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3 심연의 울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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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새로운 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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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한 풀 사이로 벌레들이 울고 있었고, 동그란 등불은 다채로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썩었던 외벽은 다시 흰색으로 페인트칠해져 있었고, 제멋대로 자란 잔디밭은 카펫처럼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역시나 언제 설치했는지 모를 이인용 스윙 벤치였다. 그리고 그 위에 꽃과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개구리가 놓여 있었다.

눈앞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을 보며 알파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기억이 조금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언니도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아?

옆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루나는 전보다 훨씬 다정해 보였고, 더 이상 그녀의 이름처럼 차갑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가 이렇게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래서 그런지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알파는 다시 한번 눈앞의 커다란 스윙 벤치를 바라봤다.

역시 조금 다른 것 같아. 어렸을 때 루나가 스윙 벤치를 갖고 싶다고 졸랐던 기억이 나네.

그러다가 나중엔 다른 장난감도 갖고 싶다고 해서 스윙 벤치는 과감하게 포기했었는데.

알파는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스윙 벤치를 밀었다. 그러자 스윙 벤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윙 벤치가 흔들리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아마도 그렇겠지. 이건 시뮬레이션해 낸 거니까.

대화가 방해되지 않도록 알파는 앞에 있는 스윙 벤치를 손으로 세웠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너 루나 맞아?

조금 전까지 보여줬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알파의 눈에는 신중함과 경계하는 기색만 남아 있었다.

언니. 당연히 나 맞지.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질문을 던진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약 눈앞의 소녀가 정말로 루나였다면 지금쯤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을 것이었다.

이건 알파와 루나 사이에 암묵적인 습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점도 있어.

루나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눈을 감았다.

언니. 우리 앉아서 천천히 얘기할까?

말을 마친 루나가 먼저 스윙 벤치에 앉았다. 그걸 본 알파도 주저하지 않고 루나 옆에 앉았다.

스윙 벤치는 아무도 밀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천천히 흔들렸고, 루나의 말투도 함께 느릿해졌다.

우선 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 결과부터 말해줄게.

난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루나가 맞아.

언니의 동생 루나이자, 대행자인 루나 그리고 새로운 선별을 받고 있는 루나야.

새로운 선별?

그 나선의 탑이 파란색으로 역전된 건 언니도 기억하고 있지?

그래. 넌 승격 네트워크가 그것 때문에 변할 거라고 말했었어.

인간 중에 나선의 탑 시련을 통과해서 자격을 손에 넣은 자가 나타났어.

하지만 선별의 다른 한쪽인 승격 네트워크는 아직 거기까지 진화하지 못했어.

진화를 추구하는 승격 네트워크도 대행자와 승격자에 대한 새로운 선별을 시작했어. 아마도 그 자격에 닿을 수 있는 존재를 찾으려는 거겠지.

새로운 선별이라...

알파는 문득 피와 불꽃만 남은 의식 공간을 떠올렸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선별이라면,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맞아. 그게 바로 언니에게 주어진 새로운 선별이야.

루나는 알파의 마음속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알파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승격 네트워크는 더 강한 대리인이 필요했고, 그 의지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대행자가 필요했어.

하지만 언니가 계속 승격 네트워크를 거부하니까, 선별이 그렇게 난폭하고 잔인해진 거야.

언니가 일찍 깨어나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언니의 의식을 쉽게 찾을 수 없었을 거야.

그럼, 지금의 넌 무슨 상황이야?

선별할 때 새로운 권한이 생겼고, 이전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어.

우리의 인식은 우리의 감옥이고, 생각이 미치는 한계가 감옥의 담장이야. 그러니까 많은 걸 알수록 이 감옥도 넓어지게 돼.

더 많은 권한을 얻었다는 건, 그만큼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계가 더 긴밀해졌다는 걸 뜻해.

그리고 승격 네트워크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 되겠지.

스윙 벤치가 흔들릴수록, 루나의 목소리는 더 공허해졌다.

루나!

잃어버린 기억이 이제야 생각났다.

기억 속의 은백색 소녀는 적색 결정 속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생명이 얼어붙은 인형 같기도, 제단에 바쳐질 어린 양 같기도 했다.

이건 승격 네트워크를 사용한 대가였다. 그 힘을 사용할수록 그것이 선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됐다.

알파가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의 응답은 받을 수 없었다.

쇠사슬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스윙 벤치는 멈춰 섰다. 그리고 루나도 뭔가에서 벗어난 듯 원래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언니. 걱정하지 마. 나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어.

하지만 새로운 권한을 얻은 동시에 의무도 이행해야 해서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언니와 만날 수밖에 없어.

난 여기에 있기로 했고,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

아마도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 승격 네트워크와 너무 얽혀서 그런 걸지도 몰라.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래야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니까.

승격 네트워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지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능은 없어.

그건 모든 승격자를 거대한 담장 안에 가두는 것과 같아.

난 승격 네트워크와 너무 깊게 얽혀 있어서, 그 벽을 넘을 가능성은 없어.

하지만 언니는 달라. 언니는 항상 벽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있는 존재야.

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집착하는 거야?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에 종점은 없어. 그건 마치 끝나지 않는 원모양 같아.

이러한 선별의 끝엔 강력함과 고독만이 남게 되겠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언니의 생각이니까.

난...

이때, 주위의 벌레 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동그란 등불도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가 한계인가 봐.

언니. 내 권한으로 승격 네트워크가 언니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인 것 같아.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승격 네트워크는 그것의 방식으로 네 자유를 제한했고, 같은 방식으로 날 통제하려고 해.

그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어.

이제 승격 네트워크와 끝낼 때가 됐어.

그럼, 이 연구소에서 언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알파의 머릿속에 갑자기 선명한 좌표가 나타났다.

여긴 어디지?

겨울 요새. 북극에서의 그 사건 이후로 우리가 줄곧 조사해 왔던 비밀 연구소야.

여긴 어떻게 알았어?

달로 옮겨지기 전에 그곳에 갇혀 있었어.

승격 네트워크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두 개의 신호를 수신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인간이 연구해 낸 신형 특화 기체였어.

그리고 그 이중합 탑이 전자기 복사를 방출하는 동안, 승격 네트워크가 세 번째 신호를 잠시 포착했었어. 그 지점이 바로 연구소 내부였거든.

그래서 그 연구소 내부에 나 말고 다른 경로로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에게 있어 그건 직접 승격 네트워크와 마주할 수 있는 문이나 다름없지.

언니가 지금의 특별 상태를 유지하면서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면... 어쩌면 승격 네트워크에서 이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알파는 자신의 의식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걸 의식했을 무렵, 주변의 경치가 조금씩 멀어졌고 루나의 모습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언니...

앞으로는 언니 혼자서 해결해야 해.

의식이 다시 몸으로 돌아온 알파는 짧은 휴면에서 깨어났다.

알파는 다시 결정 속에서 잠든 소녀를 바라보며 옆에 칼날이 조금 구부러진 태도를 칼집에 넣었다.

의식의 바다 혼란에 휘말리기 전, 알파는 강제적인 방식으로 루나를 결정 속에서 구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툭하면 부러질 것같이 보이는 결정들은 겉모습과 다르게 단단했다. 그건 우리이자 안전을 보장하는 장벽이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우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할게.

알파는 결정 표면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소리 없는 맹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