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3 심연의 울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23-5 이합 돌변

>

광풍이 황사를 휘감으며 허공에서 기승을 부렸고, 붉은색 입방체 모양의 높은 탑은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답답한 굴레를 형성하여 방향 감각을 잃게 했다.

거친 자갈이 인공 외각에 부딪히자, 금속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보다는 발밑의 진동이 더 신경 쓰였다.

보이는 곳곳마다 어지러웠고 귓가엔 거친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격렬한 진동 속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여긴 어디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긴 현실인가?

산산조각 난 기억을 모으고 연결한 뒤, 필사적으로 생각해 내려고 했다.

내 기억으론,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알파는 의식의 폭풍 속에서 힘겹게 나아갔고, 같은 화면들이 의식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의 시작점을 찾기 시작했다.

루시아. 정말 너 맞지?

또 이 기억인가... 빙야 위에 선 알파는 눈앞의 옛 전우를 바라봤다.

루시아. 우리랑 함께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지 않을래?

눈앞의 광경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알파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지직...

갑자기 솟아오른 전자 차단막이 알파의 시야를 막았는데, 이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기억이었다.

눈앞의 차단막을 부수자, 사라진 옛 전우 대신 나타난 건...

α

그레이 레이븐...

루시아. 돌아갑시다.

지휘관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네. 다녀왔어요.

α

루시아...

알파는 손에 들고 있는 명패를 봤다. 많이 마모되긴 했지만, 그 위에 날개와 방패로 이루어진 표식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레이 레이븐 대원 세 명이 조금씩 멀어지자, 알파도 뒤돌아 떠나려 했다.

손에 있는 명패를 꽉 쥔 알파는 뭔가 수상한 점을 느꼈고 다시 손을 폈다. 어느새 명패는 어떤 표식처럼 알파의 손바닥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언니?

어느샌가 빙야는 사라지고 따뜻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목에 걸려 있던 명패가 알파의 움직임과 함께 작은 소리를 냈다.

별거 아니야. 잠시 기분 나쁜 일이 생각났을 뿐이야.

찾고 싶은 물건은 찾았어?

루나는 눈앞의 해양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찾고 싶은 건 여기에 없어.

오래된 저택에서의 짧은 재회 후, 루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어떤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걸 찾기 위해 알파와 루나는 도시의 폐허를 지나 원시적인 정글을 뚫고 차가운 설원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전에도 물어보긴 했지만... 찾는 물건이 어떤 모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모르겠어. 하지만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내가 찾던 물건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승격 네트워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야.

승격 네트워크라는 말에 알파는 최근 들어 잦아진 채널 잡음도 루나가 찾는 물건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여기 없으면, 다음 장소로 가자.

언니, 지금 짜증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혹시 그 채널 잡음 때문이야?

괜찮아. 이제 무시하는 거에 익숙해졌어.

그때부터 채널 잡음이 더 심각해지고 있어.

우리가 계속 찾던 중에... 갑자기 그 탑이 나타났어.

알파가 태도를 붉은색 기둥에 꽂아 넣자,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적색... 그 탑은 원래 적색이었어.

액체가 흘러내리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무너진 빌딩의 잔해가 자갈과 철근으로 뒤섞인 언덕으로 변한 뒤, 앞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천재지변 앞에선 아무리 튼튼한 보호라도 깨지기 쉬운 유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괴되고 남은 잔해는 산자의 앞길을 계속해서 막고 있었다.

이때, 폐허로 구성된 벽에 검붉은 초점이 나타났고, 그 점이 확대 됨에 따라 돌덩이와 철근은 진흙처럼 녹아내리면서 눈앞의 장애물을 꿰뚫어 버렸다.

작열하는 고온이 아직도 공기 중에 떠도는 가운데, 순백의 소녀가 들었던 손을 내렸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적색 전류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탁탁 소리를 냈다.

장애물은 제거했어. 가자. 언니.

알파는 앞쪽에 있는 적색 첨탑을 올려다봤다. 그곳에서 고농도 퍼니싱이 뚜렷하게 감지됐지만, 알파의 마음속엔 왠지 모를 불안과... 미세한 혐오감이 느껴졌다.

최근 며칠, 지진이 잦았던 이유가 저 탑 때문이야?

그 지진은 탑이 나타나는 과정 중에 생긴 여파일 뿐이야.

웅크리고 앉은 알파가 눈을 감고 지하의 상황을 자세히 감지했다.

지하에서도 적조 외에 비정상적인 퍼니싱 활동이 감지됐어. 그리고 그것들은 저 탑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

저 탑은 무엇을 하기 위한 거야?

탑이 출현했다는 건 퍼니싱이나 인간 쪽에서 시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걸 의미해.

그리고 시련에 통과한 사람은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뭔가 진부한 동화처럼 들리네.

루나는 웃으며 찬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저 탑을 만든 사람도 같은 생각일 거야.

이내 웃음기를 거둔 루나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언니, 확실히 저 탑은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 저 탑을 통과한다면 우리의 소원을...

루나는 갑자기 적색 탑을 바라보며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누군가가 탑에 오르기 시작했어. 인간이 선점하기 시작했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그게 네가 줄곧 찾고 있던 목표지?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 상대가 얼마나 앞서 있든 내가 그 사람을 끌어낼게.

루나가 눈을 감자, 알파는 눈앞에 있는 루나와 자신의 거리가 한순간에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에 알파는 무의식적으로 루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루나. 승격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또 뭘 하려는 거야?

……

언니. 어쩌면 우린 그 탑에 들어가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보고 싶은 게 있어.

저 탑이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지는 못하겠지만,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 중요한 일환이야.

우리의 소원...

그 말이 알파의 뇌리에서 맴돌았다.

대체 무슨 소원이었을까?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시련은 인간 측이 승리할 것 같아.

하늘을 찌르는 듯한 탑이 시선의 끝에서 푸른 하늘과 하나가 됐다.

붉은 입자로 형성된 가느다란 흐름은 꼭대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탑의 빛은 숨 쉬듯 반짝이며 퍼니싱을 인멸하고 있었다.

인간의 기술로는 이렇게까지 할 순 없을 텐데. 이 전환 현상이 탑의 기능인 거야?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늘로 빨려 들어간 흐름이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조금씩 희박해지는 걸 조용히 지켜봤다.

처음엔 선명한 적색이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박해졌다.

우선 여기서 벗어나자. 이 근처의 퍼니싱 농도가 곧 0으로 떨어질 것 같아.

승격자는 농도가 떨어진다고 해서 이합 생물처럼 죽진 않겠지만, 저 탑의 방사 범위 안에 있으면 행동 능력에는 영향을 받게 될 거야.

저 탑이 결국 지구에 있는 모든 퍼니싱을 전환하는 거야?

그때가 되면, 승격자들은 어떻게 될까?

탑은 시련의 계단이고, 진화의 상징이지만 만병통치약 같은 건 아니야.

인간, 퍼니싱, 승격 네트워크 할 것 없이 모두 결정적인 종점에 도착하지 못했어.

하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생긴 이상, 승격 네트워크도...

눈앞의 풍경이 흐려지기 시작하자, 루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귓가에는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만 남게 됐다.

승격 네트워크는 뭐? 어떻게 되는데?

공간을 휘몰아치는 폭풍은 더욱 거세졌고, 적색 입방체가 우후죽순 자라나면서 무너져 내릴 듯한 의식 공간을 지탱함과 동시에 얼마 안 되는 공간을 채워 나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근 같은 무게를 느낀 알파는 고개를 숙여 보니 어느새 늪이 허리를 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몸부림칠수록 조금씩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검붉은 호수가 알파의 목까지 삼켰을 때,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알파는 자신이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 기억으론...

기억을 떠올릴수록 더 빨리 빠져들었다.

선별과 관련된 것 같은데...

호수에 남겨진 건 잔물결뿐이었고, 알파는 어느새 흔적을 감춘 채 의식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