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3 심연의 울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23-4 새로운 가능성

>

루나와 알파가 회포를 풀고 나니, 시간은 이미 저녁이 됐다.

이합 생물, 쌍둥이... 그동안 퍼니싱 창조물이 이렇게나 발전했구나.

가브리엘은 결국 자신의 야망 때문에 죽어버렸고.

가브리엘의 이름을 다시 언급했을 때, 루나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다.

순순한 퍼니싱으로 응집된 창조물도 그 종점까지 갈 수 있을까?

종점?

루나는 알파의 질문을 듣고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고 그저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알파를 바라봤다.

알았어. 그건 대행자가 되어야 알 수 있는 일이란 거지?

알파는 그 문제에 대해 깊게 물어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본·네거트는 왜 그렇게 이합 생물에 관심을 보인 걸까?

그리고 그들은 이중합 모체를 육성하는 지하 통로에서 자비로운 자를 만났는데, "복음"을 위해 왔다고 했어.

종점에 가지 못하더라도 선별의 시험으로 삼을 수 있으니까. 아마도 본·네거트는 이런 방식을 통해 "훌륭한" 씨앗을 싹트게 하려는 거겠지.

그리고 자비로운 자는...

루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단순하게 자비로운 자를 성격이 특이한 대행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승격 네트워크에 다시 연결했을 때 그녀가 그렇게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심지어 지금은 자비로운 자가 진정한 대행자인지 확신할 수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이합 생물들을 바라보고 있는진 나도 추측하기 어려워.

솔직히 난 자비로운 자보다는 본·네거트가 더 신경 쓰여. 그의 부하가 행동을 취했다는 건, 그가 명령을 내렸다는 걸 의미하니까.

최근 공중 정원에서 일어난 대규모 배신 사건도 그가 선동했을 가능성이 커.

언니, 이 일을 조사하고 있었던 거야?

배신하고 탈출한 구조체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상대가 날 배신자를 모집하고 있는 승격자로 착각했어.

그 배신자한테서 모든 정보를 얻어 낸 뒤, 다른 배신자들도 잡아서 고문해 봤었어.

그들이 말한 내용엔 별반 차이가 없었고, 모든 내용이 본·네거트와 그의 부하들을 가리키고 있었지.

예전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잖아.

공중 정원이 어떻게 되든 난 관심 없어. 하지만 그 남자는 인간과 연락하고 있었고, 너에 대한 정보도 그가 흘린 거였어.

075호 도시 사건을 겪은 당사자조차도 네가 공중 정원에 있다는 걸 몰랐어. 하지만 그는 네 자세한 위치까지 알고 있었어.

이런 기밀 정보는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스파이를 보낸다 해도 이렇게 정확한 정보는 알기 어렵지.

그는 분명 누군가와 협력 관계를 맺었을 거야. 어떻게 보면 그들의 결정에 참여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가 널 달에 버리려고 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나한테 적이야.

애초에 인간은 통일된 의지가 없어. 동일 인물일지라도 다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기 마련이야.

그들 중 누군가가 대행자와 협력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아.

중요한 건 인간이 대행자한테 어떤 약속을 했냐는 거야. 아니면 그들이 대행자도 관심 가질 만한 물건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궁금해.

조사해 볼까?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루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공중 정원이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그 남자가 배후에서 실행했던 계획은 겉만 보면 다 실패한 것 같은데,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야.

어떤 집착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미치지는 않고... 그래서 상대하기 더 어려운 거지.

그가 뭘 하든 승격 네트워크를 뒤흔들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대행자 자격을 포기할 수도, 포기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걱정하는 건 승격 네트워크가 아니라 루나 너야.

예전처럼 선별에 집착하진 않지만, 승격 네트워크에 더 얽매이는 것 같아.

고마워. 언니.

내 상황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계속 나아가야 미래를 볼 수 있어, 여기서 포기하면 후회만 남게 될 거야.

알파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전처럼 선별에 통과할 수 있는 [씨앗]을 찾아야 해?

아니. 그건 당분간은 하지 않아도 돼.

부유 모드를 해제한 루나는 석제 분수의 가장자리에 앉은 뒤, 정원을 훑어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

당분간 할 게 없으면, 들어가 볼래?

알파는 이미 허물어진 마당을 바라봤다. 깨진 유리창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하얀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은 누런 목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래. 앞으로 뭘 할지 정하기 전에 보러 가자.

문 앞에 선 알파와 루나는 빨간 물감으로 그린 몇 개의 기호를 발견했다. 색은 바랬지만, 모양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뭐지?

……

루나는 뭔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루나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린 알파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걸 거야.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는 걸 멈췄지만, 얼굴엔 여전히 옅은 미소가 남아있었다.

언니...

왜 그래?

롤랑하고 라미아와 함께 있던 때가 그리워?

갑자기 그건 왜? 그들을 찾고 싶으면, 내가 같이 가 줄게.

아직은 필요 없어. 그리고 그들이 날 찾고자 한다면, 내 위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루나가 눈앞의 문을 살며시 열자, 썩은 나무와 녹슨 쇠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먼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전에 그들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야.

여긴 이렇게 됐구나...

방안에 달빛이 비치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합 생물 한 마리가 땅에서 기고 있었다. 합금 강판도 쉽게 찢을 수 있는 앞발을 가슴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에 모으고 있는 모습이 둥글둥글한 두더지 같았다.

몸을 움츠려도 5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가 되는 "두더지"가 순백의 소녀 시선 아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기도 이상은 없어.

한쪽 건물에서 나온 알파는 루나가 눈앞의 이합 생물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이 이합 생물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움츠린 이합 생물에서 시선을 거둔 루나가 고개를 돌려 알파를 봤다.

언니. 얘가 두려워하고 있어.

알파는 말없이 이합 생물 주위에 둘러싸인 가시를 바라봤다. 가시의 두드러진 부분이 위험한 빛을 빛내고 있었다.

응. 그런 것 같네.

루나가 손을 흔들자, 퍼니싱으로 응집된 가시는 진홍빛 입자로 변한 뒤,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웅크리고 있던 이합 생물은 해방된 듯 네발로 재빠르게 달아났다.

루나는 이합 생물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언제부터 이합 생물에 관심이 생겼어?

이합 생물이 날 무서워한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야.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게.

알파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미세한 감정을 읽어낸 듯, 루나는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이합 생물들의 구조가 침식체와 다르긴 하지만, 행동 모드는 같아. 모두 본능대로 움직이지.

그래서 그들이 적을 식별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해. 누군가가 명령을 통해 적을 표시해 주거나 퍼니싱을 감지해서 판단하는 거야.

그렇다는 건, 제어를 당하지 않은 이합 생물들은 승격자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리고 우리를 보고 두렵다는 감정을 느낄 리도 없지.

두렵다는 건 저항을 의미하고, 저항은 반항으로 발전되니까.

그 이합 생물은 널 두려워하고 있던 걸까... 아니면 대행자를 두려워하고 있던 걸까?

나도 모르겠어... 다른 걸 두려워하고 있을 수도 있어.

어떻게 발견한 건데?

여기 근처를 기어다니던 이합 생물이 날 감지하더니 도망치려고 했어.

이합 생물은 일반 생물과 달라서 천적 개념이 없어. 게다가 난 퍼니싱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게 이상해서 묶어뒀지.

그래서 뭐라도 알아냈어?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얼굴엔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어. 태어날 때부터 입력된 설정일 수도 있고, 우연히 생긴 특별한 개체일 수도 있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예전과 달리 침식체나 이합 생물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네.

그들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었거든.

루나는 고개를 들어 구름 몇 점으로 수놓은 하늘을 바라봤다. 대지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위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승격자, 인간, 로봇 할 것 없이 변하지 않는 건 없어. 지금 이합 생물조차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잖아.

선별 표준도 그래. 승격 네트워크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어.

새로운 가능성이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렇게 해.

응. 그럼, 언니는? 언니는 하고 싶은 거 있어?

나? 글쎄.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네 옆에서 널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때 그녀들은 자신이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