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 너무 추워... 도... 도와줘.
누구든 좋아. 제발... 날 잡아줘.
좋아. 됐어. 이제 손 놓아도 돼.
으으... 아빠... 엄마...
울지 마. 주위가 괴물들로 가득해. 그들을 불러올 셈이냐.
으흑.... 하... 하지만 내 아빠와 엄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
종말이란 원래 그런 거야.
네 부모님은 널 위해 나서서 괴물들을 유인했고, 음식도 남겨줬어. 네가 정신 차려서 힘을 내는 게 부모님을 보답하는 거라고.
음식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쉿...
그녀는 재빨리 아이의 입을 막았고, 리린이 손에서 떨어뜨린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발로 눌러 고정했다. 그런 뒤, 두 사람은 귀를 기울여 주위의 소리를 듣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경계를 풀었다.
먹든 말든 알아서 하고, 일단 조용히만 해. 말 똑바로 안 들으면 단단히 혼날 줄 알아.
됐어. 그만해. 방금 부모님을 잃었잖아.
아저씨가 너랑 장난친 거야. 자, 이거 먹어.
여자는 모서리가 구겨진 통조림을 따서 리린의 진흙투성이 손에 쥐어줬다. 그 통조림의 차가운 겉면은 한겨울의 도로보다도 차가웠다.
어서 먹어. 그렇지 않으면, 네 부모님은 헛되이 죽은 거와 다름없어.
그녀는 아이를 일부러 괴롭히거나,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라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저 끝없는 생존의 길에서 발생한 사건 하나를 냉정하게 진술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눈이 슬픔의 샘처럼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내 메마른 통조림 속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눈앞의 여자를 바라본 아이는 구부정한 그녀의 등을 보고 있자니 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리린,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엄마, 아... 아빠가...
아빠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어서 잠시 쉬는 거야.
혹시 아빠가...
리린, 좀 이따가 아저씨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놓치면 안 돼. 알았지?
엄마, 아빠가 아저씨한테 짐을 부탁했거든. 아저씨가 널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먼저 가 있을 거야.
난 엄마가 손잡아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가 싫은 거야?
그럴 리 없잖아. 넌 엄마가 살아남고 싶은 유일한 이유야... 널 위해서라면 엄마는...
여기까지 말한 여자는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날카로운 말이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그 말을 삼키기로 한 듯했다.
엄마랑 약속한 거다. 꼭 아저씨 손을 잡고 있어야 해. 꽉 잡아. 기억해!
리린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리린을 힘껏 방랑자 단체의 리더에게 밀어 넘겼다.
상대방이 아이를 받아든 것을 보자, 창백한 미소를 간신히 지은 그녀는 배에 난 상처를 감싼 뒤, 다른 길로 달려갔다.
리린, 넌... 켁... 넌 정말 빨리 달려야 한다! 엄마처럼, 아니 엄마보다도 더 빨리...
어서 가라고!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는 절망에서 무너져 내린 비명과도 같았고, 리린의 머리에서 망치로 때린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리린은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은 어머니의 따스함이나 아버지처럼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리린은 엄마의 말에 따라 그 손을 꽉 잡았다.
얘야! 왜 먹지 않고, 멍하니 있어?
공중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를 한 리린이 여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리린은 굶주린 사람처럼, 통조림 안 음식을 덥석 집어 든 후 입에 쑤셔 넣었다.
으... 짜... 너무 짜...
아빠가 지난번에 만들어준 통조림 수프는 확실히 맛있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그럼, 내 물 좀 마셔.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나한테도 좀 남겨줘.
여자는 망토 속에서 잠시 뒤적거리다가 탁한 물이 반쯤 든 병을 꺼낸 뒤, 리린의 발 앞에 놓았다.
한 바퀴 순찰하던 남자가 여자에게 눈짓하자, 둘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다쳤을 거야.
남자의 눈길이 쉬고 있는 다른 동료를 가리켰다.
정말?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그가 몰래 왼쪽 종아리에 물을 붓는 걸 내가 봤어. 마실 것도 부족한데 발을 씻을 리가 없잖아.
뭘 어쩌겠어. 내가 말했잖아. 우린 같이 가는 거긴 한데,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해야지. 여기 있는 여섯 명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어. 저 아이만 빼고 말이야.
이렇게 말한 남자는 한쪽에서 큰 입으로 음식을 삼키고 있는 아이를 흘끗 보고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지난주에 아이의 아버지가 내게 알코올 반병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결코 저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많은 음식을 준다 해도 소용없어. 유품 같은 건, 땅에 떨어진 거 주워서 쓰면 그만이니까.
하하... 그딴 게 계획이야? 난 네가 조금의 인간성이라도 남아있는 줄 알았지. 그럼, 저 아이를 입양하는 건 어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내 시신이라도 수습해 준대? 저 괴물들에게 당했을 때 시신이나 수습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여자도 정말 독하네. 죽으러 간다고 하더니 정말 죽었어. 게다가 이 꼬마가 계속 따라붙으니 어쩔 수 없잖아. 일이라도 할 줄 안다면, 데리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넌 이해를 못 한다고, 내가 말한 거야. 네가 진짜로 그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인다면, 아마 이해할 수도 있겠지.
꺼져.
여자는 숨을 넘어갈 듯하게 낮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이, 꼬마야. 내일부터 넌 교대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거야.
아침에 한 번 가르쳐 줄 테니, 잘 기억해 둬. 난 쓸모없는 짐은 필요 없어.
그리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남자는 리린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마친 뒤 휴식하기 위해 구석으로 걸어갔다. 등이 굽은 여자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금 내려놓은 물병을 들고 자리를 떴다.
다 먹은 통조림을 옆에 둔 리린은 위가 터질 것 같은 느낌에 토할 뻔했다.
리린은 처음으로 통조림 하나를 혼자 다 먹어 치웠다.
또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서 잠들지 않았다.
리린은 음식이 빨리 열량으로 변해서 이 추운 밤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두 눈을 감고 기도했다.
며칠 후.
아! 가까이 오지 마!! 으으아...
절뚝거리는 남자가 이합 생물에게 옷자락을 잡혀 넘어진 뒤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소리친 남자 덕분에 더 많은 이합 생물이 그에게 가까이 모여들면서, 뛰다 지쳐버린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각자 흩어져서 달려!
등이 굽은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젊은 여성과 함께 주저 없이 좁은 길로 뛰어들었다.
*, 내가 저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리린은 어떤 길이 생존할 가능성이 더 큰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장시간 달리기로 인해 목구멍에선 피 맛이 나고 있었고, 죽어가는 말처럼 강렬하게 숨을 몰아쉬며 폐의 항의에 답을 해야만 했다.
리린의 머릿속에는 그 아저씨를 꼭 붙잡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첫날 이후로 행동할 때, 리린이 자신을 붙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 그에게 가능한 한 가깝게 다가가려고 했다.
아!
리린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종아리 근육이 항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쥐가 리린을 바닥에 직접 넘어뜨리게 하면서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게 했다.
앞서 달리던 남자가 질주 중에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늦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저씨, 기다려 줘.
공포감이 리린을 앞선 남자에게 손을 높이 들어 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자신을 차가운 바닥에서 일으켜주기를 간절히 요청했다.
여기서 살아남게 된다면, 리린은 아저씨를 위해 소나 말처럼 일할 거라고 다짐했다.
제발...
상대방은 여전히 거리가 좀 있는 이합 생물을 한 번 바라보고는 한순간 망설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통조림을 하나 꺼내 땅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향해 힘껏 찼다. 금속 재질의 통조림이 땅에 부딪히자, 귀에 거슬리는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리린은 일어서려고 애썼지만, 넘어질 때 관절을 삐끗했는지,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내 탓을 하지 마. 넌 너무 쓸모없어. 그리고 널 한동안 데리고 다녔으니, 네 아버지에게 진 빚도 갚은 거야. 사실 처음부터 네 아버지한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었어.
골목길 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오자, 갈림길에 도착한 이합 생물들이 그 좁은 입구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은 뭔가를 느낀 듯,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큰길 쪽으로 다가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남자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하고 리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다려. 나도...
리린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높이 들려진 손과 손가락은 제멋대로 떨고 있었고, 어떤 구원의 손길이라도 붙잡고자 싶었다.
깔깔...
뒤에서 이합 생물 특유의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고, 리린의 몸은 제자리에서 굳어졌다. 그는 긴장한 나머지 숨을 멈추고, 운명의 낫을 휘두르는 사신을 기다렸다.
아빠와 엄마도 이렇게 잡아먹혔겠지? 아팠겠다.
리린은 머릿속으로 먹혀가는 고통을 상상했고, 그게 그의 소름을 더욱 돋게 했다.
미안해. 엄마.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아. 내 손을 잡아주는 손도 없어.
공포와 추위 속에서 리린은 조금씩 자기의 몸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
아빠. 너무 더워. 불을 그렇게 세게 피우지 마.
리린은 중얼거리며 목에 걸린 낡은 천을 잡아당겨 몸을 "시원하게" 하려 했다.
어! 설렌스! 여기... 여기 아이가 있어. 아직 살아있는 거 같아!
차가운 거 보니, 상태가 좋지 않아!
진정해. 내가 한 번 봐볼게... 좋지 않아. 저체온증이야.
누가 담요 좀 가져와!!
으... 아빠... 너무 더워...
얘야,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나한테 줘. 내가 안고 있을게. 외투가 두꺼워서 금방 따뜻해질 거야.
좋아. 이리 와. 조심해.
다른 사람에게는 잠시 쉬라고 해줘. 이 아이가 좀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야. 모우사에게 사람들 데리고 경계 서달라고 해주고.
알았어..
그 아이 다리 좀 삐었나 봐. 부기가 심해.
아... 살살해. 다리는 그만 움직이고, 발바닥이나 문질러 줘.
어? 남의 발 만지는 게 좀 그런데...
하... 그럼, 바꿔. 넌 그 아이 손이나 따뜻하게 해줘.
시끄럽고, 더웠다. 신경이 서서히 되살아나면서, 통증이 몸 안에서 마음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엄마 손처럼, 매우 부드럽고 뜨거웠다.
맞아.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오... 그 손을 잡고... 살아남아야 해.
따뜻해졌어... 와, 그가 나를 잡았어!!!
샤란, 조용히 해!
엄마...
헤헤, 난 아직 엄마 될 나이가 아니라서 누나라고 불러!
샤란, 넌 언제쯤 철 들래? 쿨럭... 얘야, 내 말 들려?
도와줘...
샤란은 리린의 손을 놓아줬고, 설렌스에게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 자리를 내줬다.
손이 풀린 리린은 다시 물에 빠진 사람처럼, 미친 듯이 설렌스와 샤란에게 손을 뻗었다.
무서워하지 마. 일단 위험은 벗어났어.
설렌스가 리린의 갈라진 작은 손을 잡았다. 그러자 부서지기 쉬운 리린의 손톱이 설렌스 손등 위에 여러 개의 골짜기를 만들어 냈다.
가지 마. 가지 마. 날 버리지 마!
아저씨... 으으윽... 내가 잘할게. 나 뭐든지 잘할 수 있어!
나 경계를 설 수 있어. 연습할 수 있어. 매일 연습할게!!
제발... 그리고... 통... 통조림 줄게! 나 별로 안 먹잖아. 나... 배고프지 않을 수도 있어.
리린은 건장한 남자의 품 안에서 다른 손을 힘겹게 뻗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통조림을 가리켰다.
설렌스 옆에 있던 여자가 걸어가 통조림을 주운 뒤,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리린에게 넘겨줬다.
하지만 리린의 떨리는 손은 그것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통조림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설렌스 앞으로 떨어졌다.
제발... 받아줘. 날 구해줘.
괜찮아. 필요 없어.
부탁이야. 제발... 받아줘.
설렌스의 입에서 "미안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듯, 멍하니 같은 말을 반복하던 리린은 설렌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알았어. 그럼, 일단 받아둘게. 대신 걱정하지 마. 푹 쉬어. 그리고 우리랑 같이 가자.
설렌스는 리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손을 다시 옷 안으로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작은 손바닥은 설렌스의 손을 꽉 붙잡은 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졌어. 네가 날 부르면 난 꼭 갈 거야. 모두가 널 도와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좀 쉬어.
잠시 쉬어... 아...
그래... 맞아... 모두가 나한테 참 잘해줬었는데...
그러니 나도 모두에게 내 가치를 보여줘야 해.
난 모두와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해.
더 이상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
대장, 샤란 누나, 웬디 할머니, 아빠, 엄마. 컥.. 나 너무 힘들어.
다들 어디에 있어?
적조에 빠진 소년이 온 힘을 다해 액체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리린은 입을 벌려 모두의 이름을 외치려고 했지만, 조수가 소리보다 빨랐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그의 입으로 들어와 소리를 내부에서부터 부식시켰다.
누구의 손길이든 좋아... 제발... 약속했잖아.
자홍색 조수가 리린을 완전히 휘감았고, 그는 자기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응? 샤란 누나...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응... 다른 사람들도... 모두 여기에 있었구나.
다들 날 속이지 않았어! 정말 다행이야... 모든 사람의 손길... 정말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