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4 숲속의 기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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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숲의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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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구역 북쪽 숲.

B구역 6호... 이쪽이야. 꼬마야.

21호는 단말기 스크린 위의 전자 맵을 450도 회전시켜 올바른 방위를 확인했다.

너도 이 상황이 귀찮다고 생각하지?

21호는 앞으로 똑바로 걸어갔다. 보조 기계는 그녀의 발치에서 민첩하게 뛰어다니며, 외출한 강아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꼬마라면 머릿속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듣잖아.

"그래, 맞아. 이렇게 말이야."

목소리가 낮아진 21호는 보조 기계의 로봇 소리를 흉내 내듯이 말했다.

도착했어. 여기야.

한 시간 전.

야, 저기 뒤를 좀 봐. 케르베로스 중에 정신 상태가 제일 불안정한 그 녀석 같은데?

목소리 좀 낮춰. 소문으로는 예전에 어떤 작전에서 주위의 적들을 다 죽인 뒤, 이성을 잃어버려서 우리 동료들까지 공격했대.

결국 현장에 달려온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그녀를 처리한 뒤에야,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던데.

뭐? 그럼, 정화 부대는 왜 그녀를 처리하지 않은 거야?

윗선의 누군가가 그녀를 감싸준다는 소문이 있더라. 케르베로스 소속이잖니, 너도 알지? 그들은 워낙 난폭하고 다루기에 까다롭다는 거.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면 기타 동료들의 안전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랑 다름없잖아?

누가 아니래? 이 임무에 케르베로스가 전원 출동할 줄 알았더라면, 난 당연히 오기 싫었겠지.

네가 오기 싫다고 말해도 뭐가 달라지나? 우리처럼 평범한 구조체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되잖아, 도구처럼 살 팔자야.

지금 우릴 쳐다보고 있어. 뒤돌아보지 마.

21호, 업무 처리 완료.

21호는 말하면서, 단말기 패널을 높이 들어 동행한 다른 두 구조체에게 자신의 데이터 화면을 보여줬다.

거의 다 됐어요!

21호가 다가오는 걸 알아챈 두 구조체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

낯설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마치 "가까이 오지 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동작을 멈춘 21호는 제자리에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두 구조체가 손에 든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됐, 됐어요!

그래, 다음 장소로 가자.

……

21호는 측정 지점에 서서 단말기에 표시된 표준점과 구역의 모서리를 정확히 일치시켰다.

몇 분만 기다리면, 누락된 임무 요구 사항의 보완이 완료된다.

베라에게 자신도 명확하지 않은 문제를 설명하거나, 그 두 구조체한테 질책하는 것보다 누락된 부분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었다.

단말기의 알림 소리와 함께, 21호는 스크린을 조작해 데이터 결과를 베라의 전용 채널로 전송했다.

휴, 이렇게 하면 됐어.

21호는 필요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꼬마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보조 기계는 애정을 담아 21호의 종아리를 쓰다듬었고, 합금으로 만든 외갑의 익숙한 차가운 온도가 21에게 전해졌다.

음? 꼬마야. 봐봐. 마른 나뭇잎이야.

오, 날아오른다.

보조 기계의 동작에 놀란 "낙엽"이 땅에서 흔들리며 떠올라, 멀지 않은 나무줄기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꼬마야. 저건 나뭇잎이 아니었어.

다가가 손을 뻗은 21호는 떨리는 나비의 날개를 가볍게 만져보려고 했다.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아이는 곧 죽게 될 테니까.

가벼운 천의 마찰음과 함께 21호 머리 위에서 뜬금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그녀는 이미 공격 자세를 취했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집중하며 의심스러운 상대를 탐색했다. 곁에 있던 보조 기계는 잠깐 지연됐다가 전투 형태로 전환했다.

???

나 때문에 놀랐어?

미안해. 굶주리지 않은데 이런 야생 생물에 관심을 두는 건 보기 드물어서 그랬어.

낯선 소녀가 나무줄기에 나른하게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죽어가는 나비처럼 가벼워서, 한 점 바람에도 존재의 흔적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낯선 복장이었다. 보육 구역 난민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망토를 제외하고는 21호가 그녀의 복장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없었다.

좀 더 편안한 자세로 바꾼 그녀는 21호와 보조 기계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합 생물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싸울 준비도 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21호는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

낙엽 나비는 요즘 보기 힘들어. 이 아이는 너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네. 최근에 나비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었거든.

21호

나비. 벌레의 일종이지. 알고 있어. 죽어 가는 거야?

???

어. 인간에 비하면 나비의 생명은 매우 짧아. 게다가 이 근처는 이제 나비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야.

21호

오, 그럼 만지지 않는 게 좋겠네.

단말기 속 영상 외에 누군가가 21호에게 다큐멘터리에서만 나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건 처음이었다.

21호는 앞에 있는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21호

그럼, 넌 누구야? 너도... 구조체야?

???

구조체... 맞아. 너희 말로는 그렇게 부르지. 하지만 이곳에 있을 때, 내 이름은 캐논이라고 해.

21호

그래, 내 코드네임은 21호야.

캐논

21호? 음...

21호

넌 어느 소대 소속이야?

캐논

난 너희들 소속이 아냐.

숲속의 날쌘 동물처럼, 나뭇가지에서 우아하게 뛰어내린 캐논은 21호 앞에 가볍고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보육 구역 정찰 작업과 가끔 잡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설렌스가 날 이곳에 머물게 해주고 있어.

설렌스?

보육 구역의 결정권자야. 설렌스를 몰라?

어. 사람을 상대하는 건 대장이 맡고 있어.

너도 임무 수행하러 이곳에 온 거야?

이곳에서 엄청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은 너도 들었겠지. 그렇지만 나에겐 다른 곳보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야, 게다가 지금은 휴식 시간이거든.

왜?

……

이건 뭐야? 네 무기야? 다른 로봇들과는 좀 다른 것 같네.

얘는 꼬마라고 해. 꼬마는 내 동료야.

21호의 목소리엔 약간의 자부심이 묻어있었다. 보조 기계의 특별함을 누군가가 느낄 수 있다는 게 그녀를 기쁘게 했다.

전투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어?

물론이지. 꼬마야 춤춰 봐.

보조 기계는 리듬감 있게 양쪽의 균형 장갑을 회전시키며, 21호와 캐논 주위를 탭댄스를 추듯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특별히 캐논 앞에서 머리 위 수신 선을 흔들어 보였다.

21호처럼, 꼬마도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아.

그리고 꼬마는 기분이 꿀꿀할 때, 가장 먼저 녹티스의 엉덩이를 때릴 생각을 해.

녹티스는 나랑 같은 소대에 있는 덩치가 큰 멍청이야.

"하루가".

무슨 뜻이야?

무리를 뜻하는 말인데, 가족이라고 이해하면 돼.

오오, 꼬마야, "하루가".

21호는 낮은 목소리로 이 낯선 단어를 되뇌며, 마지막 음절을 발음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루가". 듣기 좋네. 21호에게 다른 것도 가르쳐 줘.

음? 그럼... "신카", 간단히 말하면 숲을 의미해.

캐논은 상대방이 고대 언어에 깊은 관심을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긴 시간을 들여 핏속에 새겨진 언어를 조금씩 숨기면서, 타인과의 소통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황금시대 말기에, 선조들이 언급하셨던 끝없는 숲은 자연 보호구역으로 규제됐고, 여전히 광활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종족들은 여전히 옛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보호구역의 연구자들은 그녀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며 종족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때 캐논은 언젠가 자신도 밖의 언어를 배워야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랑의 길 위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람과 사물이 끊이지 않았다.

캐논은 자신이 잠시 머물렀던 첫 번째 보육 구역을 아직도 기억했다. 거기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발밑의 땅에서 오지 않았지만, 캐논을 불길한 의미를 지닌 이방인으로 여겼다.

"신카". 음,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하루가"가 더 좋아.

……

???

카나리, 넌 노래를 정말 잘하는구나!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해줄 수 있어?

~신카를 연결하고 보호해 주소서~

~당신은 땅 위의 몸을 지켜주시고, 하늘에서 온 영혼을 수용하시고~

~당신은 씨앗을 심어주고 우리들의 뿌리를 자라게 해주셨으니~

~당신의 속삭임은 바람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니~

~당신은 우리의 동포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시니~

~부디 당신을 영원히 찬양하게 해주소서~

~부디 신카의 노래로 기도하며 부르는 영혼들을 영원히 인도해 주소서~

???

정말 잘한다! 내가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면, 시네카 할머니한테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될 텐데.

……

방금 그게 뭐야? 좋은데.

고향의 노래인데, 오랜만에 불러본 거야.

방금 그 노래에서 "신카"라는 단어를 들었어. 그럼 넌 숲속에 살고 있는 거야?

어쩐지 나무 위가 더 편한 것 같더라니.

여기 숲과는 달라. 내 고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정글이었어.

어차피 다 나무인데, 뭐가 다르다는 거야?

21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보조 기계도 의아해한다는 전자음을 냈다.

신카 님께서는 우리의 숲이자, 모든 동물, 공기와 물을 품고 계셔. 그 품 안에선 잠시 혼자가 되더라도 외롭거나 무섭지 않아.

그리고 우린 발밑의 흙, 바람에 실린 향기에서 신카 님을 느낄 수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캐논은 잠시 멈칫하다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응?

별거 아니야.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면 너도 지루할 거잖아.

21호는 지루하지 않아. 혹시 네 고향에 원숭이도 있는 거야? 21호가 단말기에서 봤는데, 그들은 숲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다른 동물의 몸에서 이를 잡아먹어.

원숭이? 우리말로는 "탄쿤"이라고 불러.

오. 그럼, 늑대는? 단말기에서 자주 봤는데,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건 "사시비"라고 해. 그런데 그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활동 범위가 있어서, 나도 두 번밖에 못 봤어. 보통 상황에선 어리면 대부분 종족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혼자 나타나지 않아.

21호가 스크린에서 본 것과 같아.

그러고 보니, 네 모습이... 그들과 좀 닮았네. 혹시 사시비의 신자니?

닮았다고? 21호의 귀와 꼬리를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야?

21호는 인간 형태와 좀 다른 기체 안에 있어야 폭주를 면할 수 있거든.

폭주라니?

어. 가끔 대장이랑 녹티스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머리가 아프기도 해. 그리고 가끔은 뜬금없이 기체 내부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 그럴 땐 텅 빈 것 같으면서도 무겁게 느껴져.

듣기론 21호가 폭주 상태일 때, 아군마저 다치게 한다고 그랬어.

어쨌든, 대장이 새 기체를 신청해 줬는데, 21호는 폭주하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폐기 당할 수 있거든.

네 대장과 네가 말했던 큰 덩치는 너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들인 거 같아.

어. 꼬마와 같아. 대장과 녹티스도 "하루가"야.

그러면 그들이 다쳤을 때, 슬픈 건 당연해. 하지만 다른 하루가를 다치게 한다면 그건 좋지 않아.

그렇군. 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21호의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음... 인연의 깊고 얕음은 정말 복잡한 거야.

칸고 할아버지가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실 때, 금지된 사냥 방법이 있다고 하셨던 게 기억 나. 그건 나뭇가지에 리나 새끼를 묶어 놓는 거야. 맞다. 여기서 리나는 새의 한 종류야.

그런 다음 함정을 설치하고, 새끼들의 울음소리로 어른 새들을 유혹하는 거야.

리나는 매우 영리하고 높이 날 수 있는 새라서, 지상에서 보통 도구로 잡기는 어렵거든.

하지만 어른 새가 아무리 높이 날 수 있고, 함정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해도, 결국은 새끼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어.

어른 새의 보살핌이 없다면, 새끼들을 풀어준다 한들 어른 새가 되기 전까지 살아남을 수 없어. 그래서 이런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 거야.

신카의 노래에 따르면, 모든 영혼은 하늘에서 온대.

하루가들이 우리의 영혼을 땅과 가까운 하나의 큰 그물로 연결해 주지 않는다면, 혼자 남은 영혼들이 너무 높이 또는 너무 멀리 흩어져 버리지 않겠어?

지금처럼 말이야.

……

미안해. 널 말하는 게 아니야. 마지막 말은 잊어.

21호, 해가 곧 저물어. 내 휴식 시간은 끝났어.

난 보육 구역으로 돌아가야 해. 넌?

21호는 이쪽으로 가.

보육 구역 서쪽의 군용 텐트로 돌아가는 거야?

그럼, 보육 구역 옆 작은 길을 이용해. 그게 숲길로 가는 것보다 편하고 빨라.

보육 구역에 도착하면 널 데려다줄게.

좋아. 꼬마야 가자.

21호가 손짓을 하자, 보조 기계가 구르듯 움직이면서 앞에 솟은 뿌리를 뛰어넘었다.

"사시비"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줘. 방금 진짜 "사시비"를 두 번이나 봤다고 했잖아.

맞아. 그 아이들을 처음 본 건 내가 일곱 살 때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