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지난 횃불이 문명을 태워버릴 듯한 화염으로 변했다.
구조체를 군사화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바꾸라고요?
상대방의 요구를 들은 고드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 그런 시시한 목적을 위해 연구하는 게 아니에요. 이런 일은 다이달로스나 극북 연구소에 맡겨주세요.
인간은 퍼니싱과의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기기 필요해요.
고드윈 교수님이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맞은편의 사람은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고드윈에게 조금의 상의할 여지도 주지 않았다.
제가 연구 방향을 조정한다 해도, 기존 실험 소재로는 무리예요.
"크틸라 계획"이 파괴된 지금, 쓸 수 있는 여분의 실험 소재가 부족한 상황이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부서도 고드윈 교수님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까요.
인간의 생존이 걸린 전쟁인 만큼, 제 한 몸 바치려는 지원자들이 많을 거예요.
그들이 스스로 지원한 게 맞다면요.
고드윈 교수님께서 심적으로 부담된다면, 저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어요.
……
먼저 탄탈 공중합체의 적응성을 테스트해 주세요. 반드시 실패할 실험을 진행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아니요. 우리에겐 그 실패도 의미가 있어요.
?
이 기회에 공중합체 적응성을 높일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이런 환경에서 개조에 실패하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무너진 구역을 벗어난 루시아와 알파는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위층과 달리 이곳은 일직선의 통로만 있었고, 갈라졌던 복도도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이 흔적은 오래된 게 아니야. 게다가 전부 구조체 무기로 생긴 거야.
복도 벽에 남아 있던 흔적을 관찰한 알파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이 장소는 쿠로노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때, 알파의 마음속에 맴돌던 궁금증이 갑자기 풀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이곳에 온 우리와 달리 그들에겐 바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을 거야.
그들은 가장 중요한 자산을 회수하는 걸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위층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
방금 전부터 집중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뭘 물어보고 싶은 거지?
루나가 옮겨지기 전에 이곳에 있었다고 했죠?
그들이 너한테 진실의 일부만 알려줬나 보네. 뭐... 빠짐없이 알려주는 건 그들의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
루나는 지금 어때요?
알 거 없어.
네 입장에선 "취서체"와 같은 막강한 위협을 소멸할 때를 빼곤, 루나와 같은 전선에 설 일이 없는 거 아닌가?
지금도 넌 소대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단독 행동을 하고 있잖아.
그 길을 선택했으면 선을 잘 지켜.
쓸데없는 환상은 갖지 말고, 루나 일도 신경 쓰지도 마.
윽...
갑자기 말을 멈춘 알파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식의 바닷속 잡음을 억제하려 했다.
하, 틈만 나면...
방금 전 근거 없는 분노를 떠올린 알파는 미간을 구겼다.
(아무 이유 없이 변할 리는 없고, 분명 조건이 있을 텐데.)
알파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눈앞의 문이 열리면서 휘청거리는 그림자가 알파와 루시아 앞으로 다가왔다.
실험체인가요? 아니... 완전히 침식된 것 같아요! 저걸 제어할 수 있겠어요?
네가 승격자가 빨리 되고 싶다면.
장검을 뽑아 든 알파가 눈앞의 적을 바라봤다.
닿으면 승격 네트워크의 침식이 더 심해질 테니까 닿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삐!!!
돌격의 나팔 소리를 들은 병사들처럼 그늘에서 숨어 있던 침식체가 알파와 루시아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