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S21호 버전_문안 스토리 전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순간, 알 모양으로 수축했던 "숲"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탐조등과 밤하늘이 얽힌 하늘 위로 빠르게 날아오른 검은 그림자는 거대한 검은 알에서 거만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무릅쓴 듯한 그것은 갓 태어난 발톱을 "포대기"라 불리는 또 다른 세계를 죽이기 위해 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의 몸에는 끓어오르는 전의와 피비린내가 얽혀 있었고, 현장에 있던 다른 이들도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그것의 광기에 이를 드러내며,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그것에 무기를 겨눴다. 이것이 갓 태어난 적이라면, 여기서 즉각 제압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일어서자, 탐조등의 빛을 빌려 어둠의 막이 벗어 던져졌다.
그 모습의 주인공은 21호와 베라였다.
리와 리브 그리고 지휘관 근처에 있어서 외침에 놀란 몇몇 구조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무기들은 여전히 21호와 베라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21호의 기체는 격렬하게 요동쳤고, 그녀와 베라는 모두 자홍색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21호의 기체는 탐조등의 차가운 빛에 반사돼,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보였다.
"야수"는 두려움에 떠는 구조체들을 둘러보며, 사냥감의 약점을 살피듯 날카로운 눈길로 쳐다봤다.
과거에 21호가 보였던 스트레스 반응 몇몇 개가 떠오르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급히 앞으로 나서서 21호를 다른 대원들로부터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대원들이 오해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나서야 해.
녹티스도 같은 생각이었던 거 같았다. 그는 앞에 서 있던 구조체를 밀쳐내고, 모든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기 내려놓으라고 하잖아! 안 들려?!
난...!!
하얀 늑대의 모습을 한 소녀의 가슴이 격렬하게 울렁거렸다. 지휘관뿐만 아니라, 녹티스도 21호가 이렇게 분명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난 케르베로스 소대의 21호야!!
21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표정하고, 두렵고, 의심스러워하는 그 모든 눈빛을 바라보면서도, 도전자를 경멸하는 고고한 늑대처럼 자기를 향하고 있는 무기를 단호히 노려봤다.
대장이 다쳤어. 당장 치료가 필요해.
무기를 든 손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 있었고, 21호는 계속해서 자신의 필요를 외치고 있었다.
녹티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걸음에 21호 앞으로 다가가 베라를 받아서 들었다.
들것 가져와! 너희들은 뭐 하는 **들이야? 어서 와서 도와!
제가 할게요. 안 되겠어요. 침식도가 안전 기준치를 너무 많이 초과했어요. 어서 베라를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21호와 베라가 뚫고 지나온 둥지의 껍질은 계속해서 수축하고 있었고, 조금씩 물기가 말라가는 것처럼 눈에 띄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21호와 베라가 어떻게 끊임없이 증식하는 숲의 그물을 뚫고 나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현재로서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한테 맡겨주세요.
리는 지휘관의 걱정을 즉시 이해하고, 아무 말 없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화 부대의 담당자에게 다가가 변경된 작전을 전달했다.
휴대 단말기가 며칠 동안 꺼졌다가 처음으로 켜진 것처럼 뒤죽박죽 울리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공중 정원과 다른 연락처로부터 들어온 지난 메시지들이었다.
지휘관님. 통신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공중 정원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지연은 여전히 심할 거예요.
멀리서 조금씩 시들어가는 구형의 숲을 바라보며, 21호와 베라가 통신에 혼란을 주는 무언가를 파괴하거나 물리쳤을 것으로 추측했다.
전 긴급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먼저 작성할게요.
다음은 응급 처리 부대의 도착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전까지는 이합 생물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들은 출발하기 전, 보육 구역의 마지막 철수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송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자, 가족과 동료가 실종됐던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보여줬던 눈빛들이 떠올랐다. 희미한 희망을 품고 사는 것과 잔혹한 예상을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이름에는 그에 맞는 결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을 위해 가능한 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의외의 부탁이 떠올라, 들것 옆을 따라가던 21호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음?
21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기체도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베라와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분명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작전 수행 전.
지휘관이 최선을 다해 결과를 가져오겠다는 말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철수하려는 사람들은 아쉬움 속에 하나둘씩 수송기에 탑승했다.
지휘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설렌스의 눈에는 많은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부축하며 거리를 벌려 걷기 시작했을 때, 옆에 서 있던 한 소녀가 조용히 다가왔다.
지휘관님은 21호와 같은 데 있나요?
구조체인가?
그녀의 복장에서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이렇게 독특한 코팅 스타일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지휘관님 쪽 사람들이 21호의 동료가 사라졌다고 말했었어요. 춤출 수 있는 그 하얀 로봇 말입니다.
21호는 그걸 "쿨쿨"이라고 불렀어요.
21호에게 보조 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보조 기계가 사라졌다면, 21호는 방금 철수한 그 난민들처럼 매우 초조할 것이었다.
21호를 만나게 된다면, 저 대신 말 좀 전해 주실래요? "캐논이 쿨쿨을 본다면, 21호에게 데려다줄 거야"라고 전해주세요.
음, 고마워요.
이상하게 차려입은 구조체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려 보육 구역의 사람들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캐논"이라고 자칭한 구조체의 말을 21호에게 전달했을 때, 21호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잠겼다.
21호를 어떻게 위로할지와 공중 정원의 지원 기기들로 보조 기계를 찾을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21호가 먼저 침묵을 깼다.
괜찮아. 난 이미 꼬마를 찾았어.
21호가 두통이 생겼던 건, 꼬마가 불러서 그랬던 거야.
그런데 너무 늦었어.
21호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
21호가 이 세상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했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21호의 쓸쓸한 모습을 보면서, "쿨쿨"이라는 이름의 결말은 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그런 종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21호가 베라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부터, 21호는 내면부터 겉모습까지 어떤 변화를 겪은 것 같았다.
하지만 빠른 성장의 대가는 간혹 상상 이상으로 큰 경우가 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진화의 모든 단계는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응.
21호가 고개를 들어 지휘관의 제안에 긍정의 뜻을 나타냈다. 그런 뒤, 21호는 지휘관을 다시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주저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