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푸...
베라의 칼이 적의 "관절"을 붙잡은 그 순간, 21호는 자신의 손에 달린 날카로운 클로를 최대한 벌렸다. 그리고 기체의 코어 힘으로 세차게 내리쳐, 청자색 손들의 포옹을 찢어발겼다.
그러자 그것들은 인간의 목소리와 유사한 잡음을 중얼거리면서, 도살자에게 갓 잘린 신선한 위장처럼 크고 작은 몸통 조각들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청자색의 몸통 조각들은 며칠 지난 상한 고기처럼 쪼그라들었고, 곧이어 한때 피부만 존재했던 것처럼 위축됐다.
땅속에 녹아든 건가?
시간 없어. 일단 신경 쓰지 마. 21호. 다친 데 없어?
자기 몸을 킁킁거린 21호는 결연한 태도로 고개를 흔들었다.
대장, 손.
그제야 베라는 자신의 기체 오른쪽 상박에 생긴 금이 눈에 들어왔다. 그 틈으로 순환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놈의 꼬리를 쳐내면서 생긴 건가? 피한 줄 알았는데.
베라는 익숙하다는 듯 다른 손으로 가볍게 닦아낸 후, 사용했던 젤 스프레이를 꺼냈다.
두 번 정도 분사하자, 분사구에서 마지막 말을 전한 듯 아무것도 분출되지 않았다.
베라는 스프레이를 두 번 정도 흔들어보고는, 공병을 전술 가방에 집어넣었다.
21호. 방향 조정해야 해?
음... 주둔지 냄새가 약해졌어.
하지만 방향은 변하지 않았어.
가자.
베라는 발아래 놓인 나무뿌리를 넘어서며, 21호에게 앞서 계획한 경로를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21호가 다리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머리뼈를 뚫고 들어오는 못처럼, 강렬한 울림이 의식의 바다를 휘젓고 지나갔다.
21호는 바로 앞 나무뿌리에 넘어졌지만, 통증을 느끼지는 못했다.
의식이 한줄기 백광에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21호는 베라의 외침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고, 무기력하게 또 다른 환영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
피비린내.
방금 전에 누군가가 다친 것 같은데, 누구였지?
발톱에 느껴지는 감촉이 축축했다.
어린 늑대가 눈을 뜨자, 배 옆구리가 저릿저릿했다. 고개를 숙여보니, 거기서 커다란 조각의 털과 가죽이 찢겨 나간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발톱 위에는 아직 따뜻한 액체와 털 뭉치가 묻어 있었다.
통감은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하늘을 덮을 듯 몰아쳤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물가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한번 살펴봤다.
좋아. 상처 주위가 붉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고, 발톱도 마찬가지야. 이러면 동료들의 색에 더 가까워졌겠지?
어린 늑대는 떨리는 몸으로 늑대 무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물든 쪽을 가능한 한 그들에게 보이도록 했다.
서로를 의지하고 있던 늑대 무리가 재빨리 일어나 전방에 분노를 담은 경고 소리를 냈다.
아직 피의 색이 부족한 걸까?
멈춰선 어린 늑대가 다시 발을 들어 올렸다.
늑대 무리는 큰 적을 만난 것처럼, 방향을 돌려 더욱 짙은 그늘을 향해 달려갔다.
어린 늑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그녀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하늘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포식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놀라서 당황한 나머지, 상처에서 떨어지는 피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늑대 무리의 동료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희미한 숨결만이 무리로 돌아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착각인 걸까? 동료들의 냄새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달리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는 것이었다.
극도로 긴장된 몸이 달리는 동안의 찢어지는 듯한 통증은 어느 정도 무시하게 해줬지만, 혈액 순환이 빨라지면서 지혈하지 않은 옆구리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네 발이 조금씩 무거워질수록, 날갯짓하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자기의 뒤에서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려고 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달려들었다.
어린 늑대의 동공에 힘차게 날아오는 화살과 같은 날카로운 그림자가 비쳤다.
이 독특한 털이 정말 싫었다.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포식자의 위장에 들어갈 좋은 요리가 되기를 기다렸다.
회색빛 화살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한 줄기 검은 번개가 재빨리 튀어 나와, 그녀를 향해 날아가던 화살을 밀어내면서 여러 번 구르게 했다.
어린 늑대가 눈을 뜨자,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검은 늑대가 자기의 사신과 격렬히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매가 날카로운 부리로 검은 늑대의 앞발을 문 상태로, 날개를 퍼덕이며 필사적으로 몸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매의 목을 문 검은 늑대는 끝까지 놓지 않으며, 사냥감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남기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짙은 피 냄새가 퍼져나가자, 어린 늑대는 본능적으로 코를 찡그렸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선 전투의 의미를 담은 으르렁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숨이 넘어가는 거대한 매 위에 선 검은 늑대는 높은 곳에서 이 "도전자"를 내려다봤다.
전투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검은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다음 싸움도 피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했다.
아직 진정한 사냥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어린 늑대는 곧바로 꼬리를 바짝 내렸다. 그리고 자기 몸이 앞에 있는 경험 많은 베테랑 사냥꾼에게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죽은 독수리의 발톱을 꽉 문 검은 늑대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위협적인 낮은 경고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필요하다면, 눈앞의 검은 늑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찢어발길 거라는 걸 어린 늑대는 잘 알고 있었다.
천천히 뒷걸음질 친 그녀는 무성한 관목 숲속으로 숨었다.
그녀는 검은 늑대가 자신이 떠난 방향을 경계함과 동시에 거대한 매를 급하게 뜯어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거대한 매를 먹어서는 안 돼. 그것은 늑대 무리를 사냥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라며 머릿속 목소리가 말했다.
그랬다. 그녀는 하늘을 나는 존재에게 도망치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포식자를 갉아먹고 있는 검은 사신은 어떻게 된 일일까?
늑대 무리에서 추방당하고, 생존에 집착하게 된 늑대가 반드시 걷게 되는 미친 결말인 건가?
금세 배를 채운 검은 늑대는 자기 발을 핥으려 했다. 하지만 그곳엔 계속해서 피를 흘리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다.
검은 늑대는 어린 늑대가 숨어 있는 관목 숲을 바라봤다가, 절뚝거리며 다른 방향의 풀숲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늑대가 떠나자, 압박감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한 어린 늑대는 독특한 늑대의 피 냄새가 많이 옅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조심스럽게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드러냈다.
상처와 장시간의 달리기로 지친 몸이 뇌에 항의하며 피와 살을 보충할 것을 절실히 요구했다.
포식자의 내장에서 풍기는 기이한 향기가 어린 늑대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했다.
그녀는 떨리는 걸음으로 거대한 매의 사체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먹으면, 동료들은 영원히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며 머릿속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굶주림과 본능이 이성을 잡아끌었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심지어는 시야가 맛있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켰다.
이빨이 살점에 닿기 직전, 마지막 한 줄기 정신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듯 몇 걸음을 뒷걸음친 그녀는 자기 행동에 놀라 떨었다.
그녀는 꼬리를 꽉 잡고, 방금 전 장면에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쳤다.
그 기이한 향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달린 그녀는 그제야 동료들의 향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조하게 빙글빙글 돌면서 오랜 시간을 세심하게 킁킁댄 어린 늑대는 그제야 자신이 동료들의 흔적을 확실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넓은 숲속에서 우연히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야 할까?
자신이 이 숲을 다니면서 한 번도 같은 장소를 두 번 지나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넓을 것으로 판단했다.
처음 깨어났을 때처럼, 다시 혼자가 됐다고 생각하자, 어린 늑대의 목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는 늑대 무리의 동료들을 다시 찾기 전까지, 혼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였다.
사냥이든 휴식이든, 동료가 옆에서 엄호하고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사냥감을 놓치거나 포식자에게 쉽게 발견될 것이었다.
늑대는 군집성 동물이며,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사실이었다.
자기 세포 하나하나가 이 사실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털가죽을 기꺼이 바치며, 늑대 무리의 일원이 되길 갈망했다.
이렇게 생각을 한 어린 늑대는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만약에 무섭지만 혼자 있는 그 검은 늑대를 잠깐 따라다니면 어떨까?
이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기 중에 남아 있는 희미한 냄새를 맡았다. 미약하긴 했지만, 그 늑대의 피 냄새를 여전히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동료들을 찾기 전에, 검은 늑대를 따라다니며 늑대가 어떻게 생존하는지 배우는 건 어떨까?
사냥감을 잡는 포식자는 잡을 수 없겠지만, 사냥의 요령은 동일하다.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움직인다면, 그녀보다 검은 늑대가 먼저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검은 늑대가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날카로운 이빨 아래에서 살아남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검은 늑대가 굶주렸을 경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도망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혼자 생존하는 것보다는 그 검은 늑대를 따라가는 편이 운명과 맞서 싸울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늑대의 피 냄새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어서, 풀 냄새에 곧 가려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늑대의 발에서 피가 흐르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따라갈 기회도 없어질 것이다.
어린 늑대는 머리를 흔들고 망설임을 떨쳐냈다. 그리고 식물 사이로 섞인 냄새를 신중하게 구별해내며 큰 걸음으로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