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
11월 9일, 22:03, 현재
야항선의 구룡파 본부, 지하 벙커
나한테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잖아!
조풍의 분노가 작전실 가득 울렸다. 그리고 지도 테이블 근처에는 둘로 부러진 펜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나한테 약속했잖아! 빛의 벽만 재가동할 수 있다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거라고!
그걸 재가동시키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지 알아? 그렇게 애썼는데, 결과가 뭐야! 어떻게 됐냐고?
점점 더 많은 퍼니싱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 이게 처치한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죽었는지 알기는 해! 이게 다 헛된 일이 됐다고!!!
작전실에 있는 구룡파들은 숨조차 깊게 쉬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의 지도자가 이토록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조풍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바닥에 내던진 펜을 주웠다.
미안하군.
난 그저 화서의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야. 화서가... 아마도 결정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
이제 보니... 빛의 벽은 이합 생물의 형태만 소멸시킬 수 있고, 그것의 퍼니싱 본질은 소멸시킬 수 없는 것 같아.
지도 테이블 위에 있는 통신 단말기가 깜빡이며 소리를 냈다.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야.
지금 누가 책임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포뢰가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공격 속도는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었어.
문제는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예요.
어쩌면... 시민들을 모두 야항선에 태워 항구에서 탈출해야 할지도 몰라.
내항구에 정박 중인 야항선이 외항구의 퍼니싱 봉쇄선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조풍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야항선은 고농도의 퍼니싱 환경을 통과할 수 없어.
남쪽 외항구를 억지로 통과하려 한다면... 야항선은 철로 된 관이 되어버릴 거야.
마지막...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한데, 그 방법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기계 안에 담긴 의견 상자 따위는 필요 없어.
알겠어.
테이블 위의 통신이 반대편에서 끊겼다.
어쨌든,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순 없어요.
머지않아 이합 생물들이 구룡 지하의 운송 터널을 통해 퍼져나가게 될 거예요.
철수를... 어디로 하라는 거죠?
우리 뒤에는 구룡밖에 없어요.
구룡성 뒤로는 많은 산악 구역과 내륙에는 안전 구역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철수하게 된다면, 언젠가 그들이 집 앞에 다시 나타날 거예요.
나... 나한테 한 가지 방법이 있어.
함영 옆에 조용히 있던 로봇이 갑자기 표시등을 켰다.
슐츠?
맞아. 지금 보니 그 자의식을 가진 로봇들도 과학 이사회에서 나온 것 같아. 이 보고서에 언급된 로봇 모델들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겠어.
이 로봇들을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문명과 로봇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할 수도 있어. 어쩌면 그 로봇들도 벌써 상당한 규모의 조직을 이뤘을지도 모르겠군.
포뢰 옆에 "언니"라고 불리는 "함영"은 특별할 게 없어 보였지만, 그녀 곁에 있는 로봇은 방 안에서 유일한 이질적인 존재였다.
혹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가능성 하나... 그리고 진화의 길에서 필연적인 결말.
무슨 뜻이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리는 신중하게 슐츠를 주시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천천히 옆에 있는 총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침입자들로부터 완벽히 교란받지 않는... 무기의 세계.
지휘관이 소리침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총을 뽑아 그 로봇 방향으로 겨누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어 버렸다.
컥...
날카로운 칼날이 함영의 등을 뚫고 가슴을 관통했다.
하지만 함영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은 예상과 달리 피가 아니었다.
로봇...
함영 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안녕. 인간의 껍데기를 둘러쓴 위선자여.
작전실이 너무 좁았기 때문인지, 루시아와 크롬은 무기를 꺼낼 새도 없었고, 사전에 준비하고 있던 리만 즉각 반응할 수 있었다.
펑!
한 발의 총탄이 함영의 얼굴을 스치고 그녀 뒤의 벽에 박혔다.
비열한 녀석...
그 로봇은 함영을 방패 삼아 리의 총탄을 피했다. 함영은 가슴을 꿰뚫은 칼날에 마치 인형처럼 조종당하고 있었다.
곧 끝날 거야.
그 로봇의 머리 위에 있는 파란빛 표시등이 점점 더 빈번하게 깜빡였다.
당신... 교회를... 배신한... 건가요?
아니. 교회가 교회를 배신한 거야.
함영의 몸에서 칼날이 뽑히자, 그녀는 끈이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곧 끝날 거야. "수석".
지휘관의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은 루시아가 칼을 빼들고 깜빡이는 파란 빛 로봇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던 순간이었다.
곧 끝날 거야. "수석".
지휘관의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은 리가 깜빡이는 파란 빛 로봇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발사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긴 어지러움과 고막 옆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만 남아 있었다.
작전실은 강렬한 폭발로 인해 먼지로 가득했다. 그 폭발은 마치 뼛속까지 부숴버린 것처럼, 지휘관의 몸은 모든 뼈마디가 치열하게 저항하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player name] 님! [player name] 님! 리브! 반즈!
난... 될 것이다.
사신이...
아아...
포뢰는 분노를 표출하며 회선의 칼날로 이미 자폭으로 절반만 남은 로봇을 반으로 찢어버렸다.
그럼에도, 먼지 속에 떨어진 파손된 발성 장치는 마지막 에너지를 짜내 기묘한 유언을 남겼다.
난... 복수할 것이다.
난... 살아남을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공중 정원
11월 9일, 22:12, 현재
과학 이사회 2부, 응접실
지금 나에게 쿠로노 의원을 믿으라고 하는 건가?
그럴 필요 없어.
리스트는 의미심장하게 아시모프의 옆에 있는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아시모프도 그걸 깨달은 듯 일부러 보고서를 멀리 밀어냈다.
하지만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만약 쿠로노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의회는 그 안건을 쉽게 통과시키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넌 그 보고서를 손에 넣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서 지금 그 과실을 거두러 왔다는 거야?
난 "공유"라는 단어를 더 좋아해.
아시모프는 잠시 망설이다가 보고서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내가 적절한 시기에 이걸 전부 공개할 거란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일찍 날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지?
난 네가 하려는 일을 막지 않을 거야. 반대로 쿠로노가 널 막으려 했다면, 넌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과학 이사회에 있지도 못했을 거야.
정보와 지식은 곧 힘이자 권력이지.
다시 말하자면, 네가 지금 쥐고 있는 권력은 공중 정원에 있는 그 누구보다 커.
...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면, 조용히 하고 있어.
그럴 거야.
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통신 단말기의 다른 쪽에 자리에 앉았다.
아시모프는 보고서를 다시 밀어낸 뒤, 옆으로 몸을 돌려 통신 단말기를 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아시모프가 즉각 경계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상황이야?
좋아.
아시모프는 옆에 있는 리스트를 흘낏 바라본 뒤, 이어서 말했다.
오늘 오후 그 보고서에 따르면,
맞아.
그 보고서의 목록표를 따라 몇 가지를 찾아냈어.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연결됐는지를 지금은 확신할 수 없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슈탈트 계획"은 황금시대의 과학 이사회 제3 개발부에서 맡아서 연구한 게 맞아.
그 자료에 따르면... 구룡에서 이사회로 돌아와, 제3 개발부 부장으로 연구를 맡은 사람은 비리야가 아니었어.
그 사람의 이름은 이고르·네베르예비치·란다우야.
확실히 그쪽 출신의 과학자야. 북극 항로 연합이 설립되기 전에는 엘리자베스 대학의 교수였고, 황금시대에도 꽤 유명한 학자였어.
그가 구룡에서 이사회로 돌아온 이유는 예전에 구룡에게 고액으로 고용되어 부희 연구소의 특별 자문가로 재직했기 때문이래. 그는 적어도 5년 이상을 구룡에서 생활했다고 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학자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지금 너에게 모두 보내줄게.
그래. 맞아.
그의 연구 범위가 아주 넓어서 어떤 부분은 물리학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야. 하지만 내가 데이터베이스에서 북극 항로 연합 자료와 교차 검증해 봤는데, 틀림없어.
맞아.
아니. 도미니카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야.
여기에는 뭔가 다른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내가 계속 조사해 볼게.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그 구룡의 과학자 비리야야. 그가 과학 이사회에 임명된 후, 란다우 박사 밑에서 일했어. 다시 말해, 비리야는 게슈탈트의 핵심 연구에 직접 참여했다는 거야.
그래서 게슈탈트가 완성된 후, 그는 구룡으로 다시 돌아가, 화서 연구를 이끌었어.
맞아. 그래서 내가 다른 것들을 좀 더 조사해 봤어.
아시모프는 옆에 있는 리스트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게슈탈트와 공중 정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있어.
감사원의 행동이 힌트가 됐는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퍼니싱의 특성 정보와 게슈탈트 내 일부 구역 내용을 비교, 대조해 봤어. 그런데 게슈탈트 코어가 지상에서 공중 정원으로 이동하기 전에 퍼니싱에 침식된 적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히 게슈탈트를 재검사해 봤어. 하지만 침식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어.
와타나베의 의식의 바다에서 봤던 그 장면을... 이전에 네가 말해준 적이 있잖아.
이것들... 그리고 이것들!
이건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들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이 바이러스들을 막아야 합니다!
맞아. [player name]. 이것도 네가 예전에 와타나베의 의식의 바다에서 본 정보를 종합해서 교차 확인한 결과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니트를 제외하고 게슈탈트가 어떻게 퍼니싱 침식을 제거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
확실한 건, 게슈탈트 코어를 과학 이사회의 깊은 지하에서 철수시키는 작전 중 마지막 순간에 정체불명의 외부 힘이 게슈탈트 깊은 우물에 침입해 퍼니싱 농도를 상승시켰다는 거야.
아직 몰라.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어.
대이동 시, 그 기록이 유실된 건 실수와 혼란 때문이 아니야. [player name].
누군가 일부러 그런 거야.
맞아.
하지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공중 정원과 은하계 탐색 그리고 은하계 식민 계획에 관한 것들이...
우리가 지금 잘 알고 있는 공중 정원의 모함, 이 이민함을 "에덴-II형"이라고 부르지. 이건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초기 실험선 중에 "에덴-I형"도 존재했어. 이건 이론과 항행 강도를 검증하기 위한 소형함이었고, 이 실험선을 추진한 이가 바로 곡이야.
곡의 추진과 투자 덕분에 구룡은 과학 이사회에서 이 실험선의 건조 작업을 완전히 인수할 수 있었어.
그 외에도 곡은 다른 곳에서도 공중 정원에 힘을 보탰던 것 같아.
그래. 맞아.
그건 곡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어.
또 한 가지는 공중 정원이... 사실상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예전에 과학 이사회의 은하계 탐색을 위한 "동방 계획"의 정보를 찾아냈어. 이건 당시 세계 정부에서 제안한 은하계 식민을 위한 "에덴 계획"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 또는 치올콥스키 발사 센터... 이곳은 구룡 영토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고, 북극 항로 연합과도 인접해 있어.
은하계 탐색을 위한 "동방 계획"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이 발사 센터도 구룡에서 건설했어.
결과상으로 쉽게 말하면, 에덴-I형과 II형을 제작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이사회는 외부 공간 탐사 임무를 시행했는데, 그때 사용한 "새벽-III"이라는 우주 비행선은 영점 에너지 원자로 대신 융합 원자로를 사용했어.
다시 말해, 처음에는 융합로가 은하계 탐색과 식민의 동력 방안으로 가장 먼저 제안되었고, 이미 검증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잠깐.
네 말은...
음... 그 이유도 복잡해.
하지만 리스트는 나에게 우리의 일을 방해하거나 영향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래서 네 말은 지금의 공중 정원 융합로를 동력으로 항행과 식민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이 일이 기술적으로 검증된 적이 있다고만 말했어.
융합로의 항행 효율은 영점 에너지보다는 낮아.
알았어.
리스트는 무거운 얼굴로 제2 개발부의 응접실을 떠났다.
아마...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player name]. 네 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어.
구룡
11월 9일, 22:37, 현재
구룡 육교항구 지하 화물 운송 통로
구룡 순환 도시 내부로 향하는 전환 차량
노르만 광업 그룹!?
이 일이 왜 광업 계약업자와 관련이 있는 거죠?
그게 바로 과학 이사회의 지하 도시와 게슈탈트 깊은 우물을 뜻하는 것 같아요.
노르만 그룹의 재력과 능력이라면, 확실히 가능했을 거예요.
순환 도시 지하에 말이야?
어둑한 차량의 조명 아래, 이전부터 우울해 보였던 두형은 통신 단말기를 사람들 앞에 다시 놓고는 통신 채널을 열었다.
그 통신 단말기는 계속 깜빡이고 있었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에 있어서 인지 신호가 불안정해 자주 소리가 끊겼다.
"수석"이 말한 것처럼...
구룡 지하... 에는 정말 다른 도시가 존재한다.
너희에게는 퇴로가 없어. 하지만 순환 도시로... 들어갈 수 있어.
너희에게... 이 도시의 진입을 허락할게.
만세명의 대문... 역사의 대문이... 너희에게... 열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