... 게리!
얼음 같은 푸른 빛이 적조를 가르더니, 자동차 엔진 소리와 수송기가 착륙하는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지휘관님! 저쪽에 사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