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가 혹사를 피해 여기저기 도망치며 다니는 사이, 깊은 함정에 빠진 영혼 또한 자신만의 탈출과 도망의 여정을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 채워진 족쇄는 테이블과 바닥에 여전히 고정되어 있었고, 위쪽 몸만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다행히 흔들거리는 촉감으로 보아 족쇄가 단단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허약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힘만으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도구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포크 한쪽 끝을 꽉 물고 힘껏 뽑아내자, 손등에서 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막 한 가닥의 희망을 보게 됐을 때, 피로가 거대한 바위처럼 눈 앞을 가렸다.
지휘관은 혹사의 말대로, 생선을 먹고 체력을 보충할 것이라고 후회했다.
하지만 족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지휘관은 자세를 바꾼 뒤 이를 악물고 다시 아래로 힘을 주었다. 그러자 마침내 무언가가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포크 손잡이가 휘어진 것이 보였다.
머리를 흔들어 눈앞의 어지러움을 떨쳐내려 했다. 지휘관은 그제서야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휘관은 전장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이후, 자기 몸을 이렇게 허약한 상태로 내버려둔 적이 없었다.
퇴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거짓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휘관은 자질이 있는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은 비밀로 남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혼란스러운 호흡을 가라앉힌 지휘관은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한번 약해진 포크를 향해 힘을 가했다.
포크의 마찰음과 함께 연결 부위를 조금씩 비틀어 움직였다.
쨍! 포크의 끝부분이 두 동강 나면서, 포크의 파편이 관성에 의해 날아가 인간의 뺨에 상처를 남겼다.
다행히 족쇄도 많이 느슨해졌다.
힘껏 손목을 흔들자, 그 위에 있던 족쇄와 못이 함께 빠졌다.
간신히 자유로워진 손을 움직여 얼굴에 있는 핏자국을 닦은 지휘관은 다른 한 손에 집중했다.
한 손이 자유로워지자, 나머지는 쉽게 풀 수 있었다.
몸을 숙여 바닥에 고정된 족쇄를 살펴보았다. 매우 튼튼해 보였지만, 구조가 단순해서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사는 지휘관이 이 포크로 탈출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사의 태도와 말에서 드러난 정보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이건 공중 정원의 배신자와 공모해서 계획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출발점은 이 순간이 아닌, 반드시 추락할 그 수송기에 탑승했을 때부터였을 거로 생각했다.
포크로 발목의 족쇄를 푼 그 순간 문밖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
방에 들어 온 혹사는 테이블 앞에 버려진 족쇄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지휘관?
이미 숨었나 보네?
역시 기억이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안정적인 것 같네.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바로 알잖아.
혹사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감으면서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수납장이나 테이블 밑은 보지 않았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혹사는 낮은 소리로 지휘관을 부르며, 그가 숨은 장소로 조금씩 다가갔다.
서둘러 숨는 과정에서 흘린 핏방울이 근처에 떨어졌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
혹사는 그 핏자국 옆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하면 좋지?
밖은 훨씬 더 위험한데...
그 아이들 말고도 로키도 있는데, 혹시라도 그녀와 마주치게 된다면 곤란한데...
이번이 크틸라 계획의 마지막 기회야. 선생님께서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실 거야.
혹사는 혼자 중얼거리며 벽에 손을 댔다.
크틸라? 크틸라...
아니지. 괴물 씨. 내 말 들려?
등 뒤의 벽이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
힘들겠지만, 꼭 크틸라가 그녀의 "요람"을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줘.
로키가 절대 그 구역을 벗어나게 해선 안 돼.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혹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종이학. 가자.
혹사의 발소리가 조금씩 멀어지자,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등 뒤에서 느껴졌던 뜨거운 감촉은 그저 겁을 주기 위한 연출일 뿐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몸을 겨우 일으켜 좁은 틈새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온몸이 피로와 무기력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이런 상태였던 것은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오랫동안 기절했을 때뿐이었다.
지휘관님. 손이...
리브의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잔영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조금씩 더해져 갔다. 이상한 것이 지휘관인지 아니면 이 이상한 집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저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쳐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맨손으로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동안, 비극적인 놀이공원의 오솔길을 늙은 병사 한 명이 서둘러 지나갔다.
그 늙은 병사는 바로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세 번째 생존자, 성갑충 소대의 슈트롤이었다.
…………
슈트롤은 어쩌다 이곳에 떨어진 걸까?
슈트롤은 성갑충 소대를 떠나던 그날, 소대 지휘관인 바렐리아가 전투 대기실로 불러 은밀한 임무를 내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크틸라 계획? 오래전에 폐기된 말도 안 되는 일에 신경 쓸 필요 있어?
황금시대에 그 이론과 실험은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승격자들에게는 달랐어. 이합 생물이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거든.
정보를 입수한 건가?
응. 과학 이사회 측에서 가져온 자료와 정화 부대의 보고서들이야. 최근 이합 생물에서 몇 가지 변이가 확인됐다고 나와 있어.
결론만 말해. 길게 말하는 건 딱 질색이야.
윗선에서는 우리에게 몇 군데를 조사한 뒤, 정화 부대가 찾고 있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어.
여성이 손끝으로 단말기 스크린을 두드렸다.
왜 정화 부대가 직접 수사하러 가지 않는 거야?
이 무리의 행동은 은밀하고 전이 속도도 빨라.
오. 그쪽에 정찰병이 숨어 있나 보군.
맞아. 그래서 이 일은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해. 두 시간 뒤에 출발할 거야. 흩어져서 행동하고, 정보를 찾는 즉시 알리기를 바라.
누군가 큰 걸 하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조심해. 슈트롤. 맨홀 뚜껑에서 머리를 내밀자마자 적조를 숭배하는 승격자 무리를 만날지도 몰라.
흥. 웃기는군. 나일 리가 없어.
…………
헤바의 예감은 언제나 정확했다.
헤바가 예상했던 대로, 그 평범해 보이던 장소는 혹사의 거점 중 하나였다. 거기서 슈트롤은 조사를 하던 중에 포위공격을 받고 말았다.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나왔지만, 구원의 손길을 건넨 척 다가온 배신자의 공격에 다시 심연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배신자는 바렐리아를 유인하기 위해 슈트롤의 팔다리를 뜯어 눈에 띄는 곳에 버렸고, 슈트롤의 본체는 혹사에게 넘겼다.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슈트롤은 수많은 잔해 속에서 대체할 부품과 무기를 찾은 뒤, 탈출구를 찾으려고 애썼다.
기괴한 미로 속에서 오랜 시간 방황한 슈트롤은 서서히 시간에 대한 감각마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후...
잠시 무기를 내려놓은 슈트롤은 벽에 기댄 뒤, 주머니 속에서 술맛이 나는 박하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이 사탕은 바렐리아가 흩어져서 행동하기 전에 던져준 것이었다. 그녀는 슈트롤이 이런 사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먼저 슈트롤에게 선물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행동은 매우 위험하니까 전투에 연연하지 마.
3일 후에도 성과가 없다면, 일단 복귀한 뒤 다시 전투 작전을 계획할 거야.
헤바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지? 성과를 얻지 못하면 나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
마음대로 해. 3일 안에 네 소식이 없다면, 네가 의료 로봇을 껴안고 술에 취해 날뛰는 영상을 반즈에게 보낼게.
이게 바렐리아 지휘관이 슈트롤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
친구의 일부 기억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입안의 사탕을 깨물며 가면을 쓴 슈트롤은 수색하려던 남쪽 모퉁이에서 다가오는 다급한 발소리를 들었다.
?
다음 순간, 무기를 든 슈트롤은 조금 낯익은 인간과 부딪혔다. 그리고 그 인간의 뒤에는 이상한 괴물이 쫓아오고 있었다.
엎드려!
슈트롤은 기진맥진한 인간을 넓은 손바닥으로 품에 안았다. 그런 뒤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손에 든 무기로 이합 생물을 정확히 찔렀다.
붉은 액체가 튀자, 괴물은 떨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까지 이 지옥 같은 곳에 떨어질 줄이야.
난 성갑충 소대의 슈트롤이야.
오? 날 알아? 이거 참 영광이군.
하하...
말하자면 길어.
슈트롤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으려다 말고 앞에 있는 인간에게 던졌다.
이거 먹고 체력 좀 보충해.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면, 몇 개 더 남겨둘 걸 그랬어.
슈트롤은 한숨과 함께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줬다.
그 자그마한 보라색 승격자가 날 죽이지 않고, 내 팔다리만 뜯어낸 뒤 잔햇더미에 버렸어.
바렐리아 지휘관도 내가 살아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거야. 지휘관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공중 정원으로 복귀하는 중에 수송기가 사고 났다고?
이미 궁지에 몰린 몇몇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상태인 것 같군.
정화 부대가 놓친 자들 말이야.
여기에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가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그런데 체감상으로 한 달 이상은 된 것 같아. 그 이전에는 혼수 상태였거든.
가끔 수송 도구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 같아. 하지만 승격자와 대량의 이합 생물이 지키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최근 며칠 동안은 그 수송 도구조차 보이지 않았어.
여기? 늘? 너도 이 환각처럼 보이는 문과 바닥이 보여?
**, 이 허름한 곳은 생각보다 엄청 넓어. 공중에 떠 있는 문도 꽤 많아서 서로 다른 방들과 연결되어 있어.
연구실, 보육원 그리고 지하 수로도 있더군. 난 내 의식의 바다가 심하게 오염돼서 이런 게 보이는 줄로만 알았어.
인간도 보인다는 건, 이 건물 자체에 실제 환경 시뮬레이션 기능이 있다는 거겠지.
그럴 수도 있어. 그동안 나도 그 녀석을 여러 번 봤어. 하지만 그 녀석은 매번 꼼수를 부려서 도망쳤어. 싸우려 하지도 않았고, 내가 공격할 틈도 주지 않았어.
믿어져? 내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됐을 때는, 키우는 가축을 돌보는 것처럼 날 돌보기까지 했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어. 그 녀석 전신에서 이름의 "혹"만 진짜인 거 같아.
혹사의 말을 너무 귀담아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연기에 능한 놈이라서 농락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흥. "그레이 레이븐이 이미 네 클론을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터무니없는 소리야. 네 클론이 아무리 널 닮았어도 어떻게 그레이 레이븐을 속일 수 있겠어?
연구원들이 클론의 성장을 가속할 방법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는 못했을 거야.
참. 이렇게 안면을 튼 김에 나도 부탁 하나 있어.
나와 의식 연결해 줘.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의식의 바다 상태가 말이 아니야.
의식이 연결되자, 슈트롤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훨씬 나아졌어.
음... 네 마인드 표식은 바렐리아 지휘관이 주는 느낌과 아주 다르네.
바렐리아 지휘관과 연결할 때 누군가와 한바탕 싸우고 싶은 충동이 생겼거든.
네 마인드 표식은 네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한 느낌이 들어. 그래서 딱 좋아. 지금 상황에서는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되니까 말이야.
슈트롤은 웃으며, 넓은 손바닥으로 인간의 등을 두드렸다.
아아. 미안. 지휘관이 다친 줄 몰랐어.
슈트롤은 바렐리아 지휘관이 언급했던 그 "유명 인사"를 환자 취급하듯 훑어보았다.
내가 기억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내 기억에는 백전백승의 군인이었거든.
아무튼, 우리 모두 여기 갇혔으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당분간은 널 부상자로 대해줄게. 무리하지 말고, 과거 전투 습관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해. 꼭 기억해 둬.
다음 계획은 뭐야?
몸에 있던 단말기는 오래전에 처분됐어. 나머지 잔해들과 함께 처리 통로 쪽에 버려져 쓰레기가 됐지. 네 것도 그렇게 됐을 거야.
5000미터 이상의 심해에서 신호가 잡히지 않더라도, 단말기에 메시지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얇게 입었나 했더니, 옷을 다 빼앗겼구나.
알았어. 그럼, 돌아가서 찾아보자. 잔햇더미에서 쓸 만한 무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무기가 있는 게 빈손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