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원거리 연결이 강제로 끊어질 정도로 의식의 바다가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어지러움과 신경통이 21호의 감각을 휘저었다.
21호는 머리를 흔들며 회전하는 세상이 당장 멈추기를 바랐다.
하아... 하아...
대장?
베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현실감에 대한 확신이 한층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이어서 회복된 후각이 짙은 순환액 냄새를 감지했다.
야. 21호.
베라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아침 인사를 건네듯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베라의 얼굴, 팔 그리고 온몸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상처들에서 순환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라와 21호 주위를 둘러보면 어지럽고, 부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이합 늑대들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는데 모두 메마른 상태였다.
유일하게 이합 늑대들이 건드리지 못한 곳은 21호가 방금 의식을 잃었던 그 작은 자리뿐이었다.
베라는 손에 든 칼날로 그 자홍색 늑대의 바다를 제압하고 있었다. 전투 중에 베라의 순환액이 해안선 가장자리로 튀었고, 그중 몇 방울은 21호의 몸 위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싸우다가, "붉은 머리의 사신"이라 불리는 그 구조체는 21호에게 살기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베라의 손은 드물게 살짝 떨고 있었다.
대... 대장...
몸속의 순환액이 급격히 치솟는 감정 지수로 인해 끓어올랐고, 빠르게 흐르면서 분출할 것만 같은 화산처럼 변했다.
이번 공격은 끝난 건가?
가볍게 탄식한 베라가 체력을 다해 쓰러졌다. 그러자 21호의 가슴속 화산이 급격히 식으면서, 베라 곁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땅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21호의 기체를 휘감았다.
21호는 한때 베라나 녹티스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상상 때문에 일으켰던 광폭의 충동을 무시했다.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거짓 같았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현실감은 21호에 의해 완전히 부정당했다.
푸하하...
너 설마... 울컥한 거야?
베라는 21호의 표정을 흥미롭게 살펴봤지만, 현실은 그들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게 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직설적으로 말할게.
21호. 네가 최근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네 새 기체를 챙기려고 내가 정말 오랫동안 애썼거든. 니콜라 그 영감이 개발권을 저쪽에 준 건 사실이지만, 지금 생긴 문제는 아마 너 자신에게 있을 거라고 봐.
난 네가 어떤 "인간의 냄새"를 갖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케르베로스에서 그런 걸로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근데...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어.
난 그들과 동족이 아니야. 그래서 그들은 21호를 폐기하고 싶어 하는 거야.
폐기처분... 21호는 폐기처분당하고 싶지 않아. 싫어.
뭐라고?
그들이 누군데? 누가 죽으라고 하면 넌 순순히 죽을 생각이야?
21호는 죽고 싶지 않아.
베라는 무기를 놓고, 다정하게 21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음 순간, 베라는 구속기가 설치된 21호의 가늘고 하얀 목을 잡고, 순환액이 묻은 손가락으로 그 위에서 뛰는 신경을 세게 눌렀다.
넌 정말 갈수록 멍청해지는구나.
이제 슬슬 너 자신을 책임져 보는 건 어때. 21호! 어떤 무리 속의 아무개가 되어 소위 "모두"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마.
인간들이 모여 사는 건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서야.
너나 녹티스 그 바보 같은 놈이 언젠가 내 길을 막는다면, 너희들이 내 앞에서 설치는 걸 봐주지 않을 거야.
소대 이름이 케르베로스로 정해진 건 우연인데, 설마 넌 정말 순종하는 개가 될 작정인가?
하지만 실험... 실험은 21호가 존재하는 이유잖아.
하... 네가 쓰레기 더미 속 철물일 때, 내가 널 다이달로스의 쓰레기장에서 꺼내준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네 뇌는 아직도 그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거니?
그리고 잘 기억해. 널 순순히 따르게 만드는 건 내 능력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말했지, 난 스스로를 구속하는 바보들이 딱 질색이라고. 잊었니?
베라는 21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에 조금씩 힘을 줬다. 그러자 갓 응고된 순환액이 기체 외갑의 틈새로 다시 흘러나왔다.
21호는 베라의 날카로운 눈빛에 사로잡히면서, 목에 설치된 구속기로부터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눈길을 돌릴 순 없었다.
이런 걸로 네가 꼼짝 못 하는 거 같아? 보이는 목줄보다 보이지 않는 목줄이 훨씬 많아. 네가 소위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또 다른 목줄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나는...
다른 사람 눈에 인간처럼 보이는 것보다, 그 무능한 놈들에게 네가 누군지, 네가 어떤 규칙으로 행동하는지를 이해시키는 게 낫잖아.
발톱이든, 이빨이든, 남의 눈에 "미친" 거라고 보이든...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발바리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너 스스로 결정하는 거란 말이야.
네가 그렇게 계속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차라리 쿠로노로 돌아가서 화장실이나 청소해. 케르베로스는 아무나 물어뜯을 수 있는 배신당한 고독한 개들로 이루어진 소대니까.
고독한 개. 베라는 그렇게 표현했다.
각각의 영혼이 주변과 하나가 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의 자아가 뚜렷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남과의 다름을 두려워할 필요 없고, 동료와 달라도 배척당하지 않았다.
모두에게서 괴물 무리라고 비난받더라도, 쳐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찢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것이 괴물들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겉모습을 변화시키느니,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고개를 들고 싸우다 죽기를 원한다.
21호도 한때 자신의 귀결점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21호의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실험 품이라는 인식은 그녀로 하여금 처음부터 자신을 부정하는 시점에서 세상을 보게 만들었다.
자신은 조정되고, 허용되고, 호출되고, 승인받는 존재였다.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은 느끼면 안 됐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용성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인정받을 수 없는 행동 방식은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들로 인한 비난이 21호의 이름을 통해 케르베로스의 모든 대원에게 퍼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준 이 "소굴"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21호는 해가 될 수 있는 자아의 일부분을 분리해 내야만 했다.
21호가 처음부터 상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연구소 밖 진짜 세상에서 수많은 낮과 밤을 보낸 21호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경계를 잃어갔다.
자아의 조각들이 끊임없이 21호의 부서진 경계에서 잘려 나간 뒤, 남은 것들로 이루어진 형태는 부서진 21호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이 막막함이 사람으로 하여금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만드는 도화선이었다.
그것은 21호의 목에 감겨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21호 자신이 꽉 붙들고 있는 헛된 구원의 끈이었다.
하지만 배신당한 고독한 개는 순순히 묶여 있지 않을 것이었다. 배신당한 고독한 개는 순순히 묶여 있을 필요가 없었다.
밧줄을 당기는 것이 자신이든 누구든, 이 몸에 감각이 남아 있는 한, 날카로운 이빨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갑자기 21호의 머릿속에 눈꽃처럼 반짝이는 많은 조각들이 떠올랐다. 그 조각에는 21호가 부정한 것들, 멀리한 것들, 깊이 묻어둔 것들을 반영되어 있었다.
그 조각들은 21호가 세상에서 마모되어 가는 동안 여기저기 흩어졌었다. 하지만 예전의 21호는 그것들을 바로 주워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 21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21호는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완전한 자아를 가지고 자신이 지키고 싶은 모든 것을 지키기로 했다.
21호는 갑자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기체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21호는 "인간"의 형상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생체공학 귀와 꼬리 모양의 균형 장치가 포함될 수 있다고, 그것들은 더 이상 "인간과 닮지 않았다."는 표시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그전까지 21호는 기체가 가진 고도로 민감한 감각과 폭발적인 힘 때문에 위축돼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제어 불가 상태로 통제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힘 자체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제 21호는 자신이 가진 힘에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순간, 21호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금속의 몸과 디지털 의식 속에서 새로운 21호로서 존재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짐승이라는 정해진 형태와는 무관하게, 더욱 자유로운 형태로, 21호라는 이름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21호. 이거 받아.
21호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을 본 베라는 장난기 어린 화난 표정을 거두고, 외갑 한쪽에 있는 홈에서 길쭉한 장치를 꺼냈다.
이제부터 네가 결정해. 구속기를 풀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네가 이 기체에 있는 힘을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풀지 않아도 상관없어.
너 자신의 고삐를 네게 맡길게. 21호.
대장! 난...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지 마. 나 아직 죽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얼마나 정신을 차리고 걸어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어. 벗어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다면, 우린 둘 다 끝장이야.
저 더러운 괴물들이 죽어서 땅속으로 스며들 때쯤, "꽃봉오리"들의 움직임을 주의해.
시간이 없어. 저 "꽃봉오리"들 속에서 곧 새로운 이합 생물이 태어날 거야.
인해전술로 공격해 올 거라, 둘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어. 그러니 어서 앞으로 이동해야 해. 쿨럭, 날 일으켜 줘.
구속기의 마그네틱 키를 신중하게 넣어 둔 21호는 베라를 다시 안정적으로 부축해 줬다.
여기만 지나면...
저쪽으로 가자.
21호가 감지한 방향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공기가 불어오고 있었고, 이합 생물의 냄새도 금방 깨어났을 때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
21호는 무의식적으로 기체의 계산 속도를 높였다.
21호는 자신과 대장이 어떤 거대한 생물의 목구멍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희미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곧 이 숲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그들을 찢어 먹어서 자신의 양분으로 삼을 것만 같았다.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21호는 베라의 팔을 서툴게 들어 올리며 그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했다. 그리고 베라는 한숨을 쉬며 21호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꽤 쉬었으니까, 이젠 혼자 걸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인 21호가 순순히 손을 놓아줬다.
음...
갑자기 21호가 고개를 돌리더니 머릿속에서 가벼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 눈꽃처럼 퍼지는 마비음이 이어졌다.
야. 또 그럴 거야!
[player name]야, [player name]가 내 머릿속에 있어.
오? 구세주는 언제나 이렇게 제시간에 나타나지.
저 녀석이 원거리 연결이라는 수를 생각해 낼 줄 알다니, 간신히 합격이야.
대장이 다쳤어. 21호는 대장을 구해야 해.
21호. 네가 전투의 주력인 것처럼 행동하지 마. 방금까지 계속 누워 있었잖아.
대장... 대장, [player name]가 무슨 약을 가져와야 해?
21호 지식의 사각지대에 있는 내용을 물어본 것 같았다. 그래서 21호는 고개를 돌려 부상자에게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
녹티스한테 약물 상자 안에 있는 응급 세트 3세트를 챙겨달라고 전해. 일단 그걸로 처리해야겠어. 그리고 21호, 그것보다 저들에게 접선 방향을 알려줘.
고개를 들어 해 질 녘의 각도를 잰 베라는 21호가 가리킨 철수 방향과 결합해 방위 하나를 제시했다.
응.
[player name]가 먼저 연결을 끊었어. 신호가 안 좋다고 하더라.
냄새가 변한 걸 보니, 저들이 올 수도 있겠어.
가자.
대장이 앞서가. 방향이 바뀌면 알려줄게.
21호는 뒤를 경계할게.
허... 믿을 만한데? 그럼, 뒤를 책임져. 나 좀 쉬게.
어쨌든 네가 누워있을 때, 나 혼자 두 사람 몫을 했으니까.
알겠어. 21호. 이해했어.
해가 지면서 그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주위 나뭇가지에 그림자가 잘려 나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베라는 풀밭 위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눈여겨봤다. 그건 자신을 등진 채 뒤를 경계하는 21호의 그림자였다.
베라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해 앞장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