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으로 세운 척량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를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그는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였으며, 모두의 믿음직스러운 전우였고, 망각자가 가장 신임하는 수장이었다.
반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수색은 그 어떠한 좋은 소식도 가져오지 못했다.
기체 잔해와 동포의 시신 몇 구가 우리가 찾은 전부였다.
그렇기에 매우 비통한 심정으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수장, 와타나베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음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항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한 사람이 떠나면 또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것이고, 우리의 손에 승리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얻어낼 때까지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기념비 아래에서 연설하는 밸러드의 낮고 엄숙한 목소리는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감정을 움직였다.
와타나베를 처음 만났을 때는 퍼니싱이 아직 폭발하지 않은 황금시대였다. 그는 당시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나는 와타나베에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평범한 아이였던 그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자신이 어떻게 성장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와타나베를 다시 만났을 때, 예전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 황금시대의 평범한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와타나베는 재앙을 이기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퍼니싱 폭발로 와타나베의 어머니가 희생되어, 그는 원래의 꿈을 포기하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와타나베가 말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군인, 구조체, 수장... 모두 다 아니었다. 와타나베가 되고 싶었던 것은
더 나은 존재, 자신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구름이 번개에 의해 찢겨 나갔고, 그 틈새로 오랫동안 쌓여 있던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빗물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면서 옷과 머리를 흠뻑 적셨다.
하지만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고,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와타나베는 소외된 이들을 대변할 수 있고, 약자를 보호할 수 있으며,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 와타나베가 항쟁 속에서 희생되어, 자신이 되고 싶었던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
천둥소리는 밸러드의 굳건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막지 못했고,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분노도 빗물로는 끌 수 없었다.
와타나베는 우리를 이끌고 이 항쟁을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얻게 해주었다.
와타나베는 이 세상에 정의를 되찾아주었고, 황폐한 이 땅에 기만과 학살 그리고 생존 경쟁만이 존재하지 않음을 모든 생존자에게 일깨워주었다.
서로 돕고, 사랑하며,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이 폐허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는 어떤 동포도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희망의 불씨를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전할 것이다.
공중 정원의 배신자들은 와타나베의 기체를 없애면 이 불꽃이 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밸러드가 주먹을 꽉 쥔 뒤, 가슴 앞에 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이 불꽃은 희생으로 인해 꺼지지 않는다. 모든 영혼이 장작이 되어 이 불꽃을 더 밝게 타오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억압으로 인해 무감각해진 동포들을 따뜻하게 하고 깨어나게 할 것이다.
공중 정원은 무력으로 진압하면 반항의 불씨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또 틀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 그 배신자들의 위협이 어떻게 쇠사슬을 깨뜨리려는 우리에게 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싸우는 이들을 존경해 왔다. 하지만 공중 정원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사들을 억압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정권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높은 단상에 선 밸러드가 현장에서 모든 이들을 둘러보았다.
반항이란 어쩌면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항하지 않으면 남는 건 빈 껍데기뿐이다.
우리는 이미 망각자에게 속한 구역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것인가?
이 기념비를 보아라. 황금시대의 이 기념비는 통일의 상징이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이곳에 모여, 희생된 수장과 동포들을 애도하고 있다.
하지만 희생자들이 원하는 것이 과연 추모일까?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추모 방식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완수하고, 그들이 원하는 미래를 대신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것이다.
팔을 들어 올린 밸러드가 내리는 빗물을 깨트렸고, 그의 격정적인 목소리는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포들이여. 지금 보육 구역 안에는 여전히 해방을 기다리는 억압받는 영혼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오늘 이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이 망각자 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믿음직한 전우들은 최전선에서 자리를 지키며, 발생할지도 모를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단순한 추모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결의를 다지는 자리다!
우리는 희생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아, 그 썩어빠진 억압의 사슬을 끊어낼 것이다!
이 세계에 다시 정의를 세우고, 존엄을 모든 사람에게 돌려주자!
모두 기억하라. 이 저항에는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하나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결과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승리! 승리! 승리!
밸러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귀청을 찢는 듯한 환호성이 하늘까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음울한 구름도 깨질 것만 같았다.
밸러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한동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또 이런 날씨군.)
세계 정부 국립묘지
4:00 PM
세계 정부 국립묘지. 4:00 PM.
츠루코. 또 왔어.
묘비 앞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놓은 남자의 연한 파란 눈동자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리운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무덤의 형태는 매우 간소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이름과 출생 사망 연도 같은 짧은 정보와 묘비명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전쟁과 함께 이곳에 잠들었고, 평화를 선물로 남겼다.
와타나베, 어머니 묘에 헌화하렴.
네. 아버지.
묘비 앞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은 남자아이는 손수건으로 묘비 위의 나뭇잎을 치웠다.
신, 와타나베, 먼저 와 있었구나. 이번엔 내가 늦었네.
작은 길 반대쪽 끝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걸어왔다. 와타나베에게 있어 잦은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부모님 외에 가장 익숙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밸러드였다.
가끔 어린아이가 지나치게 혹독하다고 느낄 정도로 와타나베를 훈련시키곤 했지만, 밸러드의 모습과 기운은 항상 와타나베가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밸러드 아저씨!
교관이라고 불러야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해도 좋아.
밸러드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묘비 앞에 놓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 외에도 또 다른 세 개의 꽃다발이 묘비 위에 정갈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꽃다발은?
밸러드가 신에게 물어봤다.
한스 선생님이 헌화하신 거야. 묘지 관리인이 그러는데, 선생님도 매년 오신대. 일부러 우리와 시간대를 달리해서 오신 것 같아.
너와 츠루코는 그분이 가장 아끼는 학생들이었어. 너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소개 덕분이었으니까.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그로 인해 츠루코가 속한 소대가 전멸하고 말았지.
그는 지금도 그 일에 대해 후회하며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아.
전쟁이란 원래 그래. 책임자를 찾아낸다고 해서 그 상처가 아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오직 평화로만 치유될 수 있어.
사실 난 일찍이 그걸 깨달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마 평생 전쟁만 해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인 것 같아.
다행히 우리도 이제 평화를 얻었고, 상처를 치유할 충분한 시간이 생겼어.
……
왜 말을 멈추는 거야?
사실...
잠깐. 그게 너희 안전 정보국의 비밀 사항이라면 말할 필요 없어.
비밀 사항이라기엔 좀 뭐하게 됐지. 아놀드가 큰 소리로 의장하고 대판 싸울 때, 아래층에 있는 환경위생 부서까지 다 듣게 됐으니까 말이야.
너희 우주군만 아직 그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야.
밸러드는 보기 드물게 무기력한 어조로 대답했다.
너는 아놀드 중장을 언급할 때마다 그러더라. 그래도 네 상관이잖아. 물론 너는 별로 존중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가 안전 정보국에서 쌓은 공로는 인정해. 하지만 그게 전부야.
사무실에서 정정당당하게 청어 통조림을 열어 놓는 사람을 존경할 수 없어. 설령 그가 한스와 톨리드 의장과의 농담을 핑계로 그런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말이야.
휴...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군사 지출 여섯 번째 축소안 기억 나?
우주군의 예산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육군 쪽에서는 많은 삭감이 이루어졌다고 들었어.
마지막 연합 헌장 수정 후, 각국은 대부분 군사 지휘권을 해제했잖아.
이제 지구상에는 외부의 적이 없기 때문에, 국가 단위의 군대도 필요 없게 됐지.
매년 이런 제안이 통과되는데, 올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어?
반대라기보다는 수정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게 더 맞을 거야. 어떤 의미로는 더 이상 군비 축소 예안이라고도 할 수 없어.
톨리드 의장이 의회에서 "고용제"를 제안했는데, 일부 무장을 고용 가능한 단위로 분류하겠다는 거야.
만약 이 의안이 통과된다면...
만약 이 의안이 통과된다면, 재벌과 경제체들이 세계 정부의 무력 기관에 개입할 기회를 얻게 되는 거잖아.
톨리드. 이번 제안의 목적은 뭐지?
한스? 오늘 묘소에 가는 날 아닌가?
아침에 미리 다녀왔어. 오후에 "세계 정부 상무 회의"가 있어서 말이야.
여기, 새 안경이야. 오는 길에 네 비서를 만났는데, 너를 만난다니까 주더군.
지휘복을 입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안경을 건넸다.
이게 필요하던 참이었어.
톨리드는 얼굴에 쓰고 있던 반쪽이 깨진 낡은 안경을 벗은 뒤, 새 안경으로 교체했다.
후... 올 때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젠 계단이 잘 보여서 다행이군.
아놀드... 미리 상의했는데도, 기습 공격을 할 줄이야.
일반적으로는 투영으로만 참석하는 상무 회의인데, 이번에 직접 출석할 줄 몰랐어.
역시 "사냥개"라고 불리는 안전 정보국장답게, 촉이 아주 예리해.
자업자득이야. 너도 아놀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잖아.
그들에게 완전히 유리한 의안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내놓다니... 너는 경호팀이 빠르게 대응해 줘서 운이 좋았어. 그렇지 않았으면 깨진 게 안경뿐만이 아니었을 거야.
의장이 아침 뉴스에 얼굴이 멍든 채로 나올 수는 없지. 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해 의료 연합체에 예약해야겠어.
먼저 가볼게.
잠깐. 내 질문을 얼버무리고 지나갈 생각은 하지 마.
늙은 여우 같으니,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 네 속셈을 솔직히 말해봐.
연합 정부가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함께 일해왔잖아. 그래서 네가 문서상에 내놓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그럼, 왜 굳이 캐내려고 하는 거지?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이유는 없어. 그냥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첫 번째 세계 정부 의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난처함을 숨기려는 듯 통일을 기념해 세운 거대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산업 정체, 신념의 흔들림, 전쟁의 수렁.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나타나면, 단결되어 있던 원래 상태에 균열이 생기게 될 거야.
세계 정부는 "전 인류"라는 이름의 거대한 호수를 담고 있어. 그리고 작은 균열 하나로도 이 댐은 붕괴할 수 있어.
도미니카와 과학 이사회는 신념의 문제를 해결해 줬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모여 인류에게 기적을 하나씩 실현해 줄 때, 그들이 제안하는 이념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고 방향을 잡을 수 있었지.
그리고 군부가 수년간 진행한 평화 행동을 통해, 극단적 사상과 극단주의자들은 파괴의 수단과 생존 기반을 완전히 잃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하지만 한스, 우리는 이념도, 힘도 통일했지만 아직 자원은 통일하지 못했어.
톨리드의 눈에 구형 조각상이 비쳤다. 그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조각상 표면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조각상 밑 기념비에는 평화 행동을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의 이름과 함께 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모든 인간이 세계를 누릴 수 있기를.
여전히 대부분의 자원은 소수의 손아귀에 있어. 그들은 신념에 의해 움직이지 않아.
그들은 기사가 나오는 소설 속 재물을 지키는 드래곤과 같아. 황금과 옥으로 쌓인 산 위에서 자면서도, 언젠가 우리가 동굴에 들어와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무력을 사용할 수 없어.
그래서 이익을 교환하겠다는 거야?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자기 목을 매달 밧줄도 팔아넘길 거야. 만약 큰 선물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지금 너의 표정은 그 그룹 대표들이 네 제안을 들었을 때의 표정과 똑같아.
그들과 한통속인 사람만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지.
도미니카와 과학자들이 신념을 지켰고, 너와 네 군대가 전쟁을 해결했으니, 나 같은 속물이 나머지 기초적인 자원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영점 에너지 프로젝트"나 "에덴 계획" 같은 계획은 통일된 자원이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워.
너의 이번 교환은 사나운 맹수를 풀어놓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그들의 힘이 일정 수준으로 커지면, 그들은 세계 정부와 맞서 싸울 자본을 갖추게 될 것이고, 더 제멋대로 행동하게 될 거야.
하지만 이 맹수를 잘 활용하면, 돈을 불러오는 고양이처럼 유용할 거야. 물론 그들을 위해 사슬도 준비해 둬야겠지.
우선, 군대는 고용제로 운영하겠지만, 징병과 훈련 자격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어. 이렇게 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용병 규모가 커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들이 법을 어기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설령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도, 맹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매일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또한, 고용제에 적용되는 것은 육군과 일부 육군의 장비뿐이야. 이로 인해 그들이 다룰 수 있는 무장 능력은 지상에만 한정될 거야.
이런 단순 병력은 육해공과 우주로 이루어진 공격 체계 앞에서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아.
그들도 이 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러면 네 제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게다가 너의 통제 방안도 이상적으로만 보면 그렇지. 중간 관리자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사슬의 효력은 사라지게 될 거야.
그 점은 나도 잘 알아. 이 계획은 원래 장기적으로 시행할 계획이 아니었어.
게다가 그들이 용병을 고용하려는 이유는 원래 우리를 가상의 적으로 상정해서가 아니야.
그들이 단기간 내에 세계 정부라는 "외부의 적"을 해결하거나 타락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부를 공격하게 될 거야.
양식장에 갇힌 물고기들은 결국 서로 삼키고 점령하게 되겠지. 이는 그들의 운영 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이어서, 개인의 의지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들이 서로 잡아먹는 동안, 우리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소대를 구성할 충분한 시간을 마련하는 거지.
머지않아, 우주의 광활한 자원들이 인류의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들어오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그들이 동전을 손에 쥐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드물게 열정적인 표정이 얼굴에 떠오른 톨리드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구름 너머의 무한한 우주를 보고 싶은 듯했다.
에덴 Ⅰ형에 대한 검증 시간을 절반이나 앞당긴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네 임기 10년 이내에 "영점 에너지 프로젝트"와 "에덴 계획" 모두를 완료하고 싶은 거야?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그 정도로 터무니없는 꿈을 꿀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너의 야망에 휘말려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서 내가 연임을 노리고 있는 거지.
……
한스, 지구를 넘어 인류를 이끌어 가는 성취를 거부할 정치가는 없을 거야. 그건 나도 예외는 아니야.
게다가 나도 이제 늙었어. 세계 정부의 위신을 새롭게 드높일 기회를 만들고 싶어.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너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거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참 날카로운 평가군.
이건 단순히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야. 나는 항상 세계 정부를 나 자신보다 우선시해 왔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
만약 그들도 손에 쥐고 있는 동전을 버리고 우주에 베팅한다면 어떡할 거야?
그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주로 눈을 돌리고, 별하늘에 손을 뻗는다면...
톨리드가 몸을 돌리자, 구형 조각상을 통과한 햇빛이 그의 몸에 내려앉았다.
두 팔을 벌린 톨리드가 하늘의 거대한 불덩이 또는 앞에 있는 세상을 껴안으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동포라면, 내가 굳이 복잡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신과 밸러드가 여전히 그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을 보자, 소년의 생각은 점점 먼 곳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묘 아래에는 시신이 없다. 처참했던 공격 전투 중에 극단주의자들은 아직 불안정한 열융합포를 사용했고, 통제 불능의 폭발이 그들과 정부군을 모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직경 400미터의 깊은 구덩이에는 인간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오직 녹아버린 금속과 서서히 식어가는 결정화된 암석만이 남아 있었다.
폭발로 발생한 연기와 먼지는 도시 전체를 뒤덮어 버렸고, 완전히 가라앉는 데까지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날이야말로 희생자들이 진정으로 흙으로 돌아간 날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그날은 전쟁과 혼란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희생자의 가족들에게는 슬픔의 시작이었다.
왜요? 왜 어머니는 그 위험한 임무에 꼭 가야 했던 거죠?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현장의 참혹한 사진들과 텔레비전에서 반복 재생되는 보도는 와타나베에게 연기 냄새와...
폭발의 순간 인체가 어떻게 산산조각 나는지를 생생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순간은 희생자들 그리고 어머니가 죽음으로 고정된 순간이었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와타나베의 위장은 경련을 일으켰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다친 것을 보기만 해도 어지럼증을 느꼈다. 왜냐하면 와타나베가 보는 것은 망막에 새겨진 신선한 상처가 아닌...
결코 지울 수 없는 죽음의 환각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와타나베는 자리에 없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같은 질문을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슬픔을 안겨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밸러드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걱정이 됐다.
조숙한 남자아이의 마음속에는 너무 많은 걱정과 염려가 있어서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낯선 젊은이가 와타나베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조용히 묘비 앞에 추모의 꽃 한 다발을 놓고, 고개를 숙이며 애도했다.
신과 마찬가지로 군인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군복을 입고 있었다.
책임?
그럼, 어머니이자 아내의 책임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와타나베는 상대방에게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경계심마저 풀린 와타나베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질문을 꺼냈다.
세상에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군인들이 많아.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어머니가 유일한 아내였고, 나에게는 유일한 어머니였어.
우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야?
나는 어머니처럼 빈 비석 하나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물방울이 나뭇잎을 두드리는 소리가 젊은 군인이 하려던 다음 말을 끊었다.
갑작스러운 비는 남자아이의 걱정 가득한 마음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타나베, 이제 가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어느새 밸러드와 아버지는 함께 국립묘지의 출구에 가 있었다.
네.
코트를 벗은 와타나베는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막으며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와타나베가 뒤돌아보자, 방금 그 이상한 젊은이가 다음 묘를 향해 또 다른 추모의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았다.
와타나베는 장대비 속에서 젊은이의 망토에 새겨진 방패와 날개로 구성된 표식을 희미하게 확인했다.
와타나베.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니?
가요.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와타나베는 코트 아래 몸을 웅크리며 출구로 뛰어갔다.
장대비 속에서, 그 젊은 군인의 모습은 해상의 등대처럼 묘비로 이루어진 암초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고독하면서도 굳건하게.
퍼니싱 폭발까지 2900일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