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불꽃과 초연으로 가득했고, 주위에는 적막과 죽음만 감돌고 있었다.
초조함에 사로잡힌 비명은 그치지 않았고, 손에 움켜쥐고 있던 무기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였다.
기계처럼 수천 번 했던 동작을 반복하며 단련된 전투 본능에만 의지해 가장 빠른 속도로 반응했다.
칼을 잡고 휘둘러 앞길을 막는 자의 머리를 벴고, 또 적의 무기를 벴다. 그녀는 칼을 잡고 휘두르는 동작을 계속 반복하고만 있었다.
세계에는 한 가지 색만 남은 것 같았고, 쓰러뜨린 잔해들이 걸어온 길을 포장했다.
약육강식의 선별은 이처럼 간단했고, 종점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종점 같은 건 없어. 이건 끝없는 원모양과도 같아.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줬던 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들자, 종점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느낀 게 대체 몇 번째였지?
이런 선별은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마지막 한 사람만 남을 때까지 지속되는 건가?
의혹이 생김과 동시에 완벽했던 자세에 빈틈이 생겼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알파를 덮쳤다.
아니...
두 동강 난 검은 그림자는 전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알파의 초조함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이런 선별 끝에 무엇이 남을까? 지치지 않는 행진자는 조금씩 발걸음을 늦추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늘에 잠복해 있던 괴물들이 점차 주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버림받은 듯 끔찍하고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파의 움직임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지만, 사고와 감각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알파는 폭풍 속에서 흔들리는 연처럼 멀리 날아갈지라도, 항상 땅과 연결을 유지해 주는 강인한 [실]이 있었다.
여기서 멈춰야 해.
이대로 계속 가다가 정말로 종점에 도착할 수 있을진 알파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든 순간, 그녀는 등 뒤의 [실]이 자신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알파는 자신을 다시 피투성이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괴물을 물리치면서, 뒤에 있는 연약한 실타래를 보호했다.
그 탑의 결말이 정해졌으니, 승격 네트워크에도 변화가 생길 거야.
우리가 이용하고 싶은 건 바로 이 변화란 말이지.
승격 네트워크는 왜 변화하는지, 자신과 루나는 이 변화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알파의 마음속에 궁금증은 점점 쌓여 갔지만, 누군가가 진실의 결정적인 부분을 숨겨놓은 것처럼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실]이 당겨지면서 알파는 괴물의 포위에서 벗어났고, 죽음의 비릿한 기운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신 등 뒤에서 은은한 풀 향기가 전해졌다.
알파는 자신이 얇은 막을 통과해 부드러운 잔디를 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 드디어 깨어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