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이 얼굴을 스치자 풀 내음이 느껴졌다.
와타나베, 어머니 묘에 헌화하렴.
네...
손에 든 꽃다발을 묘비에 놓았다.
이제부터는 네가 스스로 해내야 해. 두렵니?
와타나베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모두가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럼, 내가 조금 더 같이 가줄게.
신은 그 작은 손을 잡고 묘지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집, 익숙한 거리, 그들이 밟아온 모든 땅을 지나갔다.
소년은 조금씩 자라나, 어리숙함을 벗고 청년이 되었다.
난 여기까지다.
신은 예전처럼 와타나베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가볍게 두드렸다.
가렴. 그리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대를 걸어보렴.
신은 와타나베를 그 사막으로 밀어 넣었다.
와타나베, 오랜만이야.
브루스, 그날 나도 갔었더라면...
그럼,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도자 한 명을 잃게 되는 거지.
정말 아쉽네.
애송이, 내가 미리 오지 말라고 했잖아!
와타나베, 전에 우리가 했던 말 기억해?
최전선에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과거를 후회할 필요 없어. 넌 많은 사람들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게 했고,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했으니까.
네가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물속의 달이 아니라 진정한 밝은 달이야.
너는 네가 약속한 대로, 어둠을 가르는 칼이 되었어.
그러니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앞으로 나아가!
과거의 환영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눈꽃으로 변해 흩날렸다.
와타나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발밑의 땅을 잊지 않았어.
그게 아마 내가 너에게 진 이유인 것 같다.
……
지금도 우리의 전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
모두 기억하고 있어. 나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있어.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어...
와타나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수장님, 저와 형은 당신을 따라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와타나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구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봐.
많은 곳을 지나...
마침내 와타나베는 "죽음"이라 불리는 모래 폭풍 앞에 섰다.
힘내렴.
어머니?
와타나베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와타나베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처음으로 건넨 격려의 목소리였다.
힘내렴. 난 내 아이가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갈 거라 믿는다.
……
와타나베는 망설임 없이 모래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Video: S 와타나베 버전_문안 전환
윽...
인공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전투를 맞이하게 될 줄 알았던 와타나베는 믿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깨어났나?
밸러드가 무너진 폐허를 떠받치면서 안전 공간을 만들어냈다.
철근이 밸러드의 몸을 꿰뚫었고, 순환액과 불꽃이 와타나베의 얼굴에 튀었다.
밸러드... 너?
흐흐, 이번에는 네 운이 좀 좋은 것 같군. 아니, 이건 아마도 내 업보겠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살아야 하니까.
우주 무기가 작동하지 않은 순간, 나는 우리 중에 반드시 한 명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우리가 모두 죽으면, 망각자는 방향을 잃게 될 것이고, 증오할 대상조차 없어지게 되면 진짜 내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럼, 전사들의 고통, 후회, 침묵 그리고 흘린 피는 모두 헛되게 된다.
……
왜 우리가 모두 살아남을 수 없냐고 묻고 싶은 건가?
생명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쌓여 있던 억울함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밸러드는 다시 "밸러드 아저씨"라고 불리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제, 밸러드가 와타나베에게 마지막 교훈을 줘야 할 때가 됐다.
네 죽음을 증오의 도화선으로 이용해야 했을 때, 난 이미 사태를 통제할 능력을 잃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건 내가 너처럼 대중을 이끄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과, 망각자와 공중 정원의 갈등이 전쟁을 벌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내가 우리의 우위를 내세우고, 역사의 진실을 내세웠더라도, 그들은 나를 따르지 않았을 거고, 전쟁의 불길도 타오르지 않았을 거다.
밸러드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제 너의 귀환 소식이 퍼졌으니, 나는 네 손에 패배한 거나 다름없다.
비가 내리면 원한의 불길은 지속될 수 없으니까.
만일 오늘 패배한 이가 너였다면, 난 당연히 네 죽음을 사실로 만들어 내 계획을 계속 추진했을 거다.
이제 이해됐나?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결투야. 승자는 미래를 결정할 수 있고, 패자는 역사의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 남들에 의해 마음대로 덧칠될 수밖에 없지.
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거지?
난 이미 무대 앞에 나섰다. 내가 말하는 건 내 신분의 폭로가 아니라, 내 목적이야.
나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다. 공중 정원이 지상과 떨어져 있으면서 그들이 편히 지내고 있는 한, 인간은 절대 하나로 뭉칠 수 없다.
퍼니싱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 시대의 척량을 두 동강 낸 건 바로 대철수였다.
원래 이어져 있던 척량이 분리되면서, 하나는 하늘로 날아갔고, 하나는 땅으로 떨어지게 된 거야.
지상과 하늘의 거리는 너무 멀다. 이렇게 끊어진 척량이 어떻게 시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겠나?
자칭 "세계 정부"라는 배신자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싸우는 동포가 아니야.
그렇지 않았다면, 전통적으로 명예로운 직업이었던 구조체를 그들은 억압하지 못했을 거야. 그들은 전사를 필요로 하면서도 전사를 두려워했으니까.
숨어 지낼 수도 있잖아.
나보고 그들과 같은 배신자가 되라는 건가?
상대방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꿰뚫린 가슴에서 불꽃이 더 거세졌다.
잘 기억해. 네 적을 동정하지 마라. 네가 그와 어떤 과거를 가졌든, 어떤 관계를 맺었든 말이야.
상황이 반대였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널 보내줬을 거야.
너에게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입장이라는 것이고, 네가 지켜야 할 선이다.
네 입장, 네 신앙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지?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포들 그리고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이 땅을 위해서 싸운다.
그럼, 너는 그것을 위해 모든 위협을 제거하고, 모든 쓸데없는 감정을 희생할 수 있나?
……
할 수 있다!
하...
지금도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
내가 죽어도 미사일이 발사될 걱정은 하지 마라. 네가 오기 전에 연결을 이미 해제했으니까...
구시대의 유산이니, 잘 받아 둬라.
밸러드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약해졌다.
하필 예전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다니... 내게 내려진 벌인 건가?
밸러드 가슴에 있던 빛마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네가 새로운 척량을 지탱할 수 있을까?
밸러드가 걱정하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밸러드는 로켓이 구름을 뚫고 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환호 소리, 짜증 나는 광고 소리 그리고 빗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너, 너무 늦게 온 거 같은데?
바크하우스?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피곤하지도 않나?
……
피곤해. 그래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
아직도 놓지 못한 게 있는 건가?
……
빗소리가 그의 침묵을 대신했다.
네가 벌인 일 때문에, 널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이들이 있어서, 내가 대신 데리러 왔어.
가자, 이제 떠날 시간이야.
그래.
밸러드는 바크하우스와 함께 빗속으로 걸어갈 준비를 마쳤다.
참. 이거 받아.
바크하우스 손에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시가 한 갑이 들려 있었다.
지난번에 내기에서 진 거.
무슨 내기?
시가를 받는 순간, 밸러드는 자신이 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것만 같았다.
새로운 척량을 지탱할 이는 내가 아니야.
바로 우리야!
하...
저 녀석, 믿고 맡길 만한 인재인 것 같지 않나?
밸러드는 바크하우스의 손에서 시가를 받아서 들었다.
맞아.
시가에 불을 붙인 밸러드는 익숙한 모습이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자신의 묘비를 향해 걸어갔다.
구름이 걷히고 비가 그치자,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