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전, 그레이 레이븐의 임시 주둔지.
해독했어요. 암호화된 통신 주소였어요.
엄청나게 길어 보였던 비밀 유지 협의가 리의 조작에 따라 간결한 숫자와 문자의 조합으로 바뀌었다.
지휘관님. 이 주소에 연결할까요?
리가 통신 주소를 연결하자, 약간의 소음이 들린 뒤, 화면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려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시아에게...
이건 아시모프 님의 목소리네요. 루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나 보네요.
통신 신호가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분간할 수 있었다.
지휘관님. 계속 들으실 건가요?
확인해 볼 가치가 있다고 봐.
스피커의 음성이 끝나자, 리가 통신을 껐다. 그리고 셋은 말없이 방금 들은 정보를 소화했다.
중간에 목소리와 배경음을 시뮬레이션하며 비교해 봤는데, 위조는 아니에요.
지휘관님, 방금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일까요?
지휘관님. 지금부터 어떻게 하실 거죠?
이 정보의 출처가 불분명해요. 아마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이후에도 지휘관님께 알려주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직접 사령부에 물어보면 정보의 출처부터 추궁당하게 될 거예요.
처음부터 이간질용으로 이 정보를 사용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지휘관님. 사령관님은 정보 출처에 관해 물어보실 게 뻔해요.
알겠어요. 그럼, 단말기의 도청 기록을 우선 삭제할게요.
눈을 뜬 순간 알파는 강렬한 진동을 느꼈다. 죽어가는 거대한 짐승의 비명처럼 모든 지시 장치가 미친 듯이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를 바라본 알파는 루시아가 있어야 할 곳에 낯선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띵!
투척 된 단도는 유리를 뚫었지만, 보라색 월산은 뚫지 못했다.
넌 누구지?
키 큰 여성이 월산을 접은 뒤, 땅에 떨어진 단도를 주어서 옆 책상 위에 살포시 놓았다.
그녀는 모자를 벗고 알파를 향해 우아하게 인사했다.
지난번에 그런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참 실례했죠,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처음 뵙겠습니다. 존경하는 승격자... 지금은 대행자라고 불러야겠죠?
제 이름은 릴리스고, 성의를 보이려 왔어요.
다시 모자를 쓴 릴리스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알파를 바라봤다.
(그때 목소리와 똑같아...)
겨울 요새의 갑문도 네가 연 건가?
겨울 요새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파는 카메라가 부자연스럽게 이동했고, 초점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알파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적을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제 도움 없이도 들어올 방법을 찾았죠?
그래도 당신을 위해 시간을 절약해 드릴 수 있었다면 다행이에요.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의 극히 작은 부분만 숨긴다..."
이 말을 했던 승격자가 이곳에 있었다면, 상대방과 "마음 털어놓기"를 시작했겠지?
그녀는 어디 있어?
그녀는 의식의 바다 과부하로 쓰러져서, 제가 겨울 요새 밖 안전한 곳에 옮겨놨어요.
당신이 그녀를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다른 이가 있으면 방해되니까요.
방해?
이때, 겨울 요새 전체가 뒤흔들 정도의 폭발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저건 쿠로노에서 보낸 사람들이 한 거예요. 그들이 다용도 전투기로 도망가진 못했지만, 자폭 프로그램은 가동했거든요.
제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그들을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원하는 게 뭐지?
승격자 후배로서, 강한 선배님의 자태를 숭배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승격자가 된 이후로부터 줄곧 당신을 동경하고 있었거든요.
보여줄 생각 없다. 그런 걸 원한다면, 네 주인한테 가서 꼬리라도 흔들지 그래?
그분은 자신의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전 권력을 찬탈하려는 자가 되고 싶진 않거든요.
그 구조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럼, 당장 그녀의 위치를 알려주고 떠나.
그건 안 돼요. 얼마나 어렵게 얻은 기횐데요.
주변이 온통 폭발음으로 가득 찼지만, 알파와 릴리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발밑의 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알파와 릴리스도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폐허를 태도로 가른 알파의 눈앞에 용암이 펼쳐졌다.
여긴 과학자들이 실패작을 처리하는 곳이에요.
릴리스의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노골적인 철근 위에 앉아서 눈앞의 광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 자신도 실패작으로 간주돼서 소각장에 버려졌지만요.
진화의 방향을 장악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결국엔 선택당하는 대상이 됐다는 게 웃기지 않나요?
왜 그렇게 잘 알고 있지?
당신처럼 과거에 인연이 있었을 뿐이에요.
릴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겨울 계획 피해자 단합대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로 저희의 동료가 되실 생각이 없으세요?
관심 없어. 그녀의 위치를 알려줘.
그럼, 저한테서 얼마나 캐낼 수 있는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