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요새 최하층 실험실 내부.
고드윈은 눈에 거슬리는 데이터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교수님의 성격이 요즘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어...)
고드윈의 화난 모습을 본 연구 인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교수님. 휴식을 좀 취하셔야 할 것 같아요.
휴식? 지금 이 상황에서 휴식이라는 말이 나와?
다시 한번 흥분한 고드윈은 두 손을 휘두르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했다.
백야와 심흔 기체에서 획득한 데이터는 우리의 소중한 열쇠야.
승격 네트워크를 손에 넣을 기회가 바로 코앞인데 여기서 쉬라고?
하지만 "용기"의 의식의 바다 안정 정도가 한계에 다다랐어요. 그리고 후방 지원부에서도 지진 경고를 보내왔어요. 적어도 지진이 끝날 때까지는 실험을 중단하시는 게 좋겠어요.
지진이라고? 언제 온다는데?
교수님께선 정말로 휴식을 취하셔야 해요.
다음 파라미터 모델로 바꿔. 실험을 계속한다.
조수는 조금 더 설득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결국 한숨만 내쉬었다.
알겠어요.
지시는 참여 인원에게 정확히 전달됐고, 고드윈은 앞에 놓인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고드윈은 스크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발밑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지진인가? 어서 실험 단말기를 보호하세요!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 미쳤어? 경비병! 경비병... 윽!
얼굴에 튄 피를 느끼지 못했다...
통각, 후각, 촉각을 느끼지 못했다.
눈앞의 녹색 데이터에만 집중했다. 평소라면 분석을 거쳐야 이해할 수 있던 데이터들이 지금은 어린이 그림책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 고드윈은 갑자기 꺼져버린 데이터 단말기를 들어 올리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어!! 콜록...
눈과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름을 타고 입으로 들어가자, 고드윈은 사레들린 듯 기침했다.
콜록... 어서 이 데이터를 기록해!
기침이 멈춘 고드윈은 큰 소리로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시체가 된 연구 인원들은 그의 요구에 응답할 수 없었다. 정작 고드윈 본인은 눈앞의 광경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고드윈은 어느새 실험실에 들어온 검은색 그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꾸짖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기록해!
……
마지막 갑문을 열자 짙은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말라붙은 피, 뒤집힌 책걸상, 부서진 단말기...
청소 로봇은 최고 기밀 실험실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참극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윽...
방금 전 전투에서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 피했지만, 수량이 너무 많은 탓에 불가피하게 루시아는 침식체 몸에 있는 퍼니싱과 접촉하게 됐었다.
평소대로라면, 이 정도의 접촉은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 연결조차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량의 퍼니싱도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불꽃처럼 루시아의 침식률을 이상할 정도로 높일 수 있었다.
보잘것없던 파도가 천지를 뒤덮는 해일로 변해서 루시아의 의식을 삼켜버리려 했다.
(지금은 안되는 데...)
알파는 움직일 순 있긴 했지만, 왼손에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과 귓가에 울리는 비명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넌 장치를 가동해.
스위치를 가동하는 곳에 루시아를 데려다준 후, 알파는 빠르게 관찰창 뒤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하지만 눈앞의 광경에 알파는 어안이 벙벙했다. 연결 장치에 있는 건 구조체가 아니라 퍼니싱에 심하게 침식된 시체였다.
구속 의자에 묶여 있는 해골의 손목, 흉곽 등 여러 곳이 골절된 것으로, 죽기 직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루나가 말했던 장치인가? 이걸로 승격 네트워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건가?
인간의 해골... 이렇게 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던 건가...
알파는 해골을 한쪽에 눕히려고 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해골은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도 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
시간이 많지 않은 알파가 장치를 착용한 뒤, 루시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버튼을 누르자 알파의 의식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